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추석연휴를 앞둔 즈음에 다리가 저리는 증상이 심해지더니 급기야 허리며 엉덩이 주변까지 주체할 수가 없을 정도로 불편함이 밀려왔다.
그 때 딱 어느날 무슨일이 방아쇠가 되었는지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단정을 지을 수가 없지만 그 보다 훨씬 앞선 시절의 전설같은 이야기들은 책을 쓸만큼 넘쳐난다.
맨 위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94년 여름, 녹십자 공무부에 근무할 때인데 강원도 어디인지 냇가로 야유회를 갔을때 이끼가 낀 보 위를 맨발로 걷던 중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심하게 찧었고 그 이후로 연중 서너차례씩 허리보호대를 차고 사나흘씩 안정을 취해야만 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마라톤을 시작한 뒤로도 잊어버릴만 하면 한번씩 허리가 불편한 증상은 찾아오곤 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6년 11월의 진주마라톤대회.
여러차례 투병기 속에 섞여서 이야기가 반복되었던지라 신선함은 떨어지는데 암튼 허리가 빠지는 느낌을 동반한 통증으로 서 있지도 앉아 있지도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풀코스를 서브3에 불과 25초 못미친 기록으로 완주하였고 허리는 완벽하게 회복이 되었다는 전설.
그 뒤로 2011년 춘천마라톤대회에선 허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일화가 있는데 이땐 29Km즈음에서 스펀지를 잡으려고 허리를 틀면서 문제가 생겨 이후 무려 13km를 걷듯이 뛰며 간신히 완주. 그렇지만 이때도 기록이 3시간29분대.
그런 뒤로 한동안 잠잠했는가 싶었는데...
아마도 작년엔 8월의 지리산 화대종주를 하며 얻은 부상이 무릎에만 한정되게 아니고 허리에 상당한 데미지를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뒷베란다 세탁기 앞 타일바닥에 비눗물이 쏟아져 있었는데 그걸 무심코 딛었다가 무릎이며 온몸을 삐끗했던 것도 의심이 가는 대목.
그리고 연휴 직전에 음양오행을 따지며 오링테스트로 검진을 하고 치료는 두꺼운 책을 등과 엉덩이에 대 놓고 쇠망치로 마구 내려치는 돌팔이한테 잘못 걸려들어 아마도 돌이킬수 없는 상황까지 이른게 아닌지 싶다.
그 뒤로 무려 6개월이 흐르는 동안 양방 한방 어떤 치료를 해도 몸 상태는 나아지지를 않았고 그런 몸을 가지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동아마라톤을 완주했던 것이다.
대회가 끝났으니 원점에서 문제를 풀어보려고 척추 MRI를 찍어봤고 그 결과 요추 5번과 천추(꼬리뼈) 사이의 추간판이 탈출하여 왼쪽 다리로 내려가는 신경을 누르고 있다는걸 확인하게 되었다.
송천동의 전문병원에선 칼을 데는 수술 이외엔 방법이 없겠다며 선택을 하라고... 결국 4월9일로 수술일을 잡기까지 했는데 주변의 이야기가 한결같이 한쪽 방향으로 흘러갔고 곡절을 거쳐 광주 본사 근처에 있는 척추전문병원을 찾게 되었다.
여기선 절제하는 수술 대신에 작은관을 넣어서 시술하는 방법을 제시했고 그에 따라 가능한 빨리 날을 잡아 입원을 하게 되었던 것.
월요일 이른 아침, 본사에 얼굴을 내밀고 말바우 사거리의 병원까지 걸어가 수속을 마치고 바로 수술실로 실려들어간다.
내 발로 걸어서 움직일 때와 침대에 누워 천정을 바라보며 밀려가는건 너무도 다른 느낌.
여러개의 문을 지나고 여러가지 절차를 거친 뒤 수술대에 엎드려 몸을 맡기는데... 오매...
항문 윗쪽의 어느 지점에서 피부를 뚫고 관을 삽입해 꼬리뼈 맨 아래에 있다는 구멍을 통해 척추를 따라 올라가다가 문제가 있는 지점에 이르러서 정확히 약물을 투입한다는 내용인데 말이 쉽지...
공포감으론 전신마취 못지않게 큰 시술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와 환자의 생활이 시작된다.
뭐 생활이랄것도 하나도 없긴 한데 그냥 누워만 있는게 전부니까
가만히 천정 보고 누워있긴 힘드니까 왼쪽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누워 시간을 죽이는 일상인데 이거야말로 신선놀음.
덕분에 사피엔스에 이어 보고 있던 '호모데우스'를 정독했고 수만년에 걸친 사피엔스종의 일대기를 여러각도에서 들여다보고 또 그들의 미래에 관해 예견까지 해보게 됐으니 몸은 비록 침상에 누웠어도 마음은 신의 경지를 왔다리갔다리.
병원생활 내내 만나는 입원환자들은 대부분 허리에 복대를 차고 있는데 오직 나만이 아무것도 없이 그냥 잘 돌아다니고 있다. 아마도 내가 제일 상태가 가벼운 환자인가본데... 뭐든지 상대적이다보니 심리적으론 훨씬 안정감이 든다. '난 환자도 아녀!'
공교롭게도 입원한 날이 생일날이라 여기저기 축하인사를 받던 과정에서 병원 입원사실이 전국으로 알려지며 병상체험 중계방송까지 자동빵이 되어버렸다.
전화나 메신저를 통해 안부를 주고 받은 사람들도 많지만 안선생님은 직접 차를 몰고 위문까지 오셨고 집사람은 퇴원전날 깜짝방문까지. 덕분에 5인실 빈침대에 대충 자리를 마련해 새우잠을 잤는데 아마도 2004년 무릎 수술 했을 때와 그보다 오래전인 1997년 가을 어린 산이가 대학병원 입원했을 때에 이어 가족병상추억이 될 듯하다.
과정을 거치고 일정이 찬 뒤 퇴원.
불과 며칠 사이에 개나리는 만개를 했고 시가지엔 벚꽃까지 활짝피어 딴세상에 온 느낌이 든다.
허리와 엉덩이의 저림 증상은 확연하게 해소가 되었는데 왼쪽 오금을 중심으로 아래쪽으로 이르는 통증은 별반 다를바가 없다.
그쪽은 오금을 중심으로 한 무릎관절 인대에 문제가 있는 듯.
한 고비는 분명 넘었지만 하나의 문제만은 아니었다는 합리적인 의심도 함께 솟아난다.
문제점을 알았으니 해결방법을 또 찾아봐야겠구먼.
(후기)
저녁식사를 마치고 알바 출근을 한다고 나갔던 큰아들 강산이 집을 떠난지 불과 십여분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전주병원 응급실에 실려왔다고...???
저녁 출근하는 집사람과 함께 달려가보니 다행이도 골절이나 심한 손상은 없고 타박상 수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곤두박질을 쳤다는데 그만하기 그나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