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침문 <<조침문 弔針文>>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에, 미망인 모씨는 두어자 글로써 침자에게 고하노니, 인간 부녀의 손 가운데 종요로운 것이 바늘이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에 흔한 바이로다. 이 바늘은 한낱 작은 물건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희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 통제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손 가운데 지닌 지 우금 이십칠 년이라. 어이 인정이 그렇지 아니하리요. 슬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을 겨우 진정하여, 너의 행장과 나의 회포를 총총히 적어 영결 하노라. 연전에 우리 시삼촌께옵서 동지상사 낙점을 무르와, 북경을 다녀오신 후에, 바늘 여러 쌈을 주시거늘, 친정과 원근 일가에 보내고, 비복들도 쌈쌈이 나눠 주고, 그 중에 너를 택하여 손에 익히고 익히어 지금까지 해포 되었더니, 슬프다. 연분이 비상하여, 너희를 무수히 잃고 부러뜨렸으되, 오직 너 하나를 연구히 보전하니, 비록 무심한 물건이나 어찌 사랑스럽고 미혹지 아니하리요. 아깝고 불쌍하며, 또한 섭섭하도다. 나의 신세 박명하여 슬하에 한 자녀 없고, 인명이 훙완하여 일찍 죽지 못하고, 가산이 빈궁하여 침선에 마음을 붙여, 널로 하여 시름을 잊고 생애를 도움이 적지 아니하더니, 오늘날 너를 영결하니, 오호 통재라. 이는 귀신이 시기하고 하늘이 미워하심이로다. 아깝다 바늘이여, 어여쁘다 바늘이여. 너는 미묘한 품질과 특별한 재치를 가졌으니, 물중의 명물이요, 철중의 쟁쟁이라. 민첩하고 날래기는 백대의 협객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의 충절이라. 추호 같은 부리는 말하는 듯하고, 두렷한 귀는 소리를 듣는 듯한지라. 능라와 비단에 난봉과 공작을 수놓을 제. 그 민첩하고 신기함은 귀신이 돕는 듯하니, 어찌 인력의 미칠 바리요. 오호 통재라, 자식이 귀하나 손에서 놓일 때도 있고, 비복이 순하나 명을 거스를 때가 있나니, 너의 미묘한 재질이 나의 전후에 수응함을 생각하면, 자식에게 지나고 비복에게 지나는지라. 천은으로 집을 하고, 오색으로 파란을 놓아 곁고름에 채였으니, 부녀의 노리개라. 밥 먹을 적 만져 보고 잠잘 적 만져 보아, 널로 더불어 벗이 되어, 여름 낮에 주렴이며, 겨울 밤에 등잔을 상대하여, 누비며, 호며, 감치며, 박으며, 공그릴 때에, 겹실을 꿰었으니 봉미를 두르는 듯, 땀땀이 떠갈 적에, 수미가 상응하고, 솔솔이 붙여 내매 조화가 무궁하다. 이생에 백년동거 하렷더니, 오호 애재라, 바늘이여. 금년 시월 초십일 술시에, 희미한 등잔 아래서 관대 깃을 달다가, 무심중간에 자끈동 부러지니 깜짝 놀라와라. 아야 아야 바늘이여, 두 동강이 났구나. 정신이 아득하고 혼백이 산란하여, 마음을 빻아 내는 듯, 두골을 깨쳐 내는 듯, 이윽도록 기색혼절 하였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만져 보고 이어본들 속절없고 하릴없다. 편작의 신술로도 장생불사 못하였네. 동네 장인에게 때이련들 어찌 능히 때일쏜가. 한 팔을 베어 낸 듯, 한 다리를 베어 낸 듯, 아깝다 바늘이여, 옷섶을 만져 보니, 꽂혔던 자리 없네. 오호 통재라, 내 삼가지 못한 탓이로다. 무죄한 너를 마치니, 백인이 유아이사라, 누를 한하며 누를 원하리요. 능란한 성품과 공교한 재질을 나의 힘으로 어찌 다시 바라리요. 절묘한 의형은 눈 속에 삼삼하고, 특별한 품재는 심희가 삭막하다. 네 비록 물건이나 무심치 아니하면, 후세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과 일시생사를 한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오호 애재라, 바늘이여. 작성자 : 김영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