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苑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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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楊子와 墨子, 곧 楊朱와 墨翟과 관련해서는 이미 등문공하편 제9장에서 맹자가 好辯을 변론하기 위해 거론된 인물이다. 위에서 맹자는 楊子가 ‘拔一毛而利天下 不爲也’라고 했는데, 『列子』 楊朱편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양주가 “백성자고(요순시절에 제후를 지내고 우가 들어서자 초야에 돌아가 농사를 지은 사람)는 터럭 하나로 물건을 이롭게 하더라도 하지 않고 나라를 버리고 은둔하여 농사를 지었느니라. 대우는 한 몸을 스스로 이롭게 하지 않고 반신불수가 되었느니라. 옛 사람은 터럭 하나를 덜어 천하를 이롭게 하더라도 간여하지 않았고, 온 천하가 한 몸을 받들더라도 취하지 않았으니, 사람마다 터럭 하나를 덜지 않고,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 하지 않아도 천하는 다스려졌느니라.”
고 하자 금자가 양주에게 물었다.
“그대 몸에서 터럭 하나를 뽑아 이로써 한 세상을 구제한다면 그대는 하겠는가?” 양자가 “세상은 진실로 터럭 하나로 구제되지 않느니라.”고 했다.
금자가 “가령 구제된다면 하겠는가?”라고 했더니, 양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금자가 나가서 맹손양에게 말했더니, 맹손양이 “그대는 부자의 마음에 이르지 못했도다. 내 청컨대 말하노라. 만약에 살갗을 찔러서 만금을 얻는다면 그대는 하겠는가?”라고 하자 “하겠노라.”고 했다.
맹손양이 “만약에 뼈마디 하나를 잘라서 나라를 얻는다면 그대는 하겠는가?”라고 하자 금자는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있었다. 맹손양이 “터럭 하나는 살갗보다 미미하고, 살갗은 뼈마디 하나보다 미미하니 덜어낼 수 있느니라. 그렇다면 터럭 하나가 쌓여서 살갗을 이루고 살갗이 쌓여서 관절 하나를 이룬다면, 터럭 하나가 진실로 한 몸의 만 분의 일에 해당하는 물건이니 어찌 가벼이 하랴?”고 했더니
금자가 “내 그대에게 능히 답할 수는 없으나 그러나 그대의 말을 노빙과 관윤에게 묻는다면 그대의 말이 마땅하리라. 내 말로 대우와 묵적에게 묻는다면 내 말이 마땅하리라.”고했다
(楊朱曰伯成子高는 不以一毫利物하고 舍國而隱耕이라 大禹는 不以一身自利하고 一體偏枯라 古之人은 損一毫利天下라도 不與也하고 悉天下奉一身이라도 不取也니 人人이 不損一毫하고 人人이 不利天下라도 天下治矣니라 禽子問楊朱曰去子體之一毛하여 以濟一世면 汝爲之乎아 楊子曰世固非一毛之所濟니라 禽子曰假濟면 爲之乎아 楊子弗應이라 禽子出하여 語孟孫陽한대 孟孫陽이 曰子不達夫子之心이로다 吾請言之한대 有侵若肌膚하여 獲萬金者면 若爲之乎아 曰爲之라 孟孫陽曰有斷若一節하여 得一國이면 子爲之乎아 禽子默然有閒이라 孟孫陽曰一毛는 微於肌膚요 肌膚는 微於一節하니 省矣라 然則積一毛하여 以成肌膚하고 積肌膚하여 以成一節하면 一毛固一體萬分中之一物이니 柰何輕之乎아 禽子曰吾不能所以荅子나 然則以子之言으로 問老聃關尹이면 則子言當矣리라 以吾言으로 問大禹墨翟이면 則吾言當矣리라).
* 子莫 : 魯나라의 賢者
* 權은 저울추(稱錘)를 말하는데 물건의 경중을 저울질하여 중을 잡는 것이다. 이루상편 제17장 해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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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苑 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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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楊朱와 墨翟과 子莫을 들어 中庸의 도가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子莫은 양주와 묵적이 中을 잃었음을 알고 그 둘 사이를 헤아려 中을 잡았으나 형세의 변화에 따른 中을 잡을 줄은 몰랐다. 다시 말해 中을 잡고 저울질함이 없다면 가운데 한 곳에만 딱 붙어서 변할 줄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곧 ‘隨時變易以從道(때를 따라 변역하되 도를 따른다. - 程子의 易傳序)’하는 權道를 쓸 줄 모르는 것이고 자칫 經道마저 폐할 우려가 있다.
中은 堯舜禹가 전한 도의 핵심으로 ‘允執厥中(진실로 그 중을 잡는다)’을 말하며,
『중용』 에서는
“희노애락이 아직 발하지 않음을 中이라 하고, 발함에 다 절도에 맞음을 和라고 하니, 中은 천하의 큰 뿌리이고, 和는 천하에 두루 이르는 도이니라. 중화를 이루면 천지가 자리하며 만물이 길러지니라. 중니께서 ‘군자는 중용이고 소인은 중용에 反한다.’고 하셨느니라. 군자의 중용은 군자이면서 때를 맞추고, 소인의 反중용은 소인이면서 거리낌이 없느니라
(喜怒哀樂之未發을 謂之中이오 發而皆中節을 謂之和니 中也者는 天下之大本也요 和也者는 天下之達道也니라 致中和면 天地位焉하며 萬物이 育焉이니라 仲尼曰君子는 中庸이오 小人은 反中庸이니라 君子之中庸也는 君子而時中이오 小人之反中庸也는 小人而無忌憚也니라).”고 했다.
자사의 이 말씀에 비추면 양주와 묵적은 反중용의 소인일 뿐이고 꺼려함이 없이 행한 이들이 된다. 그러므로 맹자가 “我 亦欲正人心하여 息邪說하며 距詖行하며 放淫辭하여 以承三聖者로니 豈好辯哉리오 予 不得已也니라(등문공하편 제9장).”고 한 것이다.
이 장에 대해 楊時는 이루하편 제29장의 내용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우와 직이 세 번 그 문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아니하셨으니 진실로 그 가함을 마땅히 하지 않았다면 묵자와 더불어 다름이 없고, 안자가 누추한 골목에 살면서도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했으니 진실로 그 가함을 마땅히 하지 않았다면 양씨와 더불어 다름이 없음이라. 자막은 爲我와 兼愛의 中을 잡고 저울질함이 없으니 향리와 이웃에 싸움이 있어도 문 닫음을 알지 못하고, 한 방안에 싸움이 있어도 구할 줄을 모르리니 이 역시 하나를 잡음과 같음이라. 그러므로 맹자가 도를 해친다고 하셨느니라. 우와 직과 안회가 처지를 바꾸더라도 다 그러함은 그 저울질함이 있기 때문이니 그렇지 않으면 이 또한 양묵일 뿐이니라
(楊氏曰禹稷이 三過其門而不入하시니 苟不當其可면 則與墨子無異요 顔回 在陋巷不改其樂하시니 苟不當其可면 則與楊氏無異라 子莫은 執爲我兼愛之中而無權하니 鄕鄰有鬪而不知閉戶하고 同室有鬪而不知救之러니 是亦猶執一耳라 故로 孟子 以爲賊道라하시니라 禹稷顔回 易地則皆然은 以其有權也니 不然則是亦楊墨而已矣니라).”
출처 : 孟子易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