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끝자락인 연말이 다가오면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지인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에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쌀쌀한 날씨가 옷깃을 여미게 하던 지난 12월 초, 우체국에 들러 연하 우편 10장을 구매했다. 우편엽서는 봉투, 카드, 내지로 구분되어 있다. 우체국에서 하나씩 세어 본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가방에 넣은 채 일을 보고 귀가했다. 집에 와서도 카드를 발송할 시기가 아니라는 생각에 책상 한쪽에 올려놓았다.
며칠이 지난 뒤, 카드에 내지를 붙이다 보니 카드 한 장이 부족했다. 담당 직원의 실수려니 생각했다. 급할 게 없다는 마음에 우체국 갈 기회가 생기면 그때 가서 이야기해야겠다며 며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등기우편을 보내야 할 일이 생겨 우체국에 도착하여 "겉봉투와 내지는 있는데 카드 한 장이 부족하다"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카드 구매할 때 확인하지 않았느냐"는 담당 직원의 질문이 되돌아왔다. 그래서 당시 정황설명을 했으나 그녀는 "카드를 주고 나면 짝이 맞지 않아 판매할 수 없다"며 버텼다. 난 " 전부 해 봐야 천원도 되지 않은 카드 한 장 때문에 거짓말을 꾸며 대겠느냐"며 몰아세웠다. 그런데 담당 직원이 "말도 안 된다"며 내 심기에 불을 지폈다. 그 말에 난 내 감정의 분출을 몸에 가두지 못하고 "왜 말이 안 되느냐"며 큰소리로 윽박질렀다. 사태가 확대되면 안 되겠다 싶었던지 우체국장이 나서서 이를 수습했다. 결국, 카드 한 장을 받아들고 우체국을 나섰지만, 마음은 찜찜했다. 집에 돌아와 짝이 맞지 않았던 카드에 내지를 붙이고 봉투에 넣어 함께 보관했다.
거리에 크리스마스 캐럴 송이 올려 퍼질 무렵 토요일 한가한 시간을 이용하여 카드를 쓰기 시작했다. 내지에 감사의 말을 쓰고 봉투에 주소를 쓴 다음 발송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지 않은 카드 한 장이 겹쳐 나왔다. 아뿔싸, 나의 침착하지 못한 행동 하나가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잠시 경솔했던 행동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다. 카드를 돌려주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가 될 소지는 없었다. 그러나 내 양심의 소리가 문제였다.
이틀 동안 잡다행동한 생각들로 잠을 설쳤다. 어떤 것이 내가 할 일인가를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생각해 봤다. 그러자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가 나를 짓눌렀다. 그 소리는 잠시 스쳐 가는 소나기와 같았다. 평생을 양심을 속인 사람으로 살아가기보다는 솔직하게 잘못을 고백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 행동은 내가 책임진다는 결정을 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그럼에도 그것은 결코 마음 내기는 용기는 아니었다.
월요일이 되자 우체국 직원을 찾아가 그동안의 사정을 설명하고 카드를 돌려주었다. 그리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사과했다. 사과 몇 마디로 부적절했던 나의 행위를 용서받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 용서를 구했다. 죄송한 마음에 카드 값에 몇 배에 해당하는 음료수도 전달했다. 담당 직원은 "카드를 찾아 다행이라"면서 얼굴 가득 미소를 담았다. 그리고 이해한다는 따뜻한 한마디가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용서를 구하고 나니 마음속에 남아있던 죄책감 같은 것을 다소나마 털어낼 수 있었다. 이유아 어찌 됐든 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던 사악죄책한 마음과 타협하지 않고 경솔했던 행동을 사과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싶다. 그날 이후 난 경거망동경고망설한 행동은 하지 말아야 겠다고 마음의 끈을 조여 매는 심정으로 몇 번씩이나 다짐하고 다짐했다. 앞으로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방의 가슴에 상처를 줄 행동만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을 되새겼다. 커다란 깨달음 하나를 얻은 마음은 풍선처럼 가벼웠다.
2022년이 가기 전에 액땜했다고 생각하니 그 또한 나쁘지 않았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하더라도 좀 더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교훈은 남아있는 내 삶에 자양분이 될 것이다. 앞으로의 삶이 부끄러움 없는 하루가 되기를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다. 잔뜩 찌푸렸던 날씨가 내 마음을 알기나 한 듯 파란 하늘을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