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을 찾아서
학술 “한국인은
화가 나있다……데이터로 입증”
서울대총동창신문 제490호(2019. 01.15)
서울대 행복연구센터 기획과제 ‘한국사회의 울분’ 연구책임자 유명순 보건대학원 교수
2,000여 명 대상 조사결과 54%가 울분
상태 - 통일 후 더 커질 사회적 스트레스 미리 막아야
얼마 전 광화문에서 ‘카풀 택시’에 반대하며
분신을 선택한 한 택시운전사의 죽음이 큰 충격을 줬다. 우리 사회에 극단적인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가 집단 트라우마, 감정혼란 상태에
있다고 진단한다.
최근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센터장 최인철 교수)가 발표한 ‘한국사회의 울분’ 조사결과 (2,204명 대상) 국민 54.6%가
울분 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증 울분으로 분류된 사람도
15%에 달했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는 2018년도 기획과제로 ‘사회공정성과 한국인의 울분’이라는 주제 아래 세 차례의 세미나를 개최했다. 첫 번째는 ‘정신 의학이 보는 외상후 울분장애’, 두 번째 ‘언론(국내 7개 일간지)에서
나타난 울분’을 다뤘고 마지막으로 2,000명이 넘는 사람을 대상으로 울분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에서 나타난 것은 ‘한국 사회가 울분을 조장하고 잉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12월 31일 연구책임자인
유명순(간호88-94) 모교 보건대학원 교수를 만나 ‘한국인의
울분’ 조사 결과를 들어봤다.
-울분, 시의 적절한 연구 주제 같다.
“한국이 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인구집단 전반에서 주관적 웰빙(행복, 만족, 건강한 삶 기대치 등) 점수가 낮다. 게임의 룰이 지켜지지 않고 사회가 각 개인에게 공정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래서
울분(鬱憤 embitterment)이란 주제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이 주제를 기획하기 전 삼성정신건강연구소의 의뢰를 받아 사회학자들과 공동으로
사회적 웰빙을 연구했다. 그러면서 ‘성공사회(successful
societies)’, ‘울분(embitterment)’
같은 책도 접했다. 울분이 사회, 심리, 경제, 문화, 의학 등
여러 학제간 연구로 의미있는 주제란 생각이 들었다. ‘앵그리 사회’로 불리는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중요한
변수로 잠재력이 있다고 봤다. 김홍중 모교 사회학과 교수는 울분 연구를 조명탄에 비유했다. 이 연구가 그 동안 가려져 있던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밝혀줄 거라 본다.”
그는 “울분 연구는 통일 이후 독일에서 구 동독 사람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됐는데 통일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덧붙였다.
“우리 내부에서도 탈북자의 울분 조사를 해 보면 굉장히 높게 나올 것
같다.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감염병과 철도만 중요한 게 아니다. 통일은
전 사회적 스트레스 원이 될 수 있다는 사례를 통해 보다 면밀하고 선제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
연구자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울분은
분노와 어떤 차이가 있나.
“울분에는 외부적 분노에 자기 자신을 향하는 골 깊은 내적 쓰라림이
결합돼 있다. 이 쓰라림은 주로 괴롭고 고통스러움, 답답함, 무력감, 자책감이 만들어내는데 이 감정들이 한자어 울(鬱)의 뜻처럼 빽빽하게 쌓여 분노와 중첩된다. 또 울분에는 내일을 비관하고 변화를 기대하지 않는 부정적인 미래전망이 포함된다.”
-3차에
걸쳐 울분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얻은 결론이라면.
“3차 세미나 토론자셨던
장덕진 서울대 교수님은 울분 연구는 10년을 끌고 갈 중요한 장기 연구라고 내다보셨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지난해를 포함 앞으로 2년 정도는 예비 조사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3차 세미나에서 다룬
설문 조사 결과를 갖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2018년 연구는 울분 연구가 시작된
독일의 조사 방법을 가져와 한국에 적용한 시범적 연구다. 그 결과 한국의 높은 울분을 데이터로 입증한
것이 가장 큰 결실이다. 이 과정에서 정말 많은 분들과 흥미로운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이 또한 향후 연구를 위한 중요한 성과였다.”
-사람들은
무엇에 분노하고 억울해 했나.
“감정에 상처를 주고, 아주
부당하거나 불공정한 일에 크게 울분 했다. 특히 자기가 한 노력과 기여가 보람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무효취급’ 당하는 것에 크게 울분 했다. 가령 본의 아니게 병 등으로 회사를 나가지 못할
때 그 전에 이뤘던 성과는 무시하고 현재 상황을 탓하는 것 등이다.
울분 정도에는 남녀 차이가 있다. 남성들은
정의에 어긋나는 일,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이 빠져나가는 일, 그래서
복수심을 느끼게 하는 일에 크게 울분하고 여성들은 감정에 상처를 주고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에 더 크게 울분 했다. 청년 세대는 그들에게 힘과 의지를 빼앗는 일,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도록
만들고 소외시키고 위축하게 만드는 일에 크게 울분 했다. 자신이 낮은 계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장애나 질병으로 무직이거나, 일을 구하고 있지만 구하지 못해 무직인
사람들이 더 크게 울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더 크게 울분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수긍이 간다.
“책 ‘행복사회’의 저자 홀(Hall)과
라몬트(Lamont)는 ‘가난한 사람의 삶이 최악으로 치닫는 것은 생애 도전을 더 많이 받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삶에는 일상이 입힌 상처들로 쓰러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들이 적다’고 지적했다. 개인적인 기질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보다 사회적 조건,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완충장치 등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한국인 50%가 울분 상태에 있다고 했는데, 유독 한국인이 울분이 높은 이유가.
“그 연구를 2019년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한국인의 기질 또는 한국 상황에 특별한 무엇이 있는지 면밀히 연구할 계획이다. 우리 사회에 분명 문제가 있다. 촛불, 태극기 집회에 전부를 거는 삶, 10대부터 재테크를 고민하고 고도의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조사결과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더 있다면.
“울분을 잉태하는 원천은 배반이다. 작든
크든 약속을 하면 지켜야 한다. 배반하면 배신감 들고 배신이 누적되면 사회가 공정하다는 믿음이 낮아진다. 그런 상태에서 이혼, 실직, 사업
실패 등 부정적 사건을 많이 겪으면 울분은 점점 커진다. 울분이 높은 사람들은 사회에 대한 신뢰도도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신뢰사회를 아무리 강조해도 울분을 낮추지 않으면 헛일이다. 주관적 계층인식에 대한 단서도 발견했다. 사회양극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경험은 비슷한 물질적인 수준에서도 주관적인 계층 위치를 더 낮게 인식하게 하더라. 낮은 주관적
계층인식은 끊임없이 부정적인 사회 비교를 하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높이고 불건강한 형태를 유발한다.”
-울분
극복에 대한 해법은.
“개인적 울분에서는 정신건강 관리 체제의 변화가 필요하다. 정신건강 상담 비용 등의 자가부담률을 낮추고 접근이 용이하도록 해야 한다.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 개선 노력은 물론이다. 또 기존 사회복지정책을 통해 사회적 지지를 강화하면서
개인의 긍정적 성과 경험 등 회복탄력성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대학과
학교의 다양성 인권 가치관 교육, 직장 내 인정 풍토 강화, 미디어의
포용 캠페인 등이다. 사회적 울분의 두 가지 요인은 규칙의 배반 그리고 힘의 전횡이다. 이 문제는 의식, 제도, 정치를
통한 포괄적 해법을 통하지 않고는 극복이 불가능하다.”
-앞으로
연구 방향은.
“앞서 10년 정도의 장기연구라고
말씀 드렸는데, 제가 볼 때 울분 연구는 융합과 다학제 연구가 빛을 낼 주제라고 본다. 그 점이 1차년도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특정 분야 소수 연구자로는 되지 않는다. 1차년도의 목표는 공론화였다.”
-흥미를
느끼는 동문들이 많을 것 같다.
“우리 연구는 열려 있다. 각계각층에
계신 동문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다린다. 1, 2차 세미나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가 있다. 피드백을 부탁한다.” 영상은 유튜브에 접속해 서울대학교보건대학원을
검색하면 볼 수 있다.
김남주 기자
유 동문은
서울대에서 보건학 석사 후 미국 UC버클리
보건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 사회과학의 관점에서 건강과 보건의료 시스템을 학습했고 위험 인식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건강 정보와 지식의 비대칭성이 내재하는 의료와 공중보건 분야에서 전문가와
의료 조직의 책무성, 일반인의 건강 위험 인식을 주로 연구하며 양적,
질적 분석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남편 주영기(인류86-90) 동문과 함께 쓴 ‘위험사회와 위험인식 (커뮤니케이션 북스)’, 공저 ‘아픈 사회를 넘어 (21세기
북스)’ 등이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