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인 / 안희연
그는 다섯 개의 칼을 가졌다
나는 색이 곱고 결이 유순한 나무 도장을 하나 집어
그에게 건넨다
그는 먼저 구획을 나눈 뒤
칼을 골라 든다
이 자리에서 삼십 년을 했어요
요즘은 기계로 파는 데가 많지만 도장은 필시 칼맛이거든요
묻지 않은 말끝엔 잘 왔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나는 잘 왔다는 말을 생일 축하인 양 곱씹으며
가게 내부를 둘러본다
한쪽 벽면 가득 열쇠가 걸려 있고
한낮에도 불을 켜야 할 만큼 침침해서
이름을 일으키려면 그의 이마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안내 삼아야 한다
그는 여러 번 칼을 바꿔 든다
곡선을 위한 칼과 직선을 위한 칼
도려내는 칼과 깍는 칼
시작하는 칼과 끝맺는 칼을 지나
서서히 떠오르는 이름을 보면서
당신도 나를 이렇게 만들었겠군요
저 먼 지평선을 향해
무릎을 꿇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런데 말이에요, 이것들을 열쇠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열쇠 이전의 열쇠들은
자신이 태어나는 순간 열거나 잠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을까요
여는 방향이 더 아플까요 잠그는 방향이 더 아플까요
너무 오래 의자에 앉아 있어 의자가 되어버린 적막에게
잠시 속내를 털어놓는 동안
도장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생각보다 울퉁불퉁하고 기계로 판 것만큼 정교하지 않다
나는 값을 치르고 미닫이문을 끼익 연다
등 뒤에 다섯 개의 칼, 골몰하던 뒤통수를 남겨두고
문턱을 넘기 전 마지막으로 돌아본다
칼과 열쇠가 한통속인 이유를
열어야 할 문이 도처에 있는 세계에
나를 외롭게 남겨놓은 이유를 묻고 싶었다
-------------------------------------------------------------------------------------------------------------------------------------
개인적 감상
각인 / 안희연
그는 다섯 개의 칼을 가졌다
(신은 다섯 개의 창조 도구를 가졌다. 다섯 개는 많이 가졌다는 의미)
(6일째 인간을 창조했으니 그 전의 5일간 충분한 실험을 그친 것이다. 그 5일의 완벽함으로 인간을 창조했다)
나는 색이 곱고 결이 유순한 나무 도장을 하나 집어
그에게 건넨다
(인간을 만든 질료가 좋고 선하다는 의미)
(나를 제일 앞 문장에 배치한 이유는 나의 자율성을 강조하기 위함)
(자유의지는 선과 악, 행위, 나 이렇게 3요소를 필요로 한다)
그는 먼저 구획을 나눈 뒤
칼을 골라 든다
(신은 인간을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 먼저 구획을 나눈다, 인간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 자리에서 삼십 년을 했어요
(신의 창조능력이 뛰어나다)
요즘은 기계로 파는 데가 많지만 도장은 필시 칼맛이거든요
(기계적으로 만들면 잘 만들 수 있으나 역동성이 없고 역사가 없고 재미가 없다.자유의지 없는 인간은 의미가 없다)
묻지 않은 말끝엔 잘 왔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신은 '나'가 자유의지로 이 가게에 왔으니 잘 왔다라고 칭찬함)
(자신이 인간을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창조한 것에 대한 뿌듯함도 있다)
나는 잘 왔다는 말을 생일 축하인 양 곱씹으며
가게 내부를 둘러본다
(자유의지로 태어난 것에 대한 축복을 사유하며 신이 만든 세계를 둘러본다)
한쪽 벽면 가득 열쇠가 걸려 있고
(신의 세계는 자유의지의 세계이다)
한낮에도 불을 켜야 할 만큼 침침해서
이름을 일으키려면 그의 이마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안내 삼아야 한다
(이성의 빛이 없는 이 세계에서 신은 인간을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창조할 때 자신을 닮은 선한 존재, 이성의 빛을 가진 존재로 창조했다)
그는 여러 번 칼을 바꿔 든다
곡선을 위한 칼과 직선을 위한 칼
도려내는 칼과 깍는 칼
시작하는 칼과 끝맺는 칼을 지나
서서히 떠오르는 이름을 보면서
(인간을 매우 정교하게 창조했다. 곡선과 직선, 도려내고 깍는 공간감을 부여하고 시작과 끝을 통해 시간감각을 인간에게 부여한다)
당신도 나를 이렇게 만들었겠군요
저 먼 지평선을 향해
무릎을 꿇고 싶은 심정이 된다
(신도 도장공처럼 심혈을 기울여 인간을 만들었다. 경이로움을 느낀다. 경이로움에 대한 감각은 철학자나 예술가의 고유한 본성이다)
(너머의 세계, 신에 대해 경이로움과 감사를 표현)
그런데 말이에요, 이것들을 열쇠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런데 자유의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자유의지가 오히려 고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열쇠 이전의 열쇠들은
자신이 태어나는 순간 열거나 잠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을까요
(자유의지를 부여하기 전에는 선택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여는 방향이 더 아플까요 잠그는 방향이 더 아플까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는 태어나는 것이 고통일까요 아니면 죽는 것이 고통일까요)
(열고 닫는 자유의지에 대한 자각은 고통을 수반한다)
너무 오래 의자에 앉아 있어 의자가 되어버린 적막에게
잠시 속내를 털어놓는 동안
(신이 7일째 즉 최종 창조한 것은 휴식이고 적막이다. 적막은 예술의 본성이다)
도장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생각보다 울퉁불퉁하고 기계로 판 것만큼 정교하지 않다
(신은 인간을 정교하게 창조했지만 자세히 보면 신처럼 정교하지는 않다.)
나는 값을 치르고 미닫이문을 끼익 연다
등 뒤에 다섯 개의 칼, 골몰하던 뒤통수를 남겨두고
(갋을 치르는 행위, 미닫이문을 여는 행위는 모두 자유의지에 의한 행위이다)
(나는 자유의지로 신의 창조도구와 신의 골몰을 사유한다)
문턱을 넘기 전 마지막으로 돌아본다
칼과 열쇠가 한통속인 이유를
(나의 자유의지는 철저하다. 정교한 창조의 상징인 칼과 문제해결의 상징인 열쇠는 하나다)
열어야 할 문이 도처에 있는 세계에
(인간 세계는 불완전한 것이 많다. 자유의지로 해결해야 한다.)
나를 외롭게 남겨놓은 이유를 묻고 싶었다
(나로 대표되는 철학자나 예술가는 외롭고 고독한 존재이며 그래야 사유가 가능하다)
(예술가는 삶과 죽음의 문제, 형이상학에 대해 질문하는 존재이다)
1. 메시지
신이 인간에게 각인한 것은 자유의지, 이성의 빛이다.
신이 인간을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창조한 의미는 예술가처럼 질문하라는 의미이다. 인간은 불완전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신은 좋은 재질과 자신의 본성을 닮은 이성을 가진 존재로 골몰하면서 정교하게 창조한 것이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인간에게만 존재이해라는 메타인지 즉 개시성을 준 것이다.(이러한 개시성은 하나의 통일적 현상이고, 이 현상을 성립시키는 요소로는 정황성(처해있음, 기분), 이해(기투), 말(언어적 분절)이다)https://naver.me/FkdCn8aw
완전과 불완전, 자유의지와 무지, 신과 인간, 일상인과 예술가에 대한 사유를 형상화했다.
2. 이미지
- 자유의지의 이미지
- 도장의 이미지
- 예술가의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