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寒山)과 습득(拾得) 그리고 풍간(豊干)
국청사(國淸寺)에는 오관당(五觀堂)이 있는데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사찰의 공양실이다. 국청사 공양실에는 과거 당나라때 한산, 습득, 풍간화상 세분이 도량을 맑히던 곳이다. 옛것이야 지금 흔적이 없지만 세분의 정신은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국청사 공양실에는 판각으로 양피래처(量彼來處)라 씌여있다.
이 음식 어디에서 왔는가? 하고 우리에게 질문한다.
내 자신이 이 음식을 즐거이 받아 막을 자격이 되느냐고 반문한다.
농사를 짓는 농부들과 유통과정의 수고한 많은 분들 또 백미공양을 올리신 불자들의 정성과 노고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計功多少 量彼來處계공다소 량피래처
이 음식 어디에서 왔는가
村己德行 全缺應供촌기덕행 전결응공
내 덕행으로 받기 어렵네
防心離過 貪等爲宗방심리과 탐등위종
마음에 온갖 욕심 다 버리고
正思良藥 爲療形枯정사양약 위료형고
이 몸 치료하는 약으로 삼아
爲成道業 應受此食위성도업 응수차식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 받습니다
한산(寒山)과 습득(拾得)은 당나라 정관연대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풍간(豊干)선사과 함께 국청사(國淸寺)에 살고 있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이들 세 사람을 국청사에 숨어사는 <세 사람의 성자>라는 뜻으로 국청삼은(國淸三隱)이라 하였다. 이들 세 사람을 모두 불보살의 화신이라 하며, 풍간은 아미타불, 한산은 문수보살, 습득은 보현보살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 시대의 사람들은 이들의 기이한 언행에만 관심을 두었지 이들이 불보살의 화신인줄은 아무도 몰랐다. 한산은 국청사 뒤에 있는 한암(寒巖)이라는 굴속에 살았으며, 항상 다 해어진 옷을 입고, 커다란 나막신을 덜덜 끌며, 식사 때가 되면 국청사에 와서 대중들이 먹다 남은 밥찌끼나 나물들을 얻어 먹었다. 가끔씩 절 경내를 거닐기도 하고 하늘을 보고 소리 지르며 큰소리로 손뼉치고 웃기도 하였다.
습득은 풍간스님이 길에서 주워 왔다고 습득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국청사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일을 하였다. 그러다가 남은 밥이나 나물이 있으면, 소쿠리에 모아 두었다가 한산에게 주곤 하였다.
그 시절 여구윤이라는 사람이 그 마을의 자사로 부임해 왔는데, 자사는 지금으로 보면 면장, 군수 정도의 위치이다 그런데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중병에 걸려 어떤 약을 써도 낳지 않고 백약이 무효하여 곧 죽게 되었다. 이를 안 풍간선사가 자사를 찾아가서, 병세를 듣고, 그릇에 깨끗한 물을 받아놓고 주문을 외우니 자사의 병은 씻은 듯이 낳았다.
여구윤 자사가 깊이 감사하고 설법을 청하니 "나보다 문수와 보현이 있으니, 그들에게 청하여 보시오." 하였다. "두 분 보살님은 어디 계시는지요."
"국청사 부엌에서 그릇을 씻고 불을 때는 한산과 습득이 바로 두 분의 문수, 보현입니다." 자사는 예물을 갖고 국청사로 한산과 습득을 찾아가니, 한산과 습득은 화롯불을 쬐며, 앉아 웃고 있었다.
자사가 그들 가까이 가서 절을 올리자, 그들은 무턱대고 꾸짖기만 하였다.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다른 스님들이 깜짝 놀라 "대관께서는 어찌하여 이 미치광이
승에게 절을 하십니까?"하였다. 그러나 그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산은, "풍간이 실없는 소리를 하였군. 풍간이 바로 아미타불인 줄 모르고 우리를 찾아오면 뭘하나." 이 말을 남기고 한산은 뒷산 굴속으로 들어간 다음, 다시 절에 오는 일이 없었다. 습득도 뒤따라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여구윤은 성인을 만나고서도, 더 많은 법문을 들을 수 없었던 것을 못내 아쉬워 하였다. 그리하여 숲 속 나뭇잎이나 바위에 써 놓은 세분의 시를 모으니 모두 삼백 수나 되었다. 그 시 속에 세 분의 고결한 가르침이 잘 담겨 있었다.
일광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