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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육회 제1543회 정기음악감상회
82분간의 면벽좌선(面壁坐禪)
― 브루크너 7번 교향곡을 듣다
변준석
브루크너와의 첫 만남
아마 7,8년 전이 아니었던가 싶다. 11월의 어느 일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묘사를 지내기 위해 선산이 있는 청도를 향해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KBS 1FM 라디오를 틀어놓았다. 차는 가창 댐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처음 듣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안개 자욱한 호수 위를 나룻배 한 척이 소리 없이 지나가는듯한 느낌의 곡이었다. 늦가을 이른 아침의 분위기와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왠지 마음이 끌렸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곡이지? 헐티재를 넘어서 용천사 앞을 지날 때 연주가 끝나고 멘트가 나왔다. “브루크너 7번 교향곡의 제2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브루크너가 누구야? 브루크너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브루크너, 그는 누구인가?
안톤 브루크너(Josef Anton Bruckner)는 1824년 9월 4일 오스트리아의 작은 도시 안스펠덴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소년 시절에는 성 플로리안 성당의 성가대원으로, 청년 시절에는 같은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하였으며, 장성해서는 린츠 대성당의 오르간 연주자로도 활동했다. 이때 바그너의 음악을 듣고 크게 감동받아 작곡을 시작했다. 1868년 빈 음악원 교수가 되어 빈에 정착했으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작곡에 매진하였다. 1896년 10월 11일 빈에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그의 분신과도 같았던 성 플로리안 성당의 오르간 밑(!)에 안장되어 있다.
깊은 신앙심을 지녔으며 한평생 경건하게 살았던 브루크너는 몇 개의 종교 합창곡과 실내악을 작곡하기도 하였지만, 그의 음악의 본령은 교향곡이었다. 브루크너는 2개의 습작(00번과 0번)을 포함하여 모두 11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다.(마지막 9번은 미완성이다.)
브루크너는 대단히 소심한 완벽주의자였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고치고 또 고쳤다. 이러한 수 차례의 개정 때문에 그의 작품은 여러 가지 판본이 존재한다. 초판본 외에 하스판, 노바크판 등이 주로 연주되고 있는 판본이다.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귀에 쏙 들어오는 음악,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은 아니다. 브루크너 교향곡 감상은 지리산 종주와도 같다. 연주 시간도 긴 데다 선율의 호흡도 대단히 길다. 인내심 없이는 끝까지 듣기가 어렵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끈기 있게 버티면서(!) 웅대한 그의 음악 속에서 서서히 변화해나가는 역동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마침내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어마어마한 카타르시스의 분출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침내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을 때의 그 희열 같은.
브루크너 7번 교향곡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브루크너 교향곡 중에서도 그나마 가깝게 느껴지는 작품을 고른다면 ‘낭만적(Romantic)’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4번 E♭장조와 7번 E장조가 될 것이다.
7번 교향곡은 1883년 완성되어 이듬해 초연되었다. 브루크너라는 무명 작곡가의 이름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주목받게 된 게 이때부터이다. 이때 그의 나이 60이었으니, 그야말로 대기만성이라 하겠다. 브루크너의 출세작인 7번 교향곡은 언뜻 보기에는 음악 양식이나 구성 방식이 브루크너의 다른 교향곡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교향곡을 잘 들어보면 아름다운 선율이 계속 이어지고, 노래하는 현악기와 서정적인 목관 악기가 부각된 데다 금관 악기의 강한 음색이 절제되어 있어 듣기에 무리가 없다. 아마도 이런 점들이 초연의 성공 요인으로 작용한 듯하다. 오늘날에도 7번 교향곡은 브루크너의 교향곡들 가운데 가장 인기가 있으며, 특히 내가 처음 들었던 제2악장은 바그너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송곡으로 작곡되어 널리 사랑받고 있다. (브루크너 자신의 장례식에서도 이 악장이 연주되었다고 한다.)
7번 교향곡은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악장 Allegro moderato
제2악장 Adagio. Sehr feierlich und sehr langsam(아주 엄숙하고 아주 느리게)
제3악장 Scherzo. Sehr schnell(매우 빠르게)
제4악장 Finale. Bewegt, doch nicht schnell(격동적으로, 하지만 빠르지 않게)
1악장은 브루크너 교향곡의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현악기의 잔잔한 트레몰로로 시작해 서서히 해가 떠오르듯이 주제가 전개된다. 제1주제는 호른과 첼로 소리가 합쳐진 독특한 음색으로 3마디에 걸쳐 무려 2옥타브나 상승하는 급격한 움직임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브루크너가 꿈 속에서 들었다는 이 주제는 추진력 있고 대담한 후반부 선율로 인해 더욱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1악장에서 시작된 장대한 드라마는 바그너의 죽음을 애도하는 2악장 아다지오의 탄식으로 이어진다. 앞에서 내가 ‘안개 자욱한 호수 위를 나룻배 한 척이 소리 없이 지나가는듯한 느낌’이라고 표현했는데, 어쩌면 2악장은 바그너의 지친 영혼을 실은 배가 피안을 향해 평화롭게 가고 있는 정경을 묘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2악장은 연주 시간이 20분이 넘는 느리고 긴 악장이지만 브루크너가 남긴 아다지오 악장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악장으로 손꼽힌다. 바그너 튜바와 비올라로 장엄하게 연주되는 2악장의 제1주제는 복잡 미묘한 느낌을 자아내는데, 이는 이 선율이 상당히 넓은 음역에 걸쳐 있을 뿐 아니라 단조와 장조가 끊임없이 교차하고 있는 까닭이다. 복잡한 감정의 음영을 암시하는 이 선율은 신비한 황홀경마저 느끼게 한다. 특히 이 주제의 후반부는 브루크너의 종교 합창곡인 「테 데움(Te Deum)」 중 제5곡 중 '저희가 주님께 바라오니 영원히 부끄럼이 없으리이다'의 선율에서 따온 것이어서 그런지 종교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풍긴다. 2악장 후반에 이르면 한 차례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게 되는데, 이때 브루크너 교향곡에서는 드물게 나오는 심벌즈와 트라이앵글과 같은 타악기가 등장해 듣는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3악장 스케르초는 2악장의 장송 음악과는 대조적으로 간결하고 명쾌하다. 3박자로 이루어진 이 악장에는 독특한 기본 리듬이 깔려 있다. 현악기들이 연주하는 이 음형은 첫 박이 8분 음표 2개로 이루어졌고 그 다음 두 박은 각각 4분 음표 하나로 구성된다. 이 리듬은 강박인 첫 박이 짧은 음표로 되어 있고 약박인 2째 박과 3째 박이 긴 음표로 되어 있어 3박자 음악의 자연스런 강세 구조에 반하고 있다. 따라서 음악에 강한 추진력을 부여하는 것이 특징이지만 잘못 연주하면 자칫 급해지거나 부정확해질 위험이 있어 연주자들에게는 매우 까다로운 리듬이다. 이 까다롭고 끈질긴 반복 음형을 배경으로 트럼펫이 마치 질문을 던지듯 연주하면 클라리넷과 바이올린이 이에 답한다. 그 중 트럼펫이 연주하는 부분은 브루크너가 수탉의 울음소리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선율이라고 전해진다. 빠르고 역동적인 스케르초 부분에 비해 3악장 중간에 등장하는 트리오 부분에서는 좀 더 부드러운 선율이 나타나 추진력 있는 스케르초 주제와 대비된다.
1·2·3악장을 거치는 동안 상승되어온 긴장과 이완의 드라마가 4악장에 이르러 마침내 종합된다. 4악장에서 브루크너는 1악장과의 통일성을 위해서 1악장 제1주제의 우아한 아치형 선율을 좀 더 활기찬 리듬으로 표현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리드미컬하게 변형된 아치형 주제는 4악장 마지막 종결부에서 웅장한 결말에 도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4악장 종결부에서 처음의 주제가 점진적인 상승을 통해 확신에 찬 음악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매우 경이롭다. 그것은 마치 신에 대한 완전한 긍정과 환희 그 자체를 표현하는 것 같다. 일찍이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브루크너와 말러의 음악을 비교하면서 “브루크너는 이미 신을 찾았고, 말러는 끊임없이 신을 찾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아마도 브루크너 7번 교향곡 4악장 종결부야말로 신을 찾은 브루크너의 음악적 환희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첼리비다케 그리고 뮌헨필
브루크너 교향곡을 특별히 좋아하여 즐겨 연주한 지휘자들이 몇몇 있다. 오이겐 요훔, 귄터 반트, 세르지우 첼리비타케 등이 그들이다. 그 중 첼리비다케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존재이다. 첼리(첼리비다케의 애칭)의 역량이 가장 잘 발휘되었을 때는 그가 뮌헨필을 이끌던 시기였다. 그러니, 한마디로 말해서 첼리가 이끄는 뮌헨필의 브루크너 연주가 최고이다.
첼리비다케(Sergiu Celibidache)는 1912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푸르트벵글러의 뒤를 이어 베를린필을 지휘함으로써 차기 베를린필 상임지휘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괴팍하고 고집스러운 성격과 거침없는 독설을 싫어했던 단원들의 반대로 결국 베를린필 포디움에 설 수 없었다. 이후 낭인처럼 떠돌던 그가 만년에 정착한 곳이 뮌헨필이었다. 1979년 뮌헨필 예술감독이 된 첼리는 그때까지만 해도 2류 오케스트라에 불과했던 뮌헨필을 세계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로 만들었다. 그리고 1996년 사망할 때까지 그의 오케스트라 뮌헨필을 지휘했다.
그는 녹음을 극도로 싫어했다. 음반에 담긴 연주는 깡통에 담긴 가공 식품 즉 통조림 같은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생전에 나온 그의 음반은 일부 해적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의 사후 주로 모니터용으로 남겨졌던 그의 연주들이 유족들의 동의하에 CD와 DVD로 쏟아져 나왔다. 그중 EMI에서 기획 제작한 첼리비다케 에디션은 연주 하나하나가 모두 뛰어나 첼리의 진면목을 잘 보여준다.(CD 48장으로 구성된 이 에디션은 작년에 4개의 저렴한 한정판 박스세트로 나뉘어 재발매되었다. 눈에 띄는 즉시 구매하라.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첼리의 연주는 느리다. 느려도 너~무 느리다. 다른 지휘자 같으면 CD 1장에 들어갈 곡도 첼리의 연주라면 2장이 필요하다. 그런데 극단적으로 느린 이 연주 속에 음이 살아 있다.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모든 악기들이 내는 소리가 하나하나 뚜렷하게 살아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연주를 ‘느림의 미학’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그의 연주가 이렇게 느린 데에는 불교 특히 선불교의 영향이 크다. 만년에 그는 선불교에 귀의했다. 그래서 참선하듯 연주했고, 그러다보니 자연 호흡이 느리고 길어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그의 느린 연주가 좋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돈을 쫓아 달려가는 폭주 기관차 같은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이제 ‘느림’은 죄악처럼 취급당하고 있다. 그럴수록 나는 시골 간이역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저 완행열차 같은 첼리의 느린 연주가 좋다. 좋아도 너~무 좋다.
또 한 사람의 브루크네리언을 위하여
수년 전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브루크너의 음악을 들은 한 늦깎이 클래식 애호가가 자칭 브루크네리언이 되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낯설고, 길고, 종교적이며 영성으로 가득 차 있어 접근하기 쉬운 음악은 아니다. 그래도 나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권하고 싶다. “일생에 한 번은 브루크너를 만나보라!” 혹시 아는가? 우연히 듣게 된 브루크너 교향곡 때문에 또 한 사람의 브루크네리언이 탄생할는지.
오늘 감상할 연주는 첼리비다케가 지휘하는 뮌헨필의 1990년 10월 18일 일본 도쿄 산토리홀 공연 실황 영상물이다. 올해 SONY에서 DVD로 발매되었다. 연주 시간은 무려 82분! 이 글의 제목을 ‘82분간의 면벽좌선’이라고 붙인 이유를 이제 아시겠는가? 다들 음악 감상에 정진하여 한 소식 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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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린왕자님께서도 서울의 누구처럼 브르크너에 제대로??? 저도 얼마나 본의 아니게 들었는지 좋아하지 않을수가 없어요. 대구에 있다면 좋았을텐데.....
허허. '그분'이 브루크네리언이라는 소문을 얼핏 듣기는 했습니다만... 가까이 계시면 함께 감상했으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날씨가 부쩍 추워졌네요. 서울에는 첫눈이 내렸다지요? 두 분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