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사백아흔네 번째
정치를 거꾸로 읽으면 치정이 됩니다
간밤의 억센 비가 정치 현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고려말의 위대한 고승 나옹 선사는 노래합니다. “죽어가고 태어나고 생겼다간 다시 죽는 짓, 미친 듯 어리석어 한결같이 쉬지 못하네. 오로지 낚싯줄의 미끼를 탐낼 뿐이니, 대 끝에 굽은 낚시 있는 줄을 어찌 알리오?” 욕망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합니다. 그 어리석은 욕망으로 인해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는 우리네 모습을 나옹 선사는 그리 표현한 듯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보가 넘쳐납니다. 정보情報란 사물이나 어떤 상황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나 자료지만, 정보의 최종 가치는 정보 자체의 품질보다는 그것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런데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면서 우리의 판단이 흐려져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적과 경쟁자도 구분하지 못해 모두 제거 대상으로 삼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적은 제거해야 합니다. 나를 죽이기 때문입니다. 기차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주된 운송수단은 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기차보다 말이 빨랐습니다. 도적들이 말을 타고 기차를 급습해 금품을 탈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말보다 느리다고 기차를 버렸다면 KTX를 보지 못하게 되었을 겁니다. 기차와 말은 적이 아니라 경쟁자였기에, 서로 버리지 않고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적과 달리 경쟁자는 공존 공영하는 데 그 최종 목표가 있다는 말입니다. 정치라는 말도 거꾸로 읽습니다. 그래서 정치가 치정이 되었습니다. 그 결말이 같다는 말이지요. 치정으로 혼란스러운 정치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즘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은 낚싯바늘에 미늘이 없습니다. 낚되 놓아줍니다. 국민은 그게 옳다는 걸 압니다. 정치란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외려 정치인을 일깨워주고 있지만 듣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