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꽃
정경용
포장마차 불빛이 아슴아슴 피어난다
귀가를 서두르지 못하는 어깨들이
디귿 자 목로에서 술잔을 기울인다
부모에게 집칸이나 물려받은 직장동료 반장은
몽골 색시에게 장가도 가는데
깡통 집주인 은행빚에 전세금을 날리고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진 친구 민국이의
안부가 궁금하다
전세금은 환장하게 뛰고
나라가 어디까지 가려는가?
오뎅 국물 같은 시간을 마시다 보면
보듬어 들일 수 없는 애인이 불안하다
살림 차릴 방이 없어 장가 못 가는 그의
넋두리는 생 쌀밥처럼 설익어간다
색시감만 있다면 월세가 대수인가
바람도 바닥에 곤두박질치면
회오리로 일어서지
연애 한번 못 해본
백수의 호기가 자정을 넘어간다
아픔을 비다듬는 달도 이지러진
포장이 펄럭이고
삼십 촉 전구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서로가 캄캄한 등을 다독이며
취기가 돌아도 붉어지지 못하는 관자놀이에
달맞이꽃 아슴아슴 피어난다
물금을 읽다
거룻배가 강의 물금을 훤히 읽고 있듯
강도 그의 손금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
저녁의 푸른 이내에 첫 별이 떠오를 때
정맥 같은 그물을 치고
새벽 놀 빛에 끝별이 질 때
동맥 같은 그물을 걷는 거룻배
물속 부력은 어족들의 길이고
수면의 경계는 그의 길이고
물 밖 양력은 새들의 길이다
먹구름이 물고기자리를 지우고
강물도 배가 불러 붉덩물이 뱃길을 삼킨 날
굳은살 앉은 지문에 번개가 긋는 고뇌로
그도 강을 떠나고 싶은 듯
눈빛에 자욱한 물보라가 인다
등 굽은 아버지가 정성으로 그물을 치면
생의 죄표로 떠오른 하얀 부표에
은빛 아가미의 입 맞추는 파문이
사방 무늬결로 물비늘을 퍼트린다
우주를 당겨 말갛게 비친 천문의 마음으로
허다한 허물을 덮는 물금
일급수의 샘물체에 맑게 씻은 눈으로
거룻배의 손금을 거룩하게 기록한 물금을 읽다
강아지풀잎 나라
개구리 잡아 메쳐 기절시켜본 적 있는가? 번질거리는 배에 강아지풀 잎으로 십자가 만들어 교차로에 침 뱉고 깨나기를 기원한 적 있는가? 눈 희번덕거리는 폭군이었다가 가슴 졸이는 거룩한 사제였다가 생명줄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는 사이 어머니 부르는 소리 못 들은 척 그림자는 길어졌다
왕은 어디에 있나?
개구리를 손아귀에 넣어다가 살려주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던가? 직장에서 해고통지서를 받은 다음날 내 마음의 풀밭에 개구리가 뛴다 해가 뜨면 뛴다 이력서를 들고 뛴다 뛰는 줄도 모르고 눈이 튀어나오도록 뛴다 세상을 향해 펄쩍 뛰고 나면 가슴이 벌렁벌렁 숨을 고른다 움츠린다 더 높이뛰기 위하여 운다
비가 오면 운다 정당하게 운다 자본도 폭군도 사제도 아랑곳하지 않고 운다 높낮이가 없이 고즈넉이 운다 기절한 영혼이 깨나기를 기원하며 성호를 긋는 강아지풀잎의 나라 잔잔한 물가 푸른 초장은 있기나 한가?
당선소감
이야기꽃을 피우는 진솔한 시인이 되겠다
산자락에 무더기로 핀 진달래에 취한 반달머리 소녀가 있었습니다. 입술이 퍼렇도록 진달래를 따먹고 바위 뒤로 보리밭 고랑으로 기어 다니며 숨바꼭질할 때, 낮잠 자던 아기노루가 후닥닥 달아나면 벌름대는 가슴을 문지르며 내일 또 만날 수 있을까?
오늘을 살면서 과거를 들여다봅니다. 그때 그 시절을 바라보고 바라보면, 그 여운…… 머리 위에 떠 있는 종달새며 뺨을 간질이던 바람이 이불 속까지 따라와 웃음을 물고 잠들던 때부터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이제부터 마음껏 그릴 수 있어 기쁩니다.
시와 시인의 사이에 징검돌을 놓아주신 맹문재 선생님, 감사합니다. 미완의 작품을 『시에』의 반열에 올려주신 심사위원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연단을 주시는 주님! 진솔한 이야기꽃을 피우겠습니다. 나보다 더 기뻐하고 응원을 아끼지 않을 가족과 친구에게 그리고 ‘동작문학반’식구들에게도 감사하며, 오래도록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첫댓글 선생님 안녕하세요? 가을이 성큼 들어선 듯 합니다.
등단이라는 긴 시간을 끌고 넓은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접하는 등단작이 새롭습니다.
풋풋하신 관심과 보살핌이 제게는 활력입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경용선생님 더위에 잘 지내지시요 시가 정겹습니다
시로 얻는 아름다운 삶, 더욱 아름다워지길 소망합니다.