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1-20
곤고할 때 더욱... / 한서노회
주제말씀: 왕하 16:2,3
“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이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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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하스,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다!
“....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자녀들을 불사르고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니라.”(대하28:1~4)
본문은 남유다 왕들 중에서도 드물게 악했던 아하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 마디로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각종 우상 숭배를 자행하는 등 그의 조상 다윗과 전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2절)
결국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 아하스를 징벌하셨습니다. 아람의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입니다(5,6절). 또한 에돔 사람들과 블레셋 사람들입니다(대하28:17,18).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은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께 돌아오기는커녕 앗수르와 주종 관계를 맺고, 앗수르의 힘을 의지하는 등(7~9절) 다시 한 번 불신앙을 저지릅니다. 하나님이 아닌 인간의 힘을 의지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이를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사7:3~25).
“... 아하스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쓰러뜨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으로 삼자 하였으나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사7:3~6)
결과는 어찌 되었습니까?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아하스의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그 왕 르신을 죽였으나(9절), 이후 유다를 괴롭히던 에돔과 블레셋을 격퇴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유다를 포위 공격했던 것입니다.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이 그에게 이르렀으나 돕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를 공격하였더라 아하스가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방백들의 집에서 재물을 가져다가 앗수르 왕에게 주었으나 그에게 유익이 없었더라.”(대하28:20,21)
왜 입니까?
아하스가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므로 그를 낮추시기 위함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대하28:19)
* 아하스, 곤고할 때 더욱 여호와께 범죄를 더하다!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이르되 아람 왕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였더라.”(대하28:22,23)
아하스는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을 만나러 (아람의 수도) 다메섹에 갔다가 그곳의 우상을 수입했다.
“아하스 왕이 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제단을 보고 아하스 왕이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더니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대로 모두 행하여 제사장 우리야가 제단을 만든지라.”(10,11절)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아람의 신을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곤고한 때일수록 더욱 더 하나님을 구하고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련한 짓만 골라서 자행한 것입니다.
제사장 우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그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증인이었다 할지라도(사8:2), 하나님의 율법에 명백히 어긋나는 아하스의 명령을 그대로 순종한 것은 그의 잘못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 곤고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자신과 자신의 삶들을 곰곰이 되돌아보십시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전7:14)
그리고 환난 날에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하나님께서 능히 우리를 건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도울 힘 없는 인생들이나 우상을 의지하지 말고서 말입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시146:3,4)
또한 어떻습니까?
혹 (아하스처럼)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는 앗수르를 의지한 채 온갖 우상숭배를 자행했던 왕입니다.
이 같은 좋지 못한 선례는 고스란히 므낫세와 아몬 등에게로 이어졌고, 유다의 멸망을 자초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한번 뿐인 인생,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혹 다윗과 같지 않다는 평가를 절대로 받지 말고서 말입니다.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