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66
매미는 울고, 세상은 시끄럽고-신(新) 명선부(鳴蟬賦)
폭염이 도시의 표면을 달구는 한여름, 무거운 일상을 뒤로하고 책 한 권을 쥐어 공원 벤치를 찾는다. 콘크리트 장벽 사이에 유일하게 남은 이 작은 신록의 거처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장마가 걷힌 뒤의 하늘은 한없이 푸르러, 문득 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 선생의 「벽공(碧空)」 한 구절이 떠오른다. “손톱으로 툭 튀기면 / 쨍하고 금이 갈 듯…”
여름의 청공(晴空) 또한 가을 하늘에 비하여 조금도 손색이 없건만, 그 맑은 정적을 깨뜨리는 것은 사람들의 스쳐 지나가는 한마디다. “참 시끄럽네.” “그렇지, 매미 소리도 저렇게 울어대니” 그러고 보니 매미 울음이 꽤 요란하다. 겨우 여름 한철 듣는 매미 울음이건만 불편히 여기는 사람들도 있나 보다. 일찍이 서진(西晉)의 육운(陸雲)은 매미를 주제로 한 「한선부서(寒蟬賦序)」에서 매미가 ‘오덕(五德)’을 갖추었다고 하였다.
머리에 관을 쓴 듯한 형상은 문(文), 맑은 이슬만 마시니 청(淸), 사람의 곡식을 해치지 않으니 염(廉), 집을 짓지 않으니 검(儉), 때를 어기지 않고 우니 신(信)이다. 그렇기에 옛 선비들은 자신들의 관모에 매미 날개를 새겼고, 임금의 익선관(翼蟬冠) 위에도 매미의 형상인 두 뿔을 얹어 매 순간 스스로를 경계하는 지표로 삼았다.
매미는 암흑의 땅속에서 짧게는 몇 해, 길게는 십수 년의 세월을 인내한다. 햇빛 한 줄기,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흙 속에서 오직 때를 기다리며 자신을 성숙시킨다. 그렇게 긴 고독의 끝에 마주한 지상의 시간은 고작 두어 주(週)에 불과하다. 그 찰나의 생을 위해 수컷은 온몸으로 운다. 짝을 찾으려는 간절한 구애의 울음이다. 암컷은 울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짝을 찾지 못하면 종(種)은 사라진다. 그러므로 저 울음은 자기 한 몸을 위한 노래가 아니다. 다음 생명을 부르는 연가(戀歌)요, 생명의 존엄을 잇는 합창(合唱)이다.
그 사랑의 울음이 어찌 시끄러운가. 더욱이 매미는 껍질을 벗어 신선이 되었다하여 우화등선(羽化登仙)이라고도 한다. 시끄러운 것은 신선이 된 매미가 아니라 인간 세상이다. 공원 주변은 회색 시멘트를 층층이 쌓아 올린 아파트 숲이다. 유리창은 하늘을 잘게 잘라 놓았고, 자동차들은 쉬지 않고 쇳소리를 토해 낸다. 언론의 활자는 날마다 분노를 증폭시키고, 정치는 목소리를 높일수록 신뢰의 바닥을 드러내며, 휴대전화는 의미 없는 말들을 실시간으로 배달한다. 그 사이를 뚫고 들려오는 매미의 울음이다.
매미는 결코 천시(天時)를 거슬러 울지 않는다. 자연이 허락한 계절의 이치를 정확히 인지하고,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낮에 노래하며, 황혼이 저물고 계절이 다하면 미련 없이 자취를 감춘다. 진퇴의 때를 알고 물러날 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대자연이 유지되는 엄숙한 질서다. 그러나 인간은 나아갈 때만 알고 물러날 때는 잊으며, 마땅히 침묵해야 할 순간에도 끝없이 권력과 명예를 움켜쥐려 한다.
매미는 집도, 부동산도, 상속도 없다. 그러나 온 숲이 그의 집이다. 사람은 집을 열 채 가져도 한 채가 부족하다 떼를 쓴다. 산을 깎아 아파트를 세우고는 베란다에 화분 하나를 들여놓으며 자연을 샀다고 위안한다. 숲을 없애고 인공 공원을 만들며 생태를 복원했다는 현수막을 내건다. 자연을 쫓아낸 인간이 자연을 기념하는 일처럼 우스운 일이 또 있을까.
경제는 성장이라 외치지만 마음은 오히려 궁핍하다. 문화는 넘쳐나는데 감동은 품절이고, 말은 홍수인데 행복은 가뭄이다. 모두가 자기 목소리를 키우려 애쓰지만, 정작 들어야 할 양심의 목소리는 듣지 못한다. 그래서 세상은 갈수록 시끄러워진다.
법정 스님은 “침묵은 빈자리가 아니라 충만”이라 했다. 매미도 그렇다. 계절이 아니면 한마디도 울지 않는다. 침묵할 줄 알기에 울음이 아름답다. 그러나 인간은 사철을 떠들면서도 정작 말해야 할 때는 침묵한다. 바로 그 침묵이 ‘한선(寒蟬)’이다. 한선은 추운 계절에 울지 못하는 매미로 마땅히 해야 할 말을 잃은 사람을 빗대는 말이다. 때를 놓친 언어는 생명을 잃는다. 침묵을 잃은 언어는 소음이 되고, 사랑을 잃은 언어는 폭력이 된다. 매미가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매미의 사랑가를 듣지 못하는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매미는 허물을 벗어 하늘로 오른다지만, 나는 끝내 속세를 벗지 못한다. 또 다른 매미를 예찬한 글, 송나라 구양수(歐陽脩)는 「명선부(鳴蟬賦)」에서 매미 울음을 ‘자연의 오음(五音)’이라 하였다. 천 년이 지난 오늘, 내 귀에는 자연의 오음보다 인간의 소음이 더 크게 들린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신명선부」를 지어 매미의 울음 앞에 오만과 탐욕의 허물을 조금이나마 벗어 놓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