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020.8.11) 문득 멋진 군신관계란 어떤 것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벌써 40일 이상 계속되는 지리하고
파괴적인 장마에 별별 생각이 다 드는데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멀리 중국 삼국시대의 유비와 방통이
떠오릅니다.
방통은 유비에게 익주 공격에 대해 묘책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비는 익주공격이 시기상조이며 의리에
반한다는 의견입니다. 하지만 방통은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천하통일의 희망은 멀어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방통은 말합니다. 천하는 결코 한가지의 원칙만 가지고 평정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예로부터
역취순수(逆取順守/ 비록 역리로 취하되 순리로 지킨다)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역취순수의 출전은
『사기 · 육가전(陸賈傳)』이다. 원문은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은 무력으로 천하를 차지했으나 민심에
순응해 나라를 지켰으니, 이렇게 문무를 겸용하는 것이 오랫동안 나라를 보존하는 기술이다
(且湯 · 武逆取而以順守之, 文武幷用, 長久之術也)”. 중국 고대 전통 관념에서는 무력으로 천하를 탈취하는
것을 역취(逆取)라 하고 문화와 교육으로 천하를 통치하는 것을 순수(順守)라 보았다. 여기서 역리[逆理]는
살아가는 이치를 거스름이란 의미이고 순리는 살아가는 이치를 거스리지 않는다는 의미.)
방통의 설명은 계속됩니다. 약간 정도에 어긋나는 일을 해서 목표를 취했다 할지라도, 그것을 취하고 난
이후에 순리에 맞게 다스린다 그런 이야기이지요. 실제로 역사를 보면 아주 간교하고 교활한 방식으로 상대를
굴복시켰지만 그 이후에 선정을 펼친 지도자들도 많지 않습니까. 궁극적인 목표인 정도로 가기위해 때로는
정도가 아닌 방법도 사용할 때가 있어야한다는 그런 말입니다. 기존의 익주 지사에 대해서는 나중에 의리로
좋은 자리에 임명해 준다면 잠깐 이런 방책을 쓴다하더라도 신의에 위배되겠습니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익주를 취하지 않으면 전혀 다른 사람들 다시말해 조조나 손권같은 이롭지 말아야 할 이들이
나중에 이롭게 될 것입니다.
이와같이 유비의 인생에 큰 전기가 된 촉을 획득하는 이른바 입촉, 그런 입촉을 설득하고 이끈 중추 가운데
한사람이 바로 방통입니다. 방통은 유비의 입촉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유비는 제갈량을 형주에
남겨 지키게 한 후 방통을 거느리고 촉(익주)로 공격해 들어갔습니다. 당시 유비의 군사이자 당대 최고의
책사인 제갈량이 형주에 그대로 남아있기에 조조와 손권을 비롯한 주변 지역의 라이벌들이 유비의 익주
공격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방통이 아직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갈량을
놔둔채 방통만을 데리고 익주공격을 감행한 것은 유비의 신의 한수로 읽혀집니다.
방통의 신통방통한 계책으로 익주를 손에 넣은 유비는 큰 연회를 열어 잔칫상을 차리고 음악을 연주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방통에게 오늘 이런 자리가 너무도 좋다고 밝힙니다. 그러자 방통은 얼굴빛을 고치고
말합니다. 남의 나라를 쳐서 획득한 뒤 마구 즐거워 하는 것이 어찌 어진 이의 군대가 보일 모습이겠냐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자 유비는 분노하며 그렇다면 무왕이 주나라를 친 뒤 노래 부르고 춤추며
즐겼는데 그럼 무왕도 어진 이가 아닌가라면서 화를 냅니다. 방통을 연회장에서 나가라고 고함칩니다.
방통은 뭔가 말할 것이 있는 듯 머뭇거리더니 이내 연회장을 나갔습니다. 신하들 앞에서 주군인 유비를
인의없는 사람이라 면박을 준 것에 유비의 마음이 어땠을까 짐작이 쉽게 갑니다.
방통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익주를 급습하고 장수들을 나포하는 등 계책을 진언한 것은 맞지만 계책은 계책인
것이고 일을 성사시킨 뒤에는 신하들 앞에서 인의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적진에
대한 공격이 조금 잘 풀렸다고 그냥 부어라 마셔라하면서 지도자가 좋아하는 모습은 인의롭지 않은
모습이라고 충고한 것인데 유비가 대노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유비도 인물로 치면 대단한 인물입니다. 유비는
크게 화를 내고 방통을 내쫓았지만 이내 자신이 화를 낸 것에 대해 후회하고 다시 방통에게 사람을 보내
연회장으로 되돌아 올 것을 청했습니다. 이에 방통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렇지만 방통은
앞서 있었던 발언에 대해 유비에게 사죄하지 않았습니다. 방통은 고집이 세어서 자기 잘못을 자기 입으로
절대 인정을 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자 유비가 먼저 입을 엽니다. 태연하게 먹고 마시는
방통에게 아까 일은 누가 잘못한 일이라고 생각하냐고 묻습니다. 방통이 대답합니다. 군신이 함께 잘못했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유비는 크게 웃더니 연회자리를 끝까지 지켰다고 합니다. 유비의 그릇됨을 잘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머리 좋은 사람은 많아도 머리 좋은 사람을 거느릴 수 있는 사람은 굉장히 드뭅니다. 유비는 비록
자신이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머리 좋은 사람을 거느릴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머리는 좋으나
성정이 급하고 고집이 강한 인재 방통을 유비는 충분히 품에 안을 수 있었던 사람이었고 방통도 그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군신의 관계 아니겠습니까.
옹졸한 군주 밑에서 일하면 방통같은 이는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언제라도 순식간에 토사구팽 그리고 숙청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갈 수 있습니다. 방통이 자기 성격의 조절이 때론 안됐지만 머리가 좋기
때문에 그런 것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머리가 좋다는 것은 보통 두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을 잘 파악하는 능력 다시말해 남의 말을 잘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을 잘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첫번째 머리 좋은 사람은 세상에 너무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하나 두번째같은
머리 좋은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이런 머리가 정말 좋은 머리입니다. 머리가 좋았지만 성격상
어느정도 문제가 있었던 방통과 그런 방통을 품에 안고 천하제패의 꿈을 펼쳐 나갔던 유비는 아직도 멋진
군신관계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과연 요즘 세상에도 이런 군신관계가 있을까 살펴봅니다. 물론 어느정도는 있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물질
만능주의에다 자기 손해볼 짓은 하지 않고 사는 사회 그리고 경쟁에 매몰된 사회에서 유비와 방통같은 이런
군신관계를 찾는 것은 아예 무리라는 판단이 섭니다. 그래도 자신의 사리사욕을 버리고 대의를 위해 노력하는
멋진 지도자 아래에 뛰어난 인재들이 모이게 되는 것은 아직도 변치않는 진리일 것입니다.
2020년 8월 11일 폭우가 쏟아지는 화야산방에서 정찬호.
첫댓글 방통이 봉추던가요?^ 잘 몰라서리~
맞습니다. 호가 봉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