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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학교는 무사했다
- 학교폭력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들
2011년 12월, 대구의 한 중학생이 학교폭력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 사회와 학교는 일순 학교폭력이라는 거대한 화염에 휩싸였고,
학교폭력 예방과 근절을 위한 각종 정책들이 학교 현장을 들쑤셨다.
그로부터 1년 반, 과연 학교에서 폭력은 사라졌는가?
그 떠들썩한 한바탕 소란은 무엇을 드러냈고, 무엇을 감추었는가.
학교폭력 정국, 그 이후의 폐허를 응시하다.
▪ 지은이| 하승우‧조영선‧이계삼‧엄기호 외
▪ 책 크기|신국판 ▪ 분 량|332쪽 ▪ 책 값|15,000원
▪ 펴낸 날|2013년 6월 15일 ▪ ISBN 978-89-6880-002-3 (03370)
▪ 분류 | 사회과학 》 교육학 》 교육-일반 ▪ 펴낸 곳|교육공동체 벗
그동안 학교폭력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들
2011년 12월, 이른바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이후 학교 현장은 학교폭력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이듬해 2월 교과부는 서둘러 학교폭력근절종합대책을 내놓고 ‘일진 소탕 작업’을 선포했고, 가/피해자를 가려낸다는 명목하에 ‘학교폭력 전수조사’와 ‘정서‧행동발달 검사’가 학교 현장에 무차별적으로 행해졌다. 학교폭력 예방을 목적으로 한 교육이 강제되고 학교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신설되었으며 학교폭력 가해 학생의 가해 사실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해 일벌백계했다. 그야말로 ‘학교폭력의, 학교폭력을 위한, 학교폭력에 의한’ 행정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폭력은 쉬 사그라지지 않았고, 청소년들의 자살도 끊이지 않았다. 학교폭력을 잉태한 공간으로서 학교에 대해 성찰하지 않고, 학교폭력을 둘러싼 학생들 사이의 정글 같은 먹이사슬을 세세하게 들여다보지 못하고 쏟아진 정책들은 거대한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학생들 사이의 연이은 죽음 앞에서 드러난 것은 우리 사회의, 교사의, 학교의, 정부의 무능력함이었고, 학교폭력을 생생히 그리고 입체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교육학적, 인문학적, 예술적 토양 역시 빈곤함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지난 1년 반 동안 학교폭력을 둘러싸고 벌어진 한바탕 소란이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감추었는지 증언한다. ‘학교폭력 피해 발생 → 가해자 엄벌 → 가해자 색출을 위한 학교의 사법기관화 → 교육 당국의 꼬리 감추기’라는 도식은 학교폭력이 처음 사회문제화되었던 1990년대 중반부터 지난 20년간 계속 반복되어 온 악순환이었다. 때마다 일진 소탕 작전을 벌여도 학교폭력이 쉬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학교폭력이 수용소로서 기능만이 남은 학교와 안전판 없는 폭력적인 사회를 숙주로 삼고 있기 때문임을 이 책은 이야기한다. 학교폭력 정국이 휩쓸고 간 이 폐허 속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예견된 폭력>은 학교폭력이 터해 있는 구조와 맥락에 대해 밝히고 있다. 학생 간 폭력을 부각시키면서 정작 학교가 가진 폭력성은 꼬리를 감추었음을 이야기한다. 2부 <우정이 불가능한 학교>는 학교폭력에 대해 교사, 학부모, 학생들을 인터뷰해 쓴 생생한 르포다. 이들은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교육’의 본연의 역할과는 관계없는 빌어먹을 일들의 연속이며, 우정이 불가능한 공간임을 고발한다. 3부 <당신들의 ‘평화’를 거부한다>는 학교폭력 정국 이후 쏟아져 나온 담론과 정책들을 분석하고 우리가 이 속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살핀다. 폭력을 근절하겠다며 쏟아진 정책들이 학교 현장과 학생들에게 어떤 폭력을 행사했는지도 밝힌다. 4부 <연대와 공감의 교육>에서는 폭력에 맞서는 힘은 어떻게 길러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갈등과 불화가 없는 사회는 없으며 폭력은 근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폭력을 양산하는 권력에 저항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공감과 연대의 감정을 키우는 것임을 저자들은 이야기한다.
그 외에, 애도哀悼가 없는 학교에서 교육은 불가능함을 드러낸 <프롤로그 - 애도哀悼 없는 학교>(엄기호), 감정을 인정하지 않는 학교에서는 폭력만이 유일한 의사소통으로 기능함을 토로한 <에필로그 - 폭력이 아닌 감정의 연대로>(진냥)도 학교폭력이 학교와 교육에 던진 중요한 화두를 이야기한다. 일본의 이지메/학교폭력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토대로 이 책의 의미와 한계를 꼼꼼하게 분석한 <비평 - 학교폭력에 마주 서기 위한 공유된 지식을 찾아서>(김종구)는 학교폭력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시사한다.
학교가 없으면 학교폭력도 없다
: 1부 - 예견된 폭력
<학교, 폭력의 숙주>에서 이계삼은 학교가 없다면 학교폭력이 지금처럼 막강해질 수 있었을까 반문하며, 학교폭력에 대한 한국 사회의 특수성으로 IMF 구제금융 체제 이후 생겨난 양육 방식의 변화를 꼽는다. 먹고사는 일이 강파른 곡예가 되어 버리고 가족, 마을, 또래 집단 등의 사회적 관계망이 단절된 현실 속에서 학생들은 폭력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저자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우정’과 ‘민주주의’, 그리고 기존의 교육과정과 단절한 새로운 ‘몸의 교육과정’이다. <평화로운 학교는 없다>에서 조영선은 ‘학교는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공간’이라는 신화에 의문을 제기한다. 공부로 인정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노페(노스페이스)’라는 비싼 갑옷으로 자신을 가리고 센 척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 방위성금이나 불우 이웃 돕기 성금 등 이유 없이 돈을 걷고 ‘소지품 검사나 압수’도 무시로 일어나는 공간, ‘사랑의 매’나 선생님을 도와주는 ‘심부름’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곳이 바로 학교임을 고백한 저자는 공기를 바꾸지 않고서는 폭력적인 문화는 쉬 없어지지 않음을 강조한다. 배경내는 <“걔가 원래 좀 그랬어요”에 담긴 함의>에서 학교폭력을 잉태하고 있는 차별/혐오의 정서를 파헤친다. 여러 연구물들과 인터뷰를 통해 학교 안에서 소수자나 약자들이 어떤 차별과 폭력을 당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드러낸 저자는 ‘평화로운 학교’는 폭력이 없는 학교가 아니라 폭력에 대한 성찰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여하는 학교라고 이야기한다.
학교에서 부서지는 사람들
: 2부 - 우정이 불가능한 학교
정용주는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의 목소리를 통해 학교폭력이 일어나는 구조와 문화를 분석한다. <언터처블 학교 1 - 학생편>에서는 학교폭력을 둘러싼 학생들의 얽히고설킨 권력 구조를 파헤치고 있다. 저자는 학교는 공동체라기보다는 집단으로 분리되어 있고, 학생들은 그 속에서 친구 관계도 우정에 기반한 관계가 아니라 외모나 부모의 경제력 등에 의한 차별적인 결속력을 확보하고 있음을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전달한다. <언터처블 학교 2 - 교사‧학부모편>에서는 ‘학교 착각’이라는 개념을 통해 학교가 배움의 공간, 평화의 공간이 아님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약자에 대한 폭력이 잘못된 것이라고 가르치기보다 약자가 되지 않는 법을 가르치려 하고, 교사들은 서류 중심의 학교폭력 관리 속에서 그저 구경꾼이 돼 가고 있음을 지적한 그는 학교폭력은 폭력적인 학교를 나타내는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진냥의 <부서지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다>는 학교폭력을 둘러싼 오해와 착각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학교 : 부서지는 사람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는 저자는 학교폭력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한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통해 학교라는 공간의 어두운 면을 응시한다. 한 해에 6만 명 이상이 떠나고, 300명 이상이 자살을 택하는, 그래서 어느 누가 죽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 학교. 그 속에서 견디다 못해 부서져 가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처절하게 다가온다.
누가 진짜 일진인가
: 3부 - 당신들의 ‘평화’를 거부한다
<학교는 교육기관인가, 사법기관인가>는 학교폭력 정국 이후 경찰국가화 돼 버린 학교를 비판한다. 저자인 조영선은 학교폭력근절종합대책에서도 가장 크게 논쟁이 된 ‘일진 색출’과 ‘학교폭력 생활기록부 기재’를 중심으로 학교폭력을 근절하겠다며 나오는 대책들이 학교에 어떤 폭력을 휘둘렀는지를 이야기한다. 일진을 검거하겠다며 펼친 교과부의 정책들이 가진 폭력성을 이야기하는 저자는 과연 누가 진짜 일진인지 반문한다. <불안으로 유지되는 대규모 산업>에서 진냥은 학교폭력 대책이 현장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있고, 산업화/상업화되고 있는지를 고발한다. 기존의 스펙주의 혹은 입시 제도와 학교폭력 대책이 결합해서 ‘또래 상담’, ‘학생 부담임제’, ‘청소년 멘토제’ 등이 탄생하고 학교폭력 예방 지도사나 상담사 등 관련 자격증이 각광받는가 하면 학교폭력을 테마로 한 각종 캠프나 교육 프로그램이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한다. 학교폭력에 대한 공적인 해결은 외면하고 사적으로 떠넘기고 있음을 지적한 저자는 이런 접근법은 기존 구조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하며 학교폭력을 재생산할 뿐이라고 강조한다. 한낱은 상담과 돌봄이라는 ‘아름다운’ 말로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은밀한 폭력>을 꼬집는다. 고통의 본질은 삭제된 채 학생 개인에게 병명을 붙임으로써 ‘문제아’ 뒤로 숨어 버리는 ‘문제 학교’ 앞에서 그는 지금의 사태를 두고 어른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용소로서 학교>에서 정용주는 학교가 여전히 긴급조치 속에 있음을 폭로한다. 학교폭력 예방 교육,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학교폭력 전수조사, CCTV 설치, 스쿨 폴리스 등 학교폭력에 대한 대책이 강화될수록 유신시대를 지칭하는 말처럼 ‘전 학교(국토)의 감옥화, 전 학생(국민)의 죄수화’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학교에 인권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합의된 가치가 존재하고 있는지 되묻는 그는, 최근 일베를 둘러싼 논쟁을 학교의 현실에 빗대어 분석한다.
폭력에 맞서는 힘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 4부 - 연대와 공감의 교육
<폭력의 반대말이 ‘안전’ 맞습니까?>에서 저자는 폭력에 대한 대응책으로 나온 안전 담론이 어떻게 자유와 인권을 잡아먹고 있는지 살펴본다. 한낱은 안전 담론이 사회적 소수자들을 관리/통제하거나, 배제/추방하는 효과적인 기제가 될 위험성을 지적하며 연대와 상호 돌봄의 언어로 안전 너머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하승우는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모든 갈등과 불화마저 없애려 하는 현재의 학교를 비판한다. <폭력에 관한 질문은 올바른가>에서 그는 서로에게 기대어 사는 한 있을 수밖에 없는 불화를 제거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의 생명력과 평화를 파괴하는 근본적인 폭력이라고 말한다. 그는 교육이 갈등과 불화를 인정하고 그것과 함께 사는 법을 연습해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며, 더 ‘소란스러운 학교’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한다. <‘오지랖 넓은’ 학생들을 기르는 교육>에서 조영선은 학생들이 불의와 폭력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일상적 무권리의 상황에 처해 있는 학생들은 학교폭력 상황에서도 대항할 수 없음을 지적하며 폭력에 맞서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참여와 자치를 보장해야 하고 그것은 곧 학생들과 권력을 나누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책 속에서
2012년 새 학기는 그야말로 ‘학교폭력의, 학교폭력을 위한, 학교폭력에 의한’ 행정의 연속이었다. 모든 교육 활동의 목적에 ‘학교폭력 예방’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학생들을 잘 돌보라며 담임을 2명씩 배치하고 학교마다 전담 경찰관을 두어 새 학기를 맞이하는 첫날에 인사를 시켰다. 학생들은 안 그래도 낯설기만 한 새 교실에서 세 명의 감시자와 한 학기를 시작하였다. 학부모총회에서도 상담 대신 학교폭력 예방 교육을 했고, 전 학년이 한 학기에 2시간씩 똑같은 내용으로 교육을 받았다. (……) 궁금해졌다.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다른 학생들은 이제 안정감을 얻었을까? 그리고 ‘찌질이’들에게 살짝 장난을 쳤을 뿐이라고 생각했던 그 학생들은 이제 폭력을 쓰면 안 되겠다고 뉘우쳤을까? 교사들은 학교폭력 근절을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 이 책은 미안하게도 학교폭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섣부른 대안보다는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어떤 생각과 어떤 질서가 폭력이 깃들기 쉽게 만드는지 성찰하는 것이 그나마 학교폭력을 대하는 가장 성실한 자세가 아닐까,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육 불가능’이 현실의 교육 불가능성을 고통스럽지만 인정하는 데서, 그리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는 데서 희망을 찾았듯이, 학교폭력 역시 이 떠들썩한 현실을 구성하는 전제들을 뒤집어 보는 데서, 그리고 학교폭력이 아니라 ‘폭력 학교’에 대한 질문을 시작하는 데서 그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_ <책을 펴내며>, 6-11쪽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다”며 자살한 초등학생이 있었다. 성적 압박에 지친 나머지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대구의 한 중학생은 동료들로부터 당한 끔찍한 고통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 뒤, ‘이제 여한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허공에 몸을 던졌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를 잘한다는 학교에서도 1~2등을 다투던 고등학생이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고 있다”는 유언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한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청소년들의 자살 행렬은 인류사의 그 어떤 사회, 그 어떤 문화에 견주어도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아이들이 지금 죽음으로써 이 체제를, 이 시대의 생존 방식을 격렬하게 들이받고 있다.
_ 이계삼, <학교, 폭력의 숙주 >, 본문 29쪽
학교는 공동체라기보다는 집단으로 분리되어 있다. “쟤 좀 놀아”, “쟤 싸움 잘해”, “쟤네 집 좀 살아”라고 하는 판단과 함께 학생들은 차별적인 결속력을 확보해 간다. 친구 관계도 점점 우정에 기반한 관계가 아니라 외모나 부모의 경제력 등에 의한 구별 짓기의 성격이 짙어져 가고 있다. 학교가 그야말로 우정이 불가능한 ‘언터처블’한 공간이 되어 가고 있다. (……) 학생들은 이미 오래전에 ‘학교적인 것’에 신뢰를 잃었다. 지금의 학교는 학생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돌봄과 배움이라는 가면을 쓰고 학생들을 지배하고 관리하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학교폭력을 두고 학생들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말들이 많지만, 정작 치료를 받아야 할 대상은 학생들이 아니라 오히려 ‘학교’이다. 청소년의 자살률을 줄일 방법이 학교에 안 가는 것인 것처럼 학교폭력을 없앨 방법 또한 학교에 안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_ 정용주, <언터처블 학교 1>, 본문 102~104쪽
일진 생활은 대부분 졸업과 동시에 끝난다. 일진이 ‘센 척’을 위해 했던 수많은 교칙 위반 행동들이 학창 시절에는 학교 규율을 넘어서는 금기의 행동이 되어 권력을 주지만, 학교만 졸업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찌질한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일진이 조폭보다 심각하게 일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힘이 세서가 아니라 멋있어 보인다는 데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일진은 실재하는 주체라기보다는 학교라는 억압적인 구조가 만들어 내는 문화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학교에만 있는 억압적인 규율이 찌질한 금기를 만들어 일진 놀이의 권력을 키우고 희생자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_ 조영선, <학교는 교육기관인가, 사법기관인가>, 본문 157쪽
누구나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그 공감하는 힘을 멈추게 하는 것은 권력이다. 결국 학교폭력 예방 교육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차별을 정당화하는 권력에 저항하고 폭력을 강요하는 권위에 대항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사회가 얼마나 차별적인가를 인지하고 그 차별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권력에 의해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권력의 부당함에 맞설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폭력을 끝장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학교폭력 예방 교육은 ‘~하지 마’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이 권위에 눌려 인간다운 삶의 감각을 잃지 않도록 하는 ‘권력에 맞서는 교육’이어야 하며, ‘세상의 차별에 저항하는 교육’이어야 하며, 저항하는 힘을 만드는 ‘연대의 교육’이어야 한다.
_ 조영선, <‘오지랖 넓은’ 학생들을 기르는 교육>, 본문 299쪽
차례
책을 펴내며
프롤로그 / 애도哀悼 없는 학교 _ 엄기호
1부 예견된 폭력
① 학교, 폭력의 숙주 - 학교폭력의 인식론적 회로를 더듬다 _ 이계삼
② 평화로운 학교는 없다 - 학교폭력과 학생인권 _ 조영선
③ “걔가 원래 좀 그랬어요”에 담긴 함의 - 차별/혐오의 열쇳말로 살펴본 학교폭력 _ 배경내
2부 우정이 불가능한 학교
① 언터처블 학교 1 - 학생편 _ 정용주
② 언터처블 학교 2 - 교사‧학부모편 _ 정용주
③ 부서지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다
- 학교폭력을 둘러싼 오해와 착각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학교 : 부서지는 사람들〉 _ 진냥
3부 당신들의 ‘평화’를 거부한다
① 학교는 교육기관인가, 사법기관인가
- 학교폭력근절대책은 학교에 어떻게 폭력을 휘둘렀나 _ 조영선
② 불안으로 유지되는 대규모 산업 - 학교폭력 정국이 우리에게 남긴 것 _ 진냥
③ 은밀한 폭력 - ‘돌봄’과 ‘상담’은 청소년을 구원할 수 있나 _ 한낱
④ 수용소로서 학교 - 전 학교의 감옥화, 전 학생의 죄수화 _ 정용주
4부 ‘장악’이 아닌 ‘해방’으로
① 폭력의 반대말이 ‘안전’ 맞습니까
- 자유와 인권을 잡아먹는 몹쓸 ‘안전’에 딴죽걸기 _ 한낱
② 폭력에 관한 질문은 올바른가 - 갈등과 불화와 함께 살기 _ 하승우
③ ‘오지랖 넓은’ 학생들을 기르는 교육
- 폭력에 맞서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_ 조영선
에필로그 / 폭력이 아닌 감정의 연대로 _ 진냥
비평 / 학교폭력에 마주 서기 위한 공유된 지식을 찾아서_ 김종구
필자 소개
한낱 인권교육센터 ‘들’,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stoptosmoke@naver.com
‘학교폭력’을 앞세워 ‘학생인권’을 봉인하려는 모든 사람들이 부디 이 책을 만나기를. 우리는 폭력에 대해 말했지만 우회로를 지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느낌입니다. 청소년도 인간이라는 소박한 진실 말입니다.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anar00@hanmail.net
중심에서 벗어난 삶을 꿈꿉니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이자 교육공동체 벗의 조합원입니다.
진냥 대구학생인권연대 jinnyang3@gmail.com
교사인 게 너무 싫어 항상 울며 학교에 다닌 지 11년. 청소년인권운동을 만나 처음으로 내가 교사임을 인정하고 교사라는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학교폭력을 둘러싼 오해와 착각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학교 : 부서지는 사람들〉을 만들며 학교폭력을 ‘근절’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과는 다른 구조를 학교에서 건설‘하고 싶어 하는’ 운동을 대구에서 하고 있습니다.
조영선 서울 경인고,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imaginer96@hanmail.net
아이들을 억압하면서 벌어먹는 것이 죄스러워 학생인권에 관심을 가졌으나 요즘에는 교사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정용주 서울 백석초,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edcom234@hanmail.net
이메일이 서너 개쯤 되고 혈액형은 성격 파악 어렵다는 AB형인 교사입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이지만 의식은 점점 노동자로부터 멀어져 갑니다. 물질적인 부자보다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계삼 경남 밀양 감물생태학습관,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ygs0720@hanmail.net
11년간 중등 국어교사로 일했고,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묶어 몇 권의 책을 냈습니다. 2012년 2월 퇴직 이후, 감물생태학습관에서 교육과 농업의 만남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엄기호 연세대 문화학 박사,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uhmkiho@empas.com
최근까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세계 민중들의 싸움을 한국에 알리는 일을 주로 해 왔습니다. 여전히 저항과 교육을 연결시키며 아이들을 자율적인 주체로 키우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는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펴낸 책으로 《닥쳐라 세계화》,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등이 있습니다.
배경내 인권교육센터 ‘들’ hregang@hanmail.net
인권교육센터 들의 상임활동가. 인권을 만나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운동에 힘을 쏟았고, 최근에는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를 만들어 폭력의 교육을 뒷받침하는 통념과 제도를 바꾸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를 썼고, 《인권, 교문을 넘다》, 《가장 인권적인, 가장 교육적인》도 함께 썼습니다.
김종구 《오늘의 교육》 객원편집위원 spinozian@hanmail.net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좋은 사람들과 《우리교육》을 만들었고,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재미있는 사람들과 서울시대안교육센터에서 대안교육을 고민했으며, 2009년부터 일본으로 건너와 다시 교육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연구라는 이름으로 하고 있는 일은, 영화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흥분된 마음으로 그걸 교육에 활용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생각을 더듬어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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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표지가 너무 예쁘고 시원해보여요.^0^ 단행본 <수업>의 부제가 학교폭력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구나 경험하지만 누구도 잘 모르는...학폭에 대해 이리저리 말만 많은 가운데 이렇게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아직 읽진 않았지만 일단 믿음이 가기에~~) 쫙 정리된 책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시원해지는 느낌입니다!!
유지씨 이 책으로 읽기 모임할까요?ㅋㅋㅋ
넹! 마침 방학이 목전에 있으니 시간도 많아요♥
7월 괴산지역읽기모임에서 또다시 학교폭력 문제를 다뤄보기로 했으니 일단 읽어봐야 겠어요. 김종구님의 논평이 오늘의교육에 나와서 읽었는데 좋았습니다. 일진이 휘두루는 폭력에만 관심을 갖기보다 폭력이 일상화된 현실을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냥 정신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열차같은 학교에서 배려와 성찰이 가능하지 않으므로 폭력은 당연히 번성하는 것 아닐까요?
살 수 있는거죠?
15일 모임에 가져오실 수 있나요?
ㅎㅎㅎ 그럼요. 몇 권 가져갈까요?
시원한 여름 바다를 연상케하는 책 표지.....일상적인 폭력이 사라진 학교의 청사진 같기도 한....제목도 마음에 드네요. 수고 많았어요!!
펴낸날은 2013년 6월15일인데 6월 14일에 이런 내용이 있음을 먼저 본 저는 행운아?ㅋㅋ책꽂이에 꽂힐 책 한권 늘었네요. 학폭 담당자인 저는 읽고 많이 뜨끔하게 될 듯 합니다.
표지 컬러가 이 시절에 맞네요. 시원하게 느껴져요.
그리고 학교는 절대 '무사'하지 않았네요. 그 뒤로 지금까지 쭈욱...
학교 옮겨 학생기회를 억지로 맡았는데, 지금 '학교폭력'을 새삼 알아가고 있는데,
지금 학교는 절대적으로 무사하지 않네요.
얼마나 아파하는데,,, 역설로 받아들이는 이 상황...
일단 일독할 생각입니다.
저도 열심 홍보할게요~ 편집하시느라 모두 애쓰셨어요:)
결국 제목을 이 제목으로 정했군요. 어제 책을 받아보고는 정말 잘 정했다 싶었습니다. 좋아요. 정말 좋아요.^^
그리고 학교는 무사했다 책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읽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