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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레위기 21:1-15】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그의 백성 중에서 죽은 자를 만짐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더럽히지 말려니와
2 그의 살붙이인 그의 어머니나 그의 아버지나 그의 아들이나 그의 딸이나 그의 형제나
3 출가하지 아니한 처녀인 그의 자매로 말미암아서는 몸을 더럽힐 수 있느니라
4 제사장은 그의 백성의 어른인즉 자신을 더럽혀 속되게 하지 말지니라
5 제사장들은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지 말며 자기의 수염 양쪽을 깎지 말며 살을 베지 말고
6 그들의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고 그들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 것이며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 곧 그들의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는 자인즉 거룩할 것이라
7 그들은 부정한 창녀나 이혼 당한 여인을 취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 거룩함이니라
8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 그는 네 하나님의 음식을 드림이니라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나 여호와는 거룩함이니라
9 어떤 제사장의 딸이든지 행음하여 자신을 속되게 하면 그의 아버지를 속되게 함이니 그를 불사를지니라
10 자기의 형제 중 관유로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그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은 그의 머리를 풀지 말며 그의 옷을 찢지 말며
11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 하지 말지니 그의 부모로 말미암아서도 더러워 지게 하지 말며
12 그 성소에서 나오지 말며 그의 하나님의 성소를 속되게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께서 성별하신 관유가 그 위에 있음이니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13 그는 처녀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을지니
14 과부나 이혼 당한 여자나 창녀 짓을 하는 더러운 여인을 취하지 말고 자기 백성 중에서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15 그의 자손이 그의 백성 중에서 속되게 하지 말지니 나는 그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들어가는 말】
간혹 친구들과 만나면 간혹 결혼과 장례에 관련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이에 따라 청첩장과 부고장을 받는 대상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정신없이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친구들로부터 하나 둘 청첩장을 받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살다 보면, 친구 부모님이 소천 하셨다는 부고장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면 자녀들이 결혼한다는 청첩장을 다시 받게 되고, 또 시간이 지나면 친구들이 소천 하였다는 부고장을 받게 됩니다.
요즘 친구들끼리 만나면 이제는 자녀들의 결혼한다는 청첩장과 또 부모님이 소천 하셨다는 부고장을 받는 나이가 되었다고 세월이 정말빠르다는 말을 합니다. 항상 계실 것 같았던 부모님이 소천하시고, 항상어린아이와 같이 느껴지던 자녀가 결혼하니 비로소 나도 나이가들었구나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로는 조금 바뀐 것이 있는데, 친구 자녀들 결혼 청첩장이오면 거의 축의금만 보냅니다.
그런데, 부고장이 오면 장거리가 아닌 이상 조문하려고 합니다.
친구들도 대부분 이런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얼굴 볼 수 있는 기회가 그 만큼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따금 부고장을 받고 장례식장에 가면 오랜 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장례식장에서 표정관리가 힘이 듭니다.
장례식장에서 대놓고 웃을 수도 없고, 어정쩡하게 함께 앉아 차려진 밥을 먹으면서 서로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에는 장례식장이 아닌 곳에서 만나자 약속하며 돌아옵니다.
그런데, 결국 또 다른 장례식장에서 만나게 됩니다.
한 사람과의 헤어짐으로 인해 슬픔이 가득한 장례식장에서 또 다른 만남으로 인한 기쁨을 나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 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 가면, 일상에서는 생각하지 않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결혼식장과는 다르게 장례식장에 가면 고인이 어떻게 삶을 살아 왔는지에 따라서 분위기가 많이 다름을 느끼게 됩니다.
덕분에 한 사람의인생의 마무리하는 장례식장에서 내가 걸어온 길을다시 되짚어보고 다시 시작하는 기회를 얻는 유익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장례와 결혼에 대해 언급됩니다.
장례와 결혼에 관하여 주의해야 할 일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인생 전반에 걸쳐서 주의해야 하는 것들을 대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장례와 결혼에는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습니다.
공통점 첫 번째는 새로운 출발이라는 점입니다.
결혼이 두 사람이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루는 시점이라고 한다면, 장례는 한 사람의 인생이 마무리 되지만 동시에 다른 세계에서의 또 다른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통점 두 번째는 새로운 생명의 태동이라는 점입니다.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면 대부분은 자녀를 생각합니다.
이제 시작되는 가정으로 인해서 새 생명이 이 땅에서 빛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장례는 한편으로 보면, 이 땅에서의 생명을 마감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또한 동시에 다른 세상에서 새로운 생명을 누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고 그 심판의 결과에 따라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 곳에서 새로운 생명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공통점 세 번째는 공동체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결혼을 통해서 두 사람이 만나서 가정을 꾸리지만 동시에 믿음의 청년들이 만나서 결혼함으로 인해 가장 작은 교회가 세워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결혼을 교회의 큰 비밀이라고 했습니다(엡5:31-32).
장례는 한 사람이 소천 함으로 인해서 기존의 결혼이나 가정이 깨어지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 보면, 죽음이라는 과정을 지나며 새로운 가족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언급되는 장례와 결혼도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 걸맞게 새로운 백성이 되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애굽에서 살던 옛 사람은 장례를 치르고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을 맺음으로서 하나님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애굽에서와는 다른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 출발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르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의 대상은 바로 그 역할을 하는 제사장들과 백성을 대신하여하나님에 나가는 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명자로 하나님의선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 미혼인 형제와 자매를제외한 다른 사람의 장례에는 참여할 수 없습니다.
또한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도 세상의 풍습을 따라서도 안 됩니다.
머리를 밀거나 수염을 깎는 행위는 고대근동의 풍습이며, 살을 베어 피를 내는 것은 가나안의 장례 풍습으로, 슬픔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풍습을 따르지 말라 명령하십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백성들을 대표하는 사명을 행하는 제사장들은 더욱 이방 풍습을 멀리하고 거룩함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거룩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장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으로서 가정을 이루는 일에도 거룩함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의 사명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결혼도 신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사장의 가족들은 자신의 부정함으로 제사장의 직무가 방해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가족이 부정함으로 인해 제사장의 직무를 방해할 때, 특히 제사장의 자녀가 행음하여 자신을 속되게 하면 이것은 곧 제사장인 아버지를 속되게 하는 것이니 화형에 처하라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제사장이 속되면 곧 하나님을 속되게 한다는 말씀과도 같은 뜻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거룩한 제사장의 사명을 수행함에있어서 정결함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제사장은 그의 백성의 어른인즉자신을 더럽혀 속되게 하지 말지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제사장이 백성의 어른이라는 표현은 조금 어색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가진 성경 4절 ‘어른’이라는 단어 앞에 숫자나 기호가 표기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 단어의 각주에 보면, ‘또는 남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단어는‘( בַּעַל )바알’이라는 단어로 남편, 지도자, 주인, 바알(신)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백성의 남편이 된다는 말을 성경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사이를 결혼에 비유하여 설명하는 것과, 가정에서 리더, 지도자로서의 남편의 역할에 초점을 두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으로 백성의 어른이라는 말씀을 보면,‘제사장은 백성들을 남편 되는 주님께로 인도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백성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야 할 제사장은 스스로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죄로부터 정결하지 않으면 그 죄로 인해서 자신부터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도 모두 제사장들입니다.
베드로전서 2:9에 보면,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선택하심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워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들 또한 어두운데서 신음하는 백성들을 하나님의 빛으로 들어가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들 각자가 이러한 사명에 충실하면 우리들의 일들이 모여서 결국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삶으로 선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대 제사장의 경우는 제사장들 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합니다.
대 제사장의 경우는 부모 형제 자녀의 장례식에도참석할 수 없으며 장례로 인해 그 어떤 슬픔의 표현도 할 수 없습니다.
아론 또한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드림으로 죽음을 당했을 때, 아들 나답과 아비후의 장례에 참여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론은 대 제사장인 관계로 두 아들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회막 문 밖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관유를 부음 받은 자로서 성소를 지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제사장들과는 다르게 대제사장의 직무를 대신하여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스스로 더러워지지 않도록 정결한 상태로 유지해야 했습니다.
대제사장은 결혼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대제사장은 오직 이스라엘 지파에 속한 순결한 처녀와의 결혼만 허용되었습니다.
제사장이 순결한 처녀 또는 과부와의 결혼이 허용되는 것과는 훨씬 더 엄격한 기준입니다.
이렇게까지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거룩함을 유지하여 후손들에게 이어질 수 있도록 믿음의 가문을 지켜내야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가장 작은 교회인 가정의 일원으로 이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 교회가 대대손손 이어질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의 풍습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에서는 괜찮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금하신 일들은 거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일을 행하는 것이 죄입니다.
불순종은 정결함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걸림돌이 되는 부정한 것들, 죄와는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또한 성도는 하나님이 먼저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 무엇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 먼저입니다.
군인들은 복무하는 동안 부모의 장례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국방의 의무가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평상시에는 휴가를 내어서 참여할 수 있지만 비상 상황이라면 달라집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군사들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영적인 전투가 한창인 전쟁 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군사 된 우리들에게 우선순위는 사명인 것입니다.
이러한 우선순위가 흔들리지 않도록 우리를 혼란하게 하는 다른 일들은 정리해야 합니다.
정결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시면 멈추는 아주 단순한 순종을 의미합니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과 어떻게 하면 쉽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요령도 버리고,
이해타산을 따지는 계산적인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대로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라도 마음속을 더럽히는 온갖 다른 생각들은 버려야 합니다.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의심하고 계산하고 요령을 피운다는 것은 여전히 내 의지를 앞세운다는 것입니다.
내 의지를 앞세우고 내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은내가 주인 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고하나님이 선택하신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따라서 내가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철저히 하나님 우선주의로 살아가야 할 이유는,
우리에게 예수님 보다 더 귀한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생을 마감한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사람과 죽어있는 사람, 즉 이 땅에서와 하나님 나라에서도 동일하게 주권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 되신 주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거룩함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성도들이라면 마음에 새겨들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하게 대하고 자기에게는 엄하게 하여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부끄러운 일들을 행하면서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의 작은 실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정죄하면서도 자신의 실수에는 관대한 경우를 봅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들어 있는 티는 보면서 내 눈의 들보는 못 보는 이유는 내 마음이 정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마음이 세상의 무엇으로 인해 더렵혀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정결한 마음으로만 하나님의 뜻을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뷔페에 가면 음식을 덜어 먹을 수 있는 접시들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 앞에 금으로 만든 접시와 싸구려 플라스틱 접시가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겠습니까?
이왕이면 좋은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금으로 만든 접시 안에 이물질이 잔뜩 묻어 있다면 그래도 금 그릇에 음식을 담아 드시겠습니까?
몇 년 전에 짬뽕으로 유명한 집에 가서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음식이 담겨 나온 그릇을 보니 기름얼룩이 남아 있고, 반찬이 담긴 그릇도 깨끗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짬뽕 맛이 좋다고 해도 그릇을 본 순간 입맛이 다 달아났습니다. 이후로 저는 그 식당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금 그릇, 은그릇이라 할지라도 그릇이 더러우면 사용하지않습니다.
반면에 투박하고 값싼 그릇이라 할지라도 깨끗하게 잘 닦여있으면 더러운 금 그릇, 은그릇은 제쳐두고 선택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릇의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은 깨끗함, 즉 정결함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화려한 삶을 살아가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권력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정결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선택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겉이 아무리 번지르 한다고 하더라도 속이 정결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버리십니다.
오늘 이후 저와 여러분의 중심은 정결하기 원합니다. 거룩함이라는 거창한 단어로 우리를 포장하기 보다는 삶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정결함을 지켜나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이후로 제사장으로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조금이라도 더러운 것들은 피하여 정결함을 지켜나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직 정결한 중심으로 하나님을 바람으로 주님께서 우리들을 거룩하게 하심을 누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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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살아도, 정결한 맘 주시옵소서, 항상 진실케, 신실하게 진실하게, 우리 함께 기뻐해,
위대하고 강하 신 주님, 거룩하신 하나님,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찬송가 : 420장 너 성결키 위해, 94장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595장 나 맡은 본분은, 270장 변 찮는 주님의 사랑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