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조시인상 수상작>
엽서 한 장
김영란
붉은 소인 마포 형무소 아버지 엽서 한 장
낭설처럼
생트집처럼
인생에 끼어들어
와르르 허물고 가는
천추의 저 낙인
반백 년 흘렀어도 풀지 못한 한이 있어
뿔뿔이 흩어진 가족 그 안부를 다시 물으며
명 긴 게 벌이라시던 어머니 생각합니다
인생은 낙장불입인가
못 바꾸는 패 하나
빈속에 깡소주
독거노인의 냉방에서
아버지 서러운 생애를
그리움으로 마십니다
<제9회 오늘의시조시인상 심사평>
말의 호소력과 근원적 삶의 비의
아홉 번째로 이어지는 <오늘의시조시인상>은 등단 15년 미만 회원의 연간집 수록 작품 180여 편이 대상이었다. 굳이 당 해 년도 회지에 실리는 작품으로 제한하는 것은, 활동의 터전이 되는 회지에 대한 관심과 작품의 완성도를 담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첫해부터 공지한 바 있다.
올해에도 인터넷 심사로 1차는 집행위원들의 추천을 받았는데 그 결과, 대상자가 넓게 퍼져있어 작품 수준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2차는 고문, 감사, 의장단, 특위위원장의 추천으로 (김영란의 ‘엽서 한 장, 김영주의 ‘서양민들레’ 김정의 ‘소래포구’, 문순자의 ‘송악산 으아리꽃’, 정희경의 ‘물집’-가나다 순- )으로 압축되었다. 3차 최종심은 고문과 의장단의 심사숙고 끝에 가능하면 다른 작품상들과 겹치지 않는 방향으로 키를 잡아 김영란 시인의 ‘엽서 한 장’ 과 김영주 시인의 ‘서양민들레’가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였음을 밝힌다.
‘엽서 한 장’은 가족사에 대한 운문적 응답이다. 열린 시대에도 내려놓지 못하고 ‘낭설처럼/ 생트집처럼/인생에 끼어들어/ 와르르 허물고 가는’ 아버지의 붉은 멍에와 ‘뿔뿔이 흩어진 가족’의 안부를 묻는 어머니의 처절한 연민을 통해 말의 호소력과 다양한 정서규범으로 지난한 가족사와 삶의 비의를 이끌어냈다. 인간의 근원적 아픔을 치유하고 현실에 대처하는 인문학적 사유의 깊이를 더한 작품, ‘엽서 한 장’이 긴 장정의 대미를 밝혔다.
김영란 시인의 수상을 함께 기뻐하며 남다른 개성과 문체로 견고한 시적 성취를 보여준 네 분 시인들께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대표 집필: 심의특위원장 이승은)
아픈 가슴 울어주는 시인이 되라는
김영란
지난 초여름부터 제 넋을 쏙 빼버린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대하던 첫 시집이 발간되어도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았고, 청탁원고 한 편 써 보내는 일도 무의미하기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단 후 최초 가입한 문학단체가 오늘의시조시인회의였기에 연간집 원고는 꼭 쓰고 싶었습니다. 몇 달 정신줄 놓고 지내다 보니 몸부림만으로는 작품이 되지가 않았습니다. 마감일 지나자 자연스레 포기가 되었고 사무국에서 보내온 원고 제출자 명단에 당연히 제 이름은 없었습니다. 낙오자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고를 내신 분들 중에는 저보다 더한 어려움에 처하신 분들도 많을 텐데...엄살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 마음에 불을 지른 게 마감 연장 ‘열흘’이었습니다. 뭔가 동아줄 하나가 내려온 듯한. 허나 쉽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하루를 남겨놓았을 때 부르르 떨리면서 번뜩 스쳐가는 것. 작년 4〮·3취재에서 만난 유족의 눈물이었습니다. 동병상련! 아마 그런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몇 년 만에 처음 먹어본다는 삼계탕을 앞에 두고도 한 술 못 뜨던 사람. 동네 제일가는 집 아들이 고향을 버리고 단칸 월세방을 전전해야만 하는 현실. 억울함도 도가 지나치면 분노를 헛웃음으로 바꿔버리는지 세상을 탓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작품으로 상을 받을 줄이야...... 저는 그저 그 분의 눈물이 제 눈물 같아 조용히 끌어안아주고 싶었을 따름이고, 울지 말라고 하기보다 실컷 울 수 있도록 같이 울어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 상의 명예로움을 알기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아직 많이 모자라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픈 가슴 울어주는 시인이 되기 위해 열심히 발로 쓰라는, 더 힘든 날이 앞을 가로막더라도 작가의 소임을 잊지 말라는 격려의 뜻으로 알고 겸허히 상을 받들겠습니다.
이제 길이 조금씩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길을 내주신 오늘의시조시인회의 선고위원님과 심사위원 여러분, 그리고 회원여러분께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김영란 약력>
제주 출생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 꽃들의 수사修辭』
첫댓글 많이 축하합니다.~^^
김영란 시인님, 가입 선물로 이토록 영예로운 상을 수상하시다니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수상소감도 멋집니다. ^^
멀리서나마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새해 선물이 되었네요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열심히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겸손되이 받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