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묵을수록 맛이 좋고 모과는 썩을수록 향기가 묻어나며 추억은 오래될수록 그리움이 쌓이는가 보다. 늦가을 쌀쌀한 날씨에 물고기도 이미 월동준비를 마치고 깊이 들어앉았나 보다. 하지만 허기진 백로는 냇가에서 길쭉한 두 다리로 정물처럼 꿈쩍 않고 서 있다. 무슨 생각에 저토록 젖어 들어 삼매경일까. 그야말로 묵상이다. 아무래도 먹잇감을 구하러 나온 것일 터인데 얼굴이 구겨져 초조한 기색이나 주위를 살피는 곁눈질 하나 없다. 냉랭해진 물만 흘러가는데 저러다 먹이를 구하지 못해 끼니를 거를 것 같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곳에 묻어둔 그리움 같은 소신이 있지 싶다. 어찌 보면 은근과 끈기의 싸움이라고 할 것이다. 아무려면 저만한 배짱도 없이 야생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을 것이다. 고작 한두 끼니 건너뛰었다고 죽기야 하겠는가. 나를 다시 보렴. 긴 다리로 높이 서서 주위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긴 목을 더 길게 빼고 긴 주둥이로 먹잇감이 나타났다 하면 전광석화처럼 낚아챌 수 있다. 작은 것이라고 방심하지 않는다. 비록 포식자는 아니라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우리 사이 인연도 악연도 없어 나무라거나 미워할 일도 아니다. 너의 운명이 있듯 나의 운명도 있다. 너도 살고 나도 살면 좋겠지만 지금은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오히려 지나가는 사람이 이런 모습을 보면 더 의아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들이 우리의 끼니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동가숙 서가식’ 하면서 어디든 훨훨 날아다니는 것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 곳에 정착하여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안정되고 행복한지 아는가. 그러지 못한 입장에서는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멋모르고 서로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저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역지사지하라 한다. 서로 처지를 바꾸어 보라 한다. 내 배가 부르니 네 배도 당연히 부르리라 여기거나 내가 기분 좋으니 너도 그러리란 것은 한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