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을 애굽의 총리인 요셉의 종으로 남게 해야 한다는 요셉의 말에 유다가 나서서 요셉에게 간절히 호소합니다. 제발 베냐민만은 아버지에게도 돌려보내고, 대신 유다 자신을 종으로 삼아달라는 애절한 호소입니다. 유다는 베냐민과 아버지와의 관계에 관하여 구구절절 설명하며 읍소(泣訴)합니다. 요셉이 베냐민을 데리고 와야 정탐꾼의 누명을 벗게 해주고, 시므온도 풀어줄 것이라고 했었기에, 그 부분을 아버지께 다 말씀을 드렸지만, 아버지는 베냐민을 데리고 가는 것에 관해 완강하게 거부하였었다는 것도 이야기하고, 만약 베냐민을 애굽에 종으로 남겨두고 돌아가면 결국 늙으신 아버지는 돌아가시고야 말 것이라고 호소합니다.
이러한 호소에는 아버지가 가장 사랑했던 아내인 라헬에게서 나은 두 아들 중의 첫째인 요셉은 이미 잃었고, 라헬을 통해 낳은 아들은 베냐민밖에 남지 않았다며, 아버지 야곱에게 있어서 요셉과 베냐민은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야곱이 요셉과 베냐민을 더욱 사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냐민을 향한 질투와 시기보다는, 베냐민은 아버지 야곱이 사랑하는 아들이기에 그 아들을 아버지에게 잃게할 수 없다는 간절함이 잔뜩 묻어 있습니다. 이전에 요셉을 향한 질투와 시기심으로 가득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사랑하는 요셉을 아버지로부터 떼어놓게 했던 자신들의 죄책감이 포함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유다는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할 때, 죽이기보다는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아넘기자고 제안했던 자입니다(창 37:26~28). 물론 요셉을 죽이는 것보다는 나은 제안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고, 요셉을 죽이자고 했던 형제들이 더 나빴던 것은 사실이지만,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기자고 제안했던 유다이기에 아버지 야곱에 대한 죄책감은 더 컸을 것입니다.
유다는 말하기를, 아버지 야곱과 막내 동생 베냐민의 생명은 서로 하나로 묶인 것이나 같다고 말합니다(30절). 그러니 아버지 야곱을 위해서라도 베냐민은 돌려보내고, 자신을 종으로 삼아달라고 간절히 애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아버지 야곱에게 베냐민을 반드시 돌아올 수 있겠 하겠다고 다짐했으며, 그 모든 책임은 자기가 지겠다고 말했다는 것도 이야기합니다(32절).
예전 같았다면,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더욱 사랑하는 베냐민을 없애는 좋은 기회로 여길 수도 있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베냐민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들만 그 위기에서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여길 수도 있었을 텐데, 이젠 완전히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드디어 남은 열 명의 형제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단단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가족공동체는 서로 책임지는 관계입니다. 교회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들이기에 서로를 책임지는 관계여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형제와 자매들이며, 하나님의 한 가족입니다. 혹시 교회에 가더라도 그저 예배만 드리고 집으로 오면서 그것으로 모든 것을 다 한 그리스도인처럼 여기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우리 교회공동체의 지체들을 향해 책임지는 마음으로 그들을 돌보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책임지는 관계, 교회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