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과 이민
오스트레일리아는 영 연방의 일원인가. 아니면 아시아의 일원인가?
오스트레일리아의 자아상에 대한 논의는 이 책에서 거듭해서 제기되었던 문제,
즉 사회의 안전성에 미치는 우방, 적의 위상과 관계가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어떤 나라를 우방이며 교역 상대로 생각하고, 어떤 나라를 적이라고 생각해왔을까?
그런 인식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교역 상대부터 시작해서 이민의 문제로 넘어가도록 하자.
1950년대까지 거의 한 세기 동안 농산물, 특히 양모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었고 그 다음이 광물이었다.
오늘날에도 오스트레일리아는 세계 최대의 양모 생산국이지만,
합성섬유가 양모를 대체하는 경쟁 상품으로 등장하면서 양모의 수요가 전세계적으로 감소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양모 생산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양의 두수는 1970년에 1억 8,000만 마리(당시 오스트레일리아인 1인당 평균14마리)로
최고조에 이른 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생산되는 양모의 대부분은 특히 중국과 홍콩으로 수출된다
그밖의 중요한 농산물에는 밀(러시아, 중국, 인도가 주요 수입국이다),
오스트레이리아 특산품인 마카로니용 밀, 포도주, 유기농 소고기 등이 있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는 식량에서 소비량보다 생산량이 더 많아 순(純)식량수출국이다.
하지만 인구가 증가하면서 가계의 식량 소비는 증가하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오스트레일리아는 언젠가는 순수출국에서 순수입국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양모를 비롯한 농산물은
오스트레일리아가 현재 외국과의 교역에서 광물(1위)과 관광(2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산업이다.
광물은 수출액을 기준으로 석탄, 금, 철광석, 알루미늄의 순성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석탄 수출국이다.
우라늄, 납, 은, 아연, 티타눔, 탄탈의 매장량은 세계 촤대이고
석탄, 철광석, 알루미늄, 구리, 니켈, 다이아몬드의 매장량은 세계에서 6위 내에 있다.
특히 석탄과 철광석의 매장량을 어마어마해서 먼 미래까지도 완전히 채굴할 수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오스트라일리아의 광물의 초대 수입국이 과거에는 영국과 유럽 국가들이었지만 ,
지금은 아시아 국가들이 유럽국가들보다 5배나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 한국, 타이완이 3대 수입국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오스트레일리아가 수출하는 석탄, 철광석, 알루미늄의 거의 절반을 일본이 수입하고 있다.
요컨대 반세기 만에 오스트렝ㄹ리아가 농산물 수출국에서 광물 수출국으로 바뀌었고,
교역 상대는 유럽에서 아시아로 넘어갔다.
미국은 여전히 오스트레일리아의 최대 수입원인 동시에 일본 다음으로 두 번째 수출 고객이다.
교역 상대가 변하면서 이민의 흐름도 바뀌었다.
면적은 미국과 비슷하지만 인구는 겨우 2,000만으로 훨씬 적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환경이 그만큼 비생산적이어서 많은 인구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1950년대에 정부 지도자를 비롯한 많은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이 인구가 많은 아시아의 이웃들,
특히 자체로 2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를 두렵게 생각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지리적으로 훨씬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역시 인구가 많은 일본에게 위협받고 폭격까지 당한 제2차 세계대전의 쓰라린 경험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오스트레일리아가 아시아의 이웃들에 비해서 인구가 훨씬 적기 때문에 큰 위험에 처할 수 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의 빈 공간을 신속히 채우지 않으면 인도네시아인들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따라서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이민의 문을 활짝 개방하는 속성 프로그램을 일종의 공공 정책으로 시행했다.
이 프로그램으로 과거의 백호주의 정책은 포기된 것이나 마차가지였다.
백호주의 정책은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1901년에 제정한 이민 제한법으로 ,
이 정책하에서는 이민이 유럽 출신,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영국인이거나 아일랜드인으로 제한 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매년 발간하는 연감을 인용하면,
"비(非)앵글로색슨계 사람은 조절하기 어렵다"라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인구 부족을 절감하면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다른 유럽국,
특히 이탈리아, 그리스 독일, 나중에는 네덜란드와 옛 유고슬라비아에게도 이민의 문호를 넓혔다.
1970년대에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영국적 정체성보다 태평양에 속해 있다는 현실을 인식하면서
유럽 이외의 국가들에게도 이민의 문을 넓히고 싶었다.
그러자면 아시아에서의 이민을 막는 법적 장애물부터 없애야 했다.
영국과 아일랜드 뉴질랜드가 지금도 여전히 오스트레일리아의 주된 이민국이지만
이제는 전체 이민자 중 4분의 1이 아시아 출신이다.
특히 베트남, 필리핀, 홍콩, 중국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다.
이민의 행렬은 1980년대에 최고조에 이르렀고,
그 결과로 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 인구 증 거의 4분의 1이 해외에서 태어난 이민자이다.
미국은 12퍼센트, 네덜란드의 3퍼센트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이런 '채우기(filling-up)' 정책에는 깊은 오류가 감추어져 있다.
유럽인의 정착이 시작된 지 두 세기가 지난 후에도 오스트레일리아가
미국만큼의 인구밀도로 땅에 채워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물 공급가 식량 생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 땅에는 턱없이 많은 인구를 수용할 수 없다.
게다가 인구가 증가한다면 광물의 1인당 수출량도 크게 떨어질 염려가 있다.
이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는 최근 들어 이민자를 연간 10만 명까지만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수치는 이민자로 인한 연간 인구가 단지 0,5펴센트씩 증가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맬컴 프레이저(Malcolm Fraser) 전 수상과 주요 정당 지도자들을 비롯한 영향력 있는 인물들,
오스트레일리아 상공회의소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인구를 5,000만 명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구가 과밀한 아시아 국가들에서 시작될 황화(黃禍,Yellow Peril)에 대한 두려움,
세계적인 강대국이 되고 싶은 열망, 그리고 2,000만 명의 인구로 그런 목표를 이룰 수 없다는 생각 들이 복합된 주장이다.
그러나 요즘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수십 년 전부터 키워온 강대국의 꿈을 접어버린 듯하다.
그들이 이런 꿈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스라엘,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싱가포르는
오스트레일리아보다 훨씬 적은 인구를 가진 나라들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었다.
그 나라들은 인구가 수백 만에 불과하지만 막강한 경제력을 과시하며,
테크놀로지의 혁신과 문화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데 큰 몫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때문에 정부 및 기업계 지도자들의 주장과 달리,
70퍼센트의 오스트레일리아인은 더 이상의 이민자를 바라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오스트레일리아가 현재 인구라도 유지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현재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있는 지속 가능한 최적의 인구는 800만,
즉 현재의 인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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