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랑국[樂浪國].
1.한무제 유철[bc140~86/세종]때 유철의 침공으로
산서성 진성시 낙랑군 실크로드 물류도착지 하서시랑에서 발해만 천진시 주변 대릉하로 이주하여
최숭 낙랑국 건설.
기원전후 최리 낙랑국으로 이어짐.
2.고구려 고국원왕때
북발해만 요녕성 조양시로 밀려났다가 다시 심양시 낙랑국으로 밀려남.
한반도 평양시로 일부가 이주하기 시작함.
3.고구려 광개토 때 한반도 평양시 낙랑국으로 완전 밀려남.
4.고구려 장수왕 때 평양시 낙랑국이 해주 낙랑국으로 밀려남.
유유가 승리하여 동진을 멸망시키고 남송[유송]을 건국하자,
동진 멸망 황가 사마예 후예 일행과 강서성 예장지방 환온의 아들 환현 가문,
비수대전 승리의 주역 안휘동남~강소성 서북 사수, 강회[회수]지방의 양하사씨(사탁씨,사택씨,
사씨,사타씨,사현가문 일행이 동진을 탈출하여 요녕성 조양시>심양시[선양시]
옛 낙랑국 잔류인을 누르고 후동진을 건국.
여기에서 사마씨 황제가문의 동수가 태어남.
발해만을 장악한 고국원왕의 침공으로 밀려나기 시작하여 해주로 들어와
후동진왕 동수가 해주 낙랑국인을 누르고 낙랑인이 더 많아지자, 국호를 낙랑국으로 다시 고침.
요녕성 조양시 고분을 복제하여 해주 안악 3호분으로 그대로 옮겨와 쌍둥이 고분이 발견되어 증명됨.
[쌍둥이 고분을 복제하여 새로 조성했다는 것은 고구려의 침공을 받아 피신해와서
다시 조성한 것을 뜻하는 것임.
고국원왕은 발해만 천진시(텐진시)에서 해로로 해주 안악이북 낙랑국만을 장악함.
고국원왕은 요녕성 조양시, 심양시(선양시), 한반도 평양시일대는 장악하지 못하고 있었음]
5.낙랑 후동진 고구려에 밀려 근초고왕, 근구수왕 이후부터 한강 이남으로 남하 시작.
6.백제 사마씨,사씨로 분화.
7.익산 금마 연립마한 [하한]의 금성으로 사택씨, 사탁씨, 금성라씨로 분화.
금성라씨는 신라 진지왕에게 포로로 끌려감.
8.낙랑국인의 분화.[낙랑>아잔>아영>알영>낭인]
아잔으로 분화[남원 운봉 아영산성] 남원 모산성[알영산성]
신라 알영 신화로 분화.[박혁거세 부인이 아영종족]
왜로 넘어가 낭인 [왜인]으로 분화.
9.남마한 침미다례국 여수 사천 사탁씨[사탁부/사량부]로 분화.-진흥왕 팽창기 때 신라 영토로 귀속.
환온/환현가문 나주라씨, 예장라씨 [낙랑 후동진]등으로 분화.[침미다례국= 나주~사천]
사탁부의 진평계 신라 금성으로 들어가 진평왕에 오르고 하한을 침략한 진지왕[김춘추의 조부]을
3년만에 폐위시키고 딸이 선화공주였기 때문에 하한을 백제 위덕왕>무왕에게 돌려줌.
백제 무왕 익산 왕궁리 하한(기준조선과 익산 마한인의 연립정권)으로 천도하려고 미륵사와 왕궁을 건설함.
개성 한성백제[백잔계]도 동성왕이 웅진 공주백제 [이잔계]로 천도해가자 한수유역으로 밀려남.
개성 한성백제인 고구려에 밀려 웅진 공주백제 이남으로 남하 시작.
웅진 공주백제는 동성왕때부터 구태계(이잔계)가 장악하여 개성에서 공주로 천도해가서
개성, 한수유역의 온조계 한성백제인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한성백제인이 뒤늦게 고구려에 밀려
공주강 이남으로 남하하는 것임.
익산, 김제, 부안, 정읍, 고창지방과 동으로는 완주군 지방으로까지 남하.
[그래서 완주군 지방까지 온조계 개성/한수 유역 한성백제인 [백잔계]의 고분양식이 발견되는 것임.
호남 동부의 우르가야가 백제와 동맹관계라 웅치[진안군~완주군 경계선], 완주 운주면 이치에서
더이상 북상하지 못한 것임.- 왜로 이주하는 실크로드 교통로.
전나국 [마한연맹체 중심국가/전주]을 중심으로 기준조선의 후예 하한[익산 금마 연립마한],
우르가야>대가야, 백제, 안승의 후고구려(보덕국) 등이 마한 원주민 소도구역을 중심으로
빙둘러 싸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음.
웅진 공주 구태백제는 이잔계로 멸망후 대거 왜로 이주한다.
위덕왕, 무왕, 의자왕으로 이어지는 위구태 백제는 대륙에서 넘어오는 대륙계 위구태 백제로
왕가, 귀족, 전사 엘리트층은 하남성 정주시 옛 한성백제로 끌려가고 반도에 남은 백제인들은
멸망후 역시 왜로 대거 이주한다.
이잔계 성왕의 제2왕후가 일찌기 왜로 건너가 나라백제에서 아스카문화 시대를 개막시킨다.
성왕의 제2왕후였던 제명여왕, 황극천황(사이메이)은 천황을 두번씩이나 역임하며 백제 멸망기 때
부여풍이 고구려 국경 해주를 등지고 부흥운동을 전개하게 되는데 무왕(의자왕)의 제1왕후가문의
아들이었던 중대형 황자가 황권을 차지하기 위해 신라계와 결탁하여 후쿠오카(복강) 군선제작소 조창궁에서
사이메이(제명여왕/황극천황)를 가둬 불태워 죽이고 군선을 1년후에 보내 663년 백강전투에서
백제 부흥군이 패전하고 만다.
부여풍은 패전후 왜로 돌아가 신라계를 도륙시키는 유신정변(672 임신의란)을 단행하여 보복하는데
자기 황후는 신라계로 맞이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부여풍 사후 백제계가 보복을 당한다.
현재 공주강 이북은 인구가 적고 이남에는 온조계 한성백제인인 대전지방부터 인구가 많은 이유임].
그리고 현재의 경기지방은 양나라/진패선의 진나라 망인(하남성 개봉시>하북성 안양시,
강소성 양주시, 남경시)이 들어와서 정착하는 것임.
천안 이북 안성, 안양, 안산, 수원, 양주, 양평 등 "안과 양으로 시작되는 지명이 모두 양나라 망인들이
반도로 들어와서 정착하여 세운 지명임.
고구려는 양나라(수도: 강소성 남경시/난징시/건강/견강)가 중원 북조 산서성 양천시, 하남성 개봉시,
하북성 안양시에서부터 실크로드 물류 최종 소비처였기 때문에 실크로드 문물을
지속적으로 팔아먹기 위해 가장 유화적으로 대함.
[감숙성, 청해성을 장악한 전진의 부견이 비단길, 초원의 길을 장악하고 중원 실크로드 물류를
통제하기 위하여 불교전파를 명분삼아 남북조 천하통일 전쟁을 일으켜 북조에 이어
남조의 동진을 침공하자, 안휘성 수현(수춘)에서 동진의 사현, 사안형제가 이끄는 8만 기마대군과
비수대전[수현 주변 서화가 기자조선 탄생지- 실크로드 소비 최종 종착지]에서 동진군이
비수를 건너 8만 기마군으로 선제 공격하여 전진의 부견군 90만 대군이 패전하고 마는데
이때 실크로드 주요 소비민족인 중원인과 왕가들이 한반도와 일본 열도로 이주해간다.
5호16국[20국]으로 분열하여 군웅할거 시대가 개막한다.
이후 산서성 대동시 평성의 멸망한 대나라에서 탁발규가 북위를 건국하고 하남성 낙양으로 남하하여
변발풍속을 없애고 성을 원소씨, 원씨 등으로 바꾸는 등 중원화가 가속화되어 가자
중원화를 거부하던 대동시 평성의 원북위와 대립하며 분열한다.
[중원화란 대량>양나라화(경기인의 선조), 서진, 동진화(호남 익산, 나주, 여수, 사천, 신라 진평계,
일본 사마씨 황제가문), 백제화(개성, 인천/위례, 한성, 충청, 전북, 전남 북부)를 의미]
동위 고환[고태/구태]의 아들 고양이 하남성 정주시 한성백제를 점령하고,
이어서 양나라 수도 하남성 개봉시[카이펑]를 점령하며 북제를 건국하자,
하북성 서남단 안양시로 파천하고 황하강을 건너지 못한 양나라인들이 강소성 양주시로 피난갔다가
경기지방으로 들어오는 양나라 세력이 남양세력이고, 양황제 일행은 하북성 안양시에서
진패선에게 양위하고 경기 안양시로 들어간다.
[남양세력의 주 정착지는 수원[남양군]이며 한때 양주, 양평지역을 관할함]
북위 출신 진패선이 동진 [강소성 건강(남경/난징)] 혼란기 때 강소성 양주시로 피해
한반도 경기지방으로 피신하지 않고 남아있던 양나라인을 이끌고
하북성 안양시로 들어가 양황제에게 양위받은 후 진[陳]나라를 건국한다.
고구려가 백제의 남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대신라 무역을 통제하려고 침공하였다가
서로 지친틈을 이용하여 신라 진흥왕이 남한강 상류의 충주 국원성에 이어
북한산주 [광주/북한산성(현 남한산성), 여주/술천성, 이천/부발성]의 남한강 하류를 장악한다.
[이것이 신라의 한강하류 확보 사건임]
백제가 반격하여 북한산주 [광주 남한산성]를 회복하자, 진흥왕은 이천 부발성으로
북한산주의 주현을 옮기고 남천주라고 명명한다.
[이 당시에는 왜까지 연결하는 실크로드 교통로가 여주, 광주, 이천 북한산주인 남한강을 거쳐
충주, 조령을 통해 낙동강 연안을 타고 넘어갔던 시기였으며, 개성/한수유역의 한성백제인들이
공주강 이남으로 남하한 이후, 후기에는 우르가야, 대가야지방인 이치, 웅치, 슬치를 통하여
섬진강을 이용하여 실크로드 교통로를 왜까지 연결한다]
진지왕이 남한강 하류인 양평 당남리를 점령하고 나서 하북성 안양시 진패선의 진나라로
사신을 보내 동맹을 맺고, 양나라 망인들을 이용하여 백제를 남북으로 포위하고 한강하류로 나가는
대당무역로 [당항]를 확보하려 하였다.
[양나라 망인지역을 점령했기 때문에 진패선의 진나라(하북성 안양시)에 사신을 보내는 것임].
대륙에서 넘어온 위덕왕 [위구태 백제]이 왕위에 오르자,
하한에서 조공과 세금을 요구하였다가 위덕왕으로부터 침공을 받고 하한은 백제에 복수할 요량으로
마한 부흥을 위해 신라에 조공과 세금을 요구하였다가 진지왕이 하한[익산 금마 연립마한/수도 금성]을
점령하고 돌아가자, 여수, 사천의 사탁부출신 진평 [선화공주 부친]에게 3년만에 폐위당하고
하한을 백제 위덕왕>서동태자(무왕)에게 돌려주게 된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실크로드 물류가 도착하는 산서성 진성시,고평시 진평2군 하서시랑에서 각축전을 벌이며
서로 차지하려다가 실패하면 실크로드 중간길목을 차지하고 물류를 선점하여 자국이 먼저
가장 큰 수혜를 받으려다가 북흉노, 단선비, 전진, 고구려(고선비), 북위(동위>북제, 서위>북주)>수, 당 등
강국에 밀려 한반도>왜로 밀려나 이주하게 되는 것임.
신라 진평왕 이름이 왜 진평/백정이라고 지었는지 이름에서도 실크로드 물류의 중요성이
얼마나 크게 차지하고 있었는 지를 확인할 수가 있으며, 승자민족은 패자민족의 민족이동에 따라
비단길, 초원의 길 무역의 물류를 선점하여 주소비민족인 패자민족을 따라다니며 강매하거나
팔아먹기 위해 한반도로 진출하여 왜까지 연결하고 영향력 하에 놓으려 하였던 것임.
[고구려가 실크로드 물류를 장악하고 독점적으로 팔아먹기 위해 낙랑, 가야, 백제, 양나라, 오월을 따라
진출해오면서 한반도와 왜로 밀려나는 것임]
그런 와중에서도 실크로드 중간 길목을 차지하여 대량 이주해가는 왜로의 무역 교통로를 확보하고
문명의 단절이 끊어지지 않도록 교통로를 장악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사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음.
[발해국 역시 2대 무왕(대무예)때 산동성 등주시를 공격하여 세력권에 넣고 황하강 하류
발해만(보하이만)을 장악하고, 대신라 무역을 통제하여 대당 무역로를 독점하는 것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아신왕시기의 관미성은 산동성 등주시 발해만(보하이만)에 있었음.
아신이 산동성 제남시/지난시 위례백제의 성주로 있다가 왕위에 오름.
그리고 이들이 주로 인천지방으로 피난하여 들어오기 때문에 한때 인천이 위례성으로 있다가
일부가 하남 위례성으로 이주하는 것임]
p/s
하한 [익산 금마 연립마한/금성]의 완주군 지방까지 한성백제인들이 밀려 들어오자,
전쟁론과 인구론에 의해 백제 위덕왕과 신라 진지왕, 진평왕에 의해 넘어가게 되는 것임.
이잔계의 웅진 공주백제는 성왕때 싸울 전의를 상실하자, 20여만 명을 이끌고 부여 사비로 수도를 옮겨간다.
사비에는 산동성 동영시에서 요녕성 개주시 안시성 등 고구려 군에 포로로 끌려간 동부여인과
산동성 등주시 관미성 앞 오리평야 전투에서 아신왕의 보병군 3만이 광개토의 고구려 기마군 2만에 패해
포로로 끌려가는 백제인들이 대련반도 동부로 탈출하여 동명부여, 동명백제를 세우고 살다가
고구려에 밀려 한반도 부여 사비로 들어와서 형성된 세력이었다.
이밖에 안원왕, 안장왕, 양원왕, 평원왕 등의 시기에도 고구려의 포로로 잡혀가서 형성된
동부여, 백제인들이 반도로 탈출하여 사비로 들어가서 싸울 전의가 살아있는 세력이었다.
고구려 포로로 끌려갔다가 산동성 동영시 동부여, 제남시 위례백제로 돌아가면 세작으로 의심을 받아
천대를 받았기 때문에 돌아가지 못하고, 요녕성 심양 낙랑국까지 장악한 고구려를 피해
대련반도 요녕성 동부로 탈출하여 살다가 반도로 들어와서 형성된 세력이 사비인들이었다.
이것이 성왕이 국호를 남부여로 고치고 백제 중흥정책을 펼치는 근본적인 이유였다.
사비세력 역시 백제 멸망후 의자왕과 엘리트 집단 1만2천여 명이
중국 하남성 정주시 한성백제로 끌려가고, 위덕왕, 무왕, 의자왕으로 이어지는 대륙계인
위구태 백제 역시 상당수가 왜로 이주하여 동성왕 (반도출생), 무령왕(왜 사가현 출생),
성왕의 이잔계를 밀어내고 나라백제를 차지하며 아스카(비조)문화를 꽃피운다.
동성왕이 개성 한성백제에서 웅진 공주백제로 이주해가자, 화성(매홀)까지 남진하는 고구려에 밀려
온조계 개성/한수 유역의 한성백제 [백잔계]가 주로 공주강 이남지역으로 남하하여
최종적으로 반도에 남게 되는 것이다.
경기지방은 양나라 망인들이 차지하게 되고 중원에 있을때부터 실크로드 물류 종착지로서
문명국이자 주 소비국가였기 때문에 고구려는 실크로드 무역품을 지속적으로 팔아먹기 위해
무혈복속으로 가장 유화적으로 대하며 진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