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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짓지 않는 경건한 삶(24-40)
모든 범죄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적인 마음의 결과입니다. 욥은 철저하게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의인의 길을 걸었음을 증언합니다. 욥의 고백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신실한 성도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24○만일 내가 내 소망을 금에다 두고 순금에게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다면 25만일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음으로 기뻐하였다면 26만일 해가 빛남과 달이 밝게 뜬 것을 보고 27내 마음이 슬며시 유혹되어 내 손에 입맞추었다면 28그것도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니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리라 29내가 언제 나를 미워하는 자의 멸망을 기뻐하고 그가 재난을 당함으로 즐거워하였던가 30실상은 나는 그가 죽기를 구하는 말로 그의 생명을 저주하여 내 입이 범죄하게 하지 아니하였노라 31내 장막 사람들은 주인의 고기에 배부르지 않은 자가 어디 있느뇨 하지 아니하였는가 32실상은 나그네가 거리에서 자지 아니하도록 나는 행인에게 내 문을 열어 주었노라 33내가 언제 다른 사람처럼 내 악행을 숨긴 일이 있거나 나의 죄악을 나의 품에 감추었으며 34내가 언제 큰 무리와 여러 종족의 수모가 두려워서 대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잠잠하였던가 35누구든지 나의 변명을 들어다오 나의 서명이 여기 있으니 전능자가 내게 대답하시기를 바라노라 나를 고발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고소장을 쓰게 하라 36내가 그것을 어깨에 메기도 하고 왕관처럼 머리에 쓰기도 하리라 37내 걸음의 수효를 그에게 알리고 왕족처럼 그를 가까이 하였으리라 38만일 내 밭이 나를 향하여 부르짖고 밭이랑이 함께 울었다면 39만일 내가 값을 내지 않고 그 소출을 먹고 그 소유주가 생명을 잃게 하였다면 40밀 대신에 가시나무가 나고 보리 대신에 독보리가 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고 욥의 말이 그치니라(24-40)
욥은 자기를 미워하는 자가 겪는 불행을 보고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먼저 괴롭히고 상처를 준 것은 상대방의 범죄일지라도, 그에게 미움과 보복의 마음을 품는 것은 나의 또 다른 범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7) 욥이 짓지 않은 죄(9): 재물 신뢰(24-25)
29장부터 시작된 욥의 자신을 위한 마지막 변론은 이제 31장에서 종지부를 찍습니다. 31장에서 욥은 ‘나는 이런 죄를 짓지 않았다. 만일 그런 죄를 지었다면 나에게 저주가 내리길 바란다’는 내용으로 자신의 결백을 거듭거듭 증명합니다. 1-23절에서 욥은 마음과 육체의 정욕을 좇지 않고 순결을 지켰으며, 종이나 약자를 불의하게 대하지 않고 존중하였다는 내용으로 짓지 않은 죄 여덟 가지를 진술하였습니다. 이제 아홉 번째로 그는 재물을 의지하지 않았고 재물이 많다는 이유로 기뻐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귀한 보석을 가졌을 때 든든하게 느끼고 재물이 늘어나는 것에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욥은 표면에 나타난 재물의 증식에 초점을 두지 않고 재물이 늘어나게 한 근원인 하나님께 집중하였습니다. 욥이 안락하고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재능이나 지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임재와 지도 그리고 축복의 결과였음을 확신하였습니다(29:3-6).
(8) 욥이 짓지 않은 죄(10) 일월성신 숭배(26-28)
재물이 욥의 의지가 되지 않았던 것처럼 하늘의 해나 달도 욥의 경배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욥은 오로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매 순간에 그의 임재를 인정하였으므로 일월성신이나 우상을 향한 동경이나 관심이 자신의 마음에 들어오도록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욥에게 있어서 세상을 밝혀주는 눈부신 태양이나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변신해가며 화려한 자태로 밤하늘을 밝히는 달에 현혹되어 그것들을 향하여 손으로 슬쩍 입맞춤을 보내는 행동은 재판에 붙여 판결을 받을 죄악이었습니다. 해와 달에 대해 마음속에 미묘한 동요가 일어나는 것 자체가 하나님에 대한 배신이며 속임수라고 여겼습니다. 이와 같이 마음의 태도와 변화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욥의 신앙 원칙은 예전과 동일합니다(1:5; 31:1).
(9) 욥이 짓지 않은 죄(11): 원수의 재난을 기뻐함(29-30)
욥은 이제 29-32절에 걸쳐 자신의 주변에 있는 원수와 종과 나그네를 언급하며 그들에 대한 자신의 마음과 행동의 태도를 진술합니다. 욥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람들에게 정의와 자비를 베풀어 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지만(29:7-17, 21-25), 그를 미워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욥은 그런 자들이 재앙을 만났다 해서 기뻐하거나 우쭐거리지 않았으며 그들이 죽기를 바라는 저주의 말을 내뱉지도 않았다고 말합니다. 원수에 대한 욥의 태도는 “원수를 갚지 말고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나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부합합니다(마 5:44).
(10) 욥이 짓지 않은 죄(12) 손님 접대 거부(31-32)
욥의 집에서 함께 거주하는 종들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풍성한 고기로 배를 채울 수 있었으며, 지나가는 나그네들은 욥의 호의로 그의 집에서 편안히 묵고 갈 수 있었습니다. 13-23절에서 이미 언급되었듯이 욥은 사회에서 지위가 낮거나 가난하고 약한 자들이라 하더라도 모두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으로 지음받은 창조물임을 기억하여 그들이 받을 권리와 보호를 제공하였습니다. 나그네나 손님을 대접하고 가난한 자를 돌보며 종을 무시하지 않는 행동은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며 그를 경외한다는 표현입니다(레 25:43: 엡 6:9).
(11) 욥이 짓지 않은 죄(13): 죄를 숨김(33-34)
짓지 않은 죄 열세 번째로서 욥은 악행이나 죄를 숨긴 일이 없다고 하며 자신의 정직성을 주장합니다. 그는 앞서 5-6절에서 이미 자신이 거짓말로 남을 속이지 않았음을 하나님께서 직접 테스트해보시라고 할 정도로 자신의 온전함을 주장했습니다. 이제 여기에 덧붙여 욥은 자기가 죄를 지었을 때, 다른 사람처럼 죄를 덮어 감추려 하지 않고 다 드러내었다고 말합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나 죄를 바로 인정하기보다는 죄를 은폐하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려 하였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은 대부분 체면, 자존심, 양심의 불량함으로 인해 또는 남으로부터의 비난이 두려워 죄를 감추려 합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의 체면이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온전함을 지키려는 간절한 열망이 있어 양심도 깨끗했습니다. 그러므로 욥은 죄를 지었을 때 자기 마음에 숨기지 않고 회개하였습니다. 이런 욥의 태도는 비단 자신의 죄과뿐 아니라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일(예. 재산과 자식을 다 잃은 것을 당했을 때에도 바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기도한 예에서 잘 드러납니다(1:20-22). 또한 욥은 많은 무리와 여러 종족으로부터 모멸을 당할까 두려워 집에 숨어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죄에서 벗어나 다시 하나님의 의롭고 거룩한 자가 되기를 소원하므로 자신의 죄가 남에게 밝혀지는 것과 그에 따른 결과를 감수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12) 욥의 결백 호소(35-37)
욥은 자신의 결백을 변호하기 위해 구구절절 자신이 짓지 않은 죄를 나열하다가 이제 “나의 변명을 들어다오”라고 외칩니다. 이 외침에서 욥의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자기를 위로하고자 찾아온 세 친구는 욥을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욥을 정죄하며 그의 변론을 들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도 무슨 까닭인지 욥에게 침묵하고 계십니다. 욥은 우상이나 재물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의 길로 행하고자 했습니다. 의의 삶을 살다가 죄를 짓는 경우에도 속히 회개하여 용서함을 받고 다시 의로운 삶을 이어 나갔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피조물임을 마음에 새기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정의와 사랑을 구현하였습니다. 이처럼 욥은 하나님이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고 실천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결백을 확신하며 자신이 진술한 무죄를 뒷받침하는 변론에 서명을 하고 법정에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침묵하시는 재판장 하나님께 사정하며 자기의 사건을 살피고 판결을 내려주시기를 촉구합니다. 그에게 죄가 있다고 고발하려는 자들이 있다면 고소장을 써오기를 명령합니다. 욥은 그 고소장을 하나님 앞에 가져와 재판을 받으면 자신의 결백이 드러날 것을 확신하므로 그 고소장을 어깨에 메거나 왕관처럼 머리에 쓰겠다고 합니다. 자신의 행동과 생각이 결백하므로 하나님께 다 알려지는 것에 떳떳했으며 왕족처럼 당당히 그 앞에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13) 욥이 짓지 않은 죄(14):땅에 대한 악용(38-40)
짓지 않은 죄의 마지막으로 욥은 땅을 악용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욥은 하나님이 한 가정의 생계를 지탱해주기 위해 땅을 주셨다는 것과 땅에 대한 법을 지켜야 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땅을 마구잡이로 이용하여 환경을 파괴하지 않았고, 남의 땅을 가로채지 않았으며, 다른 이의 땅에서 소출을 얻은 경우 정당한 값을 지불했고, 땅의 소유주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욥은 땅과 관련한 법을 어겼다면 밀과 보리가 나야 할 땅에서 가시나무와 독보리가 나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고 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욥은 하나님이나 사람이나 땅과 관련해서 결백합니다. 이것으로써 스스로의 무죄를 변론하는 욥의 말이 끝났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법도를 따르는 것이 손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잠깐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장기적으로 보면 훨씬 더 안정되고 풍요로운 길입니다. 성도는 모든 것을 경제 논리로만 설명하려 어리석은 자의 길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