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죽을 준비를 하는 사람
47: 27 - 48: 7
27.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하였더라 창35:11, 45:10, 47:11, 출1:7
28. 야곱이 애굽 땅에 십 칠년을 거하였으니 그의 수가 일백 사십 칠세라 창47:9
29. 이스라엘의 죽을 기한이 가까우매 그가 그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환도뼈 아래 넣어서 나를 인애와 성심으로 대접하여 애굽에 장사하지 않기를 맹세하고 신31:2, 신31:14, 왕상2:1, 창24:2, 창24:49
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 요셉이 가로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창49:29, 신31:16
31. 야곱이 또 가로되 내게 맹세하라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 히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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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장 1-7
○ 야곱을 문병한 요셉
1. 이 일 후에 혹이 요셉에게 고하기를 네 부친이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창41:51, 창41:52
2. 혹이 야곱에게 고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3.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한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복을 허락하여
4.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창17:8
5.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것이 될 것이요
6. 이들 후의 네 소생이 네 것이 될 것이며 그 산업은 그 형의 명의하에서 함께 하리라
7. 내게 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노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오히려 격한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 (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창35: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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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3: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엄연한 진리를 잊고 사는 인생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신이 죽을 때를 아는 사람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야곱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접을 때를 알고 유언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시편기자의 말대로 주님의 인도를 받아 일생을 산 사람입니다.
(시48:14)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죽을 때까지 잘 산 사람이 인생에 성공자입니다. 야곱은 그런 의미에서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는 죽기 전에 두 가지를 합니다. 하나는 자신의 시신을 선영에 장사지내달라고 요셉에게 부탁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는 일입니다. 둘 다 그의 믿음과 관련이 있는 내용입니다. 죽을 때까지 굳건한 믿음을 지킨 훌륭한 신앙인의 이야기가 오늘 말씀입니다.
(히11: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히브리서 기자의 증언이 정확합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주님의 메시지를 살피며 은혜를 나눕시다.
선영에 장사하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 들어가 고센에 터를 잡고 살 초기에는, 요셉을 아는 바로가 살아있을 동안은 평안했습니다. 그래서 (27절)은 산업을 얻고 번성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야곱의 말년은 풍성한 삶이었습니다. 야곱은 애굽에서 17년을 살다 죽습니다. 야곱은 77세 때 가나안에서 떠나 밧단아람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결혼했고 20년 후에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33년 동안 가나안에서 살다가 다시 애굽으로 가 17년을 살았습니다. 그는 147세가 되어 죽었습니다. 참으로 나그네 인생이었지만 말년은 극히 아름답습니다. 성공적인 삶입니다.
(출1:8,11)에 보면 그들의 고역은 다른 왕의 등장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그러니까 야곱이 살았을 동안엔 아주 평화롭고 풍성한 삶을 산 것입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자신이 죽으면 애굽에 장사지내지 말라고 요셉에게 당부합니다.
아무리 풍성하고 평화로워도 그곳 애굽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신 땅이 아님을 알고 있는 야곱의 부탁은 당연한 것입니다. 선영은 아브라함 때에 헷족속으로부터 돈을 주고 산 막벨라 굴을 말합니다.
(창23:4)에서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자 헷족속에게서 막벨라 굴을 사 장사지냅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 그곳은 가나안 땅입니다.
야곱은 가나안 땅만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기업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야곱이 요셉과 선영에 장사지내길 약속하는 장면에서 비록 그가 남의 나라 땅에서 죽지만 결국 자신의 민족에게 약속하신 땅에 안장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향을 찾는 믿음이 좋은 믿음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본향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지만 우리가 갈 곳은 결국 그곳임을 잊지 않는 삶이 지혜로운 사람이요, 믿음의 삶입니다.
이런 약속을 환도뼈에 손을 넣고 합니다. 가장 굳은 약속이나 맹세를 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흔히 하는 습관입니다. 미래를 확신할 때도 이런 식으로 맹세를 합니다. 야곱은 장차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며 가나안만이 이스라엘 민족의 기업임을 아들 요셉에게 다짐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는 죽을 준비를 제대로 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내 것이라
야곱은 나이가 많아 병석에 누웠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병석으로 자신의 두 아들을 데리고 옵니다.
47장과 48장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이 일 후에”라고 하는 말이 연결고리가 됩니다. 야곱이 자신의 시신을 선영으로 가지고 가 장사하라는 명령을 하고 난 후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 앞의 내용도 그렇고 그 뒤의 내용도 그렇고 야곱의 죽음준비와 관계가 깊습니다.
업무에 바쁜 요셉은 아버지를 친히 모시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성경에서 “혹이”라고 일컬어지는 ‘어떤 사람’을 붙여 돌보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야곱의 병세가 악화되었음을 요셉에게 알렸습니다. 요셉은 그 즉시 자신의 아들들을 데리고 아버지에게 옵니다. 이 때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아마 18살이나 20살 쯤 되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아들들을 데리고 찾아온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를 뵙게 하는 게 그 첫 목적이고, 두 번째이며 더 중요한 목적은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야곱은 아들과 손자들 앞에서 자신이 만난 하나님에 대하여 말합니다.
(창48:3,4)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한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복을 허락하여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땅에 대한 약속성취는 꼭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이 말속에 있습니다. 선영으로 자신의 뼈를 가져가 묻으라는 명령이나 지금 이 말이나 의미는 같습니다. 가나안에 대한 확신입니다.
야곱은 루스에서 만난 하나님 경험을 이야기함으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자신에게 이어지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전합니다. 비록 오랜 세월 방황하는 나그네 삶이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꼭 성취될 것이란 확신을 합니다. 그리고 그 확신을 요셉에게도 전하고 손자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도 전합니다. 비록 요셉의 아들들은 순전한 이스라엘의 피가 아니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약속의 땅을 허락할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5절)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실은 요셉은 그게 두려웠을 것입니다. 자신의 두 아들은 애굽의 피, 제사장의 딸 아스낫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들입니다. 그래서 혹시 이스라엘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하진 않을까 걱정이었습니다. 야곱의 말은 그런 요셉의 의구심을 말끔히 씻어주는 표현입니다. 다른 아들들처럼 삼겠다고 합니다. 양자를 삼는 것입니다.
실은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양자입니다.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오늘 말씀은 구원의 법칙과 하나님의 땅(하늘나라)인 가나안의 법칙이 아주 잘 어울리는 이야기입니다. 야곱의 이 약속은 후에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른 아들들처럼 요셉의 두 아들은 손자가 아니라 12지파의 한 분깃씩을 차지하는 당당한 이스라엘의 두 아들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아주 죽음 앞에 멋있는 한 사람 야곱을 만났습니다. 죽음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은 성공한 인생입니다. 그는 자신을 나그네 인생이라 표현했지만 그러나 그는 성공한 자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 약속을 잊지 않습니다. 끝까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있습니다.
야곱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이 있다면 성도들에게는 하늘나라가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은 야곱이 그곳으로 갈 수 있었듯이, 우리도 본향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히11:14-16)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우리도 야곱처럼 죽을 그날까지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출처/저자| 김학현목사(예은교회)
출처: 성경 벌레들 원문보기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