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조르바 21-01-27 00:55 * 항상 수작을 내놓으시니 별로 지적할 것은 없지만 소소한 것들 몇 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1. "늘 모자람이 넘쳐흐르던 시절 / 수저통만큼은 꽉 차 넘쳐흘렀다"에서 "넘쳐 흐르다"는 액체에 쓸 수 있는 말이므로 수저통에게는 '꽉 차고 넘쳤다' 정도가 어울릴 것 같다는 말씀. 대구가 낳은 신동집 시인의 <빈 콜라병>에는 "빈 콜라병 속에는 빈 콜라가 가득 차 있다"고 노래했는데 "모자람이 넘쳐흐르던 시절"이라는 표현도 그러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전쟁의 비극도 직설적으로 폐허를 드러내기보다는 순진한 어린아이들의 장난이 이제는 사라진 것으로 묘사하는 것이 오히려 더 리얼하게 느껴진다는 말씀, 영화 <금지된 장난>의 예를 들어주셨습니다.
2. 덜거덕거리다와 덜거덩거리다, 달그락거리다 등을 생각해 보시고 작은 느낌이 드는 것으로 쓰는 게 수저통과 어울릴 것이라는 말씀.
3. "수북한 어둠만이 / 북적거리지 않는 어둠만이 남아/ 빽빽이 꽂혀 살고 있었다" 이 표현도 상당히 고심해서 쓴 시어 같은데요........ 그러나 만든 말처럼 들릴 수 있다고 하시면서 교수님께서는 한 단계 더 높은 주문! 관념화(설명적)되지
이 시는 1967년 동아일보에 발표되었다가 이듬해에 나온 시집 『빈 콜라병』의 표제가 된 작품이다. “생명이 없는 하찮은 콜라병을 시인이 노래하지 않으면 누가 그것들을 노래하랴”는 신동집 시인 자신의 독백처럼 현대 물질문명의 상징인 콜라병에 존재론적 가치를 부여한 작품이다. 넘어진 빈 콜라병에서 존재를 읽어내는 시인의 직관이 날카롭다. 현대 도심의 어느 공간에서나 발견되는 빈 콜라병은 발달된 물질문명의 소산이요 현대 소비문화의 상징이다. 그 콜라병은 콜라가 가득 찬 유익한(쓸모 있는) 병이 아니라 빈 콜라병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생명이 충만한 존재도 아닌 비어 있어 무익한(쓸모없는) 병이지만 존재하는 것임은 틀림없다는 인식이다. 비어 있는 콜라병은 과거의 흔적이 없는 존재의 현재성을 나타내며 빈 자기를 생각할 줄 아는 콜라병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을 철저히 하고 자기 고유의 세계를 지녔다는 말이 될 것이다. 스스로 풀어내는 음악으로 자기를 다스릴 줄 아는 이 놀라운 빈 콜라병을 들판의 생명 있는 들국화 한 송이에 비유함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존재 의미(생명의식)를 생각게 하는 것이다. 이렇듯 물질문명 속에서 인간성의 회복을 휴머니즘적
첫댓글 조르바 21-01-27 00:55
* 항상 수작을 내놓으시니 별로 지적할 것은 없지만 소소한 것들 몇 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1. "늘 모자람이 넘쳐흐르던 시절 / 수저통만큼은 꽉 차 넘쳐흘렀다"에서
"넘쳐 흐르다"는 액체에 쓸 수 있는 말이므로 수저통에게는 '꽉 차고 넘쳤다' 정도가 어울릴 것 같다는 말씀.
대구가 낳은 신동집 시인의 <빈 콜라병>에는 "빈 콜라병 속에는 빈 콜라가 가득 차 있다"고 노래했는데
"모자람이 넘쳐흐르던 시절"이라는 표현도 그러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전쟁의 비극도 직설적으로 폐허를 드러내기보다는 순진한 어린아이들의 장난이 이제는 사라진 것으로 묘사하는 것이 오히려 더 리얼하게 느껴진다는 말씀, 영화 <금지된 장난>의 예를 들어주셨습니다.
2. 덜거덕거리다와 덜거덩거리다, 달그락거리다 등을 생각해 보시고 작은 느낌이 드는 것으로 쓰는 게 수저통과 어울릴 것이라는 말씀.
3. "수북한 어둠만이 / 북적거리지 않는 어둠만이 남아/ 빽빽이 꽂혀 살고 있었다"
이 표현도 상당히 고심해서 쓴 시어 같은데요........ 그러나 만든 말처럼 들릴 수 있다고 하시면서
교수님께서는 한 단계 더 높은 주문!
관념화(설명적)되지
않도록 이러한 기억의 상태를 서술적 묘사로 보여주라고 하십니다.
예컨대 "어둠만 수북하게 남아 / 주방의 불빛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라든지......
이렇게 이미지를 제시하는 상태가 되면 현대사회의 고독이나 적막감을 독자가 더 잘 느끼게 되지 않겠나 하십니다.
참고로 신동집 손생님의
<빈 콜라병> 전문을 올립니다.
빈 콜라병
신동집
빈 콜라병에는 가득히
빈 콜라가 들어 있다.
넘어진 빈 콜라 병에는
가득히 빈 콜라가 들어 있다.
빈 콜라병에는 한 자락
밝은 흰 구름이 비치고
이 병을 마신 사람의
흔적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는다.
넘어진 빈 콜라 병은
빈 自己를 생각고 있듯이.
불고가는 가을 바람이
넘어진 빈 콜라 병을 달래는가.
스스로 풀어내는 음악이
빈 콜라 병을 다스리고 있다.
조르바 21-02-16 11:14
아래 내용은 <신동집 시인의 시세계> 논문 중 부분 발췌한 것입니다.
오래된 논문이 제 파일에 있어서 누가 쓴 건지는 모르지만.....
신동엽 시인의 중기 시로, 특히 유명해진 <빈 콜라병>에 관한 부분의 논평을 소개합니다.
[중략...] 중기 이후의 시들은 점차 일상적 사물의 존재 확인으로 투사되면서 생자와 사자가 동일관념을 형성하는 귀환의식을 보여준다.
빈 콜라병에는 가득히
빈 콜라가 들어 있다
넘어진 빈 콜라병에는
가득히 빈 콜라가 들어 있다
빈 콜라병에는 한 자락
밝은 흰 구름이 비치고
이 병을 마신 사람의
흔적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는다
넘어진 빈 콜라병은
빈 自己를 생각고 있다
그 옆에 피어난 들菊 한 송이
피어난 自己를 생각고 있듯이
불고 가는 가을바람이
넘어진 빈 콜라병을 달래는가
스스로 풀어내는 音樂이
빈 콜라병을 다스리고 있다
― 「빈 콜라병」 전문
이 시는 1967년 동아일보에 발표되었다가 이듬해에 나온 시집 『빈 콜라병』의 표제가 된 작품이다.
“생명이 없는 하찮은 콜라병을 시인이 노래하지 않으면 누가 그것들을 노래하랴”는 신동집 시인 자신의 독백처럼
현대 물질문명의 상징인 콜라병에 존재론적 가치를 부여한 작품이다.
넘어진 빈 콜라병에서 존재를 읽어내는 시인의 직관이 날카롭다.
현대 도심의 어느 공간에서나 발견되는 빈 콜라병은 발달된 물질문명의 소산이요 현대 소비문화의 상징이다.
그 콜라병은 콜라가 가득 찬 유익한(쓸모 있는) 병이 아니라 빈 콜라병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생명이 충만한 존재도 아닌 비어 있어 무익한(쓸모없는) 병이지만 존재하는 것임은 틀림없다는 인식이다.
비어 있는 콜라병은 과거의 흔적이 없는 존재의 현재성을 나타내며
빈 자기를 생각할 줄 아는 콜라병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을 철저히 하고 자기 고유의 세계를 지녔다는 말이 될 것이다.
스스로 풀어내는 음악으로 자기를 다스릴 줄 아는 이 놀라운 빈 콜라병을 들판의 생명 있는 들국화 한 송이에 비유함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존재 의미(생명의식)를 생각게 하는 것이다.
이렇듯 물질문명 속에서 인간성의 회복을 휴머니즘적
차원에서 노래하는 것은 초기시에서 보여준 허무의식이나 생과 사의 순환의식이
중기시에 이르러 인간 존재에의 회귀의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