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한 승가
/ 법정스님
며칠 전 남쪽을 행각 하다가
지리산 자락의 한 객사客舍에서 하룻밤 쉬는데,
때마침 부슬부슬 봄비가 내렸다.
밤새 내리는 봄비 소리를 들으면서 메마른 내 속 뜰을 적셨다.
나는 무슨 인연으로 출가 수행자가 되어
이 산중에서 한밤중 비 내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이르자
'출가 수행자'란 말이 대문자로 이마에 박혔다.
벌써 오래전 일인데 그때도 겨울철 안거를 마치고
남쪽을 행각 하다가
한 암자의 선방에서 잠시 쉬어 온 일이 있었다.
그때 그 선방의 인상이 하도 좋아서
지금까지도 내 기억의 바다에는 맑게 간직되어 있다.
두어 평 될까말까한 조그만 방인데,
방안에는 방석 한 장과 가사 장삼,
그리고 시렁 위에 작은 걸망이 하나 올려져 있을 뿐이었다.
햇볕이 은은히 비쳐드는 봉창과
정갈한 장판 바닥의 그 선실을 보고
승가의 살림살이가 어떤 것이라는 걸 절감했었다.
요즘은 어느 절에 가든지 이런 맑은 선방을 보기가 어렵다.
불필요한 것들에게서 벗어난 그 충만을 느낄 수가 없다.
이것저것 너절한 물건들로 넘쳐 있어,
청정은 고사하고 속기가 분분하다.
방을 보면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인품을 바로 들여다볼 수 있다.
마을 집이나 절집이나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지천으로 넘치고 있어,
참으로 귀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청정이 생명인 출가 수행자들에게
넘치는 물량은 편리한 도구가 아니라
커다란 장애요,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이 물질 만능의 세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수행자들에게는 새로운 과제로 부딪친다.
출가 수행자는 무엇보다 먼저 가난해야 한다.
자신의 분수와 가난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가난 속에서 도심道心이 우러난다.
가진 것이 많고 거느린 것이 많으면 출가의 뜻을 잃는다.
옛날의 수행자들은 갈아입을 옷과 바리때(밥그릇) 하나로 족할 뿐,
더 이상 아무것도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거처에 집착하지 않고 음식이나 옷을 탐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마음을 밝히는 일에만 열중하였다.
물론 오늘날처럼 삶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복잡해진 세상에서는 옛날과 같이 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아니 그럴수록 '맑음'을 지키는 일은 더욱 귀하다.
늘 깨어 있는 것이 출가 정신이라면,
물질의 더미에서도 깨어나야 한다.
수행자에게 가난이란 맑음淸淨 그 자체다.
출가 수행자는 세속의 자로 재어 가난할수록 부자다.
모자라고 텅 빈 그 속에서 넉넉한 충만감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맑은 가난으로써 출가 수행자의 모범을 보인
조주선사의 자취는 오늘의 수행자들에게 생생한 교훈이 될 것이다.
<조주록趙州錄>에 이런 기록이 실려 있다.
'스님은 백스무 살이나(778∼897) 살았다.
무종의 폐불 법란(불교 박해)이 있자
산속으로 몸을 피해 나무 열매를 먹고
풀 옷을 걸치면서도 수행자의 몸가짐이나 차림새를 바꾸지 않았다.'
조주는 구족계具足戒(비구계)를 받고 난 다음,
은사 스님이 조주성의 서쪽 한 절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가서 은사 스님을 찾아뵈었다.
조주가 도착하자 은사 스님은 사람을 시켜
조주의 고향 집에 귀댁의 자제가 행각 길에 돌아왔다고 알려 주었다.
고향 집 일가친척들은 이 소식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다음날 함께 찾아가기로 하였다.
조주는 이런 사실을 알고 말했다.
"속세의 티끌과 애정의 그물은 다할 날이 없다.
이미 부모·형제를 하직하고
출가 수행자가 되었는데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그날 밤으로 짐을 꾸려 행각의 길에 나섰다.
그 후 물병과 지팡이를 지니고
여러 곳으로 두루 다니면서 자신에게 다짐했다.
'일곱 살 먹은 어린아이라도
나보다 나은 이는 내가 그에게 물을 것이요,
백살 먹은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한 이는 내가 그를 가르치리라.'
조주는 나이 80이 되어서야 조주성의 동쪽 관음원에 머물렀다.
말하자면 이때 비로소 한 절의 주지가 된 셈이다.
그 절은 예전부터 몹시 가난하여 좌선이라는 선방도 후원도 없었고,
겨우 끼니를 이어갈 정도였다.
좌선할 때 앉는 선상은 다리 하나가 부러져
타다 남은 장작 쪽을 노끈으로 묶어서 썼다.
누가 새로 만들어 드리려고 하면 그때마다 허락하지 않았다.
40년 동안 가난한 그 절의 주지를 살면서도
불사를 빙자한 편지 한 통 시주에게 보내는 일이 없었다.
한번은 그 나라의 왕이 조주의 덕을 사모하여
금실로 화려하게 수놓은 가사를 한 벌 지어 시종을 시켜 조주에게 바쳤다.
선사는 굳이 사양하면서 받지 않으니
함께 있는 사람들이 가사가 든 상자를 조주 앞에 옮겨 놓으면서 말했다.
"왕께서는 큰스님의 불법을 위해
이 가사를 보내온 것이니 입으시기 바랍니다."
조주는 이 말을 단호하게 물리친다.
"노승은 불법을 위하기 때문에 이런 가사는 입지 않습니다."
어느 날 조주는 법좌에 올라 말했다.
"형제들이여, 오래 서 있지 마라.
(예전에는 법문을 들을 때 앉지 않고 서서 들었다)
일이 있거든 말해 볼 것이요.
일이 없거든 각자 자기 자리에 앉아 도리를 참구參究하는 것이 좋다.
노승은 일찍이 행각하면서
죽 먹고 밥 먹는 두 때만 잡된 마음에 팔렸을 뿐
별달리 마음을 쓸 곳이 없었다.
만약 이와 같지 못하다면 출가란 매우 먼 일이 될 것이다."
한 승려가 조주에게 물었다.
"무엇이 한 마디[一句]입니까?"
"그 한 마디만 붙들고 있으면 그대는 늙어빠지고 만다."
조주는 이어서 말했다.
"만약 한평생 총림(수도 도량)을 떠나지 않고
5년이고 10년이고 말을 하지 않아도
그대를 보고 벙어리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부처님도 그대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내 목을 베어라."
조주는 임종의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말했다.
"내가 세상을 뜨고 나면 태워 버리되
사리 같은 걸 주우려고 하지 마라.
선승의 제자는 세속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
더군다나 이 몸뚱이는 헛것인데 무슨 사리를 챙긴단 말인가.
이런 짓은 당치 않다."
이래서, '청정한 승가에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합니다'고 우리는 절을 한다.
-산방한담(山房閑談) 월간 맑고 향기롭게 1996년 04월-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깨치는 것은 고사하고 법정스님처름 살아도 세상은 많이 맑아 지리라 생각을 합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