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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7: 6. 제자들이 듣고 두려워하니 7. 일어나라
마 17: 6. 제자들이 듣고 두려워하니 -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
심히 두려워했다. 이제야 제자들이 정신이 바짝 났다. 하나님은 우리의 경외의 대상이다. 두려운 마음으로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나 거룩하신 분이다.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두려워하고 떨고 엎드릴 줄 알아야 한다.
1]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제자들은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였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위엄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시고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하는 영광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되어 두려워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이처럼 인간의 절대적인 공포는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선 죄악 된 인간의 통상적인 느낌이다.
* 사 6: 5 -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 마 14: 27 -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 마 28: 5, 10 –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2] 변형 사건
예수께서 높은 산(헐몬 산인 듯함)에 올라가셔서 변형되셨을 때 모세와 엘리야가 거기 함께 있었다. 그때 홀연히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5절).
변화 산상에는 사람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거기 계셨다. 변화 산상의 모든 것을 연출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엘리야를 동원하여 예수님과 동석하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는 제자들에게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하고 그에게 순종할 것을 분부하셨다. 어찌하여 하나님은 예수께서 변형하실 때 모세와 엘리야를 동원하셨으며, 또 제자들에게 예수를 소개해야만 하셨을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리를 거기서 발견할 수 있다.
(1) 모세와 엘리야의 출현
① 율법과 예언과 복음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예언을 대표한 사람이다. 모세는 죽어 승천한 자이며, 엘리야는 살아서 승천한 자다.
* 유 1: 9 –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 왕하 2: 11 -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이들이 예수의 변형에 동참하였다. 즉 율법과 예언이 복음과 함께 한 것이다. 율법과 예언은 세례 요한의 때로 마감되었다.
* 눅 11: 13 -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구약의 모든 약속은 예수의 복음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이 복음에 의하여 모든 인간은 영생을 얻는다.
* 요 5: 39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예수의 변형에 하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를 동참케 하신 것은 예수의 복음이 율법과 예언의 완성임을 증언하기 위한 데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변형된 후에 모세와 엘리야는 곧 사라지고 오직 예수님만 남은 것은 바로 이런 진리를 보여 준다.
사람은 모세(율법)나 엘리야(예언)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복음)에 의해서만 구원받는다. 오직 예수로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구주이시다.
② 변형이 의미하는 것
예수의 변형과 함께 그 진리에 동참했던 모세와 엘리야는 그들 생전에 예수의 변형과 같은 체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모세는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내려올 때 그 얼굴에 광채자 나고 있었다.
* 출 34: 29-35 – 29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30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31 모세가 그들을 부르매,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32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령하고 33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34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령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며 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엘리야가 불스레와 불말들이 회오리 바람을 타고 승천한 것은 변형되지 아니하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왕하 2: 11 -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변형된다는 것은 신적 변화이며, 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여가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신적 현상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의도하시는 목적이 있을 때 나타난다. 모세, 엘리야, 예수 그리스도는 다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없어서는 안 될 목적과 사명이 있다.
변형된다는 것, 그것은 하나님 편에서는 임무의 부여이며, 사람 편에서는 사명의 인수를 의미한다. 예수께서 변형되셨을 때 모세와 엘리야가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죽음'에 대하여 말한 것은 이를 시사하고 있다.
* 눅 9: 31 -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2) 예수에 대한 하나님의 증언
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5절) 라고 하나님은 예수에 대하여 증언하셨다. 하나님의 이 증언은 예수께서 요단 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도 하신 말씀이다.
* 마 3: 17 -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예수의 공생애 초기와 공생애 말기에 똑같은 증언을 하셨는데 이는 듣는 무리로 하여금 메시야로서의 예수에 대한 신앙을 확고히 갖게 하려는데 있었다고 생각한다.
예수께서는 변화산 사건 이후 약 9개월 후에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흔들리지 않는 신앙, 그것은 복된 성도의 축복이다.
* 시 1: 1-2 –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② 들어야할 생명의 말씀
'너희는 저희 말을 들으라' (5절) 라고 하나님을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이 세상에서 꼭 들어야 할 말씀은 복음이라는 것과 믿음은 곧 순종하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다.
이 세상에 수많은 말이 있으나 생명을 살리는 말씀은 오직 예수의 복음 밖에는 없다. 사람이 꼭 들어야 할 말씀은 오직 복음뿐이며, 이 복음을 들음으로 믿음이 생기고 구원을 얻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야 한다. 그가 우리의 대속주이심을 믿어야 한다. 그가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할 것을 믿어야 한다.
③ 온 인류가 순종해야 할 그리스도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이 말씀을 비단 제자들에게 뿐 아니라 오고 가는 세대의 모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촉구다.
인간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믿음은 순종으로 표현된다.
성도는 예수께만 순종하는 무리들을 말한다. 내 뜻을 고집하는 것은 순종이 아니다. 나를 앞세우는 것도 순종이 아니다.
순종은 온전히 나를 버리고 예수께만 의지하는 것이다. 그에게 순종할 때 우리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마 17: 7. 일어나라 -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 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말라. 하신대 )
두려워 떨고 있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예수님의 다함이 없는 사랑과 연민의 정을 나타내신 것이다.
그렇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두려워 말라, 무서워 말라,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왜? 하나님이 늘 함께 해 주시기 때문이다.
1]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예수의 끝없는 사랑과 연민의 정을 나타내 보이는 행동이다.
* 사 6: 5-7 –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 단 10: 9-10 – 9 내가 그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의 음성을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느니라. 10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었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
* 계 1: 17 -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따뜻한 손길과 부드러운 음성은 깊은 공포에 휩싸여 있던 제자들의 산란(散亂)한 심령을 넉넉히 회복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그 앞에 엎드러졌다. 주께서 자신을 처음이요 나중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가 본질에 있어서 아버지와 하나이심을 증거로 제시한다.
17-1) 요한의 모습 :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 겸손한 자의 모습
본문은 인간인 사도 요한이 그리스도에 대한 초자연적인 환상을 보고 두려움과 떨림에 압도되었음을 시사해준다. 이는 계시를 받을 때 흔히 일어나는 모습이다.
인간의 연약성과 죄악으로 말미암아 느끼는 두려움으로 일반적인 공포와 전율의 감정과는 다르다(Greijdanus, Lenski, Moffatt).
* 겔 1: 28 -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곧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
* 단 8: 18, 27 - 18 그가 내게 말할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어 깊이 잠들매, 그가 나를 어루만져서 일으켜 세우며, 27 이에 나 다니엘이 지쳐서 여러 날 앓다가 일어나서 왕의 일을 보았느니라. 내가 그 환상으로 말미암아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
* 마 28: 4 -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 행 26: 14 -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7-2) 주님의 축복 :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 마 8: 3 -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이르시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17-3) 위로와 보장 :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1) 위로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 흔히 제자들을 안심시킨 것과 같다. 인자한 모습과 음성으로 요한을 위로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 마 14: 27 - (바다 위를 걸으심)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대,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 마 17: 7 - (변화산에서)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대,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 막 6: 50 - (바다 위를 걸으심)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 출 14: 13 -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 사 41: 10 -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2) 처음이요 나중 : 창조와 재림의 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고 에이미 호 프로토스 카이 호 에스카토스'(*)는 구문상 강조 용법으로 '처음과 나중인 바로 나로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8절에서 하나님에 대한 칭호로 나타난 '알파와 오메가'와 동일한 것이다.
8절에서는 하나님에게 적용되어 있으나 본 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칭호로 나타낸다. 그리스도는 이렇듯 자신의 칭호를 통해 위로하심으로 요한에게 절대적인 확신을 주고 있다(Mounce, Zahn, Ironside).
* 사 41: 4 -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 사 44: 6 -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 계 2: 8 -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대
* 계 22: 13 -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2]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사랑과 신적 권위에 입각한 예수의 이중 명령이다.
예수는 제자들을 향해 공포의 자리를 떨고 일어날 뿐 아니라 두려워하는 마음을 완전히 떨쳐버릴 것을 말씀하셨다.
이중적 명령은 완전한 구원과 완전한 사랑의 표현이자 오직 당신만이 인간이 지닌 심연의 공포를 제거하실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 마 14: 27 -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