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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에 사람에게 축복합시다. 은혜가 더하여 넘치십니다. 찬송가에도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우로로 표현한 가사들이 있죠. 실제 성경에서도, 하나님의 그 하늘로 부터 내려 주신 은혜를 또 그렇게 우로로 표현한 성경 구절들이 있습니다. 어때요? 특히 앞에 말씀을 들으면서 왜 성경은 보아도 볼 수 없고, 들어도 깨달을 수 없다고 성경을 우리에게 증거하는 일과 조금은 이해가 되십니까? 옆에 사람에게 다시 한 번 물어 보셔야해요. 어떻게 알지 못하는데 지금까지 오셨습니까? 어떻게 보지 못하면서 지금까지 붙어 있었습니까? 다른게 기적이 아니에요. 이게 기적이에요. 참 이제 그런 과정을 와 봤기 때문에 조금씩 조금씩 이것이 웃으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 속에 하시는 일로 우리는 알지 못해요. 우린 보지 못하면서 왔어요. 라고 고백 할 수 있음이 은혜 입니다. 그래서 지금 아직 얼마 말씀 안들으신 분들 딴 세계같이 느껴지시겠지만, 다 똑같습니다. 실망 할 것 없어요. 어차피 모르는 건데, 안다는 것이 , 진짜 이런 은혜 받아가는 분들 갈수록 할 말이 없데요. 이전에 은혜 받으면 할 말이 많았잖아. 어떤게 정상이에요? 이끌려. 참 앞서도 계속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동방에 동방 박사들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만드신 하늘의 별이죠. 그림자적으로 나타낸 거잖아요. 이게 비밀인데 셋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 까지, 주의 하는 것이 옳으니라. 어둠속에 빛을 비춰도 깨닫지 못하는 우린데, 참 다른 사람은 접어놓고 나를 보니까, 진짜 기적이다. 그러니까 할 말이 갈수록 없어져요. 그런데 할 말이 있어. 나는 없는데 보게 하시니까,
그래서 수요 녹화 때 말씀 끝나고, 반찬들을 하나씩 가져 오세요. 쌀도 갖다 놓으세요. 거기서 해서 먹고 시간 되는대로 자연스럽게 갈사람 가고 , 또 나누고, 이 재미가 참 쏠쏠해요. 오죽 했으면 저 영주에 있는 분들에게 한번 와서 봤으면 좋겠다. 말씀으로 얼만든지 들을 수 있지만 누구도 길을 모르고 가는데, 우리는 봐야 되는데 보지 못하면서 끌려가고 있는 이게 쉽지 않은 과정인데 이런 부분들을 말씀으로 듣는 것이야 얼마든지 인터넷을 통해서 들을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을 실제 우리 삶에 나눔 속에서 나두다 보니까, 실제 삶을 드러내니까 더 사실적으로 그 사람의 시간표 속에 그 삶의 하나님이 하시는 일 속에 허물이 허물이 되지 않을 허물을 함께 인정하고 고백하고 나누면서 은혜만 필요한 자로써 함께 복음을 찾아가는 이런 나눔이 되어지니까, 야 진짜 우리 신앙 고백 속에서 보면 성도의 교통에 대한 고백이잖아요. 성도가 교통하는 것을 믿으며, 이게 얼마나 중요한 축복이었는지를 그동안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길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주신 길이지, 우리가 보면서 가는 길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나타내는 길을 조금씩 모르고 왔는데 점점 발견되어지는 것이 문득 문득 갈수록 정말 축복이구나. 그래서 참 시간이 없어서 못 오시는 분들은 참 죄송하더라고, 물론 가면 좋다는 것은 알지만 못오시잖아. 그런데 인원도 적당하게 보내시더라고, 방송실 너무 많이 와도 안 되잖아요. 딱 항상 맞춰서 안성맞춤. 사실 우리 집회 전날, 밤중에 눈 오더라고요. 사실 알지도 못하고 잤거든요. 그런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날씨부터 보니까 눈이 떨어지더라고, 아이고, 오가는 길이 쉽지 않겠다. 그러나, 내가 기도 한다고 바껴지는 것은 아닐 것이고 바껴진다고 해도 상관없을 믿음으로, 왜 아멘 안 해요. 한번 문 열고 보다가 다시 보니까 눈발이 금발 그치더라고, 나 기도 안했어. 그럼 내 마음에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야, 바울아 내가 모든 것을 복음 때문에 하는 이 시대에 모든 것이 구원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래, 하나님이 내 마음 속에 이렇게 확인을 시켜 주시더라고요. 아멘이요. 그랬지. 보니까 날씨도 한파가 온다고 했다는데, 눈이 오면서 조금 풀어졌나봐, 눈도 하나님이 그치게 하시고, 오고 가는 길에 좋았죠? 하긴 여긴 다와서 넘어진 우리 자매님도 있지만, 여러분, 앞서 말씀 드렸지만 참 믿다보면 살다 보면 어느새 그렇게 믿고 있고 살아가는 구원만 상관없고 그런 만큼 복음만 가려져 있는, 옆에 사람 축복 합시다. 웬 은혜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밝히 나타내 주셨어요. 십자가로 완성된다. 우리 아까 성경,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면 언제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면 수건은 거두어집니다. 아멘. 이 일은 나의 평생 속에 처음이요 나중, 아멘. 그래서 여러분 바울이 뭘 말했습니까? 내가 십자가 외에는 자랑치 않겠다. 왜 십자가만 구원의 능력이니까, 십자가로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셨고,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이루어주시는 점점 내가 죽고 내 인생을 그리스도가 살아 주심 갈수록 여러분 인생에 십자가가 자랑이 되어지기를 축복 합니다. 자 우리 한번 본문 보셔야죠.
[고후4:1-2]
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여러분 이제 부터 숨은 부끄러운 일을 버리고, 옆에 사람 축복 합시다. 우리 숨겨진 부끄러운 것을 버립시다. 드러내, 이 말이 뭐에요? 이미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 인생 속에 하신 일이에요. 전에는 숨겨진 부끄러운 일을 행하면서도, 우리는 죄로 여기지 않고 살았거든요. 그렇죠? 살면서도 드러났는데도, 우리는 감춰야만 살아 갈수 밖에 없는 인생을 살아왔거든요. 그런데도, 거기 까지는 되요. 알아도 당하고, 몰라도 당하는, 삶은 속일수가 없잖아요. 이게 죄 문제인데, 삶에 살아지지 않는 고통이 찾아올 때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그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 주시길 원하시는데 하나님의 구원의 일만 상관없이 숨겨진 부끄러움 속에 이게 뭐에요? 속힘으로 행하지 말고, 솔직히 저와 여러분 그동안 은혜 받으면서 이거 한것 밖에 뭐있습니까? 인정하세요? 인정하시라니까, 우리 솔직히 그러면서 은혜 받았잖아요. 그런데 저와 여러분들 조금씩 하나님이 항상 하셨던 일인데, 내 자랑이 아니라, 나도 모르면서 헛소리하면서 증거 했는데, 몰라도 나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도 모르면서 조금씩 조금씩 깨닫고 발견해 가고, 여러분 속에서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은혜 받아 가면서 보게 하시고, 그러다 보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요? 이거 우리가 버린다고 해서 버려지는 겁니까? 그렇게 살수 밖에 없는 건데, 조금씩이지만 뭐가 발견됩니까? 인정 할 수 있어요. 그 인정은 그냥 단순한 인정이 아니에요. 그리스도 안에서 이 묶임을 풀어주시고, 이 갇힘에서 자유케 하신 만큼은 믿음으로 인정되는 거야. 그러다 보니까, 저도 그렇지만 여러분도 지금도 숨겨진 부끄러운 일들이 없는게 아니야. 안 그럴라고 하는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그러면서도 숨겨진 부끄러운 일들 속에서 속힘도 있는데도, 하나님은 쉬지 않으니까, 그러면서 조금씩 우리 수준 속에 은혜가 아니라, 우리와 상관없이 은혜 주신 만큼은 뭐가 발견되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 속에서 평생과정이긴 하지만 우리의 숨은 부끄러움이 벗겨졌어요? 안 벗겨졌어요? 어떻게 아멘이 없슈? 그뿐만 아니라 인정 할 수 있음 속에서 이게 내 죄 문제라는 것을 인식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이게 은혜더라고, 아멘.
이게 있기 때문에 이미 하나님 앞에 은혜가 필요한 자로,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갈 수 없는데 그 분이 나를 이끌어 가세요. 그런 만큼은 앞서도 말씀 드린 것처럼, 이제는 우리의 숨겨진 부끄러운 일들과 속힘들 편안하게 내 일인데 상관없는 것처럼 드러내더라고, 아직도 절대로 안 드러내시는 분도 있더라고, 그런데 너는 왜 안드러내냐 이러지 마요. 그럼 그것도 우리 수준의 기준이거든요. 사람은 다 달라요. 시간표도 다르고 정도도 달라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 만 맞지 그걸 내 기준에 맞추지 마세요. 복음은 하나님이 하시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조금씩 은혜 받아가다 보니까 뭐가 발견되요. 하나님이 나를 내 모습 그대로 봐주시는 구나.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과 나와 관계 속에 내 문제가 하나님이 보시는 것들 속에 편안하게 보여지니까 다른 사람의 감춰진 부끄러운 일들도 보여지더라고 아멘. 그런 만큼 사람은 편안해 지는 거예요. 아닌가? 그렇게 고집 스럽고 그래야만 되고 그러면 안 되는 기준 남 기준 녀들이 문득 느낌으로 알아요. 선악 속에 아직도 갇혀, 기준남 기준녀, 포스로 나타나거든요. 이 사람 보통 아니다. 조심해야겠다. 한 두 마디 들어보면 포스로 느껴진다니까. 긴장이 되요. 세상 사람은 나타난 것으로 어떤 집에 가면 너무나 정리 정돈이 잘되어있고, 좋은 거예요. 나로 살아가는 선악 속에 그러다 보면 좋은 건데 좋은 것인 만큼 그래야 돼! 길들여짐이 선악으로 살아가는 기준 속에 묶고 묶인 만큼 나도 못 견뎌, 남도 못 견디고, 그런 기준 속에 집안 가정환경, 깔끔하고 정리 된 것이 좋은 거예요. 믿음으로. 그런데 선악의 기준 속에 깔끔한 숨은 부끄러운 일이 속힘인데, 겉으로만 회칠한 무덤이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속이지 못합니다. 진짜 그 집에 가서 조심하게 됩니다. 실수 하면 안 됩니다. 좋다 이제 부터 지저분하게 하자. 다 흐트러 놓고, 돼지우리 만들어 놓지 뭐. 여러분 육신으로 살아가는 세계는 깔끔한것 보다 조금 흐트러지는 것이 좋아요. 나타난 것이지만 나타난 것이 좋은 게 아니에요. 한 마디로 막 산다는 얘기잖아요. 어떤 면에서 편안 한거지. 제발,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만 가려졌던 것 속에 깔끔한 사람들은 깔끔한 그대로 바껴지길 축복합니다. 일부러 흐트러트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가기를 축언 합니다. 아니야? 그런데 보니까 그렇게 안 되더라고, 하나님이 무너트리면 나도 어쩔 수가 없잖아. 그래서 속일수가 없습니다. 집안에 가정에 깔끔함 정리 속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을 오랫동안 본것이 참 축복이다. 잠깐 보다말았다면 잘 모를 텐데, 우리가 한두 해요? 볼꼴 못 볼꼴 다보면서 왔는데 그런데 여러분이 저를 보면 어떻습니까? 제가 여러분을 보는 것이 더 좋은것 같아요.
신년집회 7강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