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꽃밭_Bad a Flower Garden
임은희展 / LIMEUNHEE / 林恩嬉 / painting
2009_0304 ▶ 2009_0309
임은희_나쁜꽃밭_장지에 혼합재료_72.7×90.9cm_200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임은희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9_030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동아미술관_DONGA GALLERY
대구 중구 덕산동 53-3번지 동아쇼핑 10층
Tel. +82.53.251.3502
마티스 & 나쁜 꽃밭 ● 봄. / 베란다에 꽃밭 하나 가꾸고 싶은 계절. / 그녀의 그림은 온통 봄이다. / 그녀는 봄의 화가다. // ● 그녀의 그림을 처음 보는 순간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붉은 조화/식탁」(1908년) 이란 작품이 떠올랐다. 온통 붉은 빛깔의 집안에 장식적인 형태의 과일과 화분들이 한 여인을 둘러싸고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그림. 식탁 위에 놓인 과일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표정이나 화초들 모두 그 강렬한 빨강에겐 너무나 어울리지 않게 생기 잃은 모습이어서 더욱더 안타까운. 이것만이었다면 그녀의 그림을 떠올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 왼쪽 상단에 배치된 창밖 풍경은 더욱더 ‘나쁜 꽃밭’을 연상시킨다. 창밖으로 펼쳐진 녹색의 풀밭. 이름 모를 방초들과 하얀 나무들로 어우러진 꽃밭은 한눈에 보아도 이 그림의 계절적 배경이 봄임을 알 수 있다.
임은희_나쁜꽃밭_장지에 혼합재료_117×80.5cm_2009
마티스는 봄과 여름의 화가였지만 그의 내면은 언제나 가을이자 겨울이었다고 한다. ● 집으로 돌아와 마티스의 화집을 펼쳐 본다. 그리고 좀 전 그녀의 그림들을 다시 떠올려 본다. 동양화를 전공한 그녀의 그림은 분명 전통적인 구성과 표현방법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다. 새와 어울려 하늘을 나는 소녀, 지붕이 꽃밭이 되기도 하고, 때론 창문이, 새가, 나비가 꽃밭이 되기도 한다. 소녀의 신체를 이루는 눈과 입술, 코와 머리카락 역시 꽃밭이다. 이처럼 그녀는 자신만의 꽃밭을 화면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화면을 이루는 대상은 지극히 구상적이지만 그 대상을 장식하는 방법은 다분히 추상적이다. 이러한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그녀의 형식적인 ‘나쁜 꽃밭’이 탄생한다. 그럼, 이 순수한 색채, 단순한 선과 형태 같은 가시적이고 형식적인 요소들의 이면에는 어떤 것들이 숨어 있을까.
임은희_나쁜꽃밭_장지에 혼합재료_72.7×90.9cm_2009
임은희_나쁜꽃밭_장지에 혼합재료_60.6×72.7cm_2008
사막은 ‘나쁘다(Bad).’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런 관계도 맺지 못하며, 오로지 타인으로 존재해야 하는, 그런 외롭고 쓸쓸한 삶이 담긴 무미건조한 공간. 살아있으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그런 타인들로 가득한 이 지옥 같은 공간은 그녀에겐 ‘나쁜 사막’이다. 사막은 필연적으로 물을 향하고 있다. 그녀의 미학적 관심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막 아래에 숨어있는 ‘거대한 수맥 찾기’라고나 할까. 연약한 암반을 따라 흐르다 결국 지표면을 뚫고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거대한 수맥처럼 그녀는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이 비극적인 모래 언덕위에 열정적으로 폭발시킨다. 차츰 사막에 생명의 기운이 움터난다. 보리밭처럼 푸르디푸른 꽃밭이 펼쳐지고, 그 위를 목마와 종이비행기와 소녀가 노닌다. 하늘 위를 나는 새들 역시 칸타빌레 선율에 맞춰 춤을 춘다. 방초가 나부낀다. 꽃밭 위를 탈출한 방초들이 소녀의 손짓에 따라 마치 음표처럼 유유히 바람에 나부낀다.
임은희_나쁜꽃밭_장지에 혼합재료_46×38cm_2009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르는 소녀의 긴 머리카락 역시 붉디붉은 꽃밭이다. 이처럼 그녀가 창조해낸 꽃밭 속에선 청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가 묘한 조화를 이루며 동화(童話)적으로 공존한다. 살아있는 땅에선 모든 존재들이 즐거워야 한다. 표정은 풍부해지고, 색채는 더욱더 화사해진다. 차츰, ‘나쁜 사막’은 그녀의 붓끝에서 ‘생명의 꽃밭’으로 승화된다. 이전, 사막 속에 존재했던 ‘나쁜’의 이미지들은 그녀의 화사하고도 부드러운 원색의 배경 속에 완전히 흡수되어 버린다. (마티스는 ‘색은 단순할수록 내면의 감성에 더 강렬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임은희_나쁜꽃밭_장지에 혼합재료_54×46cm_2009
임은희_나쁜꽃밭_장지에 혼합재료_54×46cm_2009
꽃밭을 장식하고 있는, 전통을 무시한 구성과 배치는 무시하여도 좋다. 그녀는 오로지 색 하나만 승부를 걸려는 듯 꽃밭을 둘러싼 모든 사물들에게 강렬한 색채를 부여한다. 그러나 그 생명의 기운은 마티스처럼 ‘고통스럽지도’, ‘추하지도’, ‘거칠지도’ 않다. 여자이어서 그런 것일까. ‘나쁜’ 모든 것들을 자신의 내면에 감싸 안은 모성애. ‘나쁜’ 것들을 오롯이 극복하고, 원초적인 감각만으로써의 ‘꽃밭’, 그런 ‘생명의 꽃밭’으로 향하려는 의지. 밀실, 그녀의 음밀한, 사적인 광장은 그래서 더욱더 순수하고 마술적으로 우리의 시선을 유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