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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행
몇 년 전 일입니다. 영동선 기차를 타고 짧은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자연을 바라보며 지친 마음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차가 달리던 중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약간 굽이진 철길을 지나가는 동안 짧은 터널이 계속 나타났습니다. 피암터널이었습니다. 산에서 떨어지는 돌멩이가 기차에 부딪히지 않게 보호하는 터널이었습니다. 잠깐 어두웠지만, 곧 다시 밝아졌고 자연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도 있습니다. 답답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굽이진 그 길이 내 영혼, 내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임을 기억하십시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찬송가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전담양 목사(고양 임마누엘교회)
5만원보다 500원
어머니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온 가족이 모였습니다. 조카가 결혼하고 낳은 두 돌 된 증손자가 왔는데, 말도 잘해 온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웠던 어머니는 자녀들이 선물로 준 용돈 봉투에서 5만원 지폐 한 장을 증손자에게 꺼내줬습니다. 그런데 증손자는 좋아하는 기색이 없어 보였습니다.
아이 아빠인 조카는 대신 500원짜리를 줘보라고 했습니다. 500원 동전 하나를 주니 정말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뽑기가 있는데 그 기계에는 500원짜리 동전을 넣어야 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조카가 5만원은 500원짜리 뽑기를 100번 할 수 있는 돈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증손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500원을 들고 좋아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모습도 이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더 가치 있는 것을 줘도 그보다 훨씬 덜 귀한 걸 소중히 여길 때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가치 있는 걸 볼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세상의 낮은 가치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높은 가치의 선물을 더 기뻐할 때 영적으로 더 성숙해질 것입니다.
손석일 목사(서울 상일교회)
이름을 불러 주시는 주님
JRR 톨킨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호빗’에서 갈라드리엘이 악당 사우론을 물리칠 때 “유 해브 노 파워 히어(You have no power here). 유 아 네임리스(You are nameless)”라고 말합니다. 너의 이름이 없다고 하자 사우론은 사라집니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존재의 집입니다.
김춘수 시인은 꽃조차도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군중 속에서 뽕나무 쪽을 보고 “삭개오야 내려오라”고 하시며 그의 이름을 불러 주셨고 그의 집에 유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지탄받던 몸짓에 불과했던 삭개오는 변화됐고 선을 행하는 존재가 됐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예배와 성경을 통해 우리 이름을 불러 주십니다. 너를 사랑한다고 꽃으로 피어나라고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 19:8)
한재욱 목사(강남비전교회)
임종예배
원로장로님 한 분이 투병하고 계십니다. 겸손함으로 믿음을 지키며, 밝고 따뜻한 성품으로 주변 사람을 돌아보며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이 병을 얻으니 덩달아 마음이 아픕니다. 걸을 만한 약간의 힘만 있으면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주일예배에 참석하시는 분인데, 앞으로 얼마나 더 함께 예배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루는 장로님 댁에 가서 성만찬을 하기로 했습니다. 코로나19로 교회에서 성찬식을 한 지도 오래된 데다 성찬식을 통해 장로님에게 주님의 위로와 힘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적은 인원이었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진지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성찬을 나눴습니다.
장로님은 성찬식을 임종예배로 받아들였습니다. 주님을 모셨으니 죽음도 두렵지 않다는 것이었지요. 장로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가 임종예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앞의 시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선제적 감사
감사의 절기를 맞고 있습니다. 추수감사 예배를 드릴 때 어떤 감사의 제목을 적어 넣었는지 궁금합니다.
전염병과 경기침체, 이동제한 등으로 한 해를 빼앗긴 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힘겹게 숨이 차도록 한 해의 수확을 결산하는 언덕까지 올라와서 나는 하나님 앞에 어떤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감사(Thank)와 생각(Think)은 같은 어원에서 나온 단어라고 합니다. 저절로 나오는 감사도 있지만, 진짜 감사는 생각하고 묵상한 결과 수확한 열매입니다.
예년보다 두 배는 더 힘든 것 같았는데, 여기까지 이른 것은 하나님의 갑절의 은혜와 보호가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나도 힘들었지만, 나 때문에 하나님은 더 힘드셨을 겁니다.
미래를 바라볼 때 하나님은 나로 인해 더 수고하고 아파하고 일하실 겁니다. 그래서 결과를 본 후가 아니라 우리는 미리 감사해야 합니다. 선제적으로 감사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이미 주신 것으로 감사할 뿐 아니라 앞으로 주실 것을 미리 감사하며 시작해야 합니다. 선제적 감사로 주님의 수고하심에 바르게 반응하며 삽시다.
이성준 목사(인천수정성결교회)
한 시인의 감사
36년 전 고교 시절 학교 근처 작은 교회에 걸려있던 간증 집회 현수막을 보고 호기심에 교회에 들어갔던 적이 있습니다. 교회엔 저보다 몇 살 많아 보이는 누나가 휠체어에 앉아 떠듬거리며 힘겹게 간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태어날 때 의사의 실수로 뇌성마비 장애를 얻었고, 절망 중에 살다가 하나님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지은 시를 낭독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그분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송명희 시인이었고 그날 밤 불평 많던 청소년 시기를 보내던 저에게 진정한 감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시 제목은 ‘나’였습니다. 감사를 잃어가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뿐 아니라 1년 365일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때 감사하는 가정과 교회, 사회가 될 줄 믿습니다.
차진호 목사(여의도순복음서귀포교회)
굳은살
고등학교 다닐 때 오빠에게 처음으로 기타를 배웠습니다. 기타 잡는 법, 피크를 이용해 기타 치는 법, 간단한 코드부터 하나씩 배워나갔습니다. 왼손으로 코드를 잡고 현을 연주하다 보니 손가락이 몹시 아팠습니다. 하지만 계속하다 보니 손가락에 굳은살이 생겨 오랜 시간 연주해도 아프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기타를 치며 찬양할 수준까지 됐습니다.
일상에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게 처음엔 쉽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내 의지와 말씀이 부딪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여호와의 인자하심이라는 악보는 처음 연주하기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하나 순종할수록 듣기에 아름다운 노래가 됩니다. 물이 변해 포도주가 되고 오병이어가 들판의 만찬이 되고 나아만의 나병이 소년의 피부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마음이 딱딱해지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바라기는 손가락 마디마다 순종의 굳은살이 생겼으면 합니다. 그 손으로 연주하는 인생마다 듣기에 좋았기 때문입니다.
전담양 목사(고양 임마누엘교회)
건짐 받은 개미
제가 나온 신학대학원은 1학년 때 영성 훈련을 위해 며칠간 수도원에서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가집니다. 여기서는 묵언 생활을 합니다. 숙소로 수도원 내 숲속 오두막 독채를 써 식사 때 외에는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습니다. 오로지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으로 보냅니다.
하루는 오두막 옆 개울가에 앉아 묵상하는데, 개울 한가운데 바위에 개미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개울물에 떠내려온 듯한 개미는 바위를 이쪽저쪽으로 다녔지만, 주변이 온통 물이라 우왕좌왕했습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나뭇잎으로 건져 숲에 놓아줬습니다.
이 모습이 구원받은 우리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힘이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으로 건짐을 받은 것이 구원의 은혜입니다. 시냇가 심은 나무가 복이 있는 건 잎이 늘 푸르고 철마다 열매가 가득한 것도 있지만, 시냇가에 심긴 것 자체가 복 중의 복입니다. 추수 감사의 계절에 구원의 은혜를 먼저 감사하는 고백이 있길 바랍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손석일 목사(서울 상일교회)
곧 석양이 될 것 같아서 일어섰습니다.
샬롬! 어저께 주일은 은혜롭게 잘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평안하심을 기원합니다. 이맘때쯤이면, 후식이나 간식으로 귤을 자주 먹게 됩니다. 유튜브에서 귤을 간편하게 까먹는 법을 소개하고 있어서 그리 했더니, 편하고 좋았습니다. 꼭지가 밑으로 하고, 칼로 중심부에서 열십자를 그어 자르되, 밑부분은 남겨둡니다. 그리고 포크 두 개를 이용하면 편히 먹을 수 있습니다.
서울대 김태길 교수는 법학에서 윤리학으로 전공을 바꾼 분이기 때문에 철학도로서 휴머니즘 본분과 종교적 신앙문제로 고민하는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 은사인 박종홍 교수는 평소 ‘철학자는 신앙을 가질 수 없고 가져서도 안 된다’고 주장하다가, 암으로 작고하기 얼마 전에 신앙으로 귀의하여 세례를 받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장례예배에서 김 교수가 제자들을 대표하는 책임을 맡기도 했습니다. / 김 교수는 불행하게도 사랑하는 따님을 잃었습니다. 그 사실이 장안에 충격적인 사건으로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가장(家長)과 아버지로서 견딜 수 없는 비참에 빠졌습니다. 너무 슬픈 일이었습니다.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위로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안정기에 접어들었을까?’싶었을 때, 전화를 걸었습니다. “많이 힘드시지요?”라는 내 목소리도 슬픔에 젖어 있었습니다. 김 교수는 “철학이나 윤리학은 이런 때 아무 의미도 없어졌습니다. ‘김 선생 같으면 신앙으로 이겨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김 교수도 말년에는 신앙을 받아들이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 재작년 늦은 여름에 김 교수의 묘소를 찾아갔습니다. 조용한 산자락 노송들이 내려다보는 가정묘지였습니다. 묘비 앞에 앉아서 사라져 가는 옛날 일들을 회상해보았습니다. 이것이 처음이면서 마지막 방문이겠기에 떠나고 싶지 않았으나, 곧 석양이 될 것 같아서 일어섰습니다.(출처; 백세일기, 김형석 연세대명예교수)
그 누구를 막론하고, 죽음 앞에서는 겸손해지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여행을 나설 때에는 그 목적지를 확실히 해놓습니다. ‘인생은 나그네’라는 것, 모를 사람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 목적지가 불분명한 사람이 적잖습니다. 막연히 ‘그냥 가면 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습니다.(물맷돌)
[그 무엇으로 무덤으로 내려가는 생명을 건져내며 영원토록 사람을 살려내랴!(시49:9)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운명이지만,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히9:27)
우리는 더더욱 그분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샬롬! 새해 들어 두 번째로 맞이하는 주말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날입니다. 이 하루를 밝고 즐겁게 보낼 수 있길 소망합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숙면하지 못하면 각종질환의 위험이 커진답니다. 불면증을 개선하려면, 낮에 햇볕을 쬐고, 취침과 기상시간을 일정하게 해야 한답니다. 잠자리에서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몇 해 전 어느 날, 저희 집에는 아주 소중한 분들이 오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에 아무 말 없이 도움을 주신 분들입니다. 그냥 도움만 주셨기 때문에, 그분들이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대개의 경우, 입으로는 열심히 도우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베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분들은 그저 조용히 우리를 응원하면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그분들이 정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분들입니다. / 그런데,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 해 동안, 그야말로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우리를 도와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당사자는 우리를 오랫동안 도와주셨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참 시간을 보낸 다음에야, 그분은 우리를 희미하게 기억해내셨습니다. / 대개는, 도와준 사람은 기억을 잘해도, 도움을 받은 사람은 쉽게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는 그 반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도움 받은 우리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데, 우리를 도와주신 그분은, 우리의 존재 차체를 아예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 그러니, 이분들이 어떤 태도로 우리를 도와주셨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 아니겠습니까? 요컨대, 그분들은 순수한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도와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당시 정말 편한 마음으로 그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그분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과거 물맷돌 주일설교 중에서)
어떤 분들은 도움 받았으나 고맙지 않은 분들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도와준 티를 낼 경우, 고마운 마음보다는 오히려 야속하거나 기분이 안 좋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얼마간 도와주면서, 이런저런 심부름까지 시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 드린 그분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아주 깨끗했습니다.(물맷돌)
[이 몸은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주님은 나의 도움이시며 나를 든든히 지켜주시는 분입니다.(시54:4) 내게 힘을 주고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나는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빌4:13)
이제는 문제부모가 아니라도 문제아가 나오고 있습니다.
샬롬! 오늘도 어김없이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다음 달 초부터 코로나백신 접종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들었을 겁니다. 아무튼, 듣던 중 밝은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탄의 한 학자가 말하기를 “진정한 행복은 숫자로 측량할 수 없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가장 구체적인 행복의 정답들은 종종 가장 불명확하고 실체가 모호한 이유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문제아란 없다. 다만, 문제부모가 있을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문제부모가 아니라도 문제아가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부모는 과거의 역기능 가정의 부모와는 달리, 대부분 이상적인 부모의 조건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그저 ‘자신들이 열심히 살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모델링이 되었으리라’고 믿지만, 아이의 표정이나 태도를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자기는 도저히 부모가 사는 성실성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겠다면서 지레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반항하는 자녀는 자신만의 분명한 소신과 방향이 정해져 있어서 ‘부모가 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고, 동시에 ‘힘이 있다’는 뜻이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래도 인생을 더 살았기에 뭔가 인생철학을 말해주고 싶은데, 막상 말을 꺼내면 피상적인 몇 마디 말 외에는 말할 내용이 없습니다. 그럴 때 ‘잘 정리된 교과서’가 있으면 좋으련만, 눈 씻고 봐도 없습니다. 기존의 양육지침은 그저 ‘잘해주는 부모, 친밀한 부모가 되라’는 것들로써 대부분 영유아 중심이기 때문에 다 큰 자녀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또, 부모는 자녀를 그냥 학교 보내는 것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믿었기에, 그 자신이 ‘인성교육과 인생교육의 주체자’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출처; 가정과 건강, 상담학박사 이병준)
아마,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부모자격’을 취득하고 자식을 낳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식한테 출생여부를 물어보고 자식을 낳는 경우는 더더욱 없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자식한테 그 인생진로에 대하여 의논하는 경우도 아주 드물지 않겠나 싶습니다. 제가 가장 후회하고 있는 것은 ‘여자’에 대한 상식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결혼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튼, 뭘 알고 부모가 되거나 배우자가 된 경우는 극히 드문 일입니다.(물맷돌)
[아들(딸)아, 네 어미와 아비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라. 네 부모의 가르침을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잠1:8)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어서,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여 바로 잡게 하고, 의로 훈련시키기에 유익한 책입니다. 이 책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온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을 하기 위한 완전한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딤후3:16-17)]
‘풍요한 삶’의 시작은 ‘현명한 소비’로부터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아무쪼록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잘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어느 신문에서 ‘올해에는 꼭 절제해야 할 음식 7가지’를 선정해서 보도했습니다. 맛있지만 독이 되는 음식들입니다. 1.가공육 2.탄산음료 3.튀김 4.캔 통조림 5.인스턴트 음식 6.흰 빵 7.믹스 커피
어떤 여성은 거실에 있는 유리 장식장에 ‘해변에서의 휴가’라는 표어를 달아놓았습니다. 아이들이 캔디나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하면, 그녀는 아이들에게 ‘해변과 아이스크림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휴가철에 다다르면, 그들은 휴가비의 절반을 모았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올바른 선택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아이들은 저와 남편보다 더 좋은 교육을 받은 셈입니다. 우리도 침실에 500cc 짜리 주스통을 가져다 놓고 거기에 잔돈을 모아봤습니다. 가득 차는데 6년이 걸렸지만, 여윳돈 100만원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 풍요한 삶은 로또에 당첨이 된다거나, 부자와 결혼한다거나, 월급이 인상되어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을 바꾸고, 그것을 적용하는 것이 풍요한 삶의 시작입니다. 사고 싶은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로 갖고 싶은 것일지라도 ‘필요와 욕구’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장기적으로 더 나은 만족에 이르게 합니다. 거기에 풍요가 있습니다.(출처; 행복한 사람은 있는 것을 사랑하고, 불행한 사람은 없는 것을 사랑한다, 레지나 브렛)
글쓴이는 ‘현명한 소비’가 있어야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요즘, ‘풍요속의 빈곤’을 느끼는 이들이 많습니다. 주변에 먹을 게 많은데도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 말입니다. 진정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릴 적부터 ‘바르게 쓸 줄 아는 습관’을 길러줘야 할 듯싶습니다.(물맷돌)
[그는 아무리 가져도 만족하지 못한다. 탐욕에 얽매여 그 욕심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욥20:20) 진정한 부자가 되기를 원합니까? 만일 그대가 지금 행복과 만족을 느낀다면, 그대는 이미 부자입니다.(딤전6:6)]
아름다운 이웃
샬롬! 오늘도 ‘하루’라는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오늘내일 하시는 분들에게는 이 ‘하루’가 엄청 소중하다고 합니다. 우리도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야겠습니다. 최고의 결과물이나 즐거운 시간은 ‘최악의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는 물음을 던진 후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어느 날 아침, 현관문 밖에 음료수 상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옆집, 아랫집, 윗집 할 것 없이 8세대 모두, 상자 겉면엔 메모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옆 빌라에 사는 젊은 부부가 이사를 간다는 겁니다. “5월 10일 이사하게 되어, 오전 8시부터 약 2시간 동안 소음이 발생할 수 있고, 사다리차 사용으로 불편을 드릴 수 있어 미리 양해의 말씀 올립니다. 최대한 피해가 안 가도록 하겠습니다.” / 며칠 뒤, 제가 일하는 아파트 단지 9층이 내부공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호두과자 선물세트에 ‘손으로 쓴 편지’를 붙여 집집마다 돌렸습니다. 관리사무소와 미화원 몫까지 잊지 않았습니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불편을 끼치게 되어 죄송한 마음을 담아 준비했습니다.”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말씀드려야겠지만, 비대면으로 하는 게 나을듯하여 문 앞에 두고 간다.’며 양해를 구하기까지 했습니다. / 얼마 전에는 이사를 앞둔 젊은 부부가 관리사무소를 찾아왔습니다. 일주일간 내부공사를 할 예정인데, 이웃집에 피해를 줄까 봐 걱정되는 모양이었습니다. 부부는 한 달 전부터 공사안내를 붙이고, 종이봉투에 과자를 담아 사람들과 나눴습니다. / 오늘 출근하고 보니, 책상에 말랑말랑한 떡이 놓여 있었습니다. 어제 이사 간 집에서 두고 갔다는 겁니다. 이사 오는 집이 아니라, 떠나는 집에서 떡을 준비하다니 …. 그 마음씨에 감동해서 전화로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아름다운 이웃을 두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출처; 좋은생각, 문용대)
우리도 5년 전 이곳으로 올 때, 우리 라인 30세대에 이사 떡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경직된 아파트문화에 실망감이 더욱 깊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글쓴이가 관리사무소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그 아파트에서는 그처럼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니,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참 좋겠습니다.(물맷돌)
[너희는 하나님 무서운 줄을 알아, 네 이웃이 너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레25:36) 자기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짓는 것이지만, 가난한 이웃을 돕는 사람은 복이 있다.(잠14:21)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한 계명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갈5:14)]
노인의 눈에는 어느새 맑은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얼마 전, 한 신문은 ‘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샘내는 것 8가지’를 소개했습니다. 어디서나 빠른 통신망, 쉬운 국내여행, 의료보험, 택배시스템, 온돌, 김치, 서비스 종사자들의 친절, 편의시설.
노숙자 취재를 하면 할수록,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삶을 포기하고 미래를 꿈꾸지 않으며 사회 탓만 하는 ‘비겁하고 비루한 사람들’이라고 취재 전부터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저의 생각과 편견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을지언정, 더 먹겠다고 아웅다웅하지 않았습니다. 자존심을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맞장을 뜨지만, 필요할 때에는 적절하게 힘을 모으는, 그들만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에게 아부하거나 누굴 존중하지는 않아도, 병약한 노인에게는 그들만의 쉴 곳을 말없이 내어줄 줄 아는 ‘무심한 배려’가 있었습니다. 서로 위로하거나 격려하지 않아도 고단한 삶의 밑장을 깔고 살기에, 서로의 것을 욕심내지 않는 ‘담담한 인정(人情)’이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 일주일째 되던 날, 저는 그곳에서 철수하려고 가방을 쌌습니다. 그때, 노숙자들 사이에서 ‘김 사장’이라고 불리던(한때 중소기업 사장이었다가 부도가 났다는) 사내가 저를 불렀습니다. “어이! 이것 보시오! 저기 저 노인 사진 한 장 찍어주고 가소!” 그가 가리킨 곳엔 밤새 바튼 기침을 하던 노인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사내는 노인의 종착역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짐작한 것 같았습니다. ‘살아서 힘들었으니, 가는 길 영정사진 하나라도 번듯하게 있으면 좋겠다.’는 말은 없었지만, 저는 사내의 속내를 그렇게 짐작했습니다. 노인의 모습은 의외로 온화했고, 오래된 호수처럼 눈은 탁했으나, 어느새 맑은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출처; 샘터, 드라마작가 박 희)
노숙자들의 삶, 우리가 쉽사리 긍정하거나 부정하기 어려운, 엄연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한 부류입니다. 그런데, 작가는 그들 사회에도 인정(人情)과 아름다움이 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우리 사회의 탁류(濁流)이기는 하나, 그곳에도 꽃이 피고 있더라는 이야기입니다.(물맷돌)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을 억누르지 말고, 동족끼리 해칠 생각을 하지 말라.(슥7:10)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걷고 문둥병자가 깨끗해지며 귀머거리가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소식이 전파된다고 하라. 그리고 ‘나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일러주어라.(마11:5)]
사랑에 감동이 되면 일상생활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샬롬! 새해 들어 첫 월요일 아침입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잠자는 중에 호흡이 일시적으로 멈추는 ‘수면무호흡증’이 동맥경화 위험을 최대 2배까지 높일 수 있답니다. 고로, 안 좋은 잠버릇으로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치료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새끼 판다 ‘푸비오’를 향한 엄마 판다의 사랑, 바다속 어미고래의 새끼 사랑 등은, 우리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동물들의 사랑도 이러할진대, 인류의 사랑은 더 감동적입니다. 그래서 창조주의 귀한 사랑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조물주의 어마어마한 사랑이 부모를 통하여 자녀에게로 흐를 때, 감동이 몇 배로 증가합니다.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의 미소와 관심’은, 자녀에게 평생 사라지지 않는 힘이 될뿐더러, 무한한 신뢰를 쌓게 합니다. 사랑을 통해서, 자신을 ‘존귀하고 행복하며 사랑받을 만한 존재’로 인식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친구는 사랑을 통하여 우정이 더욱 두터워지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녀는 사랑을 통하여 부부가 되어 ‘네가 나이고, 내가 너인’ 일심동체의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랑은, 우리 모두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며, 삶에 대한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생각의 근원입니다. 사람이 사랑을 받고 느낄 때, 뇌에서 ‘도파민’ ‘옥시토신’ ‘바소프레신’과 같은 화학물질을 활발하게 분비해서 뇌의 주요 부위들을 활성화시킵니다. 단순히 뇌의 한 영역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뇌 전체의 12개 영역에 각기 다른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뇌 속의 신경 네트워크를 분산시킴으로써 보상, 정서, 동기, 사회인지 등을 조절해주는 신경에 아주 다양하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사랑에 감동이 되면, 일상생활의 모습이 다른 방식으로 변하여 뇌가 작동하고, 얼굴이 환해지며 빛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출처; 가정과 건강, 송황순)
‘사람 = 사랑’, 이 등식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요컨대, 사랑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랑에는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사랑에는 자연과 말씀도 포함되고, 이웃에는 그 자신도 포함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인간다운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물맷돌)
[너희는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알아서, 네 이웃이 너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레25:36)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눅10:27)]
“괜찮아요, 아빠! 저는 아빠가 화를 내도 아빠를 사랑해요!”
샬롬! 새해 들어 첫 주말인 오늘 이 아침, 먼저 귀하와 그 가족의 평안하심을 기원합니다. ‘코를 파는 행위를 통하여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 있다’고, 미국의 CNN방송이 워싱턴의과대학 교수 ‘폴 포팅거’ 박사의 말을 인용해서 보도했습니다. ‘손으로 코를 파면 인플루엔자와 감기 바이러스 같은 다른 바이러스가 코를 통하여 몸 안에 침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를 떠올려 보면, 부모님의 평화는 우리 자녀들에게 행복이었고, 부모님의 불화는 우리 자녀들에게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억을 망각하고, 순간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여 아이들에게 나쁜 감정을 털어놓곤 하는 것입니다. / 간혹 제가 조금 피곤하거나 지쳤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우리 아이를 감정의 배설구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말하기를 ‘너무 힘들어 때론 감정을 드러내야 숨통이 트일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때, 우리 아이는 저의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내는 배설구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 아이의 정서가 온전하길 기대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 아이는 심히 약한 존재입니다. 제가 조금 더 편해지려고 아이를 이해하려는 수고를 내려놓으면, 아이가 어른을 이해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우리가 조금 더 인내하고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 그런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알면서도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수시로 반성하고 아이에게 사과합니다. “아까 화내서 미안해! 아빠가 순간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다. 정말 미안해!” 다섯 살 딸이 대답했습니다. “괜찮아요, 아빠! 저는 아빠가 화를 내도 아빠를 사랑해요! 그냥 그런 행동을 안 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랍니다.” / 아이가 너무 빨리 크는 듯해서, 저보다 더 어른 같아서, 저에게 기회를 준 것에 고마워서 울컥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훨씬 너그럽고 강한 인내심을 지녔습니다. 그렇게 아이한테서 배웁니다. 더 늦기 전에, 이 소중한 시간에 ‘더욱 충실하자고, 더 사랑하자’고 마음먹습니다.(출처; 좋은생각, 동화작가 이지훈)
자녀들은 그 부모의 그림자입니다. 부모의 모습을 본받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교훈을 줄 때도 많습니다. 이때어른들은 체면 때문에 그 교훈을 거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얼굴 깎이는 없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겁니다.(물맷돌)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인지 아이에게 가르치라. 나이 먹어 늘그막에도 그 가르침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으리라.(잠22:6) 성도 여러분, 생각하는 데 있어서는 어린아이가 되지 마십시오. 악에 대해서는 갓난아이가 되어야 하겠지만, 생각하는 데 있어서는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고전14:20)]
목사님의 전단지
충북 영동의 한 농촌 마을에 하루는 집집마다 이런 전단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다면 바로 전화주세요’
01.보일러가 고장나면
02.텔레비전이 안 나오면
03.냉장고나, 가전제품이 고장나면
04.핸드폰이나 집 전화가 안 되면
05.집에 힘쓸 일이 있을 때면
06.농사일이 바쁠 때면
07.마음이 슬프거나 힘들 때면
08.몸이 아프다고 생각되면 바로
09.병원에 갈 일이 생겼을 때면
10.경로당에서 고스톱 칠 때 짝이 안 맞는다면
교인 4명이 전부인 이 동네 교회의 목사님이 돌린 전단지였습니다. 목사님은 복음을 전하기 전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고 돕는 일에만 힘썼고 그렇게 2년이 지나자 사람들이 알아서 교회를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주일학교까지 생겼고, 약 50여명의 성도가 다니고 있습니다.
복음은 말보다는 관계와 행동으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행동하면 열매는 반드시 맺힌다는 확신을 가지십시오. 아멘!!
주님, 복음을 위한 희생이라면 언제나 즐거이 감당하게 하소서.
거저 받은 은혜를 선행으로 이웃에게 베풉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기준의 대상
보 잭슨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운동선수’로 뽑힙니다.
시즌이 겹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팀들과 계약을 미루면서까지 봄부터 여름에는 메이저리그에서 야구선수로, 가을부터 겨울에는 미식축구선수로 활동을 했는데 그러면서 두 종목에서 모두 주전으로 활동했습니다. 게다가 쉬는 일정이 없어 따로 종목 훈련을 하지 못했음에도 경기를 뛰면서 성장해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성적이 오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보 잭슨에게는 아주 특이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매년 20개가 넘는 홈런을 쳤지만 홈런을 치고 난 뒤 한 번도 좋아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고 미식축구에서 터치다운에 성공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국 스포츠방송 ESPN에서 선정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운동선수 8위에 꼽힌 그는 선수시절 홈런이나 터치다운을 하고도 기뻐하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론 성공을 한 것은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더 완벽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방법을 생각하느라 기뻐할 겨를이 없었던 것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평가하거나, 다른 사람의 인정을 위해 노력하는 일에는 금방 한계가 찾아옵니다. 신앙생활을 역시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기준에 따라 실행하지 말고 오직 말씀을 따라, 감동을 주시는 성령님을 따라 기준을 세우고 정진하십시오. 아멘!!
주님, 사람과 환경이 아닌 말씀과 주님이 기준이 되게 하소서.
말씀을 기준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더욱 귀를 기울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후회한 이유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었던 귀족 메디치 가문에 어느 날 한 책이 도착했습니다. 마키아벨리라는 남자가 쓴 ‘군주론’이라는 책은 당시 메디치 가문의 수장이었던 ‘줄리아노 데 미디치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글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사분오열 되어 있던 이탈리아를 통치하는 이론과 방법을 역사적인 분석과 통찰로 담은 이 책에는 이런 내용들이 나옵니다.
‘맺힌 원한은 은혜를 베푼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 늘 복수를 조심해야 한다.’
‘사람들은 엄청난 모욕에 대해서는 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말 안 듣는 민중은 때때로 완전 없애 버릴 각오로 다루어야 한다.’
냉철하게 순전히 권력을 잡는 방법들로만 채워진 이 책은 정작 메디치가 죽고 난 뒤 점점 유명해져서 오늘날에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군주론’과 같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죽기 전에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칸의 생애’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은 ‘군주론’에 담은 자신의 내용들을 후회하며 그렇게 살지 말 것을 당부하는 내용을 담은 소설이자 유작입니다.
이기주의와 약육강식의 논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리가 아닙니다. 잘못된 처세와 세상의 법칙을 따르다 후회하지 말고 말씀이 가르치는 삶의 방식을 따라가십시오. 아멘!!
주님,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을 멀리하는 삶에는 후회뿐임을 기억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배우는 자가 열매를 맺는다
미국의 복음단체 ‘성경과 함께 걷는 삶(Walk Thru the Bible Ministries)’의 브루스 윌킨스 대표는 ‘변화되고 열매 맺는 배우는 사람의 7가지 법칙’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배우고 싶게 만들어라
학생들이 선생님을 보고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그 교육은 이미 실패한 것입니다.
2.좋은 기대를 하라.
배우는 사람에게 어떤 기대를 하느냐가 태도와 성과를 변화시킵니다.
3.적용방법을 제시하라.
원리를 아는 것보다 1개의 원리를 실천하는 것이 더욱 종요합니다.
4.반복해서 기억시켜라.
중요한 내용은 되도록 자주 반복해야 장기기억으로 저장됩니다.
5.필요에 맞추어 설명하라.
같은 내용이더라도 상대방의 상황에 따라 변화시켜 가르쳐야 합니다.
6.리더를 세워라.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으로 가르치는 것이 가장 귀한 열매입니다.
7.다시 살아나는 것이 부흥임을 강조하라.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회심함으로 주님 앞에 다시 서는 사람을 만드십시오. 아멘!!
주님, 하나님께 칭찬 받는 열매 맺는 좋은 가지가 되게 하소서.
제자가 되고 또 제자를 세우는 예배자가 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위로하시는 주님
아버지가 돈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죽는 모습을 본 10대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사건에 큰 충격을 받고 청년이 되어 돈 때문에 고통 받지 않는 이상향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운동에 빠져 혁명에 가담을 했다 체포되었고,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사형수들을 수감하는 감옥으로 기차를 타고 가는 도중 일반 승객들도 함께 사용하는 역에 잠시 섰는데 갑자기 한 여자가 열차에 타서 죄수들에게 작은 책을 몰래 나눠주고 서둘러 내렸습니다.
대부분은 그 책을 바로 버렸으나 그 청년은 몰래 숨겨 감옥으로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신약’이라고 쓰여진 그 책을 청년은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그 책에 나오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사형이 취소되어 자유의 몸이 된 이 청년은 감옥에서 읽은 그 책을 통해 변화된 자신의 생각을 소설로 쓰기 시작했는데 이 책들은 놀라운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의 대문호로 인정받는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이 청년은 성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진리가 아니라고 누군가 분명하게 증명한다 하더라도 나는 진리보다 그리스도 주 예수와 함께하는 삶을 선택할 것입니다.”
말씀 안에 계시는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나를 만나주시고, 또한 위로해주십니다.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성경을 믿고, 그 가운데 위로하시고 또 만나주시는 주님을 체험하십시오. 아멘!!
주님,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으시는 주님을 믿고 의지하게 하소서.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더욱 주님을 찾읍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천하와 바꿀 수 없는 것
중국의 사상가 장자의 식견이 탁월하다는 소문을 들은 전국시대의 한 왕이 신하를 보내 관직을 맡아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장자는 단칼에 거절을 했습니다. 신하가 거절을 당하자 이번엔 왕이 직접 찾아가 관직을 맡아달라고 부탁을 했으나 장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수레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연을 거니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 설령 천하를 주신다 해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이런 제가 못마땅하시다면 차라리 데려온 병사들에게 저를 죽이라고 명하십시오.”
비슷한 시대의 사상가 양주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내가 내 몸의 털을 하나 뽑아서 천하가 태평해진다 해도 내가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나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털을 뽑지 않을 것이다.”
중국 제자백가의 사상가들 중에는 자유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실제로 높은 자리나 많은 돈, 혹은 목숨을 잃는다 해도 자유를 지키기 위해 뜻을 꺾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어떤 어려움이 따른다 해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잃을 수 없기에 예수님을 보내시면서 까지 구원하셨습니다. 내가 정말로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확인해보십시오. 아멘!!
주님, 예수님을 통해 구원하신 하나님의 귀한 사랑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하나님이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이 나와 다른 사람임을 잊지 맙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집사님 부부가 계셨습니다.
집사님 부부는 꾸준히 기도하던 중에 이미 두 딸이 있었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부모님에게 버려진 아이들을 입양하기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비록 좋은 형편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감동에 반응을 해서인지 서류제출과 가정 방문까지 순조롭게 끝났고, 태어난 지 6개월 된 아이와 연결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2살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모든 절차는 완료되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에 기관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아이를 돌보다 사고가 나서 척추에 손상을 입어 어쩌면 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아직 입양 절차가 끝나지 않았으니 고민을 해보고 연락을 다시 달라는 직원의 말을 듣고 집사님 부부는 깊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초등학생 큰 딸이 물었습니다.
“엄마, 아빠 혹시 내가 그렇게 아파도 나를 포기할거야?”
“아니지, 모든 것을 바꿔서라도 너를 구할 거란다.”
“그럼 그 아기한테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이 말을 들은 부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곧 전화를 걸어 입양을 하겠다고 말한 뒤 되도록 빨리 치료를 받게 하고 싶으니 절차를 더욱 서둘러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자녀로 받기로 결정했다면 자녀와 똑같은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믿기로 작정한 모든 사람들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까운 사람부터 먼 사람까지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자 노력하십시오. 아멘!!
주님, 말이 아닌 실천으로 차별 없는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게 하소서.
나의 시선과 편견을 떠나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게 노력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우리가 살고 있는 곳
주한미군들이 보는 인터넷 게시판에 누군가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혹시 한국에서 내가 너무 오래 살았다고 느꼈을 때 있어?”
그리고 그 글 밑에는 이런 댓글들이 달렸습니다.
- 더 이상 마늘 냄새가 뭔지 모르게 됐을 때
- 친구 주차할 때 나도 모르게 ‘오라이, 오라이’하고 있을 때
- 달러 크기가 생각보다 작아 보일 때
- 지하철에서 파는 물건들이 내 방에 쌓일 때
- 노래방에서 중간에 ‘아싸’라고 추임새를 넣을 때
- 커피 값이 저녁 식사 값보다 비싼 게 아무렇지 않을 때
- 두루마리 휴지가 식탁 위에 있어도 괜찮을 때
- 가끔 뻔데기가 먹고 싶어질 때
- 미국영화 보면서도 한글 자막 볼 때
새로운 터전에 오래 머물다보면 말이 바뀌고 행동이 바뀝니다.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실천하고 함께 교제한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삶에서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교회 밖과 안을 구분하는 신앙으로는 삶 속에서 임하시는 주님의 손길과 능력을 온전히 체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모든 성도들과, 교회들이 함께 협력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쳐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꾸준히 기도하십시오. 아멘!!
주님, 말씀을 실천함으로 세상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저와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세상보다 천국의 법칙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작은 감사
나무가 모여 숲이 되고 미소가 모여 웃음이 되듯이 작은 감사가 모이면 큰 감사와 기적을 불러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작고 사소한 모든 것에서 감사 제목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돌아보면 오늘도 감사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승강기 문이 닫히는 순간 열림 버튼을 눌러 열어준 사람, 늘 웃으면서 일하는 사람,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도 인사하며 소포를 건네주는 택배 아저씨, 떨어진 물건을 집어 주는 사람, 아메리카노를 내밀며 건강한 미소까지 덤으로 준 카페 아르바이트 학생….
“감사합니다”라는 말에는 ‘고맙습니다’와 ‘당신 덕입니다’가 반반씩 섞여 있습니다. 감사함이 사라지고 당연함이 자리 잡을 때 몰락이 시작됩니다. 감사 없는 성공은 교만을 낳고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 됩니다. 낟알이 모여 볏단을 이루고 볏단을 모아 추수 감사의 기쁨을 맛보듯, 일상의 작은 감사들을 모으면 일생을 감사하며 살게 됩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
한재욱 목사(강남비전교회)
밥 먹어라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리운 소리가 있습니다. 베이비붐 시대라 그렇겠지요. 동네엔 아이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 아이들이 저녁때가 되면 깨알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야, 야, 얘들아 나와라. 여자는 필요 없고 남자 나와라.” 누구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소리가 동네를 한 바퀴 돌면 어느새 줄이 새끼줄처럼 길어졌습니다. 이에 질세라 “여자 나와라”는 소리도 이어지지만, 아무래도 줄은 남자아이들만큼 길지 못했습니다.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우린 절대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심심할 새가 없었습니다.
만세잡기, 술래잡기, 깡통차기, 비석치기, 구슬치기, 땅따먹기 등 놀이는 무한했고 서둘러 기우는 하루 해가 아까웠습니다. 땅거미가 깔릴 때가 되면 사방으로 퍼지는 저녁연기처럼 온 동네를 가득 채우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밥 먹으라 부르는 엄마들의 목소리였습니다.
지금도 귀에 쟁쟁한 동네 엄마들의 목소리는 하나의 목소리와 겹칩니다. 인생의 해가 지기 전에 어서 집으로 돌아오라 부르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음성과 말이지요.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나비효과
미국 대선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서 주의 깊게 지켜봤습니다. 조금 색다른 것은 주별로 개표돼 주 단위로 승패가 갈리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이 주별로 자치가 이뤄지는 연방국가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선거는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게 갈리는 정치 이벤트입니다. 미국의 주류 언론은 판세가 일방적일 것이라고 연일 보도했지만, 실제론 접전이었습니다. 4년 전 선거와 마찬가지로 언론의 정파성이 여실히 드러난 선거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결과에 불복해 재판 등의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누군가는 권력을 차지하고 다른 사람은 권력에서 멀어진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현실의 밑바닥에는 작은 표심이 있었습니다. 한 표 한 표가 모여 거대 권력의 흐름을 통제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호불호가 모여 거대권력을 바꿉니다.
작지만 한 사람이 갖는 힘은 대단합니다. 복음 안에서 거듭난 성도의 작은 결단과 행동이 나비효과를 가져와 세상을 바꾼다는 사실을 늘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이성준 목사(인천수정성결교회)
아론의 향로
지난 10개월 동안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이 무려 120만명이 됐습니다. 제가 사는 제주 인구의 두 배 되는 숫자입니다. 지금도 너무나 아까운 생명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계속 확산하는 코로나 상황을 보면서 이를 멈출 방법이 없을까 기도했습니다. 그때 떠오른 성경 말씀이 민수기 16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한 전염병이 멈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심판 계획을 들은 모세는 제사장 아론에게 속죄 도구인 제단 불로 향을 피운 향로를 들고 백성들을 향해 뛰어가라 했습니다. 모세의 이야기를 들은 아론은 향로를 들고 회중 속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때 전염병이 멈추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론이 모세의 명령을 따라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간즉 백성 중에 염병이 시작되었는지라 이에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민 16:47~48) 하나님께서는 아론처럼 세상 죄를 대신 회개할 중보자를 찾고 계십니다. 한국교회와 전 세계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역입니다. 하루빨리 전염병이 멈출 수 있도록 중보하십시다.
차진호 목사(여의도순복음서귀포교회)
매화틀
조선시대 왕들은 용변을 볼 때 매화틀이라는 것을 사용했습니다. 왕의 용변은 전의감으로 즉시 옮겨집니다. 전의감 의원들은 변의 농도와 색깔을 살펴보고 손가락으로 맛까지 보면서 왕의 건강을 살폈습니다. 왕의 건강이 나쁘다고 판단되면 증상에 알맞은 최고의 치료를 시행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 우리는 죄인에서 의인으로,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왕의 자녀가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 말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죄의 찌꺼기일 뿐입니다. 사탄은 이런 죄를 드러내고 정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정죄하지 않고 우리의 마음과 영혼, 삶의 정황들을 살피십니다. 죄의 찌꺼기 속에 숨겨진 눈물, 연약함, 실패, 불신, 염려들을 친히 맛보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던 그 분주한 발걸음으로 우리 인생에 찾아오셔서 생수가 돼 주십니다. 정죄하는 자 앞에서 우리 영혼은 후폐하게 되지만 주님께 의탁하면 강건해집니다.
전담양 목사(고양 임마누엘교회)
내 편과 내 편 들어주기
둘째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돼 줄반장이 됐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 집에서도 종일 줄반장 명찰을 차고 있었습니다. 그날 언니와 다툴 일이 생기자 느닷없이 “나 줄반장이야”라고 외쳤습니다. 줄반장이 큰 벼슬인 줄 알았던 건지 자기 맘대로 하겠다며 막무가내였습니다.
상황이 우습고 그 모습도 귀여웠지만, 둘째 딸의 편을 들어줄 순 없었습니다. 편이 되는 것과 편을 들어주는 것은 조금 다르다는 걸 이때 깨달았습니다. 언제나 내 딸 편이지만, 무조건 딸의 편을 들어줄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도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고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까지 우리를 자녀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 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믿음과 영적 상태에 상관없이 무조건 우리 편을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 편에 서 있을 때, 비로소 우리 편을 들어주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시 118:6)
손석일 목사(서울 상일교회)
적게 할 것과 많이 할 것
적게 할 것과 많이 할 것이 있습니다. 말은 적게 하고 기도는 많이 해야 합니다. TV는 적게 보고 책은 많이 읽어야 합니다. 불평은 적게 하고 감사는 많이 해야 합니다. 대접받는 것은 적게 하고 다른 사람을 많이 섬겨야 합니다. 검색은 적게 하고 사색은 많이 해야 합니다. 비판은 적게 하고 다른 사람을 세우는 것은 많이 할수록 좋습니다.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 그러면 존경받는 사람이 된다”는 영국 속담이 있습니다. 말을 적게 하고 지갑을 많이 여는 사람은 멘토일 가능성이 크고, 지갑을 적게 열고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꼰대일 가능성이 큽니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입니다. 이를 신앙에 적용해 최소의 헌신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려고 해선 안 됩니다. 신앙의 법칙은 헌신을 많이 하고 영광은 적게 받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눅 17:10)
한재욱 목사(강남비전교회)
좋은 시계
시계를 만드는 회사에 갓 입사한 젊은이가 오랫동안 시계를 만들어 온 상사에게 좋은 시계가 뭔지 물었습니다. 상사가 대답했습니다. “좋은 시계란 일정하게 가는 시계입니다. 태엽이 많이 감겨 있다고 빨리 가고, 태엽이 풀려 있다고 느리게 가면 안 됩니다. 날이 춥든 덥든, 낮이든 밤이든, 누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시계를 어디에 두더라도 일정하게 가는 시계가 좋은 시계랍니다.”
좋은 시계에 대한 정의는 좋은 믿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좋은 믿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은혜가 가득할 때나 지쳐 있을 때나, 상황이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남이 보거나 보지 않거나 변함없이 지켜가는 믿음 말이지요.
우리는 지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많은 것들이 멈춰 섰고 달라졌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어렵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한결같은 믿음을 지켜가는 것입니다. 좋은 시계처럼 말이지요.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