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5:9 두렵건대 네 존영이 남에게 잃어버리게 되며 네 수한이 잔인한 자에게 빼앗기게 될까 하노라 (개역개정판)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75문
문: 제8계명이 금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제 팔 계명이 금하는 것은 우리의 남의 재물과 산업을 불의하게 방해하거나 혹 방해될 만한 일이다.
(딤전 5:8, 엡 4:28, 잠 21:6, 살후 3:7∼10, 잠 28:19, 약 5:4)
남의 재물과 산업을 불의하게 방해하는 것...
이것이 내가 살아온 지난 날들의 흔적이다.
남의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빼앗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남이 가는 길을 막고 힘들게 해왔다. (의도한 적은 없었지만..)
나로 인해 소비되고 지출되는 경우가 많았고
내가 잘 행하지 못함으로 더 잘될 수 있었던 일들이 성과가 제대로 나지 못한 경우도 많다.
첫 직장에서 들었던 이야기
“선생님은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쳤습니다.”
그 말을 한 분이
비록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 분이 한 말 중에 틀린 말을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그 판단이 맞다는 이야기일테고...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내가 가장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대한 피해를 끼쳤단다...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도 그럴지 모른다.
아니, 냉정하게 보면 그러하다.
마이너스에 마이너스가 이어지면 판단력과 중심을 잃는다.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그게 손해의 영역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면
결국 (추억 말고는) 남는 것이 없게 된다.
열매 없는 모습이 그러하다.
그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게 아니라
사탄 마귀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 악한 사탄 마귀는
우리의 것을 빼앗아
우리가 망하기를 바라고
우리의 영혼까지 멸망의 길로 접어들기를 원할 것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지금 이시간에도 수많은 사기꾼들과 고리대금업자들을 이용하여
오늘도 수많은 이들을 불구덩이에 빠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 말려드는 것만큼 비극적인 일이 있을까?
창세기 3장 13절에서 하나님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은 이유에 대해서 질문하셨을 때 하와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라고 하는데, 그때 ‘꾀다’는 히브리어 나샤는 속이다는 뜻 외에도 이자를 받고 빌려주다 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맘몬의 영은 그런 식으로 사람을 흉악하게 결박한다.
온 인류를 죄에 빠지게 한 바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러하다.
사기와 사채로 인한 피해를 넘어서
일상 업무에서는 어떤가?
혹시 내가 일을 못하고 것을 넘어서
남들에게 피해까지 주고 있으면서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잠언 5장 9절에 언급된 존영과 수한이 빼앗기는 일은
남에게 피해를 입었을 경우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 같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우
본인도 그것을 몰랐던 경우
존영과 수한은 자동적으로 강탈당한다.
나 자신 뿐 아니라 타인과 공동체에게도 그러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빚이 많거나
업무가 많거나
어려움이 많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열왕기하 4장이 떠올랐다.
여호와를 경외했던 남편은 가난한 가운데 죽었다. (왕하 4:1)
이제 과부가 된 아내의 두 아이가 채권자에게 종으로 팔려가게 생겼다.
빈 그릇을 빌리라는 엘리사의 조언 (왕하 4:3)
조금 빌리지 말고 많이 빌리라고 했다.
그릇에 기름을 채웠더니 끊이지 않았다.
또 그릇을 더 가져오라고 했을 때 빈그릇이 없다고 하니 그때 기름은 그쳐버렸다 (왕하 4:6)
우리의 그릇을 준비해야 한다.
많아야 하고
깨끗해야 한다.
준비되어야 한다.
이 그릇은
종교적인 행위나 열심의 그릇이라기보다는
일상의 삶이다.
이웃으로부터 빌려야 하니 관계이다.
이 이웃의 범위에는 채권자도 포함되고
우리의 일을 감독하는 이도 포함된다.
우리의 고객들도 포함된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복을 빌어줘서
그들에게 임하지 못할 복이 나 자신에게 임하게 하는 방법도 좋은 방법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니
내가 가진 빚조차도 주님이 책임지실 것이다.
내가 가진 한없는 무능함도 주님이 사용하실 여백인 셈이다.
다만 그릇을 열심히 빌릴 필요는 있다.
그릇 빌리기가 끝나는 순간 채워지는 기름도 끝이 나버렸다.
우리의 기도는
이상적이기 이전에 현실적이어야 할 것 같다.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영적인 일은 내가 관여할 영역은 아닌 것이다.
이 현실에 주님이 개입하시도록 하고
나는 나의 그릇들을 준비해야 한다.
그릇 빌려준 모든 분들과 화목해야 하고
그릇을 깨뜨리려 하는 까칠한 이들에게는 더욱 복을 빌어 줘야겠다.
자기 밥그롯도 못챙기는 수많은 이들을 위해 울어주어야 한다.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께 빌려드리는 것이니 (잠 19:17)
이자까지 쳐서 갚아주실 것이다.
고금리 시대이니 더욱 그리하실 것이다.
업무도 마찬가지
내가 다하려고 한다면
결국 마이너스에 마이너스가 이어지게 되고
혹시 내가 자리를 비우는 경우는 더 큰 마이너스가 생기게 될 지도 모른다.
동료들과 나눠야 하고
나눌 수준이나 상황이 아니라면
곧바로 하나님께 가지고 가야한다.
엘리사에게 나아갔던 과부처럼
신실한 사역자들에게 자신의 형편을 쏟아내야 한다.
그런 도움이라도 받아야 한다.
혼자 고민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참고로
나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말한 그분에게 설과 추석마다 인사를 드렸더니
경조사 때 찾아주시고 봉투를 전달하시고 가셨다.
나는 정말 손해를 끼치는 자가 맞나보다.
다시금 그분을 위해 복을 빈다.
그리고
존영과 수한을 잔인한 자에게 빼앗길 위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