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금 둔 곳 못 찾으면 건망증, 치매 증상 설명할 때 쓰는 비유
황혼 이혼 늘어나는 세태 반영…
코골이 수술은 이혼 두려워 하고 인공관절은 간병 가족 없어 받아
의술의 대상은 몸이 아니라 삶
-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치매 비유의 압권은 돈 얘기다. 비상금 둔 곳을 못 찾아 헤매면 건망증이고, 기껏 숨겨둔 비상금을 찾아내 아내에게 건네거나 은행 계좌에서 돈 빼서 자식에게 주면 치매로 진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남자들 사이에서 박장대소가 터진다. 고령사회로 갈수록 황혼 이혼이 늘고, 노후를 자식에게 기댈 수 없는 세태를 반영한 치매 은유다.
의학적 진단이나 질병 치료 기준은 사회 변화를 따라가기 마련이다. 최근 무릎이나 엉덩이 인공관절 수술이 급증하고 있다. 한 해 약 7만명이 인공관절로 갈아탄다. 오랜 세파를 견디느라 무릎이 닳고 닳은 노년 인구가 늘어난 탓도 있지만, 수술에 임하게 되는 결정적 배경에는 간병의 문제가 있다. 거동이 불편한 부모님을 옆에서 누가 돌볼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추석이나 설 이후 병원에는 인공관절 수술이 부쩍 늘어난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찾아뵌 자식들이 수술을 적극적으로 권한 결과다. 인공관절이라도 해서 돌아다녀야 삶의 질이 좋아지니 나쁠 것은 없지 싶다. 반면 명절 전에는 중년 주부들이 자궁근종 수술을 많이 받는다. 입원 치료를 받다가도 온 가족과 있고 싶어 무리해서라도 퇴원하는 시기가 명절인데, 연휴 동안 산부인과 병동만은 주부 환자들로 넘친다. 이참에 수술받자는 생각일 텐데, 명절 스트레스와 연관 짓지 않고는 달리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코골이는 과거 질병으로 취급받지 못했다. 그저 곤하게 자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코골이가 구강 구조와 들숨 통로의 해부학적 문제로 드러나면서 병으로 거듭났다. 게다가 코를 골면 심장병, 당뇨병, 심지어 치매의 발병 위험도 커지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치료 대상으로 올라섰다. 그럼에도 불구, 코골이 환자들이 치료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는 계기는 따로 있다. 10~20대는 학습 부진 때문이고, 30~40대는 원만한 결혼 생활을 위함이다. 젊은이들에게는 코골이로 인한 집중력 저하가 가장 중요한 치료 근거고, 중년에게는 코골이가 부부 사이를 갈라놓는 이혼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코골이 치료 기준은 질병 위험도가 아니라 성적(成績)이고 불협화음 데시벨인 셈이다.
위아래 턱을 깎는 양악수술을 받는 사람 중에는 의외로 젊은 남자들이 많다. 외모 중시 풍조로 인한 성형수술 범람이 여성에서 남자에게로 옮아간 게 아니다. 남성 양악수술의 대부분은 근거 없는 인상과 관상에 기인한다. 굵게 튀어나온 하관과 광대는 고집이 세고 성격이 거칠다는 선입견으로 그들은 번번이 취직 면접에서 외면받았고, 맞선에서 퇴짜 맞았다. 취업과 결혼에 대한 절박함이 그들을 수술장으로 들어서게 한 것이다. 이때 수술 기준은 턱뼈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 된다.
요즘 뚱뚱한 사람이 가지 말아야 할 곳이 비만클리닉이다. 거기에는 죄다 날씬한 여성들이 북적인다. 팔뚝 살이 거슬린다며, 허리 라인 관리 때문에, 허벅지 살로 청바지 옷 태가 안 난다며 클리닉을 찾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치료 대상은 몸집이 아니라 몸매다. 비만인은 빈정 상할 각오를 해야 한다. 소녀시대 뮤직비디오와 전지현 광고가 '비만 의업(醫業)'을 살찌운 결과다. 그러면서 시술 단위는 몸무게 킬로그램(㎏)에서 피하지방 밀리리터(mL)로 바뀌었다.
주 5일제가 되면서 득을 본 것은 여행업계만이 아니다. 정형외과에도 여가의 '혜택'은 돌아갔다. 스포츠 부상 환자가 부쩍 늘어난 것이다. 축구·농구·배드민턴·마라톤·골프·등산·스키 동호인과 애호가가 증가하면서 덩달아 스포츠 손상도 많아졌다. 운동에 대한 열망으로 무릎 십자인대가 끊기고, 발바닥 족저근막이 혹사당한다. 과사용은 항상 과부하를 낳는다.
그런데 이들의 치료 기대치는 질병 제거가 아니다. 망가진 몸의 회복이요, 스포츠로의 복귀다. 마치 프로 선수와 같다. 치료 목적지는 집이나 일터가 아니라 그라운드고 마운틴이다. 스포츠가 많은 이의 삶에서 중요 항목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재활 치료 기간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의술이 다양해지면서 질병 진단과 치료 잣대는 변하고 있다. 의학은 몸을 다루지만 의료는 이제 삶을 만진다. 저마다의 생활이 다양한 선택과 맞물려 간다. 간병의 문제를 의술이 담당하듯 의학은 점점 일상에 관여하는 사회학이 되어 가고 있다.
기사출처: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2/25/20140225044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