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품은 산
그립고 보고픈 연인(戀人)이 있듯이 자신이 좋아하고 자주 찾고 싶은 산을 하나쯤은 마음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대모산이 항상 내가 가고 싶고 마음에 품고 싶은 산으로 강남 8학군의 본산(本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들 딸 두녀석이 강남구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까지 입학을 한 곳이다. " 아니, 집이 왜 안팔립니까 , 좀 싸게 내놓으면 팔리지요, 얘는 반드시 강남구 8학군으로 가야됩니다 " 집이 팔리지 않아 갈 수가 없다는 아내에게 재차 불러서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한 말이다. 아들과 딸이 사립초등학교에 재학중으로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후반기로 생각된다. 강동구 길동에 살며 약국도 강동구에서 경영을 하고 있을 때이다. 8학군인지 뭔지 전혀 생각지도 않은 부모로서는 당혹스럽기만 한 것이다. 미국으로 이민도 접고 전세집을 벗어나 겨우 개인주택을 마련한지 얼마되지 않은 떄이다. 80년대 중반으로 그 당시에는 강남의 부동산 투기도 그리 심하게 시작되지 않은 시기이다. 나로서는 아파트보다 마당이 있는 개인주택을 더 선호하던 시절이기도 하다. 아파트는 왠지 답답할 것만 같은 생각으로 관심 밖이었으니 말이다. 간곡한 담임선생님의 요청을 계속 거절하기도 당장 집을 팔고 새로 구입하기에는 시간상으로도 촉박하다. 8학군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을 시키려면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강남구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에게 부탁하는 방법이 우선이다. 한 마디로 위장전입을 생각할 수 밖에 방법이 없지 않은가. 흔괘히 친구의 요구를 받아준 그 친구가 지금도 고맙기만 하다. 책상을 비롯하여 그럴듯하게 꾸며서 내 아들방 하나를 따로 마련해준 것이다. 더 적극적으로 그의 아내가 도와준 것이다. 몇달 동안은 강동구에서 논현동의 중학교까지 승용차로 통학을 시키기도 했다. 친구의 아들과 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동창이 되는 인연도 있다. " 엄마 ! 나 다음에 또 선생님이 집의 약도를 그리라고 하면 다 부를거야 " 입학초기에 학생들에게 집약도를 몇번씩이나 그리라는 선생님의 재촉에 아들이 퉁명스레 뱉은 말이다. 아마도 중학교 1학년 순진한 마음에 엄마에게 불평을 표출한 것이 아닌가. " 너 그러기만 해봐, 가만 안둘거야, 알았어,절대로 그러면 안된다, 알았지," 엄마의 간절하면서도 협박조의 으름장이 통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몇달 뒤에야 집을 처분하고 지금의 강남구 청담역 바로 앞에 현대아파트로 이사를 한다. 급한대로 그것도 전세로 한 것이다. 차후에 경기고등학교 후문쪽 삼성동에 빌라를 구입하여 그곳에서 10여년 이상을 살았다. 새벽이면 승용차를 운전하여 대모산입구에 주차를 하고 대모산을 향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그 당시에는 주위가 지금처럼 아파트 단지가 생긴다는 생각도 하지를 못했다. 입구 공동묘지 근처에는 소주와 막걸리등을 파는 포장마차들이 즐비하게 있었지만 한번도 들러보지는 않았다. 대모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서울 하늘은 그 때에도 뿌연 매연이 덮힌 모습이었다. 새벽에 집을 나서면 늦은 가을 도로변에서 청소부 아저씨가 낙엽을 태우는 그 냄새가 아직도 그립기만 하다. 그 아저씨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요즘에는 그런 모습이 볼 수도 없으니 말이다. 경기고와 숙명여고가 아들 딸이 졸업을 하고 대학을 다닐 떄 강남을 떠난 것이다. 광진구 강변역 바로 옆 아파트에서 20여년이라는 세월이 흐른다. 자식들이 각자의 가정을 이루고 손주들이 태여나고 모두 8학군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부모인 우리도 자식들과 손주들이 사는 8학군 강남구로 2년전에 옮길 수 밖에 없다. 예전에 살던 경기고등학교 지금의 청담역 근처 아파트로 자리를 잡았다. 자식들이 청소년기를 보내며 학교를 다닌 곳이 항상 그립고 정이 들을 수 밖에 없던 곳으로 온 것이다. 언제나 가고픈 고향은 38 이북이지만 제2의 고향이라 할 수도 있겠다. 아내도 같은 생각으로 왠지 마음을 뺏긴 곳이다. 매일 아침 새벽이면 청담공원을 걷는다. 생활의 일부분으로 습관화된 것이다. 나도 예전에 수시로 오르내리던 대모산을 오늘도 오른 것이다. 달라진 것은 지금은 승용차가 아닌 지하철의 덕을 보고 있다. 노객(老客)에겐 그것도 무일푼 공짜이니 세월은 역시 좋아진 것인가. 한켠으로는 후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자리하고 있지만 말이다. 대모산(大母山)(293m)은 구룡산(九龍山)(306m)과 함께 동서 방향으로 산세가 발달하여 강남구와 서초구의 경계를 이룬다. 모양이 늙은 할미와 같다고 하여 ‘할미산’ 또는 ‘대고산(大姑山)’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대모산 봉우리와 구룡산 봉우리가 마치 여성의 앞가슴 모양과 같다고 하여 대모산(大母山)이라는 설이 있다. 이곳으로 이사온 첫 산행에 장모님의 영정사진을 정상 아래 집채만큼 커다란 바위밑에 묻어놓기도 했다. 오를 때 마다 생수 한 모금을 올리고 인사를 드리기도 한다. 유해는 처남이 미국으로 모시고 가서 그곳에 안장을 했으니 나만의 장모님에 대한 아쉬움이리라. 이와 같이 후손들을 위한 부모의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항상 마음에 간직하고 그립고 보고픈 산이다. 강남구 주민들에게는 마음과 몸에 건강과 꿈을 주고 있는 8학군의 본산(本山)이 아닐까.
2020년 1월 26일 무 무 최 정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