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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연합과 동거의 아름다움 (시 133:1~3)/김태근목사
한 가정주부가 남편의 수입이 적어서 동네에 구멍가게를 냈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정직하고 친절하여 소문이 많이 퍼졌고 손님이 점점 많아 졌습니다. 나중에는 물건이 달릴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트럭으로 물건을 들이고 하루 종일 정신없이 팔아야 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여 돌아온 남편이 바쁘게 물건을 팔고 있는 아내에게 “우리 동네 다른 가게들은 이제 손님이 별로 없데. 그리고 저 건너가게는 이제 곧 문을 닫을 처지가 되었다고 하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마음속으로 깨닫는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트럭으로 주문하던 물건을 트럭으로 주문하지 않았고 파는 물건 종류도 줄였습니다. 손님이 찾아오면 “그 물건은 저희 가게에 없습니다. 그 물건은 저 건너편 가게에 가시면 사실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로 손님은 줄게 되었고 수입도 줄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인은 그렇게 바쁘게 장사하는 일로부터는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많아진 부인은 그렇게 좋아하던 독서를 다시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틈틈이 글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누군지 아십니까? 그 유명한 ‘빙점’을 쓴 그리스도인 작가 미우라 아야꼬의 젊은 시절 이야기입니다. 함께 살려고 생각했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복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런 사람을 두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니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그것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오늘 3절 마지막에는 거기서 여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다 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은 누구나 복을 받기 원합니다. 이것은 욕심이 아니고 당연한 일입니다. 누구든지 이런 욕심을 가질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복에 대해서 왜곡된 복, 오염된 복을 이야기해서 그렇지 참된 의미의 복은 좋은 것이고 어떻게 하든 이런 복은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기 위해서 여기저기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점쟁이를 찾아가고 어떤 사람은 기독교 점쟁이 비슷한 사람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또 복을 받으려고 여기저기 가서 빌기도 하고 복 많이 떨어진다고 하면 계룡산 관악산을 찾아 헤매기도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신년이 되면 축복성회 같은 곳에 우루루 몰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복은 내가 찾아 헤맨다고, 소원이 간절하다고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과 관계없이 생각해 봐도 그렇게 해서 복을 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하나님은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복의 근원인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합니다. 세상에서 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실까요? 이걸 알지 못하고 헛된 곳에 가서 복을 찾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은 자녀들을 교육하는 것과 똑 같습니다. 자녀들을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데, 자녀들이 제대로 복을 받도록 해 줘야 하는데 거꾸로 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습니다. 헛된데 힘을 쓰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을 줄만한 사람에게, 복 받을만한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것이지 아무에게나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시편 133편은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가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3절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다 고 말씀하시는데 그곳이 어디입니까? 먼저 1절에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라고 말씀하시며 그런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연합과 동거라는 단어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가 되며 함께하는 것입니다. 연합과 동거함이 없이, 함께하며 하나 됨이 없이 복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복을 달라고 아무리 졸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복 받는 길, 하나 되고 함께 됨이 없게 되면 다 허사입니다. 하나님은 하나 되고 함께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부부가 하나가 되는 가정에 복을 주시고 부모와 자녀가 하나 되는 그 곳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의 큰 문제는 GNP나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국민과 국민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지도자와 일반국민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이 일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부부가 하나가 되어야 하고 부모와 자식간이 하나가 되어야 하고 형제자매간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형제간에 누가 잘못이나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든 형제간에 하나가 되어야 내가 복을 받습니다. 혹시라도 상대방이 하나가 되지 못하더라도 내가 하나가 되려고 모든 노력을 다하는 곳에 하나님께서 복을 명령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주일에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교우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쁘고 힘들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과 뜻이 맞지 않는다 할지라도 다른 교우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십니다.
더 나아가서 이제 기독교인들은 터를 넓혀가야 합니다.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과도 하나가 되고 함께하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이 하나됨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나를 주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크게 주장하고 내 주장을 잘 관철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얻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다 잃게 됩니다. 사람도 잃어버리고 기쁨도 평화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내 생각을 강하게 드러내고 꼭 이루려는 사람은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좀 모자라는 사람처럼, 좀 바보같이 어리숙하게 나의 것을 포기하는 사람, 내 생각이 아무리 옳아도 내 생각을 접을 줄 아는 사람은 지금은 잃어버리는 것 같지만 전부 다 얻게 됩니다. 사람도 물질도 평화도 복도 다 얻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땅이라는 의미는 결국에는, 나중에는 전부 다를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37편 11절에서도 말씀합니다.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기러기는 함께 대형을 이루어서 날아갈 때 힘이 덜 든다고 합니다. 저 멀리까지 날아갈 때 혼자 힘으로는 도무지 가지 못하지만 같이 대형을 이루고 날아갈 때에 부력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재미있는 것은 구름 속에 들어갈 때나 어두워 질 때에는 ‘끼럭끼럭’ 하는 소리를 내는데 그것은 대열을 잘 지키고 빠져 나가지 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대열을 잘 지켜야 낙오자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함께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가 연합과 동거를 말씀했습니다.
또 2절에서는 머리에 있는 기름이 수염을 거쳐서 옷깃까지 내림같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머리 즉, 어른들이 연합하는 곳에 복을 준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가정이 복을 받고 어떤 가정의 자녀들이 복을 받을까요? 부부가 연합하는 가정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하나가 되고 남편이 아내에게 하나가 되어 함께하는 가정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집안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여러분에게 부탁드리는 것은 집안에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여러분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가 되어주십시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하려면 돈도 좀 들고 속상하는 일도 있고 욕먹는 일도 있고 내가 손해보는 일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로 만들어 가는 것이 어른입니다. 부모가 연합하는 가정의 자녀들이 복을 받고 정치 지도자들이 하나가 된 나라의 국민들이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라, 특별히 대통령과 정치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의 CEO 부부가 편하지 않으면 그 회사 잘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회사 직원은 회사 사장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화합하고 평화롭게 지내야 회사가 잘되고 또 회사가 잘 되어야 내가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교회의 지도자들이 하나가 될 때에 교인들이 복을 받습니다.
또 이 말씀에는 머리를 머리로 여기는 곳에,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가장을 가장으로 여기는 가정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게 되고 나라에서는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해 주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교회도 교회의 지도자를 어른으로 여기는 교회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물론 못마땅할 수도 있습니다. 모자랄 수도 있고 나보다도 훨씬 떨어질 수 있습니다.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은 같습니다. 어른을 어른으로 여기는 그 곳을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한 수도원이 날이 갈수록 쇠퇴해 가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찾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수도원장이 고민이 되어 깊은 산 속의 오두막에 살고 있는 지혜자를 찾아가서 조언을 요청합니다. 그 지혜자는 “죄송합니다, 제가 드릴 말씀이 따로 없고 도와주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단 하나 제가 아는 것은 그 수도원 수도사들 가운데에 메시아가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수도원장이 돌아와서 다른 수도사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이에 수도사들이 누가 메시아일까 고민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그 수도원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서로 존경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분이 혹 메시아 일지도 모르겠다고 해서 은혜가 넘치게 되니 구도자들이 그 수도원을 많이 찾아오게 되고 그 수도원은 옛날처럼 번창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어른을 어른으로 여기는 그 곳입니다.
또 이 말씀에는 기름이 수염을 거쳐서 옷깃으로 내린다고 했습니다. 기름은 참 부드럽습니다. 함께하는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그냥 억지로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하는 것인데 오늘 성경은 이 말씀을 통해서 위의 사람 즉 어른들이 권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엄하게 하고 무섭게 하고 강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위에서부터 오히려 섬기고 덮어주고 사랑을 해주는 그 곳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3절에서는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다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땅이 건조하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비가 적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건조하고 비가 적음에 비하여 초목들이 잘 견딘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아침의 이슬때문입니다. 그래서 양들에게 물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곳에서는 새벽에 양들을 끌고 나가서 풀과 함께 수분을 섭취하게 합니다. 이 이슬을 먹기만 하면 하루에 필요한 모든 수분을 다 공급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이슬은 어떻게 내리는 것일까요? 이스라엘 지역의 갈릴리 위쪽에 올라가게 되면 헐몬산이 있는데 상당히 높은 산입니다. 그 산에는 눈이 있는데 습기가 많습니다. 그 습기가 내려오다가 시온의 산들의 뜨거운 기운을 만나서 밤중이 되어 기온이 차게 되면 그것이 이슬로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높은 산에 풍성한 눈이 덮이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해에 그 이슬들로 말미암아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통해서 보이지 아니하는 몇 가지 중요한 단어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 하나가 질서입니다. 질서가 있는 곳을 하나님이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머리에서 수염으로, 수염에서 그 아래 옷깃으로 흐르는 질서가 있습니다. 헐몬산에서 시온산으로 흘러 들어가는 질서가 있습니다. 위가 있고 중간이 있고 아래가 있는 질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내는 곳에는 보내는 질서가 있으므로 보낼 곳에서 보내지 않을 때는 은혜가 없습니다. 나누어줄 사람은 나누어 줘야하고 베풀 사람은 베풀어야 거기에 복이 있게 됩니다. 줄 자는 주고, 받을 자는 받는 질서가 있는 곳, 이곳에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볼 수 있습니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그 곳을 지금 보여주고 있습니다. 머리에도 성령, 수염에도 성령, 옷깃에도 성령, 모든 사람이 성령이 충만한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시고 세 번째가 성전입니다. 2절에 아론의 수염이라고 말씀하는데 아론은 대제사장입니다. 대제사장의 용도는 성전, 교회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또 3절에 시온의 산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시온이라는 곳은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전, 교회, 예배당을 느끼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쳐다보게 하는 말씀이 가득한 곳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와 형제자매가 하나가 되고 함께 하는 곳에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른을 존중하고 어른은 사랑으로 덮는 그 곳에 하나님은 복을 가득 채워주신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고 성령이 인도하고 성령이 주장하는 대로 따라 살아가는 곳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늘 교회와 성전을 바라보고 찾고 그 곳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말씀을 오늘 시편133편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설날입니다. 온 가족이 모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고 모이는 좋은 명절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가 이 명절에 하나님이 주시는 이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사랑과 기쁨과 즐거움이 풍성한 좋은 명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태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