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는 사흘동안 술에 떡이된 내 얘기다)
탈렌트 양영준씨의 소개로
<천주교예술인봉사회>의 남기범 회장이 행암리로 왔다.
천주교 개척의 초대인물인 강완숙 콜롬바에 대한 얘기를
연극으로 하자는것이었다. 기간은 한달이었다.
그동안 성당에도 냉담 했던 나는
이게 신앙의 디딤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쉽게 허락 했다.
그러나 한달이 다 되도록 원고를 못 썼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른지 감이 안 잽혔다.
이럴줄 알았으면 허락을 하지 말것을..하고 후회와 후회를 거듭 했다.
그러나 어쩌랴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어쨌던 탈고는 해야지
남회장에게 열흘을 더 빌려 40일만에 탈고를 했다.
원고를 가질러 오던날
내 원고에 출연 하기로된 배우들도 함께 왔다.
낯익은 얼굴들도 있었지만 처음 아는 탈렌트도 있었다.
뒷줄 가운데부터 김기섭씨 장정국씨
앞줄 왼쪽부터 양영준씨 남기범회장 김지수 봉혜선씨
그리고 심우창씨다 연극 배우 출신인 심우창씨는
나의 50년 방송생활에서 처음 만났으니 이럴수도 있는가하고
한스러웠다
<일단 풉시다>
일이 바쁜 김지수와 박철을 빼놓고 장산가든으로 갔다.
원고를 끝냈다는 홀가분함과
처음 만나는 천주교 신자들과의 모임이어서 술맛 또한 각별했다.
약속이나 한듯이 노래방으로 몰려갔다.
다음날 눈을 떠보니 두 친구가 자고 있었다
장정국씨와 심우창씨
내가 술김에도 내 드라마에 한번도 출연시키지 못해
연신 <미안 하다 미안 하다> 하던 친구들이었다.
해장집으로 가서 또 술을 마셨다.
해장술에 미치면
생사 불고 하고 술을 마시는 내 버릇을 익히 아는지라
스스로도 자제해 왔는데
분위기가 그렇게 안되었다.
행암리로 와서 딱 두 번밖에 안마신 해장술을
세 번째로 마신 것이다.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어떻게 헤여졌는지 모른다.
한밤중에 깨어 보니 장정국씨는 가고 심우창씨만 있었다.
(하루종일 굶겼으니 밥을 먹여야 할텐데...)
그러나 의식뿐 속이 뒤집혀서 꼼작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내쳐 잠이 들었고...깨어보니 사흘째 아침이다.
김지수가 화가 잔뜩 나 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유증을 염려 하는 것이다.
<저 선생님 마누라 아니거든요? 왜 제가 잔소리를 해야 되죠?>
<미안해 미안해.....세번짼거 알구있어 다시는 그런일이 없을거야>
적당히 얼버무리고 나서
<저 친구 깨워서 아침 먹여야겠는데... >
했더니 어제 사다놓은 김밥을 내왔다.
김밥을 먹으면서 심우창씨를 데리고 광주엘 가기로 한 약속이 생각났다.
청송심씨와 윤가의 해묵은 원한이 생각 났고
차제에 심씨끼리 인사를 시키겠다고...
그리고 심우창씨가 심우보랑 잘 안다고 해서
심영식씨랑 약속을 했던 것이다.
<오늘 성모 승천일인데..성당엘 못 가겠네요>
<아 광주 가서 성당에 가면 돼 심영식씨와 심우보도
성당엘 다니거든>
이내 중부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주머니가 빈 생각이 났다.
<음성 휴게소에 가서 커피 한잔 하자>
돈을 찾아 가지고 왔더니 심우창씨가 냉커피를 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곤지암에서 고속도로를 벗어 났는데
아무래도 방향이 이상했다.
광주쪽으로 가야 되는데 이천 장호원쪽으로 나온것..
차를 다시 돌려 가가스로 심영식씨 댁을 찾아 갔다.
심영식씨와 심우창씨를 인사 시켰다.
그 조카인 심우보씨와 같은 항렬인걸 알고 반가워 했다.
앞동에 사는 심우보씨도 만나서 함께 성당엘 갔다.
어머니와 함께 다니던 신갈 성당과 닮았다.
미사가 끝난후 장어집으로 가서 또 판이 벌어졌다.
나는 계속 속이 뒤집혀서 운전을 한다는 핑계로
술대신 사이다를 마셨고...
장어집에서 끝나니 심우보씨가 이차를 가잔다.
구멍가게에서 다시 2차
그러구보니 심우창씨도 취해서
내가 그의집인 용인까지 데려다 줘야 했다.
<선생님 행복 합니다 행복 합니다>
<하하 그래? 나두 행복한데?>
<선생님 분당으로 갑시다 거기 이신재씨가
식당을 하고 있는데 가서 따악 한잔만 합시다>
가까스로 심우창씨를 내려놓고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서니
그제서야 속이 갈아 앉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