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장 수록> -
승근 엄마가 공항을 이용할 때 마다 지문등록이 안되어 있어 늘 불편하다가 이번 일본여행 가기전에 미리 지문등록을 하려고 인천공항을 찾아갔다. 집앞 석촌역에서 9호선을 타고 김포공항역에서 내리면, 바로 옆 차선에 인천공항으로 가는 공항철도가 기다린다. 인천공항 제1터미널 3층 서비스센타에 들려 지문등록을 하였다. 5분이면 등록 되는걸 거리가 멀어 지금까지 미뤄왔네요 ㅠㅠ
시간도 남고 해서리 그냥 집에 가는건 쬐끔 아쉬운지라,... 공항 1층을 나와 택시를 잡고는 냅다 "실미도" 를 외쳤다
실미도 위치
택시를 타고 공항을 나와 영종도와 잠진도를 잇는 다리를 건넌 후 다시 잠진도와 무의도를 잇는 무의대교를 건너야 한다
무의도에서 산골 좁은길로 꼬불꼬불해서 산을 넘어가면 드디어 무의도 서쪽 해변 실미유원지 입구에 도착
해변으로 나오면 드디어 실미도 해수욕장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곳이 실미도가 아니고 정면에 길게 보이는 섬이 실미도이다. 실미도가 북파공작원 사건으로 워낙 유명하다보니까 이 주변의 모든 시설, 식당이나 해변 등의 이름이 실미도를 사용하고 있다.
*실미도 사건
1968년 1월 21일, 소위 '김신조 사건'으로 알려진 1.21사태가 일어났다. 북한이 특수부대를 보내 당시 국가원수였던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했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중앙정보부와 군은 김일성 암살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3군에 1개씩 이를 전담할 특수부대를 창설했는데 그 중 공군 산하에는 공군 제2325부대 209파견대. 또는 중앙유격사령부 684특공교육대인 684 부대가 창설되어 경기도 부천시 용유면의 무인도인 실미도에 비밀 훈련기지를 설치하였고 차출된 부대원은 31명이었으며 군번도 없는 민간인 신분이었다.
훈련은 살인적으로 혹독했고 외출이나 면회, 서신 연락 등이 금지됐으며 화장실에 갈 때마다 총을 든 기간병이 따라와 감시할 정도로 통제하며 훈련이 지속되었으나, 1970년대 초부터 미.중 화해무드, 남북적십자회담 개최와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교체 등 상황이 바뀌면서 암살계획이 점차 뒤로 밀리고 잊혀지게 된다. 이제는 골치아픈 존재가 된 부대와 부대원들을 전부 소멸시킨다는 소문이 돌자, 훈련대원들은 국가가 우리를 배신하고 죽이려 한다며 대통령을 직접 만나 담판을 지을 계획을 세우게 된다.
1971년 8월 23일 부대원 24명이 교관과 조교들 12명을 살해하고 섬을 이탈, 인천에서 시외버스를 납치해 청와대로 향하다 서울 영등포구 대방동 거리에서 진압군에게 포위되어 사면초가에 놓인 끝에 수류탄으로 집단 자폭하게 된다. 당시에는 단순히 '8.23 난동 사건'으로 지칭되어 오다가, 훗날 684부대의 창설 목적과 북파공작 훈련 등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실미도 북쪽 끝단
실미도 남단
무심히 날고있는 갈매기들은 예전에 이곳에서 일어났던 슬픈 사연을 알고는 있을까.....
바닷길이 열리는 해변 가까이에는 실미도 사건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날씨가 얼마나 뜨거운지 얼굴이 다 익어 붓기 시작하는구나. 아이고 ~~~~
얼른 뙤악볓을 피해 해변 가까이 있는 식당 '송림정'에서 회덮밥에 시원한 맥주를 곁들여 점심식사를 했다
간조 때가 되면 무의도와 실미도를 잇는 바닷길이 열린다고 한다 (퍼온 사진)
우리는 갑자기 오느라 물때를 맞춰오지 못했으나, 아래 싸이트에서 실미도의 바닷길이 열리는 간조시간을 미리 알고 오는것이 낫다. 음력 보름인 사리때는 하루종일 열린다니 그때 오는게 제일 좋을 듯....
바다 멀리 보이는 곳은 영종도의 서쪽 끝이고, 산 위에는 인천공항 레이다 송신소와 기상관측소가 있다
실미도 해수욕장에서 실미고개 땡볕 길을 겔겔겔 걸어서 넘어 마을버스 정류장까지 가는데.... 아이고 죽겄다 ..
길가의 살구나무는 튼실한 열매로 나를 유혹하는데 날이 뜨거워 모든게 귀찮쿠낭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는 삼거리에 도착하니 앞바다의 풍경이 예쁘장하다
바다건너 멀리 인천 송도 신도시가 보인다
이곳 삼거리에서 근 1시간을 기다려 마을버스를 타고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 있는 공항철도 승차장으로 갔다
공항철도를 이용해 집으로 가는 중...여기는 에어컨이 시원 빵빵하니 정말 살거 같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