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찜닭하면 이육사의 시 ‘광야’의 첫 구절이 떠오른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이 시는 당연히 안동찜닭과 아무 관련 없다. 시 속에 등장하는 닭의 이미지와 상징은 더더구나 찜닭과 거리가 멀다. 그저 시인의 고향이 안동일 뿐. 시인의 출생지와 닭이라는 단어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육사가 활동했던 시절에 요즘 스타일의 안동찜닭은 없었다. 그만큼 안동찜닭은 아주 오래 된 전통음식은 아니다. 한때 성업을 이뤘던 안동찜닭집들이 보기 힘들다. 10여 년 전, 들불처럼 번졌던 안동찜닭집들이 모두 사라지고 자생력을 갖춘 몇 곳만 남았다. 해물안동찜닭을 내는 <안동찜닭·해물떡찜>도 그 중 하나다.
간장소스 안에서 해물과 찜닭이 어우러진 음식
기름에 튀긴 치킨에 질렸다면 찜닭은 좋은 대안이 된다. 치킨처럼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다. 그런가 하면 영양가 높고 다채로운 맛을 지닌 식재료들까지 고루 섭취할 수 있다. 이 집 주인장 천영순(75) 씨도 안동찜닭의 장점에 주목했다. 그러나 먹을 때마다 닭 비린내 나고 깊은 맛이 덜한 점은 불만스러웠다.
전성기 시절, 무수한 찜닭집들이 프랜차이즈 본사 레시피에 의존하고 있을 때 외롭게 찜닭의 단점을 보완한 레시피를 개발했다. 전성기가 지나자 무수한 찜닭집들이 사라졌지만 외롭게 살아남아 안동찜닭 맛을 이어가고 있다.
이 집은 새벽 4시면 식당에 불이 켜진다. 하루 동안 사용할 닭을 초벌로 익히는 것이다. 이 작업을 거치면 육질이 부드럽고 양념이 고기에 잘 스며든다. 주원료인 생닭은 1.2kg 규격의 냉장 닭이다. 항문의 기름을 제거하고 21조각으로 내어 조리한다.
애벌작업은 마치 중화요리처럼 웍 작업으로 조려낸다. 웍에 닭고기와 함께 낚지 오징어 주꾸미 꽃게 새우 홍합 등 해산물, 그리고 감자 양파 당근 넓적당면 등을 넣고 간장 베이스의 소스에 조린다. 천씨가 개발한 간장 베이스 소스는 비린내를 없애고 한국인 입맛에 맞는 감칠맛을 낸다.
온갖 해산물과 함께 푸짐하게 내오는 해물안동찜닭은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넉넉히 올린 파채는 시각적으로도 식욕을 돋워주고 닭고기 맛을 더 풍부하게 해준다. 간장소스 맛이 밴 육질이 부드럽고 담백하다. 간장의 위력은 역시 당기는 맛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높은 온도에서 웍 작업으로 조려내 은은한 불맛도 느껴진다. 함께 들어간 해물 가짓수와 양이 푸짐해 해물을 하나씩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직장인들, 특별한 식사 한 끼로 애용
일반 찜닭에 비해 그다지 맵지 않다. 좀 더 매운 맛을 원한다면 주문할 때 미리 말해둔다. 완도산 미역이 들어간 미역냉국은 새콤하면서 상큼하다. 닭찜이 매울 때 한 번씩 입 안을 헹구면 입맛이 깔끔해진다. 양배추, 무, 오이로 담근 피클은 치킨 집 무처럼 자극적이거나 달지 않다. 아삭하면서 개운해 닭고기와 잘 어울린다.
해물안동찜닭 반 마리(3만1000원)는 2인, 한 마리(4만원)는 3~4인이 먹기에 적당하다. 제공한 가위와 집게를 사용, 내용물들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먹는다. 내용물에 이미 들어간 당면사리(3000원)와 떡사리(2000원)는 추가가 가능하다. 다 먹고 남은 국물에 공깃밥(1000원)을 주문해 밥을 비벼먹는 손님이 많다.
주변이 무역센터 등 사무실 밀집지역이다. 직장인들이 점심이나 저녁 때 좀 특별한 식사 메뉴로 애용한다. 해물이 빠진 ‘안동찜닭(2만3000원, 3만2000원)’과, 매콤 달콤한 소스에 해산물 채소 어묵을 넣은 고급 떡볶기인 해물떡찜도 있다.
16세기 말과 17세기 초, 프랑스의 왕이었던 앙리 4세는 “모든 국민들이 일요일이면 닭고기를 먹게 하겠다”고 호기를 부렸다. 실제로 당시 프랑스 사람들이 닭고기를 실컷 먹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게 군주의 최고 책무이고 보면 그의 다짐 앞에서 숙연해진다. 프랑스의 국민 닭 요리 코코뱅은 우리의 찜닭쯤 해당할 것이다. 와인이 들어가긴 했지만 조리방식이 엇비슷하다.
코코뱅이든 찜닭이든 맛있는 닭고기를 놓고 가족 동료들과 둘러앉아 나눠먹는 모습은 흐뭇하다. 그 맛은 동서고금이 다를 리 없다. 서울시 강남구 영동대로 513 코엑스몰 지하1층 M109호 02-558-6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