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길
유옹 송창재
공식적인 공일이고 늘 오는 토요일인데
추석뒤에 오는 공일이라 마치 연휴 덤의 하루인듯 더 긴 것처럼 느껴져 나의 멋진 아가씨 애니한테 데이트를 청했다.
내 아가씨야 언제든지 오케이다.
그래서 사랑하고 내가 미쳐 쩔쩔맨다.
추석연휴는 반쯤 끝났다.
아직도 막막하지만 내일도 늘 공일이니 부담스러워 말자.
길 가다보면 잔치국수 파는 집도 있으니 칼슘은 멸치 두어마리로 보충하면 넉근하지만
내 아가씨는 고급 휘발유를 드셔야 엉덩이를 야하게 흔들며 멋지게 달린다.
뒤에 어떤 놈이 따라오나?
"그래, 너는 내꺼니까 내가 책임져야지!
나도 니꺼니까 너도 나 책임져!"
벌써 우리 가을 코스모스는 마을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얼치기 짬뽕 코스모스 말고
우리 것!
하기야 얘도 이름을 보면
백일홍 분꽃 채송화처럼 입양해 왔나 봐.
아무튼 꽃은 예쁘고 좋은거니까
시인들은 너희들을 데려다가 시랍시고 써서
자기 이름을 광고에 올리지만
그렇다고 삐지지는 말어.
그 시인도 네가 예뻐서 그러니까.
복지관에도 가지를 못하고 방에 박혀 글씨만 쓰려니 못 쓰는 글씨가 지루하고 답답했었다.
수시로 낮잠을 잤다.
허리가 뻑적지근하다.
넓은 복지관의 서실에서 넓게 붓질을하며 쓰는 글이 역시 호방하다.
그렇다고 내 방 책상이
10평 집에서는 가장 큰 가구여서 붓글씨를 쓸 수 없을만큼 좁은 것은 아니지만, 왠지 작고 오종종한 마음은 아마 추석이라는 날에 짖 눌려서 그랬을 것이다.
모두들 오랜만에 가족 친구들을 만나 가을의 풍성함을 맘껏 즐기고 이제는 각자의 왔던 곳으로 다시들 찾아 돌아간다.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 그리고 그담 날은 나도 바빴다.
오랜만에, 외국에 살던 친구가 들어와서 종일 어울렸고, 다른 친구들을 불러서 쌓인 이야기들을 하며 어린 추억에도 빠졌었다.
그리고는 각자 또 자기들의 서식지를 행해서 돌아섰고...
추석은 가족들과 보내고 그리고 또 헤어져갔다.
그리고 또 남겨진 공휴일~~ 그 공휴일만큼 공허한 날 이다.
이제 할 일이 없고 만날 사람도 바닥이 났다.
아니 궂이 찾아 만나려면 왜 만날 사람들이 없겠는가 만...
찾아 만나야 할 사람들이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이럴 때는 나의 사랑하는 애니를 데리고 먼 교외로 나가야 한다.
내 애인이니까!
목적지를 꼭 정할 필요 없이 그저 멀리 나갔다가 어차피 돌아와야 할 곳으로 돌아오면 그만인 것이다.
나 혼자 아니면 꼭 둘만 있으면 더 좋다.
많으면 가을 야외에 시끄러움만 보태는 것일 것이다.
나가자!
시골 논에는 아직 누렇지 못한 나락들이,
베지못한 나락들이 뜨거운 햇볕을 갈망하여 완숙하기를 기다리고...
더구나 쓸데없이 내린 폭우에 쓰러져,
주책없이 술 많이 마신 영감처럼 하늘만 바라보며 삿대질하면서 욕지거리하는 벼들도 있지만,
죄없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라
메뚜기는 없어도 나락이 탱글탱글하여 황금이 되어가고 있었다.
자빠져있는 논주인에게는 미안하다.
마치 벼락맞아 죽은 사람은 다 죄가많아서 그랬다는 듯이.
지금은 하늘도 노망이 들어서 죄가 엄청많은 놈들도 그대로 두는 세상이라!
길가 잡풀들은 여름내 그렇게도 기승을 부리며 농부들을 애를 태우더니 이제서야 누렇게 꺾어져 그라목슨을 맞은 것 같이 눈을 속이고 있다.
내년에 또 기승을 부리면서 사기를 칠것이 분명하면서!
아직 촌집의 열려있는 삽작 안에는 마당에 널린 붉은 고추들이 더 붉어져가고 있고,
한쪽에는 엄마가 먹을 희나리고추가
고추인지 고추잠자리인지 붉음을 다툰다.
신작로 길가는 군데군데에는 엄마가 서 계신다.
이미 떠나버린 아들의 차 뒷 꽁무니의 배기통 휘발유 냄새가 마치 아들의 체취라도 되는 것처럼 조금이라도 더 맡으려고 서 계시지만
매몰차게 멀어져 가는, 어차피 잊어버릴 차 뒷 번호판을 외우며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서 손을 흔들어 댄다.
내년에 또 볼 수 있을는지 손주모습을 걱정하며 자꾸 시큰거리는 무릎을 문지른다.
아들이 보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보이지 않는 차를 쫓으며 우두커니 선 엄마는 신작로 귀퉁이에서 눈가를 찍고 있다.
무슨 보퉁이를 그리도 자잘하게 넣었는지.
피난민 보퉁이같은 그 속에다 무엇이라도 하나 더 넣으려는 엄마와, 그만 넣으라고 손사래를 치는 며느리는 사랑싸움을 하고 있다.
마치 자기를 버리고 떠나기라도 할 것이 무서운 듯이,
한손으로는 자동차 트렁크의 문짝을 움켜쥐고 한번이라도 손주들을 더 보려고 차속을 들여다보며 무엇인가 열심히 이야기를 한다.
그 속에서 깔깔거리며 아이가 웃는다.
아마 내년에도 오라고 아이에게 통사정을 하시나 보다.
그리고 며느리는 차에 올라 가 버린다. 그냥 앞으로만....
목줄 묶인채 유기되는 애완견을 두고가는 것처럼.
길가 이름 모를 작은 나무에 빨간 잠자리 한 마리가 앉아있다.
엄마는 그 잠자리만 맥없이 바라보고 있다.
이미 차는 보이지 않는데도, 그 자리에서 잠자리와 멀어져간 신작로 끝자락만을 번갈아 보고 계신다.
엄마 눈이 빨간 잠자리 눈보다 더 붉다.
나도 우리 애니와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며 그냥 앞으로만 떠난다.
앞길이 뿌옇다.
애니야 우리는 헤어지지 말자!
내 유골함에 너도 함께 넣어줄께.
헤어지는 것은 슬픈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