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와닷따의 반역 (68)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이 죽림정사를 바쳤지만 부처님은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으셨다.
아무리 안락하고 편안한 정사라고 우기가 끝나면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전법 여행을 떠나셨다.
그러나 데와닷따는 깨끗한 우물과 연못이 있고 빔비사라왕의 후원이 끊이지 않는 죽림정사를 떠니 않았다.
라자가하에서 데와닷따의 명성은 대단했다. 사리뿟따 역시 한때 그를 ‘신통과 위력이 뛰어난 비구’ 라며 라자가하 사람들 앞에서 칭찬하였다. 명석한 두뇌에 유창한 언변, 입 안의 혀처럼 비위를 맞출 줄 아는 사교성 덕분에 데와닷따 주위에는 항상 권력과 재산을 향유하는 이들이 넘쳐났다. 거기에 더해 빔비사라왕과 헤데히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 아자따삿뚜의 스승이 되고, 아자따삿뚜가 태자가 되어 실권을 장악하면서 그의 위세는 더욱 높아졌다. 아자따삿뚜는 스승 데와닷따를 위해 매일같이 오백 대의 수레로 음식을 날랐다. 승가에 보시한 물품은 승가 구성원들에게 고루 분배하는 것이 부처님의 계율이었다. 그러나 데와닷따는 자기를 따르는 이들에게만 공양과 물품을 공급함으로써 새로운 무리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들이 나날이 늘어갔다. 부처님은 그런 데와닷따의 무리와 데와닷따를 부러워하는 비구들을 두고 항상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많은 보시와 드날리는 명성은 수행자에게 타오르는 불과 같다.
불이란 좋은 이익도 가져오지만 조금만 소홀하면 감당하기 힘든 재앙을 불러온다.
비구들이여, 털이 긴 양이 가시넝쿨속으로 들어가면 넝쿨에 뒤엉켜 옴짝달싹 못하고 생명을 잃게 된다.
그와 같이 많은 보시와 드날리는 명성을 탐하는 비구는 들어가는 마을과 도시에서 신자들과 뒤엉켜 비구의법을 잊게 된다.
바나나나무가 많은 열매를 맺으면 말라죽듯, 감당하기 힘든 공양과 명성은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좋은 공덕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꾸짖음도 권력과 명예에 맛들인 데와닷따의 야욕은 잠재울 수 없었다. 어느 날 죽림정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설법하는 자리에서 데와닷따가 일어나 합장하고 당당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이제 연로하셨습니다. 아무쪼록 과보로 얻으신 선정에 들어 마음 편히 쉬십시오. 교단은 제가 잘 통솔하도록 하겠습니다.”
좌중에는 빔비사라왕을 비롯한 대신들과 태자 아자따삿뚜, 그리고 종단의 장로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장로들에게는 깜짝 놀랄 발언이었지만 오랜 시간 라자가하에서 세력을 키워온 데와닷따에게는 어찌 보면 당연한 요구였다.
거듭되는 간청에도 부처님은 침묵을 지키셨다. 탐욕스런 그의 입에서 그 말이 세 번째 흘러나왔을 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데와닷따, 나는 사리뿟따나 마하목갈라나에게조차 교단의 통솔을 맡기지 않고 있다. 너처럼 다른 이가 뱉어버린 가래침을 주워 삼키는 이에게 어찌 교단을 맡길 수 있겠느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당한 데와닷따는 분노를 삼키며 자리를 떠났다. 그를 위해 태자 아자따삿뚜는 가야산에 거대한 정사를 짓고 극진히 공경하였다. 분노로 더욱 날카로워진 그의 야욕은 아자따삿뚜가 아버지 빕비사라왕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르자 드디어 발톱을 드러냈다.
“대왕이여, 당신은 소원을 이루었지만 저는 소원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데와닷따는 아자따삿뚜의 지원을 받아 궁수를 파건해 깃자꾸따에 머물던 부처님을 살해하려 하였다.
하지만 궁수들이 부처님께 감화됨으로써 일은 수포로 돌아갔다. 분노의 불길이 더욱 거세진 데와닷따는 직접 살해할 결심을 하고, 깃자꾸따를 오르내리는 부처님을 산마루에서 기다렸다가 큰 바위를 굴렸다. 바위는 산산조각 났고 , 한 조각에 부처님은 발을 심하게 다쳤다. 다행히 의사 지와까가 다친 발을 칼로 째서 나쁜 피를 뽑아내고 염증이 번진 살을 도려냄으로써 상처는 완치될 수 있었다. 빔비사라왕 때부터 대왕의 주치의와 승가의 주치의를 겸했던 지와까가 물었다.
“부처님 통증이 심하진 않으셨습니까?”
“지와까, 나 여래는 윤회라는 긴긴 여행의 종착점에 도착했느니라, 모든 번뇌와 방해와 핍팍에서 벗어났느니라, 그러나 나 여래도 마음 속의 뜨거운 번뇌는 모두 소멸했지만 몸의 통증만큼은 어쩔 수 없구나.”
데와닷따는 번번이 자신의 계획이 실패하자 상심했다. 스승의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기 위해 아자따삿뚜가 나섰다.
“날라기리에게 술을 잔뜩 먹였다가 내일 아침 고따마가 지나는 길목에 풀어놓아라.”
다음 날 아침, 성문에서 기다리던 그의 병사들이 날라기리를 풀어 놓았다. 날라기리는 전장의 선봉에 서던 사나운 코끼리였다. 힘쎄고 포악한 코끼리 앞에서는 날카로운 칼과 창도 풀잎처럼 흩어졌다. 가사를 입은 비구들의 행렬을 보자 날라기리가 코를 높이 치켜들었다.
사방으로 사람들이 흩어지고, 비구들이 부처님을 에워쌌다.
“부처님, 어서 몸을 피하십시오.”
부처님은 꼼짝도 하지 않으셨다. 시뻘건 눈으로 괴성을 지르며 날라기리가 달려왔다. 땅이 울렸다. 발우를 들고 뒤따르던 아난다가 앞으로 달려나와 팔을 벌렸다.
“아난다, 비켜서라, 누구도 내 앞을 가로막지 말라.”
누구도 부처님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아난다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어린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술 취한 코끼리의 갑작스런 출현에 놀란 한 여인이 아이를 떨어뜨리고 도망친 것이었다. 그 소리가 거슬렸는지 날라기리는 긴 코를 휘두르며 아이에게 달려들었다.
기둥보다 굵은 앞발을 치켜들고 아이를 짓밟아 버릴 태세였다.
“날라기리”
부처님이 큰 소리로 코끼리를 부르며 걸어나갔다.
“어린아이를 덮치라고 너에게 술을 먹이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나를 밟으라고 너에게 술을 먹인 듯하구나. 날라기리, 이리로 오라, 튼튼하고 자랑스러운 너의 다리를 수고롭게 하지 말라.”
코끼리의 태오가 갑자기 변했다. 눈빛이 선해진 날라기리는 천천히 코를 내리고 귀를 흔들며 부처님 앞에 두 무릎을 굻었다. 앞으로 다가간 부처님이 날라기리의 미간을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날라기리,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 자비로운 마음을 길러라.”
이 광경을 지켜보던 백성들은 끼고 있던 반지를 벗어던지며 환호하였다. 그날 부처님께서는 걸식을 하지 않고 정사로 돌아오셨다.
그 후 어느 날 부처님께서 아난다와 함께 라자가하로 들어서던 참이었다. 부처님께서 말없이 발길을 돌렸다. 영문을 모른 채 뒤따르던 아난다가 한참 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왜 갑자기 발길을 돌리셨습니까?”
“우리가 가려는 길목에 데와닷따가 있더구나, 그래서 피한 것이다.”
“세존이시여, 데와닷따가 두려우십니까?”
“아난다, 데와닷따가 두려운 것이 아니란다. 악한 사람을 상대하지 않기 위해서란다. 아난다, 어리석은 사람과는 만나지 말라, 어리석은 사람과는 일을 상의하지 말라, 어리석은 사람과는 말로써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라, 어리석은 사람은 하는 짓마다 법답지 못하단다.”
--이어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