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의 종 안에서 누리는 구원의 은혜
이사야 49:8~13
우리가 지난 주일 저녁 예배 때에 8절 말씀을 함께 살펴본 바 있습니다. 은혜의 때와 구원에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종 그리스도의 간구에 응답해주시고 그 구원의 때에 도와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에게 하신 확실한 약속이지만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주님의 몸된 교회, 곧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베푸시는 은혜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까닭에 기도의 응답을 주시며 그리스도 까닭에 그의 몸된 교회를 돕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하여 나선 언약의 중보자가 되시어 그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기업 곧 의와 거룩함과 구원과 영생을 상속하게 해주시고 다시는 황폐하였던 땅을 완전히 회복하고 다시는 저주가 없고 썩지 아니하는 나라 천국을 상속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9절 이하에도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종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입은 그리스도의 몸된 백성들에게 각종 은혜와 축복들을 주실 것을 약속해주십니다. 이것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는 귀환자들에게 주시는 메시지이면서도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신약 시대의 하나님 백성 공동체인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시는 은혜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떤 은혜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몸된 교회 백성들에게 약속되고 있을까요?
먼저, 포로 상태와 흑암 상태에서 자유함을 얻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9절 전반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칼빈 선생은 주석에서 이 구절의 맨 앞절에 나오는 원문 말씀 ‘레에모르’ 곧 ‘이르기를’이라는 단어가 매우 강조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만다는 말씀의 권위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강력한 최강의 나라 애굽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기의 택한 백성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애굽에서 내보내라 명령하시면 천하의 애굽 왕 바로라도 어쩔 수 없이 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저항하고 거부하기를 여러 번하였지만 그럴수록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더 강력하게 역사하므로 결국은 백기를 들고 내보내고 그 후에 후회가 되어 뒤늦게 쫓아왔다가 결국 홍해 바다에 수장되고 그 백성은 내보낼 수밖에 없었지 않습니까? 나오라 말씀하시니 그대로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계 제국 바벨론에 잡혀가서 포로 생활하며 종살이하고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나오라’고 말씀만 하시면, 아무리 강력한 최강의 무력 국가 바벨론일지라도 꼼짝없이 선민 유다 백성들을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미리 말씀하시기를 70년 기약이 차면 그 백성이 다시 고토로 돌아오리라 말씀하셨는데, 결국 이렇게 말씀하신 대로 그 기한까지도 그대로 지켜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바벨론은 심판하시겠다고 하신 대로 그 무섭게 번영하던 바벨론도 허무하게 무너지고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150년 후에 그대로 바벨론의 북쪽에서 발흥한 페르시아의 창건자 고레스 왕에 의하여 하나님 백성들이 바벨론 땅에서 해방되어 고토로 돌아오는 역사가 그대로 이루어졌으니,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다 성취되고야 마는 능력인 줄 믿습니다.
또한 9절 후반절에 “흑암 중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고 하신 대로, 주의 백성들이 흑암 중에 살았고 존재감 없이 살았고 소망 없이 살았으나, 하나님께서 흑암 중에 있는 그들에게 ‘나타나라’고 말씀하니까, 애굽의 피라미드 건설과 성읍 건설의 중노동 현장에서 고생하던 아브라함의 후손들과 바벨론 강가 판자촌에서 말 한 마디 못하고 얼굴 없는 노예로서 캄캄한 흑암 속에 소망 없이 살았으나 나타나라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니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들로 나타나 당당하게 고토로 돌아가는 기적이 일어났지 않습니까?
이렇듯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주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나오라’ 명령하시니, 죄와 저주와 사망과 영벌의 포로 된 생활하던 자들이 죄의 결박에서 놓여나고 저주에서 풀려나고 사망에서 벗어나고 저 지옥의 심판에서 벗어나는 자유인들이 되는 해방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흑암 중에 살던 자 곧 미신과 잡신 숭배와 혼돈의 어둠 속에 살던 자에게 이제 나타나라 명령하시니, 그 심령이 밝아지고 얽매인 온갖 편견과 무지와 미신에서 벗어나고 지혜와 명철을 얻게 됩니다. 절망감에 빠져서 아무 소망 없이 살던 자들이 변하여 용기와 희망과 지혜를 가지고 세상을 향하여 당당히 나타나 세상의 빛이 되고 세상의 소금되는 주역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날도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백성들에게 계속하여 포로 된 자에게 나오라 명령하시며, 흑암에서 나와 빛으로 나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의 말씀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고, 성령도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주의 백성들을 위하여 지금도 동일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성령께서도 지금도 그 말씀을 이루어가시고자 주의 백성 가운데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 구주께서 이천년 전 이 땅에 오셔서 성령으로 일하시어 수많은 사람들을 죄에서, 질병에서, 슬픔에서, 죽음의 슬픔에서 사람들을 자유케 하고 살리시고 힘을 주고 소망을 갖고 살게 해주셨습니다.
이처럼 지금도 주님은 교회를 위하여, 주의 백성을 위하여 일하시며, 또한 교회와 주의 백성들을 통하여 동일하게 말씀으로 일하심을 믿읍시다. 주님을 믿고 그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며 우리 속에 있는 죄의 속박, 두려움과 절망의 어둠을 다 떨쳐버리고 승리합시다. 또한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도 생명과 능력의 말씀의 통로가 되시기 바랍니다. “할 수 없다, 끝났다, 소망이 없다”라고 말하며 결박된 채 주저앉은 자들을 향하여 ‘나오라’고 명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힘차게 전해주고 기도해줍시다. 또 절망의 어둠 속에 주저앉은 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일으켜 세우며 ‘빛으로 나타나라’고 힘을 주고 돕는 주님의 사신들이 됩시다. 주님의 말씀을 받은 우리가 기도하며 성령으로 일할 때 동일한 열매들을 맺어갈 줄 믿습니다.
또한 구원받은 주의 백성들을 돌보시는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9절 후반절로부터 10절까지 읽겠습니다.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헐벗은 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
하나님은 여기서 여호와의 종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몸된 백성들에게 먹이시고 마시우며 보호해주시고 인도하시는 은혜를 베푸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신 자기의 택한 백성들을 돌보시는 목자로 표현합니다. 목자들은 양들을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를 찾아 날마다 이동합니다. 그래야 양들이 살 수 있으니 그들은 이렇게 날마다 풀이 있고 시냇물과 샘물이 있는 곳으로 양떼를 몰아 그들로 먹고 마시고 쉬게 해줍니다. 길이 험하고 가시채가 우거지고 독초가 많고 독뱀이 우글거리고 사자와 곰과 늑대로 우글거리는 곳으로 데리고 가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그래서 자기 백성들의 복지를 늘 염두에 두고 일하십니다. 과거 양을 치던 목자 야곱은 그 형 에서가 함께 가겠다고 했을 때 형을 먼저 보내면서 만약 말을 타고 온 형 에서와 그가 데려온 사백명의 용사들과 동행하면 하룻만에 양들이 탈진이 되어 쓰러질 것이라면서 에서더러 먼저 가시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기를 선한 목자로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0:11 말씀에서도 이르시기를
“그는 목자같이 양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애굽에서 나온 선민 이스라엘을 광야 길로 인도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얼마나 자상하게 인도하셨습니까? 신명기 1:29 이하에서 모세가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울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고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신명기 1:29~33)
고 말하면서 지난 광야 40년간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부모가 자기 아들을 안고 기른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자상하게 돌보셨노라고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훗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유대인들을 고토로 돌려보내실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 유대인들을 얼마나 안전하게 그 고토로 돌려보내셨습니까? 에스라 1장에 보면 바벨론을 멸망시킨 하나님이 기름부어 왕으로 세운 이방 왕 고레스가 칙령을 내리기를, 유다 백성들이 그 고토로 돌아갈 때에 그들이 머물던 지역 백성들은 마땅히 은과 금과 그밖의 물건과 짐승(소와 노새와 나귀와 말과 같은 가축들)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리라고 명하였습니다(에스라 1:1~4). 그래서 황제의 명령이 엄중하게 담긴 조서로 인하여 유대인들은 당당하게 고토로 돌아올 수 있고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에스라 학사에 의하여 이차 귀환이 이루어질 때에도 그러한 돌보심이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섬기던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 왕에게 자기가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시는 분이시라고 자주 역설하였기 때문에, 왕에게 가는 도중에 강도떼들을 만날 위험을 막을 군대를 보내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자기와 함께 돌아가는 장정 1280명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합치면 약 4000명 되는 인원들 모두 바벨론 인근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하며 하나님께 가는 길에 평탄함과 안전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기도에 응답하시어서 하나님의 능한 손이 대적들과 길에 매목한 자들의 손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의 성전 건립을 반대하고 성벽을 훼손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유대인들이 귀환한다고 하면 강도떼로 위장하여 공격할 가능성이 매우 컸습니다. 그래서 페르시아 왕 곁의 측근으로 재임중이던 에스라는 얼마든지 호위병사들을 붙여달라고 청할 수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손이 더 강함을 믿고 금식하고 기도했더니 그 여행 내내 안전하고 평안하게 4천 명의 유대인들과 함께 두 번째 유다 땅으로의 귀환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받은 주의 백성들의 목자가 되십니다. 우리를 지키시고 먹이시고 입히시는 분이십니다. 마치 독수리가 그 새끼를 그 날개 아래 업어 기르듯이 그렇게 호위하시고 보호하시고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맙시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친히 선한 목자가 되사 먹이시고 입히시고 인도하시며 보호하시고 친히 복되게 기르실 것입니다. 만일 누구라도 우리를 대적하고 해하려고 하면 하나님은 그들의 대적이 되사 그들을 치실 것이며 그들을 낮추시며 그들로 무너지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저 북쪽의 악한 김정은이 전쟁을 준비하고 미사일을 날마다 쏘아대며 북쪽의 동포들을 전쟁의 두려움 속에 밀어넣고 정신적으로 꼼짝못하게 하여 자기 수하에 두려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건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그가 지키신다는 약속을 굳게 믿고 평안합시다. 아브라함을 대적하였던 자들은 다 하나님께서 다 응징하셨고, 다윗을 해하려던 자들은 하나님께서 다 심판하셨습니다. 악을 일삼는 자들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 행한 일로 심판하실 것이며, 북한의 20만 내지 40만의 믿음의 형제들을 괴롭히는 저 정권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손을 보실 것이며, 남한의 주의 백성들을 주님께서 친히 지켜주실 것이니, 주님 안에서 평안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사 독수리가 그 날개로 그 새끼를 보호하듯이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온전히 보호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자들을 땅 끝에서라도 구원하실 것입니다.
11절로부터 13절까지 함께 읽읍시다.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 어떤 사람은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은 북쪽과 서쪽에서, 어떤 사람은 시님 땅에서 오리라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하나님은 여호와의 종 그리스도를 통하여 택한 백성들을 부르실 때에 그 돌아오는 길을 평탄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방해를 다 없앤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높은 산은 낮아지게 하고 낮은 골짜기는 메꾸어 평탄하게 하시어 돌아오는 길이 순조롭게 하실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은 꺾으실 것입니다. 상처 입은 마음은 싸매어 용기를 갖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으로 나오도록 역사해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부르시는 사람은 사방에서 불러오는데, 그 백성들은 심지어 시님 땅에서도 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시님’이라는 지역은 유일하게 여기 나오는데, 이 단어는 중국을 가리킨다고 설명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이사야 당시 주전 600년 전에 중국이 얼마든지 그 지역에 알려졌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라비아 사람들에게 중국이 ‘친’이라고 불리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나라’에서 나온 ‘친’은 오늘날 ‘지나’ 영어로는 ‘차이나’인 것입니다. 놀랍게 그 먼 나라 중국에서 주님의 백성이 나올 것이라는 예언이 이미 주님 오시기 오래 전부터 예고된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구원의 광대함, 주의 백성의 보편성이 이렇게 일찍이 선언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그 폭이 이렇게 넓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우연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 전부터 이렇게 작정된 계획 속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 이스라엘만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땅 끝의 나라의 이름 없는 우리들까지도 일찍이 이렇게 부르시기로 작정하시고 때가 차매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여호와의 종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백성을 세상 각처에서 부르셨으니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받은 주의 백성들은 노래하고 찬양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주의 백성만이 아니라 하늘도 노래하고 땅도 기뻐하며 산들도 노래해야 마땅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은 참으로 온 세상 만물과 우주 전체가 경축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몸된 교회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이처럼 풍부합니다. 이 은혜를 우리가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은혜는 앞으로 장차 누릴 것의 전조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 모두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선물로 받은 이 구원을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합시다. 그 어떤 것보다 귀한 축복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구원의 행복 아니겠습니까? 이 놀라운 은혜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리며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경축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이 은혜를 믿고 약속을 주장하며 기도합시다. 세상의 불안과 혼돈과 맞서 이 약속 위에 굳게 서서 믿음으로 싸웁시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우리의 목자 되심을 우리 삶 속에서 경험하며 자랑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