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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립니다] 2019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취소
기사입력 2019-01-08 21:12:28
2019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으로 발표됐던 박신우씨의 작품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의 당선을 취소합니다. 이 작품은 인터넷 블로그 ‘고든의 우주이야기’의 내용을 출처 표기 없이 가져와 창작한 것으로, 표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심사위원단의 최종 판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당 심사위원들은 “2019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는 심사과정에서 출처나 주석 없이 투고되어 당선작으로 선정되었으나, 작품 발표 후 일어난 논란을 심사숙고한 결과 표절의 시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심사의 엄정성을 위해 당선을 취소하기로 결정하였다”고 당선 취소 이유를 밝혔습니다. 세계일보는 신춘문예 응모와 심사에 대한 엄정한 기준을 적용한다는 차원에서 당선을 취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응모자는 이 결정을 수용했습니다.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 / 박신우
별이 깃든 방, 연구진들이 놀라운 발견을 했어요 그들은 지금까지 발견된 별 가운데 가장 크기가 작은 별을 발견 했습니다 그 크기는 목성보다 작고 토성보다 약간 큰 정도로, 지구 열 개밖에 안 들어가는 크기라더군요 세상에 정말 작군요, 옥탑방에서 생각했어요 이런 작고 조밀한 별이 있을 수 있다니 하고 말이죠 핵융합 반응 속도가 매우 낮아서 표면은 극히 어둡다고 합니다 이제야 그늘이 조금 이해되는군요
이 별의 천장은 매우 낮습니다 산소가 희박하죠 멀리서보는 야경은 아름다울지 몰라요 어차피 낮에는 하늘로 추락하겠지만 그래도 먼지가 이만큼이나 모이니 질량에 대해 얘기할 수 있군요 그건 괜찮은 발견이에요
먼 곳에서 별에 대해 말하면 안돼요 다 안다는 것처럼 중력을 연구하지는 말아야죠 피아노 두드리듯 논문을 쏟아내지 말아요 차라리 눈물에 대해 써보는 게 어때요 별의 부피를 결정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둘레를 더듬는 일이죠 옥상난간을 서성거리는 멀미처럼 말이에요
여기 옥탑에서는 중력이 약해서 몸의 상당부분이 기체로 존재해요 그래요 모든 별들은 항상 지상으로 언제 떨어질지 숨을 뻗고 있는 거죠
심사평 - 천양희·최동호
"자신의 존재 탐색 … 참신하고 발전 가능성 돋보여”
본심에 넘겨진 20명의 응모작 중에서 마지막까지 거론된 것은 황미현의 「풍선론」과 김성신의 「이미그레이션」, 박신우의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 하미정의 「낙타 그리워하다」 등 네 분의 작품이었다.
눈에 띄는 발군의 작품이 보이지 않는다는 전반적인 소견에도 불구하고 위의 네 분의 작품은 일정 수준에 도달해 있었으며 오랜 시적 수련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었다. 김성신의 작품은 이민이라는 시사적인 소재를 시로 잘 다루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외국어의 과다한 사용이 어색하다고 지적되었다. 하미정의 시는 흥미로운 시적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지만 소재나 결말에서 새로움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최종적으로 검토 대상이 된 시는 「풍선론」과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 두 편이었다. 심사자들은 상당한 시간 동안 양자의 장단점을 진지하게 비교 검토하였다. 「풍선론」은 이미지도 분명하고 시적 언어도 안정된 모습을 보여 주었으며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는 옥탑방의 화자를 통해 발견이라는 새로움을 무리 없이 전개하고 있었다. 먼저 시적 완성도라는 점에서는 「풍선론」이 앞서 있었으나 그로 인해 발전 가능성은 작아 보였고 마지막 결말의 처리가 추상적이었다.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는 완성도가 상대적으로 미진한 대신 참신성이나 발전 가능성은 더 높게 보였다. 여기서 심사위원들은 숙고의 과정을 거쳐 신춘문예 본래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참신성을 더 높이 평가하기로 하고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이 시는 질량이나 중력, 기체 등 자연과학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이를 어색하지 않게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옥상 난간을 서성거리는 화자가 가장 작은 별의 특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생의 구체성의 부여인 동시에 시적 확장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심사위원들은 의견이 일치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아깝게 탈락한 분에게는 격려의 말씀을 전해 드린다.
당선소감 - 박신우
"옷 보는 눈 키우듯… 시 쓰는 감각을 키웠다”
최근 몇 년 동안, 옷을 많이 사 입었다. 계절마다 한두 벌로 버티던 내가 술값도 아껴가며 옷을 많이 사 입었다. 유명한 메이커도, 그다지 재질이 좋은 옷들도 아니었지만 검은색 일색이던 내 옷장에도 여러 색깔의 옷이 늘어갔다. 옷을 바꾸니 밖을 나가는 횟수도 많아졌다. 만날 사람이 없어도 공연히 새 옷을 입고 번화가로 나갔다. 인터넷에서 산 옷들은 몸에 맞지 않는 것이 많았다. 굳이 수선하거나 하지 않고 밑단을 접어 올리거나 허리끈을 조여 입었다. 그렇게 몇 벌의 옷을 버리고 나서야 옷을 보는 눈이 조금 생겼다. 점점 몸에 맞는 옷이 늘어갔다. 그렇게 옷장이 채워지듯, 올해도 나는 계속 시를 쓰고 있었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가 없었다면 내게 맞는 옷을 찾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연락 한 번 제대로 안 하는 못난 제자를 응원해주신 안도현 교수님, 송준호 교수님, 곽병창 교수님. 세 분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지금쯤 당선 소식을 듣고 아픈 배를 움켜쥐며 열심히 쓰고 있을 문창과 학우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약값 대신 술값을 지불하겠다.
가족들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집에도 잘 안 올라오고 전화도 잘 안 하는 못난 아들이었다. 형에게는 항상 도움만 받는 동생이라서, 동생에겐 잘 챙겨주지 못했던 형이라 미안한 마음이 크다. 부모님께는 가장 말썽쟁이였던 둘째 아들의 늦은 성장기라 생각하고 조금만 더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리고 싶다.
어려운 결정을 내리셨을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똑바로 걸어도 헤맬 수 있어 좋은 이곳에서, 열심히 쓰겠노라고, 당선 소감을 계약서 삼아 약속드린다.
△1992년 포항 출생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재학 중
https://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209
'블로그 글 무단인용' 신춘문예 당선작 표절인가 아닌가
[오피니언] 문학표절에 대한 기준정립이 필요하다
2019-01-08 홍형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인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를 두고 표절 논란이 일고 있다. 인기 과학 블로거 ‘고든’의 글과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제목은 완전히 일치하며 내용도 30%가량이 원문을 차용했다. 출처를 밝히지 않고 별다른 가공 없이 그대로 활용한 것.
하지만 주최측은 이를 표절로 판단하지 않았다. 논란이 일자 심사위원들은 “문학 작품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을 인용한 창작품이다. 남의 글을 빌려와서 자기 글로 소화시킨 차운시(次韻詩) 같은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설득력 없는 말은 아니다. 실제로 당선작을 살펴보면 원문을 바탕으로 나름의 사유와 감성을 웅숭깊게 펼쳐냈기에 오리지널리티가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따져봐야 할 대목은 몇몇 있다. 아래는 당선작 심사평의 일부다.
“완성도가 상대적으로 미진한 대신 참신성이나 발전 가능성은 더 높게 보였다. 심사위원들은 숙고의 과정을 거쳐 신춘문예 본래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참신성을 더 높이 평가하기로 하였다. 이 시는 질량이나 중력, 기체 등 자연과학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이를 어색하지 않게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요약하면 경쟁작에 비해 시적 완성도는 아쉽지만 자연과학 용어를 잘 활용해서 참신하다는 게 되겠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당선자는 바로 그 대목을 차용했기 때문이다. 심사에서 강점으로 인정받은 대목이 자신의 오리지널이 아니란 소리. “눈에 띄는 발군의 작품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 아래 최종심이 치러졌음을 감안할 때 에센스가 타인의 것임이 미리 공지됐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과학적 사실을 인용했다는 대목에도 따져볼 지점이 다분하다. 고든의 블로그를 둘러보면 과학적 사실을 교과서적, 기술적으로 설명한 콘텐츠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런저런 과학 내용을 나름의 시선과 필치로 풀어낸 내용으로 가득하다. 분명 과학 콘텐츠인데 문학에 기대하는 지점이 은근히 배어 있다. 그의 블로그를 구독하는 2만5000여 명은 바로 여기에 매료된 것 아닐까? 당선자 역시 마찬가지일 테고.
문학 외엔 죄다 잡문?
아울러 언급하고 싶은 것은 문학 외의 다른 글을 ‘잡문’이라고 부르며 낮춰 보는 행태다. 당장 나부터 ‘이제 잡문 그만 쓰고 소설에 매진하라’는 말을 몇 차례나 들었다. 지난달엔 「문학의 몰락, 잡서의 득세」라는 제목의 기사까지 뜰 만큼 이런 심리는 문학계에 만연해 있다. 문학과 다른 글 사이에 위계를 두는 것이다.
오만한 태도다. 그동안 불거진 표절 논란을 살펴보면 블로그에서 아이디어나 모티브를 얻은 경우가 제법 된다. 고매한 문인이 보기엔 죄다 잡문일 수 있겠으나 실제론 동등한 지위를 갖는 글이다. 당연히 저작권도 법으로 인정된다. 이번에 당선자가 차용한 고든의 블로그 좌측 하단을 보면 '저작자 명시 필수, 영리적 사용 불가' 둘을 지키는 선에서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다고 공지돼 있다. 당선자는 둘을 모두 어긴 셈이다.
수많은 작가와 지망생이 이를 무시한다. 문학 작품을 베끼면 표절임을 알기에 주의하지만 다른 종류의 글을 참고할 때엔 그렇지 않다. 그나마 단행본, 신문 기사 등을 활용할 때에는 눈치껏 출처를 명기하지만 블로그, 게시판 포스트 등은 다르게 대할 때가 잦다. 그 또한 누군가가 공들여 쓴 저작물이고 법적 권리를 가짐에도 낮춰 보는 것이다. 잡문 취급하는 심리 때문인 듯한데 자성해야 할 대목이다.
블로그 등 온라인 상의 글에는 대부분 저작권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다. 고든의 블로그를 인용할 때는 저작자를 표시해야 하고 영리목적으로는 이용할 수 없다.
블로그 등 온라인 상의 글에는 대부분 저작권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다. 고든의 블로그를 인용할 때는 저작자를 표시해야 하고 영리목적으로는 이용할 수 없다.
문학도 시대를 반영하며 진보해야
정리하자. 이번 건을 두고 표절이냐고 물으면 나는 그렇다고 답하겠다. 응당 지켜야 할 기본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의를 가지고 훔친 것이냐고 물으면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고 답하겠다. 나름의 오리지널리티가 있고 방법 또한 너무 순진했다. 하지만 그것이 면죄부를 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경연에서는 무엇보다 공정성이 우선시돼야 마땅하다. 등단이 우리 문학 풍토에서 가지는 의미를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딱하다, 가능성 있다 등의 이유로 묵인하는 건 공정하지도 않고 그다지 문학적이지도 않다.
물론 이는 나 개인의 견해일 뿐이다. 정반대 시선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테고 당연히 존중한다. 하여 표절이라고 확언하지 않겠다. 그저 이것 하나만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문학 표절에 대한 기준을 정립해서 공유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 그러지 않으면 이와 같은 논란이 계속 반복될 게 빤하다. 잠깐 시끄럽다가 흐지부지 넘어가는 꼴을 언제까지 더 봐야 하나?
혹자는 이야기한다. 문학, 특히 시에도 그런 기준을 엄격하게 들이대면 세상이 너무 팍팍해지지 않겠냐고. 동의하지 않는다. 문학 또한 우리 사회의 일부이기에 함께 준수해야 할 지점은 존중하고 지키는 게 옳다. 그래야 시대를 반영하며 발맞춰 진보할 수 있다. 현재로선 문학 홀로 시대에 뒤처져 고립됐다고 생각하는 게 비단 나뿐일까?
*이 글이 게재된 다음날인 2019년 1월 8일 오후 9시쯤 세계일보는 신춘문예 시부문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 당선을 취소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필자 홍형진은 작가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010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소설보다 다른 분야 글쓰기에 치중해왔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등에 칼럼을 연재했으며 한때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 편집위원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