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없다, 그러므로 가지도 흐르지도 않는다.'는 유명한 물리학자의 말을 믿고 살았더니 도끼자루가 썩고 있었으니 그 사이에 나이는 먹고 코로나가 창궐하여 세계가 어지러우니, 그저 세상이 변할 뿐이런가.
아인슈타인은 시간을 포함하여 4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했으나 유명한 사람의 말이라고 다 맞는 것도 아니고 미시물리학인 양자역학의 부분에서는 뒷방늙은이 취급을 받았으니, 거시물리학인 상대성이론에서 세계적인 명성이 왔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희미한 눈으로 간다.
이처럼 시집을 내고는 세상 모르고 살다보니 세상은 시끄럽고 정치에는 관심이 생기지 않으니 흥이 날 리가 없다. 마침 작은딸이 낳은 유일한 손녀가 있어 봐주기 위해 서울로 온 지 50년 만에 한강을 넘어간다.
예의 강남사람이 되는 것이다. 둘만 덩그마니 남았으니 당연히 집을 줄여야 하므로 묵은 짐을 버려야 하니 선별작업도 쉽지 않다. 40년을 함께 산 부부의 가치관이 이렇게 다르다는 사실이 내심 흥미롭다.
그러는 사이 중국의 4대 미녀 중 왕소군이 정략의 희생이 되어 북방으로 시집가서 고향 생각에 탄식하며 뱉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나도 공감한다.
그러는 사이 다리가 아파 걷기 힘들어 개근의 의지를 꺾어야 했으니, 제철이 가기 전에 삼환, 재홍이 함께 먹기로 한 굴찜조차 먹지 못했다.
반대를 무시하고 참석하니 4명의 산꾼이 도봉산에 모였다. 창동하나로마트에서 영산포홍어와 문어를 집어 들고 생굴코너로 갔지만, 철이 지나 생굴은 없다. 마침 옆을 보니 싱싱한 멍게가 있어 그것도 추가한다.
배낭에는 한과가 있어 안주거리로는 부족하지 않다. 정상까지 가야 마음에 차는 삼환이가 둘레길을 제안한다. 사위가 와있는 입장이라 빨리 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도봉산은 내가 조금 아는 편이라 한적한 곳으로 가서 막걸리 각 1병의 즐거운 기대를 안고 산중한담을 즐기며 아지트를 찾아가는데, 길도 옛길이 아니다. 철조망으로 막은 것으로 봐서는 동네사람들이 시끄러운 것을 싫어해서 작당한 것으로 생각하고 코스를 변경한다.
무수골로 가는 다리 옆길로 들어가 정의공주와 연산군묘 쪽으로 가기로 정했다. 한적하고 너른 곳에 자리를 잡고 짐을 풀었다. 기자를 자청한 내가 형채가 추천한 시를 멋지게 읊는다.
판단은 순전히 나의 몫이니 맡겨주시라. 이윽고 봄의 잔치를 맞이하는 우리의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막걸리 맛은 깊다. 산중한담도 막걸리 맛을 닮아 즐겁다.
봄볕과 봄바람이 좋아 하늘을 보려고 고개를 들어 '구름은 새파란 정신 위에 떠다니는 존재이며 바람은 구름을 변화시키는 존재'라는 어느 시인의 구절을 떠올린다. 복습 삼아 그 시를 올린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삼환이 사정을 고려해 그가 제안한 원주추어탕으로 구름에 달 가듯이 발걸음을 옮긴다. 그곳은 나의 단골집이기도 한다. 추어튀김에 추어탕 두 그릇을 시켜놓으니 막걸리 생각을 떼어놓을 수 없다. 다시 한잔. 헤어짐의 아쉬움은 다시 만나기 위한 잔치다.
삼환이는 방향을 틀어 집까지 걸어서 가고, 경식이는 버스로 우이동으로, 나와 종화는 방학역에 까지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집 3권 이야기는 우리의 단골 대화이다. 꿈은 이루어지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 모두 1천 회 산행도 꿈꾸어 보자.
2020년 3월 20일 김정남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