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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엘리엇의 이입과 김기림의 주지주의
권대근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1. 들어가기
한국의 근대문학을 흔히 수용문학이라고 한다. 시의 경우는 보다 철저한 수용의 문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 땅의 근대시가 보들레르로 대표되는 일련의 악마주의적 탐미주의인 프랑스문학을 그 완주로 하고 있고, T.S. 엘리엇을 주축으로 한 소위 모더니즘을 발신자로 해서 이 땅의 1930년대 시가 형성되었으며, 그 뒤를 이어 릴케로 대표되는 독일적 신비주의적 존재의식을 그 발상 근저로 하여 이 땅의 현대시가 주조되고 또 주도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한국의 신문학은 바로 서구문학을 수용했던 셈이고 그래서 이 땅의 근대문학은 수용의 문학으로 지칭되었다.
한국시사에 있어서 1930년대초 모더니즘 운동은 한국시의 현대적 전개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1920년대 전반기 시의 감상주의에 대한 철저한 반역이자, 시적 구조(명징한 지성)에 대한 새로운 욕구다. 이러한 반역과 욕구가 20년대 전반기 감상만이 아니라 후반기 편내용주의의 시까지 포함한다고 하면, 그에 대한 반명제로 모더니즘의 건설과 그 옹호를 그 무엇보다도 강조한 김기림의 이른바 모더니즘 운동이 당시 시의 순수운동을 표방한 시문학파 운동과 함께 한국시사에 차지하는 의의는 자못 크다.
모더니즘의 한 경향으로서 주지주의를 작품으로 실천한 김기림은 T.S.엘리엇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은 시인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주지주의를 이론면에서 본격적으로 도입한 비평가인 최재서의 <현대주지주의문학이론의 건설>(조선일보, 1934. 5.2)은 흄의 불연속적 세계관과 고전적 인간관과 엘리엇의 전통관과 시의 비개성설을 소개한 것이고, 김기림의 <예술에 있어서의 리얼리티 모럴 문제>(조선일보, 1933. 10.21. ~ 24)도 주지주의와 관련된 논문이다.
2. 주지주의의 개관
주지주의란 한 마디로 문학작품에서 지성을 중요시하는 창작 방법 및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제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는 심각한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기존의 문화와 전통을 부정하는 반역의 고뇌에서 감각과 관능의 세계로 도피하여 탐미주의 또는 주정주의 쪽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지성의 절대적 우위를 강조하고, 유럽 문명의 전통을 재생하며, 정신적 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문학적 태도가 생겨났다.
이러한 측면에서 주지주의는 첫째 지성의 절대적 우위, 둘째 탐미주의 주의주의 및 주정주의의 반대, 셋째 전통적 질서의 회복과 현대문명의 위기극복이라는 세 가지 기본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지성의 절대적 우위란 내용면에서 보면 문학 작품에서의 지적 요소, 시사적 현상, 과학적, 사상적 내용 등을 의미하고, 방법면에서 보면 질서의식에 의거하여 감정이나 본능에 대한 통제나 억제 작용을 의미하는 것이다. 탐미주의나 주의주의 및 주정주의의 반대란 낭만주의나 센티멘탈리즘과 감정적, 감상적 문학을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한편 본능적, 영감적 동기를 문학에서 배제하고 의식적, 비평적 문학이라야 함을 의미한다. 본능은 직관적이고 무의식적이며 자연발생적이나 주지는 의식적 방법을 중시한다. 여기서 낭만적 천재의 개념도 부정된다. 전통의 회복과 현대문명의 위기 극복의 시도는 주지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프랑스의 주지주의는 발레리를 정점으로 하고, 영국의 주지주의는 흄, 엘리엇 등으로 대표된다. 특히 흄의 불연속적 세계관은 새로운 질서회복의 의도에서 직관적으로 추구된 사상이며, 흄의 사상적 기초에서 정립된 엘리엇의 전통과 정통(orthodox)은 황폐화된 현대문명의 구제라는 의식이 그 밑에 깔려 있다. Eliot가 「사상의 감각적 파악」이라든지 `사상을 장미꽃 향기처럼 직접 느낀다`와 같이 말한 대목은 문학 작품에 있어서 사고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상을 대하는 태도가 지적인 경우를 말한다. 다시 말해 작가가 그 자신의 소박한 서정을 넘어, 주체의 지적인 파악과 지적인 표현이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이 주지적 작품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주지주의란 「감정이나 정서를 결코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는 감정에 지성을 방법으로하여 질서를 부여하고자 하는 일반적인 태도」라 할 수 있다.
서구 문학, 특히 영문학에서 이러한 태도가 두드러지게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20년대 초의 일이다. 구체적으로 이 시기에 등장한 흄, 엘리엇, 에즈라 파운드, 라챠드 등은 맹목적인 감상주의를 배격하고, 상대적으로 문학에 있어서 지성의 활동을 강조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은 현대의 위기에 대처하는 개개인의 심리적 안정과 균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지성은 여기에 도달하는 수단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 주지주의라는 용어는 영미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일본식 조어다. 이 개념은 문예 사조상의 뚜렷한 주의라기보다는 다분히 문학에 있어서 지적인 방식을 존중하고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는 20세기 영미문학의 일반적인 경향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사회적 문화적 풍토가 다른 당시 일본이나 한국의 경우 이러한 명칭의 사용은 효과적인 개념 전달을 가능케 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3. T.S. 엘리엇 시의 본질
엘리엇을 이해하는 데는 모더니즘을 20세기 전반의 문학 조류의 하나로 보는 입장과 더불어 또 하나의 입장, 즉 서구문학이 칸트 이래로 추구해 온 하나의 목표, 즉 예술작품은 어떤 것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의 정점에 <황무지>가 서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황무지>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엘리엇의 시다. 이 작품은 1922년 출판되자 곧 <새로운 시>의 보통명사가 되었고, 그 새로운 시에 <모더니즘>이라는 팻말이 붙은 후에는 모더니즘의 대표작으로 평가되어 왔다.
엘리엇 시에서 요구하는 것은 기지와 균형과 아이러니다. 그것은 소위 자연 발생적인 감정과 관련이 적은 것이며 세련된 정신이 문화 속에서 빚는 그 무엇이다. 따라서 전통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전통이야말로 시의 소재가 되고 그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은 그 다음 시인의 전통이 되는 것이다. 전통이 중요한 과제가 될 때, 그 전통의 정통성이 문제된다. 엘리엇은 정통을 희랍, 라틴, 이탈리아, 르레상스, 프랑스, 영국에 이어지는 서유럽 문화의 흐름에서 찾았다. 엘리엇의 비평은 그 <정통>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시에 기여한 업적은 우선 과도한 감정을 배제할 때 시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감동을 주는가 하는 것이었다. 둘째, 흄이나 에즈라 파운드의 견고한 이미지들을 프랑스 상징파들의 유연한 이미지와 결합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셋째, 의식적으로 상(像)과 상의 연결을 위한 언어를 제거하고 그들을 그대로 병치시키는 방법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대표작인 <황무지>는 정신적 메마름, 인간의 일상적 행위에 가치를 주는 믿음의 부재, 생산이 없는 성, 그리고 재생이 거부된 죽음에 대한 시이다. <제 1부 죽은 자의 매장> 황무지에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다. 진정한 재생을 가져오지 않고 공허한 추억으로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제 2부 체스놀이> 등장 인물이 주고받는 생(生)과 성(性)이야말로 생식이 없는 황무지의 생과 성이다. <제 3부 불의 설교> 과거의 고상한 제식 행위를 현대의 사소하고 음탕한 행위와 일치시킴으로써 현대의 성이 지닌 무서운 무의미와 사실적인 현장에 들어간다. <제 4부 수사(水死) 재생에 앞선 희생적 죽음을 암시한다. <제 5부 천둥이 한 말> 서양 문명이 낳은 위대한 도시들이 모두 악몽으로 바뀌는 비전에까지 이르며, 황무지에 성당이 등장하고 천둥은 구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러나 구원은 아직 문제를 안고 있는 상태를 보여 줄 뿐이다.
4. T.S. 엘리엇과 김기림의 상관성
김기림의 시를 이야기 할 때, 평자들은 엘리엇과의 상관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김기림이 재직 중이던 조선일보사의 후원으로 정상장학회의 장학금을 받으며, 도호쿠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는 사실에서 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첫 시집이며 장시인 <기상도>(장문사, 1936)는 엘리엇의 장시 <황무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사상과 감각의 통합을 시도한 주지주의 시라고 할 수 있으며, 현대자본주의 문명을 비판한 것이다. 시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기상도>는 현대 사회의 어지러운 기상을 진단․비판한 자본주의 문명의 내습을 태풍에 비유하고, 그것으로 인한 세계의 붕괴와 그 재생을 주로 다루고 있는 매우 의도적이고 의욕적인 문명비평시다. 그의 시를 인용 예시하면 <기상도>가 엘리엇의 영향에서 출발된 시라는 것이 더욱 극명해질 것이다.
비늘
돋친
해협은
배암의 잔등
처럼 살아났고
아롱진 아라비아의 의상을 두른 젊은, 산맥들
바람은 바닷가에 사라센의 비단폭처럼 미끄러웁고
오만한 풍경은 바로 오전 일곱시의 절정에 가로 누웠다.
이 시는, 김기림의 시<기상도> 1부의 일부이다. `현대의 교향악을 기획했다`고 스스로 표방한 장시 <기상도>는 현실과 유리된 관념의 세계에 대한 스스로의 반성이자, 현실의 적극적 관심에 부응한 구체적 표현으로서, 현대문명의 상황을 비판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스케일이 크고 넓다는 면에서 엘리엇의 <황무지>와 흡사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기상도>는 모두 424행의 장시로서 <세계의 아침> <시민행렬> <태풍의 기침시간> <자취> <병든 풍경> <올빼미의 축문> <쇠바퀴의 노래> 등 7부로 이루어져 있다. 7부로 엮어진 이 시는 7부 각각이 <태풍>이라는 한 핵을 행해 수렴되고 긴밀하게 엮어지면서 유기성을 지닌다. 이런 모습은 우선 형태상으로 T.S. 엘리엇의 <황무지>와 유사성을 갖는다. <황무지> 역시 444행의 장시로서, <죽은 자의 매장> <체스 놀이> <불의 설교> <수사> <천둥이 한 말>등 5부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도 5부 각각이 <황무지>라는 한 핵을 향해 수렴되고 긴밀하게 엮어지면서 유기성을 지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시 <기상도>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는 부분은 3부 <태풍의 기침시간>을 구심점으로 해서 그 여파를 다룬 2부<시민행렬>과 4부 <자취>다.
넥타이를 한 식인종은
니그로의 요리가 칠면조보다 좋답니다.
살갓을 희게 하는 검은 고기의 위력.
의사 “콜베-르”씨의 처방입니다.
“헬매트”를 쓴 피서객들은
난잡한 전쟁경기에 열중했습니다.
슬픈 독창가인 심판의 호각소리.
- 2부 <시민행렬> 중에서 -
“바기오”의 동쪽
북위 15도
푸른 바다의 침상에서
흰 물결의 이불을 차 던지고
내리쏘는 태양의 금빛 화살에 얼굴을 얻어맞아서
남해의 늦자매기 적도의 심술쟁이
태풍의 눈을 떴다.
악어의 싸흠동무.
돌아올 줄 모르는 장거리 선수.
화란 선장의 붉은 수염이 아무래도 싫다는
따곱쟁이
- 3부 <태풍의 기침시간> 중에서 -
“대중화민국의 번영을 위하야___”
슬프게 떨리는 유리컵의 쇳소리
거룩한 “테-불” 보재기 우에
펴놓은 환담의 물구비 속에서
늙은 왕국의 운명은 흔들리운다.
“솔로몬”의 사자처럼
빨간 술을 빠는 자못 점잖은 입술들
새까만 옷깃에서
쌩긋이 웃는 흰 장미
“대중화민국의 분열을 위하야___”
- 4부 <자취> 중에서 -
현대 문명의 기상(위기)을 태풍의 기상 상황에 비유하여 현대문명의 위기로 인한 모순과 비리와 불합리를 비판하고 풍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시의 다양한 기법을 마음껏 실험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풍자와 기법이 전통시 형식보다 서구적 형식에 영향받은 바라는 점이다. 그만큼 <기상도>는 그 형식과 내용이 엘리엇의 <황무지>와 마찬가지로 철저히 문명 비판적이다.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을 죽음과 재생의 패턴으로 구성한 이 시는 이미지의 동시적 병치,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의 방법, 풍자와 아이러니, 의식 흐름의 수법, 사상과 감각의 통합 등 다양한 특성을 보여 준다는 차원에서 엘리엇의<황무지>에 영향받았다 하겠다. <황무지>는 Jessie Weston과 James Frazer의 성배전설을 소재로 하고 불교, 인류학 등을 도입함으로써 현대문명 전반의 불모 상황을 묘사하는 한편, 그 타개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현대사회가 불모지대로 전락하게 된 원인은, <제 5부 천둥이 한 말>에서
we think of the key, each in his prison
thinking of the key, each confirms a prison
각자 자기 감방에서 우리는 그 열쇠를 생각한다.
열쇠를 생각하며 각자 감옥을 확인한다.
라고 묘사되어 있듯이, 각자가 아집이라는 감옥에 갇히어 너와 나의 대화도, 공통의 유대감도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자아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공감하라는 명령을 따를 수 없다고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헤어날 수 있는 길은 사랑을 통한 대화의 회복뿐인데, 그 구원의 가능성은 구체적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아득히 먼 곳의 천둥소리로 암시될 뿐이다. 이 작품은 일종의 문명비판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기상도>의 작중화자도 세계지도를 따라 여행한다. 그리고 신문의 토픽란에 보도됨직한 사건들을 시 속에 등장시켜 풍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독재자는 책상을 따지며 오직
<단연히 단연히>한 개의 부사만
발음하면 그만입니다
라는 구절이다. 그 밖에도 김기림은 외국산의 꽃이름, 국제열차, 항구의 이국풍, 기상도, 세계지도, 외국영사관 등을 등장시켜서, 이 시가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임을 표방한다.
김기림은 엘리엇의 영향을 받아 서구 모더니즘 이론을 이른 시기에 비교적 정확하게 익혀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고 작품화한 시인이다. <기상도>의 `시민행렬`에서 보듯이, 기지, 해학, 풍자, 반어 등의 수법을 통해서 일종의 지성적인 시를 써 보려고 했던 것이다.
5. 맺으면서
T.S. 엘리엇의 이입과정과 그 기점은 최재서가 주지주의를 이론면에서 본격적으로 도입, <현대 주지주의 문학이론의 건설>을 조선일보(1934.5.2)에 소개한 것이고, 작품으로 먼저 실천한 사람은 김기림이다. 그가 엘리엇의 영향으로 <기상도>라는 장시를 발표함으로써, 이땅에 모더니즘의 불을 피웠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김기림은 엘리엇의 영향 하에서 한국에서 주지주의 시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저작권은 권대근에게 있습니다. 인용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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