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둑길 옆 서리태 콩이 알려준 비밀
아직 알이 꽉 차지 않아 딸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집 콩들은 다닥다닥 매달려서 곧 쏟아질 것
같았지만요. 고향 집 논둑 길 옆에 심어놓은
서리태 콩 이야기랍니다.
엄마에게, 왜 우리 콩만 이런 거냐고 물었습니다.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거름을 안줘서 그렇지.
꽃이고 곡식이고 마음을 쏟은 만큼 거두는 거야.”라고
하시며 심어만 놓고 신경 쓰지 않은 아버지 탓을
하십니다. 아버지는 얼른 다른 집보다 늦게 심어서
그렇다고 하십니다. 결국 아버지 말이 맞았습니다.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엄마와 저는
열매를 기대했던 겁니다. 다른 집 콩들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튼실한 열매를요.
우리 집 서리태 콩은 지금 한창 영글어가는 중입니다.
거둘 때가 아니라 가을 햇볕에 더 익어가는 과정인
겁니다. 우리는 때가 차기도 전에 열매를 기다리며,
완성과 결실을 기대하곤 합니다. 아직 콩을 거둘 때가
아님을 인정한 엄마와 저는, 더 이상 다른 집 콩들을
부러워하며 비교하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결과와 완성만을 향해 앞서
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출된 후, 40년을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거처 없이 옮겨 다니며 천막생활을 했고, 때로는 이집트에서 먹던 밥과 고기를 그리워하며, 원망도 쏟아냈습니다. 우리는 언제 가나안 땅에 도착할 수 있나며 주님과 모세에게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가나안 땅이라는 목적지로
가기까지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의 시기를 허락하셨습니다. 그 과정에 이름을 붙인다면, 지금 여기, 바로 '오늘'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순간’에 집중하며 산다고 하지만, 실상은 내가 정한 목표를 향해 전력질주하며, ‘지금 여기’가 아닌 ‘내일 거기’로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을 산다는 의미가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를 리지외의 성녀, 아기예수(소화)의 데레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상의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마는 것,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할 시간은 오직 오늘 하루뿐입니다.’ 그렇습니다. 몸은 광야 한 복판에 있으면서 시선은 언제나 가나안 땅으로 가 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그날그날 허락해주시는 오늘 하루치의 소중한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흘려보냈습니다.
서리태 콩을 늦게 심어놓고는 일찍 심어놓은 다른 집의 콩을 부러워했던 엄마와 저 역시 그랬습니다. 아직 다 차지 않은 콩깍지 속의 콩들을 바라보며, ‘너 지금 한창 익어가는구나. 햇볕과 바람과 비를 벗 삼으며 영글어 가는구나. 얼마나 수고가 많니!’ 라고 익어가는 지금의 현재진행형들을 지지해주었습니다. 한창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에 머물며 바라보니, 영글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생명력에 감탄했습니다. 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기뻐했습니다. 다 자란 콩들을 볼 때와는 다른 충만함이었습니다. 오늘은 익어가는 콩들에게 감사하고, 며칠 후엔 열매를 따게 될 테니 얼마나 행복한지요.
덜 익은 서리태 콩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오늘 하루의 과정이 미숙해보이거나, 아직 완성된 모습이 아니더라도 괜찮아! 너는 지금 익어가고 만들어지는 중이니까. 오늘 하루의 과정이 모아져서, 좀 더 나은 네가 되어가는 거니까. 너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지금 이 순간을 즐겨보렴.’
첫댓글 박지현 요셉피나님
활약이 대답합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