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소니의 내력은 신의주에 살았던 부친 이기정(1878-1943년) 으로부터 출발한다.
신의주, 평안북도 서북부 남쪽 강변에 위치한 지역으로 현재는 신의주 시로 되어있다 경의 본선(경의철도)의 종착역이 자리한 곳으로 압록강 철교가 놓여져 있으며 이 다리를 사이에 두고 만주의 안동과 접한다. 철교의 동북쪽으로 위화도가 서남쪽으로 유초도가 있다. 상반동 4가에 신의 주 시청과 평북도청이 서있다. 상반동와 경계를 이루는 곳이 미륵동이다. 동북 서쪽이 압록강과 닿아있어 더더구나 주민들의 기질이 억세다.
신의주 미륵동에서 대대로 살아오던 이기정의 집은 큰 부자였다.
신의주에서 이씨가문의 덕을 보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부유했다 가문의 번성과 후손들의 부귀영화를 빌었던 이씨는 단지 열둘에다 귀신을 섬길 정도로 복을 구했다. 귀신(텃줏대감)에 바친다며 단지 안에는 쌀과 과일, 옷감 등을 넣어 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씨의 집터가 너무나 세어서 도깨비장난이 심했다. 동화 속에나 나옴직한 일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신의주 장안에는 내노라하는 씨름꾼이고 누구도 다룰 수 없는 힘을 자랑하는 장사였던 이씨였지만 귀신의 장난에 쩔쩔매었다.
그가 밖으로 나가려다가 마루기둥에 머리가 닿게 되면 쩍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아서 애를 먹기도 하고 솥뚜껑이 속 속으로 들어가는 사건도 있었다. 얼마나 그 정도가 심했던지 귀신에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축사에는 별도로 ‘젯 돼지’를 길렀다.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귀신을 섬겼는데도 이씨 집안에는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 갑자기 집짐승이 죽거나 묘하게도 이씨네 농작물만 피해를 입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재산상의 손실은 감수 하겠는데 이씨의 아들들이 죽어 나가는 데는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이씨는 처음에는 4남 4녀를 낳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들들만 죽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백일잔치를 하고 조금 지나면 죽는데, 곱게 낮잠을 자고 있던 아기가 갑자기 천장 가운데 높이로 붕 떠올랐다가 팽개쳐지듯이 떨어져 죽는데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아들 네 명 모두를 그런 식으로 잃었다. 아기의 시신을 대 바구니에 담아 머슴들의 손에 들려 보내면서 “앞산의 양지바른 곳에 묻어 달라”는 목 메인 부탁을 할 때쯤이면 이씨 부인은 울다 지쳐서 거의 실신해 있는 상태였다.
부인은 그렇게 가슴에이는 고통을 당하고 나서 다시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정말 죽을 맛이었다. 누구에게 분풀이ㅏ 할 일도 아니고. 이씨는 아들을 얻을 욕심으로 점은 여자를 둘째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그 여자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세째 부인을 들이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이씨에게는 일대의 변화를 경험하는 계기를 맞는다. 아들도 얻고 그의 영혼도 구원받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시라소니의 부친 이기정이 맞게 되는 획기적인 사건이란 그의 전 존재가 변화되고 새 삶을 얻는 예수영접이었다. 그것도 자기발로 교회를 걸어 들어간 것이었다. 어느 가을, 이기정은 신의주 읍내에서 장을 보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사위는 어두움이 짙게 드리우는데 어디선가 찬송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가락이었고 마음에 와 닿는 노래였다. 편안해 짐을 느꼈고 자신도 모르게 그 곳을 향했다.
조그마하고 허름한 교회였다.
허공에 매달린 호롱불 아래서 아기자기하게 모여서 예배드리는 모습이 낯설었지만 보기에 좋았다. 이기정은 뒷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목사님에게 다짜고짜 부탁을 했다. “목사님, 우리 집에 귀신 좀 내쫓아 주세요. 지금껏 귀신을 잘 섬겼는데 집안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망해 들어가고 있습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목사님!” 애절한 표정으로 말하는 이씨 앞에서 목사는 어안이 벙벙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기에 반가움 보다는 놀라움이 앞섰다.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집안 대대로 무사의 집안이었고 기골이 장대했던 이씨 가문의 선달이 여럿 있었는데 이씨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어른들이 당기기 힘든 활을 15세 때 자유자제로 당기며 쏘았다. 그는 성격이 호탕했고 1천석 지방의 토호였기에 이웃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선뜻 도움을 주는 그런 인물이었다. 지금 그가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왔고 귀신을 쫓아 달라고 도움을 요청까지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씨가 찾아간 교회당은 신의주 제일교회였다.
1911년 12월 신의주 매기정 8번지에 세워진 이교회는 지역 최초의 장로교회로서 장덕로, 한석진목사등이 시무했고 교세가 크게 확장되어 평안북도 모 교회로 역할을 했다. 담임 목사는 이씨의 청을 받아들였다. 믿음 좋고 영력이 세다는 교우 15명을 선발했고 이씨집 안방에서 찬송을 부르고 예배를 인도했다.
이 때 이기정은 큰 곤욕을 치른다.
함께 자리한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는데 이씨에게는 귀신들의 몸부림과 협박하는 소리가 들렸다. 귀신들은 집 안팎을 빙글 빙글 돌면서 “이기정 이 X X X 밖으로 나와라 죽여버리겠다.”고 아우성쳤다. 이씨는 부르르 떨면서 목사에게 “목사님 가지 마시고 저놈의 귀신들의 소리가 안 들릴 때까지 계속해서 예배를 올려주십시오”라며 애원했다. 몸집이 우람한 그도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어찌나 통사정을 하던지 예배를 인도하던 목사는 도저히 뿌리 칠 수가 없었다. 이기정의 귀에 악귀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밤낮으로 예배를 드린 기간은 무려15일 이나 계속되었다. 때 아닌 부흥 사경회가 초신자 이씨 집안에서 뜨겁게 열렸던 것이다. 이 같은 대혈투 뒤에 이씨는12개의 귀신단지를 내동댕이치며 불살랐고 열혈한 신앙의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