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도를 오르내려 에어컨 없이는 견디기 힘든 여름을 보내고 나서인가. 여름 피서를 다녀오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서인가.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높고 파란 하늘 때문인가. 여행을 다녀오자는 내 말에 남편은 일주일만에 여행 일정을 잡았다. 에헤라디야! 백점짜리 남편이다.
신혼 때부터 큰아이가 여덟살이 되도록 옮겨다니며 살았던 일광과 고리와 남창과 울산을 거쳐 그곳에서 가까운 경주를 구경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기로 했다. 딸아이는 결혼을 해서 배가 불러오니 먼 길이라 힘들고 아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다. 떠나는 일은 아침에 피어난 꽃을 마주하듯 늘 싱그럽다. 신선하다.
저녁에 준비를 완벽하게 끝내놓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출발이다. 6시 30분. 출근차들로 붐비는 시간을 피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일광까지는 4시간이 넘는 먼 거리다. 운전을 나눠서 하자고 아들이 말했지만 남편은 문제 없다고 큰소리다. 최고집을 누가 말리랴. 무엇이든 본인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아닌가.
파랗고 높고 너른 하늘에는 축복인 듯 뭉개구름이 가득이다. 아들이 틀어주는 음악은 역시 젊은이의 피가 흐른다. 경쾌하고 신선하다.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몸을 흔들게 한다. 남편은 운전대를 잡지 않은 손가락으로 박자를 맞추고 아들은 몸을 좌우로 흔들고 나는 손뼉을 친다. 발을 굴러도 본다. 움직여보면 안다. 움직일수록 더 신이 난다는 것을. 먼 길이 멀지 않았다.
일광 바닷가를 따라 차를 타고 간다. 크지 않은 해수욕장을 끼고 크지 않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남편의 직장인 고리 원자력발전소에서 가까웠으므로 남편은 그곳 구석진 곳에 그래도 새집이었던 신혼 방 두칸 짜리를 얻었다. 바닷가쪽에 시장이 열려 십여 분 정도 걸어 다녔다. 샛강을 끼고 좁은 길을 따라 걸으면 낭만적이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신혼부부였던 우리를 시골 사람들은 창문으로 은근히 내다보았던 모양이다. 아침저녁으로 신랑을 마중하고 마중 나가는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부러워한다고, 나중에 친해져서 수다를 떨게 된 아주머니께서 귀뜀해 주셨다.
지금은 시장이 있던 바닷가 건너편 쪽을 따라 가고 있다. 우리가 살던 같은 일광이면서도 낯설다. 3년여를 살면서도 우리가 살던 반대편인 이곳으로 와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유명하다는 아구찜집을 찾아 가고 있다. 빈 구석이 없을 정도로 차들이 꽉 차 있다. 아구살이 많이 들어있고 콩나물이 적은 게 특징이란다. 걸쭉한 양념이 아귀와 콩나물에 범벅이다. 맛있게 먹었다. 어느 불로거가 아구찜의 양이 많으니 인원수대로 주문하면 남는다고 해서, 내가 먹는 양이 적기도 해서, 셋이서 2인분을 주문했다. 남편과 아들은 실컷 먹은 것은 아니라고 섭섭한 듯 말했다. 그래도 배는 부르단다.
일광 바닷가를 걸었다. 바다는 푸르고 하늘에는 뭉개구름이 대대적인 환영 인사처럼 몽글몽글 한껏 부풀어 올라있다. 아들이 두 살이고 뱃속에 딸아이를 가졌을 때 이 모래펄에 앉아 찍은 사진이 생각이 난다. 겨울이었다. 집에서 입던 옷에 반코트를 대충 입고 나온 모양세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결에 머리칼은 사방으로 휘날렸다. 꾸민 흔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처음 내려왔을 때 그렇게 뽀얗고 이쁘더니 얼굴이 많이 검어지고 상했네요. 일광역 근처 제법 컸던 상점 여주인이 말했었다.
우리가 살던 곳으로 가서 한바퀴 빙 돌아보았다.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마을은 구획 정리가 되어 말끔해졌다. 옛 기억을 되살릴만한 것을 발견하였다. 구석탱이 집에서 이사해서 일 년 살았던 이층 목욕탕집이 보였다. 집은 넓고 좋았으나 주방이 변변치 않았던 집. 반가웠다. 일광의 중심 도로 양쪽은 옛날 그대로 낮고 볼품없는 건물들이다. 우리가 자주 다니던 중국집이 있던 건물도 그대로여서 반가웠다. 석환이가 세발 자전거를 타게 되고 함께 시장을 가는 날이면 무거운 짐을 제 자전거 뒤쪽에 싣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착한 아들이다.
바다를 끼고 고리쪽으로 이동했다. 바닷가쪽으로 멋지게 지어진 카페가 한집 건너 한집인 것도 신기했지만, 사람들로 북적이는 풍경은 더 신기했다. 사람들이 밥을 먹는 양은 줄었다는데, 커피를 밥 대신에 마시는 것은 아닌지. 세상 참 많이 변하고 있다. 우리가 살던 때에 한전 사택은 단층 독립된 집이었는데 모두 아파트로 바뀌었다. 남아있던 옛정이 그나마 사라졌다. 지나가는 길에서 슬쩍 바라만 보았다. 옆집에 살던 애논이 엄마와 애논이가 잠시 스쳐갔다. 애논이는 아들 석환이와 동갑이었는데 둘이서 잘 놀았다. 어느날 둘이서 다투었다는데 그만 애논이가 돌을 석환이에게 던져 이마를 꿰매는 소동이 있었다.
남창은 일광으로 내려오는 길에 들렀다. 30년이면 강산이 세 번 바뀌었으니 남창 역시도 천지개벽 수준이다. 공터였던 곳은 집으로 가득찼고 아파트와 빌라들이 꽉꽉 들어차 있어 우리가 살던 곳은 찾기 조차 어려웠다. 딱 하나 눈에 뜨인 것이 있었는데 우리가 살던 사택 바로 뒤쪽에 있던 동호대안이라는 한 동 아파트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듯 초라하게 동그마니 거기 서 있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을 보낸 언양초등학교와 그 주변에 시장이 서던 장터도 옛 기억을 되살릴만한 흔적은 보이지 않아 섭섭하였다. 공터에는 스카이콩콩이 있어 세 살 딸 다움이가 그곳을 좋아했다. 석환이가 맹장염에 걸려 울산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4시 넘어서 경주 숙소에 도착했다. 좀 비싸기는 해도 보문호수가 바라보이는 방으로 정했다. 오오오! 햇살에 반짝이는 호수가 눈이 부시다. 멋지다. 저녁이나 아침 호수길을 걸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잠시 쉬고 그렇게 유명하다는 황리단길로 향했다.
황리단길. 공공주차장에 미리 차를 대고 걸어가야 하는데 무조건 황리단길로 직진한 것이 화근이었다. 일방통행에다가 비좁은 골목골목마다 차가 주차되어있어 어디 빈 구석이 없다. 앞으로 직진만 가능했다. 뱅뱅 돌고 돌아 황리단길은 차 안에서 대충 훒어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작은 가게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고 젊은이들이 어우러져 활기차기도 하고 불빛이 아니더라도 환한 골목이었다. 경주빵집이 많아도 너무 많다. 저 많은 가게 주인들이 배곯지 않고 잘 살아갈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골목이 끝이 날 무렵에서 다행하게도 대릉 주차장과 만났다. 다행 천만다행.
대릉은 신라시대의 왕과 왕비와 귀족등 무덤 23기가 모여 장관이다. 작은 산만큼 커다란 능들은 잘 깎아놓아 말끔하면서도 신비스러웠다. 마음과 몸을 가다듬고 정갈하고 공손한 자세로 걸어야 할 듯 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어서 능 뒤쪽이 어둑해지면서 능선이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둥근 곡선과 곡선의 만남, 정답다. 많이 본 사람 얼굴 같다. 고향 산을 닮았다.
두 개의 능이 교차되고 뒤쪽에 또 하나의 커다란 능이 울타리처럼 둘러쳐진 지점에 두 그루의 나무가 참으로 아름답게 자라나 있다. 초가지붕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그 사이에 느티나무가 자라나던 고향 마을 같은 풍경이다. 포토존이란다.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천마총은 들어가 볼 수 있었는데, 이미 발굴되어 금관과 천마도와 유리잔 각종 토기등이 전시되어있다. 당시의 놀라운 금속기술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서인지 경주의 오후는 더웠다. 대릉은 넓었다. 대릉이 아무리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해도 더운 것은 더운 것이고 배가 고픈 것은 배가 고픈 것이다. 더구나 새벽같이 출발했으므로 피곤도 겹쳤다. 저녁은 비싸고 맛있는 것으로 정했다. 경주에서 유명하다는 매운갈비찜집으로 갔다. 매웠으나 맛있었다. 아무리 먹어도 줄어들지 않았다. 셋이서 배를 두드리며 숙소로 향했다.
소화도 시킬겸 보문 호수가를 걸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하루의 피로가 다 풀리는 기분이었다. 남편과 아들과 셋이서 이만큼 여유로운 시간을 공유하는 일, 축복이 아니겠는가, 호수를 끼고 있는 건물들에서 뿜어져나오는 불빛으로 호수가가 휘황찬란하다. 장관이다. 오늘밤은 꿀잠을 잘 것이다.
화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누릉지를 끓여 먹고 석굴암으로 향했다. 새벽길은 얼마나 고즈녘하고 신선한가. 굽이굽이 돌고 돌아 토함산을 올라갔다. 석굴암으로 걸어가는 숲길은 울창해서 좋다. 이른 아침이라서인지 사람도 적다. 통일신라시대 김대성이 창건한 사찰이다. 자연석을 다듬어 만든 인공석굴 구조에 본존불상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지장 및 기타의 보살상이 안치되어 있다. 본존 불상은 바라만 보아도 마음을 평화롭게 하니 저절로 두 손을 모으게 한다. 이만냥으로 가족을 위한 축원기도를 올렸다. 불자도 아니면서 절에만 가면 절을 하든 기도를 하게 된다. 하고 싶어진다. 마음이 편해지고 기뻐진다.
불국사로 갔다. 고풍스런 대웅전과 아기자기한 석가탑과 단순미를 자랑하는 다보탑 앞에 서면 매번 신라시대의 찬란한 문화에 찬사를 보내게 된다. 특히 대웅전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은 신라인의 정기가 아닐까 싶을만큼 견고하고 아름답다.
어제 저녁을 잘 먹었으니 점심은 바지락칼국수로 정했다. 맛집이란다. 맛집답게 국수발이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다. 국물은 싱싱한 바지락으로 맛깔스럽고 구수하다. 김치는 빛깔이 별로인데 비하여 칼국수와 잘 어우러진다. 만족.
집에 도착. 이틀 동안 참 열심히 돌아다녔다. 내일이 없을 것처럼 열심히 보냈다. 감사하다. 남편도 아들도 함께여서 감사하다. 모두 건강하니 가능한 일이다. 감사하다. 카톡으로 우리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무엇을 먹는지 피곤하지는 않은지 잠은 잘 잤는지 세세히 궁금해하는 딸, 동시에 우리의 안전을 걱정하는 딸아이 부부가 함께 오지 못한 게 못내 섭섭하다. 그래도 감사함이다. 모두 건강하니 감사함이다. 특히 운전을 도맡아준 남편이 하늘땅땅만큼 감사하고 고맙다. 밥상을 차리면서 심술이 가끔 발동하는 내가 한동안 세끼밥상을 환한 얼굴로 잘 차리겠다. 여보! 감사해요 이번 여행은 백점 만점에 백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