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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카멜(Carmel)'인 단어를 거센소리를 피하고 '갈멜'로 부드럽게 적었습니다.
'멜키세덱(Melchizedek)'은 '멜기세덱'으로 아주 부드러워졌습니다. '키'는 '기'로, '체'는 '세'로 바뀌었지요.
헬라어로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인 단어도 거센소리를 다듬어 '그리스도'라고 아주 부드럽게 표현했습니다.
바울의 제자이자 편지 수신인인 '티투스(Titus)'는 '디도'가 되었습니다. 로마의 장군 이름 중에도 티투스가 있는데, 성경 번역자들은 이를 디도라고 번역했습니다.
돌이라는 뜻의 이름이자 예수님의 수제자인 '페트로스(Πέτρο스)'는 'ㅂ, ㄷ' 소리를 따와서 '베드로'라고 불렀습니다.
이와 같은 원칙에 따라 '크룹'도 앞글자를 부드럽게 고쳐서 '그룹'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한편,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외래어 중에는 '한 그룹, 두 그룹'처럼 단체나 집단을 뜻하는 영어 단어 'Group'이 있습니다. 성경의 '그룹'과 이 단체 '그룹'은 표기와 발음이 완전히 똑같습니다. 성경의 그룹은 히브리어로 '크룹(כְּרוּב, 단수)' 혹은 복수형으로 '크루빔(כְּרוּבִים)'이라 부르며, 영어로는 '체러빔(Cherubim)'이라고 발음합니다.
이 때문에 그냥 '그룹'이라고 말하면 성경의 천사를 말하는 것인지, 영어의 단체를 말하는 것인지 혼동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꽤 오래전부터 학생들과 성도님들에게 집단은 '그룹'으로 쓰고, 성경의 천사는 원래 히브리어 발음에 훨씬 가까운 '크룹'으로 쓰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실제 히브리어 발음도 '그룹'보다는 '크룹'에 훨씬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기 나무 강단에서도 혼돈을 피하기 위해 '크룹'이라고 읽고자 합니다. 개인이 혼자 쓰실 때는 그룹이라 하셔도 괜찮습니다만, 제가 오늘 강의에서 크룹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지리적, 음성학적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그룹이라는 용어가 성경에 얼마나 쓰였는지 세어보겠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성경은 아직도 익숙한 개역한글판인데, 개역개정판도 횟수는 같습니다. 크룹이라는 말은 창세기에 1번, 출애굽기에 13번, 민수기에 1번으로 모세오경에 총 15번 나옵니다. 사무엘상에 1번, 사무엘하에 2번으로 삼상·하에 3번 나오고, 열왕기상에 19번, 열왕기하에 1번으로 열왕기에 20번 나옵니다. 역대 상·하에 14번, 시편에 3번, 이사야에 1번, 에스겔서에 31번 나오며, 신약 성경에는 히브리서 9장에 딱 1번 등장합니다. 구약을 다 합치면 86회이고 신약의 1회를 더하면 총 87회에 걸쳐 그룹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나타납니다. 한두 번만 나타나도 중요한 단어가 많은데, 87회나 등장하니 성경에서 굉장히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참고로 에스라 2장 59절과 느헤미야 7장 61절을 보면 '그룹'이라는 말이 또 나오는데, 여기 나오는 그룹은 히브리어로도 '케룹(כְּרוּב)'이고 영어로도 'Cherub'이지만, 천사가 아니라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솔로몬 신하들의 가계 중에 나오는 사람 이름 혹은 지명입니다. 이 두 번의 예외는 인명이므로 용례에서 제외하면, 구약 86회와 신약 1회로 총 87회가 우리가 연구하는 크룹 천사가 사용된 경우입니다.
저는 구약을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이 크룹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너무 자주 나오고, 성막과 성전에 왜 이 천사의 형상을 그렇게 많이 만들고 수놓게 하셨는지 자연스러운 의문이 생겨 꽤 깊이 연구했습니다. 그래서 장막집회나 사경회에서 강사로 설 때 주제를 마음대로 택하라고 하면 이 크룹에 대해 여러 번 설교하곤 했습니다.
성경에서 크룹은 다음과 같은 주요 맥락에서 등장합니다.
창세기 3장 24절: 에덴동산 동편에 처음으로 등장하며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출애굽기 25장 등: 모세의 성막을 지을 때 성소 기물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 13번 언급됩니다.
열왕기상 등: 솔로몬의 성전을 장식할 때 수십 번 등장합니다.
에스겔 1장 등: 하나님을 모시고 이동하는 장엄한 산 생물로 묘사됩니다.
에스겔 28장: 고귀한 지위를 잃고 추락하여 마귀(사탄)가 된 타락한 크룹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에스겔 40장~48장: 제3성전(에스겔 성전)을 묘사할 때도 크룹의 모양이 언급됩니다.
이 모든 내용을 한 시간에 다루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방대하여, 오늘은 진수만을 뽑아 1부를 진행하고 다음 시간에 2부를 이어가겠습니다.
가장 먼저 크룹이 등장하는 곳은 창세기 3장 24절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직후, 하나님께서 오셔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겠다는 '원복음(창 3:15)'을 주시고,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며 첫 제사를 제정해 주셨습니다(창 3:21). 그러고 나서 24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여기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가 매우 묵직하고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왜 하필 '에덴동산 동편'일까요?
히브리어로 '에덴'은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슬픔의 동산이 아니라 기쁨의 동산입니다. 그리고 '동편'은 해가 떠오르는 방향입니다. 말라기 4장 2절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라고 했는데, 여기서 의로운 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즉, 동쪽은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이 오시는 길이자 방향입니다. 엘렌 화잇의 저서 『초기문집』 15페이지를 보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오시는 방향도 동쪽이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우리 눈은 동쪽으로 향하게 되었는데 이는 사람의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고 검은 구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던 인자의 징조였다... 구름은 점점 환해지고 큰 흰 구름이 되었다."
예수님이 나타나시는 영광의 방향은 바로 동쪽입니다. 또한 광야 시대에 성막의 '동방 해 돋는 편'에는 유다 지파가 진을 쳤습니다(민 2:3). 유다 지파의 후손으로 성소의 주인 되신 예수님이 오실 것을 지리적으로 예시한 것입니다. 이처럼 동편은 성소의 문이 있던 곳이자 성소의 주인이 머물던 방향입니다. 그곳에 크룹을 두셨습니다.
크룹의 어원에 대해서는 학설이 다양합니다. '덮다, 가리다'라는 뜻이 있어 하나님의 임재 현장을 덮어 옹위하는 존재로 해석되기도 하고, 아시리아어 '카라부(Karabu)'에서 유래하여 '크고 위대한 존재' 혹은 '복 받은 존재'라는 뜻으로 보기도 합니다.
크룹과 함께 배치된 '두루 도는 화염검'은 불칼을 의미합니다. '화염(불)'은 하나님의 임재에서 나오는 영광의 광채인 '셰키나(Shekinah)'를 암시합니다. 셰키나는 '머물다, 거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샤칸(Shakan)'에서 파생된 명사로, 하나님이 빛으로 임재하시는 광채를 뜻합니다. 그리고 '검(칼)'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은 열 가지 말, 즉 '십계명'입니다. 출애굽기에서도 하나님의 율법을 말씀으로 표현합니다. 따라서 크룹 사이에 있는 화염검은 장차 지성소 법궤 안에 보관될 십계명을 암시하는 원초적인 형태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화염검과 크룹들을 동산 동편에 '두셨다'고 기록했는데, 이 '두다'에 쓰인 히브리어 동사가 바로 '샤칸'입니다. 이 '샤칸'에서 하나님의 거처이자 성소를 뜻하는 '미쉬칸(Mishkan, 장막/성막)'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 동편에 설치된 두루 도는 화염검과 크룹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첫 번째로 만들어진 가장 간소하고 원초적인 성소, 즉 '원성소(Proto-Sanctuary)'였습니다. 이것이 세월이 흐르며 발전하고 구체화된 것이 후대의 성막과 성전에 설치된 법궤, 속죄소, 그리고 그룹 형상들입니다.
이 원성소가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했습니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맺히고 밤나무에 밤이 맺히듯, 생명나무에는 생명을 영속시키는 열매가 맺혔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영생하는 존재로 만들지 않으시고, 생명나무 실과를 먹음으로써 생명이 지속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성도들이 죽지 않는 이유도 이 생명과를 먹기 때문입니다. 생명나무의 '길'은 히브리어로 '데레크(Derek)'이며, 이는 생명의 도, 즉 영생의 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생명의 길은 성소에 있습니다.
시편 77편 13절을 보면 우리말 개역한글판은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라고 번역했지만, 영어 성경 킹제임스 버전(KJV)이나 뉴킹제임스 버전(NKJV)은 "Your way, O God, is in the sanctuary" 즉, "오 하나님이여, 주의 길이 성소에 있사오니"라고 명확하게 번역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아도 '주님의 길(데레크)이 성소에 있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성소는 우리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고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는지 보여주는 교과서이자 실험실 같은 곳입니다. 태초부터 성소에 생명의 길이 있었습니다.
그 생명의 길을 '지키게' 하셨는데, '지키다'의 히브리어는 '샤마르(Shamar)'입니다. 관공서나 학교에 있는 수위(守衛)의 역할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수위가 하는 일은 세 가지입니다.
보호: 학교의 재산과 학생들의 생명, 환경을 안전하게 지킵니다.
금지: 자격이 없거나 해를 끼치려는 외부인(깡패 등)은 들어오지 못하게 막습니다.
안내: 마땅히 들어와야 할 용무가 있는 방문객(학부모 등)에게는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줍니다. 만약 시골에서 처음 온 학부모가 자녀를 찾는데 불친절하게 대하거나 안내하지 않는다면 좋은 수위가 아닙니다. 직접 길을 상세히 가르쳐 주거나 동행해 주어야 훌륭한 수위입니다.
크룹과 화염검은 원성소의 수위로서 바로 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설치되었습니다. 생명나무를 보호하고, 죄가 있는 무자격자의 접근은 금지하되, 하나님을 경배하고 구원의 길을 찾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도를 올바르게 안내해 주는 역할을 맡은 것입니다.
인간이 범죄한 직후부터 하나님은 성소를 마련하셔서 잃어버린 영생을 도로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아도벤티스트 홈(그늘 없는 가정)』 539페이지에 이에 대한 참 좋은 말씀이 있습니다.
"에덴동산은 인류가 그 즐거운 곳에서 추방된 후에도 오랫동안 지상에 남아 있었다... 크룹 천사가 감시하던 낙원의 문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 아담과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여기 왔다. 여기서 그들은 율법에 순종하겠다는 그들의 서약을 새롭게 했다... 사람이 사악함이 홍수로 말미암아 그들의 멸망을 결정지었을 때에 에덴을 세우신 손이 그것을 지상에서 거두어 가셨다."
노아 홍수 때 하나님의 손이 에덴동산을 지상에서 하늘로 거두어 가시기 전까지, 아담과 그의 후손들은 에덴 동편 문 앞으로 나아가 화염검 사이에 계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율법 순종을 다짐했습니다. 카인과 아벨이 제사를 지낸 곳도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죄인 된 인류를 위해 하늘의 음악이 잠시 중단되는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은 크룹과 화염검을 통해 구원의 소망을 보존해 주셨습니다.
프랑스의 화가 구스타브 도레(Gustave Doré)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이 창세기 3장 24절의 엄숙한 광경을 자신들의 영감에 따라 다양하게 형상화하여 남겼습니다. 불칼을 들고 생명나무의 길을 묵묵히 지키고 서 있는 크룹의 모습은 큰 경외감을 줍니다.
세월이 흘러 광야 시대에 이르러,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성막을 건축하게 됩니다(출 25장).
위의 사진은 이탈리아 로마의 한 교회에 있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유명한 모세 조각상입니다. 이 조각상을 자세히 보면 모세의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돋아나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그 사람 뿔났다"고 하면 화가 났다는 뜻인데,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춤추는 모습을 보고 돌판을 던져 깨뜨릴 만큼 크게 화가 나긴 했습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가 머리에 뿔을 새겨 넣은 진짜 이유는 번역상의 오류 때문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4장 29절에 모세가 시내산 꼭대기에서 하나님과 40일간 대면하고 내려올 때,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이 배어 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광채가 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카란(קָרַן)'이고, 그 명사형은 '케렌(קֶרֶן)'입니다. 이 '케렌'이라는 단어에는 '빛줄기, 광채'라는 뜻도 있지만, 동시에 동물적인 '뿔'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4세기 초에 라틴어로 성경을 번역한 학자 제롬(히에로니무스)이 『불가타(Vulgata)』 성경을 만들면서, 얼굴에 광채가 났다는 이 구절의 캐렌을 '뿔이 돋아났다'고 오역하고 말았습니다. 이 위대한 라틴어 번역의 실수를 보고 미켈란젤로가 조각을 감행했기 때문에 모세의 머리에 뿔이 달리는 재미있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모세가 화가 나서 뿔이 난 것이 아니라 번역의 착오였습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이 모세에게 명령하신 성소 건축 규격(출 25:17~22)을 보면, 순금으로 속죄소(법궤의 뚜껑)를 만들고 그 양쪽 끝에 금을 두드려 만든 크룹 둘을 하나씩 배치하라고 하셨습니다. 두 크룹은 날개를 높이 펴서 속죄소를 덮고, 얼굴은 서로 마주 보며 속죄소를 아래로 향하게 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즉, 크룹 사이는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모세와 대면하시는 공적인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이 장엄한 지성소 내부의 광경을 여러 화가와 조각가들이 재현했습니다. 두 크룹이 고개를 숙여 법궤 안의 십계명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내려다보고 있고, 그 사이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인 셰키나가 번쩍번쩍 빛나는 찬란한 환경을 묘사했습니다.
이제 솔로몬의 성전 시대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솔로몬은 이 성막의 구조를 바탕으로 어마어마하고 웅장한 성전을 건축했습니다(열왕기상 6~7장, 역대하 3~5장). 솔로몬 성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성전 전체가 크룹들로 가득 차 있었다는 점입니다.
지성소 안에는 모세 때부터 내려오던 원래의 금 크룹 외에도, 감람나무(올리브 나무)로 거대하게 만들어 금을 입힌 두 개의 크룹을 새로 추가하여 나란히 두었습니다. 이로써 지성소 안의 크룹은 총 4개가 되었습니다.
지성소와 성소의 사면 벽 전체에 크룹의 형상을 정교하게 새겨 놓았습니다.
지성소로 들어가는 감람나무 문짝과 성소로 들어가는 잔나무 문짝에도 크룹들을 아로새겼습니다.
성전 뜰에 배치된 10개의 놋 받침대 사면 평판과 버팀대 빈 곳마다 크룹과 사자와 종려나무를 새겼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는 아름다운 휘장 위에도 크룹의 모양을 정교하게 수놓았습니다.
눈길을 돌리는 곳마다 온통 크룹의 형상이 가득했습니다. 성전은 그야말로 크룹들이 거주하는 장엄한 하늘 궁전과 같았고, 모든 천사들이 하나님께 시중들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듯한 영광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이후 바벨론 포로 시기에 이르면, 에스겔 선지자가 1장에서 참으로 장엄하고 압도적인 크룹의 계시를 보게 됩니다.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에도 미켈란젤로가 그린 에스겔 선지자의 벽화가 있습니다. 에스겔이 나이 30세 되던 해에 바벨론의 그발강 가에서 사로잡혀 있을 때,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거대한 이상을 보았습니다(겔 1:1~28).
북방에서 폭풍과 큰 구름이 몰려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이며 단쇠(달궈진 금속) 같은 광채가 났고, 그 가운데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났습니다. 이 생물들이 바로 크룹의 살아있는 실체였습니다. 그 모양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각기 네 개의 얼굴과 네 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고, 다리는 곧고 발바닥은 빛나는 놋 같은 송아지 발바닥 같았습니다.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얼굴 모양은 매우 독특했습니다. 앞면은 사람, 오른쪽은 사자, 왼쪽은 소, 뒷면은 독수리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네 면에 모두 얼굴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움직일 때 몸을 돌리지 않고도 사방으로 곧게 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움직임은 숯불이나 번쩍이는 횃불 같았고 번개처럼 신속하게 왕래했습니다. 그 생물들 곁에는 땅에 닿은 바퀴가 하나씩 있었는데, 구조가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아서 사방 어디로든 돌이키지 않고 굴러갔으며, 둘레에는 눈이 가득하여 무서운 형상이었습니다. 생물이 움직이면 바퀴도 움직이고 생물의 영(신)이 바퀴 속에 있어 일사불란하게 동행했습니다.
그 생물들의 머리 위에는 수정같이 두려운 궁창(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그들이 날개짓을 할 때 나는 소리는 많은 물소리나 전능자의 음성처럼 웅장했습니다. 그 궁창 위에는 남보석(사파이어) 같은 보좌의 형상이 있었고, 그 보좌 위에는 사람의 모양 같은 한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그분의 형상은 허리 위아래가 온통 불 같았고 사면에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은 찬란한 광채가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에스겔은 이를 가리켜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고 고백하며 엎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존엄하신 임재를 직접 묘사하기 송구하여 '형상의 모양'이라는 겹표현을 쓰며 경외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 장엄하고 신비로운 에스겔 1장의 이상을 많은 화가들이 성경 기록에 기초하여 그림으로 재현해 보려 애썼습니다. 네 개의 바퀴가 교차하여 구르고, 그 위에 영광스러운 보좌와 무지개 광채가 두른 하나님의 거대한 '이동식 보좌 수레'의 모습은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그렇다면 왜 크룹의 머리에 이 네 가지 얼굴이 함께 나타났을까요? 하늘나라에 실제로 이런 기괴한 생명체가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적 이상을 통해 하나님의 신성한 '속성'을 시각적 상징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람: 만물의 영장이자 인격적 지성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지성적인 속성을 나타냅니다.
사자: 야생 동물의 왕으로서 강력한 권세와 전능한 능력을 상징합니다. 사자의 포효 앞에 온 산천이 떨듯 하나님의 전능한 위엄을 보여줍니다.
소: 가축의 대표로서 평생 사람을 위해 일하고 제물로 죽는 온전한 순종과 희생을 상징합니다. 저도 어릴 때 시골에서 소를 먹여보았지만, 덩치 큰 황소도 어린아이의 이끌림에 묵묵히 따르며 밭을 갈고 짐을 나릅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봉사와 희생적 성품을 예시합니다.
독수리: 공중의 왕으로서 멀리 내다보는 예리한 시력과 공간을 처단하는 신속한 비행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전지와 전지전능함, 신속한 편재하심을 나타냅니다.
즉, 이 네 얼굴은 하나님의 무소부지(모르는 것이 없음), 무소불능(하지 못할 일이 없음), 무소부재(계시지 않는 곳이 없음)라는 신성한 특성을 종합하여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이 네 얼굴의 상징은 신약의 '사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도 아름답게 연결됩니다.
사람(누가복음):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성(인간 예수)을 강조합니다.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보편적 인류의 족보를 지니며 인간의 아픔을 치유하시는 모습입니다.
사자(마태복음): 그리스도의 왕권을 강조합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의 권세와 산상보훈의 권위 있는 선언, 온 세상에 영을 내리시는 지상명령을 담고 있습니다.
소(마가복음): 그리스도의 종 되심과 희생을 강조합니다. 쉴 새 없이 "곧, 즉시" 움직이시며 인류를 위해 수고하고 대속물로 목숨을 주시는 종의 모습입니다.
독수리(요한복음):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시작하여 시공을 초월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천명합니다.
또한, 사람은 인류를, 사자는 야생 동물을, 소는 가축을, 독수리는 조류를 대표하므로, 온 삼라만상의 모든 생명체가 다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음을 함축하기도 합니다. 숫자 '네 개'는 동서남북 사방, 전후좌우의 온 세상을 뜻하는 지구의 숫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에스겔 28장에 이르면, 이토록 존귀했던 크룹 중 하나가 비극적으로 추락하는 가슴 아픈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온 세상의 무역을 쥐락펴락하며 교만해진 '두로 왕'의 몰락을 노래하고 있지만, 성경 학자들은 그 두로 왕의 배후에서 역사하던 마귀, 즉 사탄의 기원과 타락을 묘사한 장엄한 풍유로 이해합니다.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부터 네 모든 행위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너 지키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여호와의 산에서 더럽게 여겨 쫓아냈고 불타는 돌들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피조물 천사들 중 가장 최측근에서 하나님의 보좌를 지키며 덮고 있던 훌륭한 크룹인 '루시퍼(루스벨)'가 자신의 아름다움과 영화로움 때문에 마음이 교만해져 반역을 일으켰고, 마침내 하늘 성산에서 더럽게 여김을 받아 추방되어 사탄(대적자)으로 전락한 슬픈 역사입니다.
구스타브 도레를 비롯한 화가들은 이 타락한 천사의 비참하고 음흉한 모습을 검은 날개를 가진 흉측한 형상으로 화폭에 담아 경종을 울렸습니다. 이처럼 크룹은 하나님의 보좌를 직접 옹위하고 수행하는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성경 구절들을 보면 하나님을 묘사할 때 "그룹 사이에 계신 여호와(삼상 4:4)",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삼하 22:11)", "그룹들 위에 좌정하신 이스라엘 하나님(왕하 19:15)"이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즉, 크룹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보좌이자 처소인 동시에, 그분이 온 우주를 이동하실 때 타시는 거룩한 '수레' 혹은 '전용기(하늘의 에어포스 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천사들입니다.
오늘 공부한 크룹에 대한 핵심 내용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성경의 '그룹'은 원래 히브리어 발음에 훨씬 가깝고 외래어 단체(Group)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크룹'으로 표기하고 부르는 것이 유익합니다.
크룹은 성경 전체에 총 87회(구약 86회, 신약 1회) 등장하여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고위 천사들의 반열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직후, 하나님은 에덴동산 동편 문에 크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설치하셨습니다. 이는 인류 최초의 가장 원초적인 성소인 '원성소(Proto-Sanctuary)'였으며, 죄인의 접근은 금지하되 경배하러 오는 자들에게 생명나무로 가는 영생의 도(길)를 보호하고 안내(지키는)하는 수위의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노아 홍수 때 하나님의 손에 의해 지상에서 거두어질 때까지 인류의 예배 중심지였습니다.
모세가 지은 성막의 지성소 법궤(언약궤) 위 속죄소 양끝에 순금을 두드려 만든 두 크룹 형상이 배치되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인 셰키나를 옹위했으며, 거기는 하나님이 모세와 만나 지시를 내리시는 임재의 장소였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대성전의 지성소에는 거대한 감람나무 크룹 둘이 추가되어 총 4개의 크룹이 자리했고, 성전의 사면 벽, 문짝, 놋 받침대, 휘장 등 온 도처에 크룹을 새기거나 수놓아 성전 전체가 천사들로 가득 찬 하늘 궁전의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이상 중에 본 크룹들은 하나님의 이동식 보좌 수레를 이끄는 산 생물들이었으며, 각기 사람·사자·소·독수리의 네 얼굴과 네 날개를 지니고 번개처럼 신속히 움직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지성·전능·희생·전지하심의 신성한 속성을 나타내며, 신약 사복음서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다채로운 성품(인성·왕권·종의 봉사·신성)과도 완벽히 조화를 이룹니다.
피조물 중 가장 아름답고 지혜가 충족하여 하나님의 보좌를 지키며 덮는 영광을 누리던 크룹 '루시퍼'가 교만하여 반역을 주도하다가 더럽게 여김을 받아 하늘 성산에서 추방되었고, 오늘날 인류를 파멸시키려 우는 사자처럼 날뛰는 사탄(대적자) 마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타나 있는 천사와 크룹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얼마나 실제적이고 철저하게 우리 곁에서 진행되어 왔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읽을 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거룩한 진리를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는 이어서 '크룹의 정체와 역할 2부'를 공부하며, 더 깊은 성경 속 영적 교훈들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한 주 동안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핵심 요약 정리
'크룹(Cherubim)'의 표기와 성경적 빈도
일상의 외래어 집단(Group)과의 구분을 위해 히브리어 원어에 가까운 '크룹'으로 제안함. 성경 전체에 총 87회(구약 86, 신약 1) 등장하여 신학적으로 매우 무겁게 다루어지는 고위 천사 계층임.
에덴동산의 '원성소(Proto-Sanctuary)' 사명
인간 타락 직후 에덴 동편에 설치된 크룹과 두루 도는 화염검은 인류 최초의 간소한 성소였음.
'지키다(샤마르)'의 의미대로 생명나무를 보호하고 죄인의 접근은 금지하되, 경배하러 오는 후손들에게 영생의 도(길)를 올바르게 안내해 주는 수위 및 예배처 역할을 담당함. 홍수 직전 하늘로 수거됨.
성막과 성전 안에서의 거룩한 배치
모세 성막: 지성소 언약궤(속죄소) 양끝에 순금 크룹 둘을 쳐서 만들어 하나님의 임재 광채(셰키나)를 옹위하게 함.
솔로몬 성전: 감람나무로 만든 대형 크룹 둘을 더해 총 4개의 크룹을 지성소에 두고, 성전의 모든 벽·문짝·휘장에 크룹을 조각하거나 수놓아 온 통 천사가 시위하는 하늘 궁전을 시각화함.
종합적 역할: 성경에서 크룹은 항상 하나님의 임재를 모시는 거처(보좌)이자, 영광 중에 온 우주를 이동하실 때 운행하는 신성한 '수레'의 역할을 담당함.
에스겔의 이상과 네 얼굴의 상징성
에스겔 1장에 계시된 크룹은 사람·사자·소·독수리의 네 얼굴과 네 날개를 가진 산 생물로 묘사됨.
이는 하나님의 신성한 속성(지성·전능·희생·전지 및 편재)을 나타내는 선지자적 상징이며, 신약 사복음서에 투영된 예수 그리스도의 다채로운 성품(누가의 인성·마태의 왕권·마가의 종 됨·요한의 신성)과도 신학적으로 일치함.
지키는 그룹 '루시퍼'의 비극적 타락
에스겔 28장의 두로 왕 풍유를 통해 계시되었듯, 본래 지 지혜가 충족하고 온전히 아름다워 하나님의 보좌를 지키며 덮던 최고위 크룹(루시퍼)이 교만으로 인해 반역을 일으켜 하늘 성산에서 추방당하고 사탄(대적자) 마귀로 타락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