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정신(學問精神)
금년 가돈(家豚) 하나가 서울대학 의예과에 입학하였다. 입학 후 근 한달 동안 고등학교와 대학의 여러 축하 회합이 있었던 모양인데, 후에 알고 보니 이런 회합에 술이 안 나온 데가 없었고, 더욱이 교수와 교사와 선배라는 분들이 아직 배꼽에 피도 안 마른 학생들에게 이를 진창 먹이고는 할 수 없이 다 자동차에 태워 집으로 보냈다는 것이었다. 내 입장에서 본다면, 선배 자신들이 소학, 중학, 고등학교 12년간의 교육 효과를 하룻밤에 부숴 버린 것이 아닌가 하여 한없이 애석하기도 하고 또 분하기도 했다. 또 얼마나 철없는 짓들인가 했다.
우리 속담에 석수장이가 눈깜작이부터 배운다고 했다. 독일 속담에도 비스마르크를 사숙하는 자가 담배부터 흉내내고, 괴테를 흠모하는 자가 연애부터 배우고, 루터를 존경하는 목사가 그의 구두 문수만 따른다고 했다. 그래, 대학생은, 학자는 술부터 배워야 한다는 말인가? 사실 술 정도가 아닌 모양이다. 요새 세간에는 대학생의 성병 감염율이 상당히 높다는 이야기까지 나돌고 있다. 실로 언어도단이다.
도대체 학문 정신이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겸손이다. 신에 대한 진리에 대한 두려움이다. 진리란 무엇이냐? 자연과학 인문과학 할 것 없이, 학문이란 내외로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의 발견이다. 그리고 우주와 인생 전체가 단순한 우연의 소산이 아니고 신(神)의 창조의 소산이라면, 내외로 학문 연구에 진실과 겸손과 경건이, 또한 중대한 요소가 될 것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이 점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현대 과학만 해도 2천 년 동안 주로 일신교(一神敎)의 영향 밑에서 추진된 것이 부정될 수 없는 사실이다.
즉 유대교와 기독교와 그리고 마호메트교에 의해. 이 중에서도 유대인의 공헌이 가장 컸다고 하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이를 증명하는 일례로 오늘날 유대인이 노벨상을 휩쓸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또 ‘브리태니커’ 대영백과사전과 ‘엔사이클로피디어 쥬다이카’ 즉 유대백과사전의 부피가 서로 맞먹고 있다.
2차대전 중 독일인의 유대인 박해에도, 유대인의 이 지적 우월에 대한 게르만 민족의 국수적인 시기와 질투의 감정이 곁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근대 과학사의 결론이 오늘날까지 이 면의 영국인의 공헌이 크다는 것과, 이 때에 또 특히 비국교적(非國敎的)인 자유 독립 신앙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하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하늘의 별과 내심의 도덕률에 한없는 두려움을 느꼈던 칸트에 의해 비로소 인간의 이성과 도덕의 진리성이 분명하게 된 것을 생각한다. 뉴튼·마이클 패러데이·아인슈타인 등 모두 한없이 겸손한 인물들이었다. 특히 패러데이는 세계적인 대학자로서, 주일에 꼭 교회당에 나갔지만 죽는 날까지 언제나 얼굴을 못 들고 제일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백열전구를 비롯해 2천여 종의 발명으로 20세기 문명의 대은인이 된 토머스 알버트 에디슨은 자신의 그 생애의 위대한 힘의 출처는 예수에 의한 사후의 부활신앙이라고 했다.
물론 종교적인 진실이나 진리에의 외경(畏敬)이 없어도 학문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를 점정(點睛)이 못 된 화룡격(畫龍格)이 아니겠는가 생각하고, 요새 우리 사회의 젊은 학생들에 대한 위 불미한 처사로 우리 학문의 장래에 대해 일말의 불안을, 아니 깊은 우려를 금치 못하는 바이다.
(1969년 3월 제1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