나의 비움, 아버지의 채움
― 내가 가진 것이 모두 아버지의 것이 된 날
어느 날이었다.
예고도 없이
내 삶의 작은 주머니 하나가
홀연히 비어 버렸다.
나는 가진 것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내게는 꼭 필요해서 마련해 둔
작은 비상금이 있었다.
그런데 봉사하러 먼 곳까지 기쁘게 다녀온 어느 날,
그 돈의 일부가 봉사터에서 사라지고,
또 한 번 성당에서 사라졌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었다.
내게는 그것이 단순히 돈을 잃은 일이 아니었다.
그 돈은 내가 가진 유일한 비상금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
막막한 마음이 밀려왔다.
봉사하러 먼 길까지 기쁘게 다녀왔는데
돌아온 내 마음에는 기쁨보다 서운함이 먼저 찾아왔다.
나는 며칠 동안 속을 끓였다.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 아버지를 바라보며
조금은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물었다.
“아버지, 내 아버지여!
어찌 이러시나요?
제 모든 사정을 다 아시면서
왜 지켜주시지 않았나요?
저에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나는 아버지를 향해
말없이 시선을 흘겼다.
기도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섭섭함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께서 정말 나를 사랑하신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두셨을까?’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참아내다 못한 내 마음에
아버지의 음성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아주 짧은 한마디였다.
“얘야, 내가 썼단다.”
순간,
쿵—
내 마음 깊은 곳에
무언가가 내려앉았다.
말문이 막혔다.
꽉 다물어진 입술 사이로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잃었다고 생각했던 그 돈을
아버지께서 쓰셨다는 것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께서 필요한 곳에 사용하셨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움켜쥐고 있던 작은 돈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통로로
바라보고 계셨다는 것을.
나는 그것을
‘내 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얘야, 그것도 내 것이란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무너졌다.
돈에 대한 집착이었을까.
내가 내 삶을
내가 책임지고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지막 순간에는 내 손으로
내 삶의 안전을 움켜쥐고 있던 마음이었을까.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진 것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오늘 숨 쉬는 것도 아버지께서 주신 것이고,
오늘 먹을 양식도 아버지께서 주신 것이며,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도
아버지께서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내 손에 잠시 머물렀던 그 작은 돈 역시
아버지의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조용히 고백했다.
“이제 아버지 것은 내 것이요,
내 것은 아버지 것입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돈은 없어졌는데
나는 오히려 부자가 된 것 같았다.
비워졌는데
채워졌다.
내 주머니는 가벼워졌는데
내 영혼은 가득 찼다.
그제야 알았다.
비움은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채우실 자리를 마련하는 것임을.
내가 움켜쥐고 있을 때에는
그 작은 돈 하나가 내 삶의 안전처럼 느껴졌지만,
내려놓고 나니
내 삶 전체가 아버지의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그날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었다.
돈이 많아져서가 아니다.
나를 책임져 주시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온 마음으로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혼의 일용할 양식도,
오늘을 살아갈 힘도,
내일을 향해 걸어갈 용기도
모두 아버지께서 주시는 선물이었다.
그래서 나는 웃으며 고백한다.
“오,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제가 가진 것을 가져가신 것이 아니라
제가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군요.”
그날 이후
내게 ‘나눔’은 조금 다른 의미가 되었다.
내가 가진 것을
내가 베푸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내게 잠시 맡기신 것을
필요한 곳으로 다시 흘려보내는 것.
나는 그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어쩌면
그 작은 비움에서
‘소금창고1004’의 씨앗이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내 손에 들어온 것을
내 손 안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흘려보내는 것.
오늘 내 곁에 있는 한 사람에게
사랑을 건네고,
조금 더 멀리 있는 사람에게
희망을 보내고,
마침내 그 사랑이
국경을 넘어 필리핀으로,
캄보디아로,
몽골로,
말레이시아 코타의 아이들에게까지
흘러가게 하는 것.
나는 그것을
내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께서 시작하셨고,
아버지께서 사람을 보내주시고,
아버지께서 천사들의 손을 움직이시고,
아버지께서 다시 사랑을 흘려보내시는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 주머니를 바라보기보다
아버지의 손을 바라본다.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되는지를
세기보다,
아버지께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흘려보내고 계신지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고백한다.
“아버지,
내 것은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것은 또한 제 것입니다.
그러니 필요한 곳에 쓰세요.
저를 통해 흘려보내세요.
제가 움켜쥐지 않도록
제 손을 열어 주세요.”
이제 나는 안다.
비워지는 것은 끝이 아니었다.
그 빈자리는
아버지께서 사랑으로 채우시는 자리였다.
내가 비운 만큼
아버지께서 채우셨고,
내가 내려놓은 만큼
아버지께서 더 큰 것을 맡기셨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감사한다.
가난한 과부의 작은 주머니를
아버지께서 한 번 비우셨고,
그 빈 주머니를 통해
더 큰 사랑의 창고를 열어 주셨다.
나의 비움은
아버지의 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내 삶을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소금창고1004.
하늘에서 받은 사랑을
세상에 다시 나누어 주는 곳.
작은 천사들이 사랑을 싣고 날아와
또 다른 이에게 사랑을 전하는 곳.
🦋
첫댓글 완벽한 수학
내 것은 모두 하느님 것, 고로 하느님 것은 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