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

어제 저녁에 초승달이 화성과 금성과 더불어 일렬로 나타난다고 해서 베란다에 나서 보았다. 마침 날이 맑아서 건너편 아파트의 한뼘 쯤 머리 위, 어두워진 저녁 하늘에 초승달이 아주 선명하게 떠 있었다. 누가 표현한 그대로 요염하도록 어여쁜 달이었다.
그러나 그 아파트가 심술궂게 솟아서 달 아래로 늘어서 있을 두 행성은 볼 수가 없었다.
모처럼 저녁 하늘에서 초승달을 아파트 베란다에서 관상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마음을 스스로 달랬다.
바람이 서늘도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가람 이병기님의 시조로 된 가곡이 콧노래로 잠시 흥얼거린다. 어제 초승달은 초닷새의 달이다. 비록 베란다에서이지만 가람의 시흥에 그대로 감염이 된다. 시조의 제목과 주제적 내용이 모두 초승달 지며 보이는 ‘별’들에 대한 것이지만(특히 2연에서) 그러나 그 전조적인 분위기를 나타낸 1연으로 하여 이 시조는 초승달이 임자다.
우리 어린 시절 국어 교과서 단원 중에 ‘달님 이야기’가 있었다. 나중에 더 자라서 읽은 안델센 동화집에서 그것의 원 제목이 ‘그림 없는 그림책’으로 거기 달이 하늘에서 떠 다니며 온 세상을 내려다 본 것들 중에서 화제를 삼아 달이 들려주는 형식으로 된 동화이다. 그 때의 그 달은 밤에만 떠 있는 보름달임에 분명하다. 그 달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모두 밤에 본 것들이기 때문이다.
보름달은 저녁에 동쪽에서 떠서 새벽에 서쪽으로 진다.
그러나 초생달은 아침에 해가 돋고 한두 시간 뒤에 뒤따라 돋아서 온종일 해의 뒤를 좇는다. 그러니까 낮동안 그 존재가 사람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저녁에 해가 져야 비로소 곧 뒤따라 서산에 넘어갈 달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초생달은 언제나 저녁 서쪽 하늘 끝에서 볼 수 있게 마련이다.



터키(좌)와 튀니지(우) 국기
재미나는 것은 이슬람교와 이슬람 국가들 중 몇 국가의 국기이다.
이슬람국가의 적십자사의 기는 십자가 대신에 흰 바탕에 붉은 색의 C
자 모양의 달을 그려서 ‘적신월(붉은 초승달;Red Crescent)기’
라고 부르고 있다.
터키와 튀니지 국기는 반대로 붉은 바탕에 흰색의 달이 같은 모양을 하고 별을 나란히 그렸는데 그 달 역시 신월(New Moon)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볼 때 그것들 모두다 초승달이 아니라,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보게 되는 그믐달이다. 왜냐하면 초승달은 영어 알파벳의 C자를 거꾸로 한 모양이고, 그믐달은 말 그대로 눈썹 모양 곧 C자 모양의 달이기 때문이다.

새벽의 그믐달이건 저녁의 초승달이건 금성과 함께 보이는 일은 흔하다. 그래서 터키나 튀니지 국가의 국기와 같은 이미지가 비현실은 아니다. 어제와 같이 화성까지 셋이 나란히 뜨는 경우는 아주 귀한 현상이라 모처럼 볼 기회였건만 높이 솟은 아파트 건물 탓에 보지 못하게 되니 그 아파트가 괜히 밉상으로 보인다.
성경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일이나 명절이나 초승달 축제나 안식일 문제로 아무도 여러분을 심판하지 못하게 하십시오.(골로새서 2:16/새번역)’라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나의 빈약한 서재의 자료나 서투른 인터넷 검색으로는 ‘초승달 축제’는 언제 어떻게 하는 것이며, 무슨 의미가 있는 축제인지 알아볼 수가 없어 참 궁금하다.(201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