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16년 맥추 감사절입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유월절을 지낸지 49일(칠칠절, 오순절)되는 날이라고 합니다. 이때 첫 곡식으로 보리와 밀을 거두는 것을 기념하여 드리는 감사의 절기가 오늘 날 기독교의 맥추 감사절이 된 것입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출 23:16)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2016년 하반기에 하나님의 감사가 넘치는 축복의 절기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의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감사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어둠을 이기고, 불행과 어려운 환경을 물리치는 능력이 됩니다.
몇 년 전 70의 나이로 주님의 품에 안긴 채규철(두밀리 자연 생태학교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는 큰 감동을 줍니다. 그는 훌륭한 교육자이며 사회 운동가입니다. 그는 ET 할아버지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교통사고로 차가 굴러 폭발하면서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목숨은 건졌지만 청력이 손상되고 한쪽 눈은 실명하고, 녹아내린 손은 갈퀴처럼 되었습니다. 눈, 코, 입이 다 뭉개져 외계인 같다고 사람들은 그를 ET라고 불렀고, 그를 피했습니다. 그는 사고 전 하나님의 은혜로 덴마크 유학 중 선진 농업기술을 배워 귀국 후 장기려 박사와 함께 가난한 사람들도 치료 받을 수 있는 ‘청십자 의료조합’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끔찍한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그는 서른 번의 수술을 하였고, 그를 밤낮으로 간호하던 아내는 충격과 과로로 2년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끝없는 절망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여기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죽음 대신 감사와 순종의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비록 귀는 다 타 버렸지만 소리를 듣는 데는 지장이 없고, 오히려 한겨울에 귀가 시리지 않으니 감사합니다. 한쪽 눈은 없지만 남은 한쪽 눈으로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입술을 일그러졌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지장 없으니 감사합니다. 머리는 타서 대머리가 되었지만 머리카락 나서 이제 머리를 가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시작을 했습니다. 그의 삶은 180도로 달라졌고 그의 삶 속에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평생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아갑니다. 간질 환자를 위해 ‘장미회’를 설립했고 매년 봉사자들을 데리고 소록도에 들어가 한센 병자들의 목욕과 빨래, 말동무를 해주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절망을 감사로 바뀌게 하는 축복의 전도사가 된 것입니다. 감사는 성도의 위대한 능력이요, 불행의 삶을 축복으로 바꾸는 기적의 힘이된 것입니다.
영국의 신학자 ‘매튜헨리’는 “감사는 더하기와 같아서 모든 것에 감사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더해진다. 그러나 반대로 원망과 불평을 일삼는 사람은 뺄셈의 인생을 살아서 나중에는 있는 것 까지 다 빼앗긴다.”고 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어렵지만 감사가 하나님의 길을 연다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 100:3-4)
사도바울은 감사가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승리의 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이니라”(살전 5:16-18)
우리는 신구약을 통해 가장 큰 고통과 환란을 당한 사람으로 욥을 듭니다. 그는 의인이었지만 사단의 사주를 받아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한순간 많은 재산을 다 잃고 열 명의 자식까지 다 죽게 됩니다. 자신은 문둥병 같은 병에 들고, 부인은 그를 떠나버리고 나중에 친구들도 배신을 합니다. 그는 조금도 의지할 것이 없어 자기 운명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지만 결국 감사로 불행을 극복하고, 나중에는 배가의 복을 받게 됩니다.
본문을 통해 결정적으로 감사의 능력이 임하는 믿음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1-22)
첫 번째, 감사의 신앙이 사단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욥의 고난은 분명한 사단의 역사입니다. 욥은 그것을 감사로 이기게 됩니다.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욥 1:9-11).
사단이 하나님께 사주하여 욥을 고난에 빠지게 한 요인은 바로 조건부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욥의 신앙이 순수한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복을 주시니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욥을 쳐보라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자식들이 다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욥의 신앙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 1:21)
욥은 아무런 조건 없이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의 신앙은 순수한 감사의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 앞에 사단은 쫓겨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배가의 복을 받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욥 42:12)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사단을 이기는 신앙은 조건 없이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한 신앙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시험에 드는 것은 다 조건부 있는 신앙을 갖기 때문에 나중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이 자신을 시기하고 죽이려고 하면서 악신에 시달릴 때 다윗은 순수한 신앙으로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악기를 연주하니 악신이 다 떠나고 쫓겨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삼상 16:23)
조건 없는 신앙, 감사의 신앙이 사단과 어둠을 몰아냅니다.
두 번째, 감사의 신앙이 죄악을 이깁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1-22)
욥은 자신의 상황이 어렵고 힘들어도 삶 자체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고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신 것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가지고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죄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죄의 원인은 결국 원망과 불평입니다. 이것들이 모여 하나님께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삶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데 이것을 망각하고 삶이 자신의 힘으로 되는 줄 알고 교만해져서 원망과 불평하다 죄를 짓고 나중에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감사가 얼마나 위대한 능력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환경은 어렵지만 감사만 악을 이기게 됩니다.
요셉은 감사가 죄악을 이김으로 복을 받은 자입니다. 그는 노예로 팔려 보디발의 집에 오게 됩니다. 그는 애굽의 군대장관 가정의 총무가 됩니다. 노예가 영광의 자리에 앉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죄악의 유혹이 온 것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자신의 형편이 좋아질 때 감사의 능력이 없으면 죄악의 유혹을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감사의 능력으로 죄악을 이기게 됩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 39:9)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되어 진 일이 다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하나님을 인식하고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출세를 하고 높아져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교만해지고 결국 죄악에 넘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과 같이 똑똑하고 위대한 사람도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하면서 죄를 이기는 승리의 고백은 오직 은혜요, 감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세 번째, 감사의 신앙이 어려운 환경을 이깁니다.
욥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재산과 자식을 잃어버리고 중병에 들었으며 설상가상으로 부인이 돌아서고, 친구들마저 배신을 하는 절대 절망의 환경입니다. 그러나 욥은 어려운 상황을 이기고 배가의 복을 받게 됩니다. 그 비결은 그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긍정하며, 하나님께 깊이 감사하는 신앙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것이 어려운 환경을 축복으로 바꾸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것입니다.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 42:1-3)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신앙을 가지면 영적인 눈이 열려 보이는 어려운 환경보다 실제적인 하나님의 영적인 환경을 봄으로 복된 환경을 열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감사의 신앙이 회복이 되어 영적인 눈이 열려 하나님의 임제를 체험하면 아무리 어려워도 그 환경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미국의 미시간 주 성 요셉 보육원에 아주 포악한 고아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친구와 싸우고 폭언을 일 삼아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습니다. 그 소년은 입양도 거부당했습니다. 그 누구도 이 소년을 받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소년은 온 세상을 부정적이고, 원망, 불평으로 가득 채우는 그런 삶을 살면서 삐 뚫어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보육원에 믿음 좋은 베레다 선생이 그 소년을 맡아서 교육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베레다 선생은 그 소년을 날마다 끌어안고 “하나님은 너를 놓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너를 끊임없이 사랑하고 계신단다. 네가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그분에게 울면서 기도해라.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신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때 소년은 성령의 감동을 받고 거듭남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의 삶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온 세상을 원망, 불평, 부정적으로 보던 시야가 긍정적이고, 감사의 눈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소년은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게 살았는지 진실로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피자가게에 취직을 하여 열심히 기술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피자 한 판을 11초에 반죽하는 미국 최고의 기술자가 된 것입니다. 그는 피자 체인 업체를 운영하여 세계적인 기업가가 됩니다. 그가 바로 ‘도미노 피자’를 만든 ‘톰 모니건’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 아무리 어렵고 부정적일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눈이 열리면 어떤 환경도 극복하여 축복의 환경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는 능력입니다. 기독교의 감사는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찾아 의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둠은 떠나고 반드시 축복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