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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ubf 부활절 메시지 청년아 일어나라
누가복음 7장 11-누가복음 7장 17절
요절 누가복음 7장 14절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누가복음 7,8장에는 예수님 능력의 절정으로 부활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죽은 청년을 살리십니다. 죽은 청년이 살아난다는 일이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일을 하십니다. 부활의 예수님께서 그런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의 참된 의미는 무엇입니까? 부활의 주님이 지금도 살아계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부활의 주님께서 여기서 이런 동일한 일을 이루십니다. 죽은 자와 같이 무기력하고 절망하고 더러운 청년들을 힘 있고 소망 넘치고 깨끗한 자들로 변화시키십니다. 우리 가운데도 청녕이 일어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부활절에 우리ubf 젊은이들이 하늘을 향하여 높이 뛰어오르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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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 독자의 죽음)
11,12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 쌔 제자와 허다한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예수님은 제자들과 무리들과 함께 갈릴리에서 나인이라는 성으로 가셨습니다. 나인성은 예루살렘에서 40킬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나인은 기쁨이라는 뜻이지만 그곳에서 전혀 기쁘지 않은 슬픈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젊어서 남편을 잃고 슬펐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죽은 후 시집도 가지 않고 외아들에 소망을 두고 외아들을 키웠습니다. 외아들은 청년이 되었습니다. 아들이 자라며 남편이 죽은 슬픔도 잊혀져 갔습니다. 그런데 그 외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죽었습니다. 과부는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과부의 눈에는 한없이 눈물이 나왔습니다. 아들의 죽음과 함께 남편의 죽음도 생각나서 울었습니다. 청년의 죽음은 과부 한 사람만의 슬픔은 아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모든 사람들의 슬픔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도 청년의 죽음을 통하여 인생무상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울며 장지를 향해서 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죽음의 행렬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실존적인 모습입니다. 우리는 죽음의 행렬로 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죽음이 모든 사람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은 죽은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산 사람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빼앗아가고 무로 만듭니다. 소펜하워는 죽음으로 모든 사람들이 슬퍼하며 태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요즘 젊은이도 죽음의 권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슬픔과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요령잡이는 이렇게 했을 것입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흐 어하. 벚꽃은 피었구나. 아름답게 피었구나. 어흐어하 벚꽃 진다. 설워마라. 때가 되면 지는거라. 어흐 어하 노인도 죽지만은 청년도 죽는구나. 어흐 어하" 사람들은 요령잡이의 상두가를 들으며 과부와 함께 슬퍼했습니다. 화창한 봄에 세월호 아이들이 죽고 천안함 청년들이 죽었습니다. 아무도 이들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위로해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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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말라)
13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예수님은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슬픔을 함께 나누셨습니다. 외아들을 잃은 슬픔을 동참하셨습니다. 하나님도 자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에서 잃으셨습니다. 에수님도 외아들인 자신을 잃고 슬퍼하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과부를 위로해주었습니다. 과부는 우연히 예수님과 마주쳤습니다. 과부는 백부장과 같이 믿음으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일방적으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어가시면서 죽어가는 인간의 모든 슬픔에 동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긍휼이 넘치는 분이십니다. 예담이가 간혈관종으로 고통하는 아픔을 동참하시고 그 부모의 고통에 동참하십니다. 예수님은 과부에게 울지말라고 위로하였습니다. 생명의 예수님은 우리를 위로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부활이요 생명의 주님만이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우리를 진정 위로해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죽음이 잠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잠으로 보면 우리는 누가 죽어도 마음에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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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아 일어나라)
14,15절을 보십시오.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 예수님은 관 가까이 오셔서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당시에 율법에 의하면 죽은 자가 누워있는 관에 손을 대는 것은 부정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적으로 부정한 그 일을 긍휼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관에 손에 대셔서 죽음의 행렬을 막으셨습니다. 그러자 관을 멘 자들이 섰습니다. 당시는 관 뚜껑을 열고 행여를 멨습니다. 예수님은 큰 소리로 시체를 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그러자 관속의 청년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엄마!" 하며 엄마의 품에 안겼습니다. 과부의 모든 슬픔은 사라졌습니다. 함께 따라온 조문객들도 과부와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만 하시면 죽은자가 살아납니다. 우리가 예수님 말씀만 들으면 죽음의 문제는 해결됩니다. 부활의 주님은 다시 오시는 그날 우리의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날 것입니다. 우리는 강하고 썩지 않고 아름다운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청년을 살리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한마디로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청년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이름을 아셨지만 이름을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야, 삭개오야, 사울아, 이렇게 그들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이때만은 청년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냥 청년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청년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청년아!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청년은 관속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청년은 일어나야 합니다. 청년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청년은 정열이 있습니다. 청년의 피는 뜨겁습니다. 청년은 거선의 기관과 같이 힘이 있습니다. 무기력하고 피곤해하고 곤비한 것은 청년이 아닙니다. 매일 피곤해하는 젊은이들은 나이는 청년이라도 마음은 늙은이입니다. 예수님은 청년이 넘치는 힘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다음으로 청년은 꿈이 있습니다. 늙은이는 과거를 생각하지만 청년은 미래를 생각합니다. 청년은 미래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청년은 미래를 말하고 세계를 정복하고자 하는 원대한 꿈이 있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나이는 청년이나 마음은 늙은이입니다. 예수님은 청년이 꿈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청년은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개척합니다. 세계를 향하여 나가는 것이 청년입니다. 청년은 순수합니다. 청년은 순수하게 진리를 사랑합니다. 청년은 현실에서 이익보다는 무엇이 옳은가를 생각합니다. 진리가 무엇이냐를 따집니다. 청년은 진리를 사랑합니다. 진리를 위해서 밤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 청년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진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청년입니다. 예수님은 청년이 진리를 위해서 도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나라의 독립 운동을 하고,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이 청년이고, 복음 사역을 한 사람이 청년들입니다. 하지만 죽은 자는 무표정합니다. 차갑습니다. 힘이 없습니다. 무섭습니다. 죽은 자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죽은 자는 꿈도 없습니다. 사랑도 없습니다. 도전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죽은 자에게 청년아 일어나라고 명령하십니다. 청년은 청년답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청년은 청년아 일어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생명을 얻고 힘을 얻어야합니다. 우선적으로 부활의 주님은 우리에게 정열을 주십니다. 여러분은 청년입니까? 요즘에는 나이는 젊지만 늙은이 같이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기력하게 살고 있습니다. 아모스서 8장에 보면 늙은 청년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아무리 젊은 남녀라도 피곤하고 곤비하게 됩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젊은이들도 피곤하고 지치게 됩니다. 송장처럼 눕기를 좋아하고 항상 꾸벅꾸벅 졸기를 잘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예수님, 생명의 예수님, 창조주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면 힘이 넘쳐납니다. 부활의 주님은 우리에게 청년아! 일어나 힘을 내라 명령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듣고 힘을 얻어 일어나야합니다. 부활의 주님은 또한 꿈을 주십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결혼하여 현모양처가 되고 직장 잡고 한 집의 가장이 되는 것이 꿈입니다. 애인이나 사귀고 사귄 날짜나 새고, 초콜릿 주고 사탕주고 꽃 사주고 빼빼로 사주고 이런 것이 이들의 관심사입니다. 세계를 삼키는 꿈이 없습니다. 하지만 부활의 주님은 우리에게 비전을 주십니다. 부활의 주님은 성령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성령이 임하면 어린이 젊은이 늙은이 모두가 꿈을 꾸고 환상에 사로 잡히고 미래를 예언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꿈에 의해서 좌우됩니다. 우리는 꿈을 꾸는 데 돈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꿈을 꾸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들은 자신과 현실을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바라보면 꿈을 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활의 예수님을 믿으면 바라보면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청년아 일어나라는 말씀은 청년아 일어나 꿈을 꾸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꿈꾸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세계만민을 구원하고자 하는 꿈을 꾸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의 조상이요. 열국의 아비로서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그에게 복을 주어 이름을 창대케하고 복이 되게 하는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온세계에 하나님 영광이 가득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꿈을 꾸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지도자가 되는 꿈을 주셨고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유비에프에게 세계 캠퍼스 선교의 꿈을 주셨고 그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진국 선교도 이루어 주셨고 공산권 선교도 이루어 주셨고 제 삼세계의 선교도 이루어 주셨습니다. 예수님도 세계에 천국을 건설하는 꿈을 꾸셨습니다. 예수님의 꿈이 바로 나의 꿈이요 우리의 꿈입니다. 청년이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청년아 일어나라는 명령은 일어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도전해야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시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처음 인간을 만드실 때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땅끝까지 가서 나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계획을 하고 불가능에 도전해야합니다. 저에게도 평신도 목자로서 천안을 개척하는 꿈을 주셨고 그 꿈에 도전하였고 그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지금은 복음을 소개하는 성경 66권의 강해의 카페가 십만명의 회원이 되게 하실 꿈을 꾸고 있습니다. 강해서를 만들어서 각 권에 십만 권 이상 판매하는 꿈이 있습니다. 이제 66권 강해서를 완성하고 두 번째 로 강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천안 유비에프는 5천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천안 50개지부를 개척하는 꿈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부활절부터 가정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 나라를 교회와 가정과 삶의 현장에 건설하는 꿈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부활절 날 새로운 꿈을 꿉시다. 그래서 나중에 오늘 부활절을 기념되게 합시다. 부활의 주님은 청년에게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하십니다. 이번 스프링바이블캠프도 새로운 도전입니다. 저도 요즘 영어회화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예닮이는 미국 캠퍼스 진학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청년을 살리셨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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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지자 예수님)
16,17절을 보십시오.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사람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임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움을 느끼고 백부장이 두려움을 느꼈듯이 그들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경외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경외심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큰 선지자, 그리스도로 여겼습니다. 죽은 자를 살린 엘리야나 엘리사보다 더 큰 선지자로 여겼습니다. 사망권세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이제는 예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두려워하면 다시는 사망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보내사 백성을 돌보십니다. 하나님은 죽음의 권세에 시달리는 자를 일방적으로 긍휼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이 사망권세에 시달리는 이스라엘 민족을 찾아오셔서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것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찾아오셔서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 우리에게 죽음의 두려움에서 자유케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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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젊은이여 꿈을 꿉시다.)
14절을 요절을 다시 보십시오.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우리는 나이를 먹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나이만 먹어야지 영혼의 나이까지 먹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육신은 날로 후패하지만 우리의 영혼은 날로 새로워져야합니다. 우리는 점점 젊어져야합니다. 카이스트에 네 명의 학생이 자살하였습니다. 한 명의 교수가 자살하였습니다. 이런 자들을 도우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청년은 일어나 꿈을 꾸어야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청년답게 힘이 넘치고 꿈이 넘치고 도전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틴루터킹목사는 꿈을 꾸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 위에서 노예들의 후손들과 노예소유주들의 후손들이 형제애의 식탁에서 함께 자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모든 골짜기들은 메워지고, 모든 언덕과 산들은 낮아지고, 거친 곳은 평평해지고, 굽은 곳은 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그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우리도 이 부활절에 교회와 가정과 나의 학교와 직장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나타나는 꿈을 꿀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한마디 청년이여 꿈을 꾸자 천안 ubf 부활절 메시지
천안 ubf 부활절 메시지 청년아 일어나라
말씀 누가복음 7장 11-누가복음 7장 17절
요절 누가복음 7장 14절
누가복음 7장 이부 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